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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혁명가 김원봉
허영만 지음 / 가디언 / 2020년 8월
평점 :
#한국근대사 #독립혁명가
작년 현충일로 기억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에서 김원봉에 대한 이야기가 논란이 되었었다.
대통령이 언급한 김원봉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그 전까지만해도 김원봉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했다. 역사 공부를 시작한 중학교 때 역시 이 이름을 들어본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공산주의라는 광복 이후에 우리 나라 국민들을 세뇌시킨 빨갱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김원봉이라는 인물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존재가 사라져가던 일제 강점기 시절의 희망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독립의 꿈을 지속할 수 있게 했던 위대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다만, 아쉬움은 이런 위대한 분을 곁에 두지 못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욕과 노덕술의 치욕적 행태로 도망치다싶이 월북한 점이 너무 아쉽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이런 위대한 분을 책을 통해 만나뵐 수 있다는 것이다.
장면1: 의열단을 만들다.
약산은 21살의 나이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으로 했다. 3.1절이 일어났던 해인 1919년 약산은 독립운동의 열사들과 함께 의열단을 만들었다. 정의의 의, 맹렬의 열을 붙여 의열단 이라고 칭하고, 의열단 공약 10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 나라의 독립을 대표하는 의열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약산이 22살의 나이에서이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여러 단체가 존재하였지만, 의열단은 조금 특별했다. 의열단의 단원들은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7가살과 5파괴를 정하고 실현했다. 모든 독립 운동의 방법이 존경받아야하지만, 의열단의 단원들은 목숨을 내놓고 거사를 행하기에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기에 위대하고 존경한다.
장면 2: 신채호를 만나다
의열단을 조직해 4년간의 활약을 펼쳤지만, 의열단은 민중에게나 단원들에게나 의열단의 존재의 이유, 또한 독립의 목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선언서가 없었다. 때문에 약산은 단재 신채호에게 의열단의 선언문 작성을 부탁했고, 바로 조선혁명선언이라는 독립 운동사에 없어서는 안될 선언문을 만들었다. 이렇게 의열단은 항일 투쟁 노선을 한층 정당화하고 이념적 지표를 가지게 되었다.

장면 3: 황포 군관 학교에 입소하다.
의열단의 단원들의 많은 거사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거사에 성공하지 못했다. 처단해야할 인물들의 일정이 변경이되거나 변절자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또는 폭탄을 던졌지만, 불량이거나 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부분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점이다. 그래도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회사 폭탄 투척 성공등 의열단의 활약을 보여주는 몇 차례의 성공도 들을 수 있어 안타까움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우수한 인력의 희생이 뒤따르게 된다. 때문에 약산 또한 개별 항쟁의 한계를 느껴 황포 군관 학교에 입소하게되며 단원들도 군관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당과 공산당의 불협화음으로 결국 도망치듯 나와야 했다. 하지만, 황포 군관 학교에서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단원들은 추후에 조선 의용대에 큰 힘이 되었다.
장면 4: 조선 의용대와 광복
김원봉은 조선 의용대를 결성하여 중국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맹활약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 땅에서 독립 운동을 하지만, 언젠가는 군대를 이끌고, 조선으로 들어가 독립을 쟁취하려 하였다. 하지만, 기다리던 독립이 연합국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우리는 연합군에게 아무런 요구를 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였다. 이렇게 연합국에 의한 광복을 맞이하면서 우리 나라는 혼란스러웠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지만 주권을 가질 수 없었다. 이럴 때 이념을 버리고 한 목소리로 나라의 주권을 되찾아야하건만, 이승만의 남한 단독 정권 수립을 막지 못해 결국 우리는 분단의 길을 가고 말았다.
장면 6: 친일 청산 무산과 노덕술과의 만남
광복을 하고 난 후에 제일 먼제 해야할 것이 친일 청산이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정권의 안정을 위해 친일 청산을 무산 시켰고, 그 휴유증으로 광복 75주년이 된 지금 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친일 자손들이 나라의 주요 요직에서 자신의 이득을 위한 행위를 일삼고 있다.
광복 후의 김원봉은 남한과 북한의 공동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한의 이승만과 북한의 김일성의 단독 정부 수립으로 무산되었고, 김원봉은 이승만의 적이 되었다. 이렇게 이승만의 반대편에 있던 김원봉은 노덕술에게 수치스러운 고문을 받고 결국 월북하게 된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친일 중에 친일인 노덕술에게 독립 투사가 수치스럽게 고문을 받는 다는 것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일 것이다. 그리고 노덕술은 이승만 정부와 차기 정부에서 승승장구하고, 훈장까지 받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런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자손들이 역사의 수치스러운 일을 보고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할지 걱정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을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받쳐 싸운 인물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평가가 꼭 이루어져야하고, 나라의 위기에서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에게 부역하는 매국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꼭 이루어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