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
키만소리 지음 / 책들의정원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세이 #55년생우리엄마현자씨



얼마전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았다. 극 중에서 80년대생 김지영의 인생에 대해서 이전에 많은 생각을 했기에 이번엔 김지영의 엄마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우리 5000년 역사에서 탄생에서 현재까지 가장 많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었던 세대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50년대에 태어난 여자의 인생은 어땠을까?이 책을 통해서 엄마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려한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효자 노릇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모든 세대의 고충은 그 세대만 경험했고 알 수 있었기에 한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못한 우리 엄마의 과거를 한번 엿보려한다.

"눈치 보지 말고 참지 말고 살아. 그렇게 살아도 세상 안무너지더라.

설사 세상이 무너진다고 해도 내 속이 무너지는 것보다 낫더라."

현자씨가 딸에게 해주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을 몇번이나 되새겨 읽으니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지못한 무언가가 퍼지는 듯 했고, 그 울림이 나의 아랫 눈두덩이를 묵직하게 했다. 나의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이다.

"너를 어릴 때 너무 기죽여 키운게 아닌가 싶어 걱정했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듯 살지마"

우리 엄마는 자식이 기죽어 살까봐 걱정이였나보다. 그리고 그 걱정이 이제는 내가 내 아이에게 하고 있다.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은 아이의 의지대로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아으면 한다.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그 돈으로 매일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이게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다.

"멈췄다고 생각했던

제 인생에 작은 바람이 불어오네요."

멋진 말이다. 내 인생의 작은 바람이 내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 너무 좋은 말이다. 작은 배움이 내 안에 숨겨진 나를 깨우고 행복을 알게 해준다. 자식을 위해, 남편을 위해 평생 살아온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서 받은 이름으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현자씨는 나의 엄마보다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다. 우리 엄마도 현자처럼 자신을 위해서 배우고 싶은거 배우면서 여행도 다녔으면 한다.


"살아보니 성공의 의미가 달라지네요.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어쩌면 성공한 인생일지도 모르겠어요."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도"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바로 행복이다"라는 글을 읽었다. 나 역시 성공의 큰 의미는 바로 소소한 행복감을 매일 느끼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요즘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바로 즐거움이고 행복이요. 청개구리같은 딸과 티격태격하는 것도 즐거운 삶이니 나는 매일 매일 성공의 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행복한 성공을 밑거름이 나에게 그리고 나를 보고 자란 아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

글을 읽는 동안 현자씨의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우리 엄마도 같은 55년생인데, 현자씨는 우리 엄마보다 더 진취적이고, 자신을 위한 삶을 충실히 사시는 것 같아 부러웠다. 우리 엄마도 매일 수영을 배우시고, 일주일에 한번 씩은 노래교실도 가고, 노래 교실에서 여행도 다니지만, 집을 비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고작 2일이다. 엄마에게는 새벽에 일을 나가시는 아버지 밥을 챙겨드려야하고, 직장과 육아로 바쁜 매형과 누나의 도움을 주고자 손녀도 잠시 봐주셔야하기에 엄마는 아직 엄마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 무릎 관절이 다 달아 걷는 것도 불편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자식을 다 키워 이제 좀 삶이 편해지려나 했지만, 결혼 후 손녀를 봐야하고, 김치는 떨어지지 않았는지 김장도 해서 보내야하기에 엄마는 아직도 고생 중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죄송스럽다. 이제 조카도 조금 더 크고, 아부지도 일을 그만 두시고, 엄마 무릎도 수술하시면 엄마는 엄마의 위치보다는 자신의 이름으로 스스로 작은 행복을 만끽하면서 살길 바란다.

55년생 현자씨를 읽으면서 많이 느끼고, 우리 엄마에게도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본인의 삶을 살아보라고 꼭 이야기 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우리 엄마도 55년생 현자씨와 같은 나이이다. 6.25 전 후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이며, 80년대 자유를 위한 민주 투쟁이 있던 시기에 결혼 했고, 자식에게 한참 돈이 많이 들어갈 때 IMF를 맞이하면서 순탄한 삶과는 먼 인생을 사셨던 55년생이다. 엄마는 전라도 여수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 부산에 정착했다. 그리고 가난한 8남매의 차남인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강릉으로 신혼여행을 가려했지만 돈 때문인지 시간때문인지 경주로 가셨다고 한다. 두 분은 신혼 여행을 갔다고 신혼 집에 도착했는데 그 집에는 아빠의 13살 막내 동생, 나에게는 막내 삼촌, 엄마에게는 막내 도련님이 먼저 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줄이어 인천 작은아버지, 다대포 작은 아버니까지 가세하면서 한순간에 대가족이 되었다. 엄마는 아직도 그 때의 일상을 회상하면 기겁을 하신다. 그때 당시의 어마어마한 밥솥의 크기와 엄청난 대식가인 막내 삼촌의 식성에 쌀이 없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차남이라서 시부모님을 모실 걱정이 없었다고 생각하셨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 할머니 할아버니가 우리 집으로 오시면서 시부모님을 모셨다고 하니 엄마는 참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15년동안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제사도 좁은 우리 집에서 지내야만 했다. 철없는 나는 친척들이 오는 것을 반겼지만, 음식 준비와 뒤정리를 했던 엄마는 참으로 고달펐을 것 같다. 이렇게 엄마의 인생은 여러 고난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지만 엄마에겐 편히 두다리 뻗고 쉴 공간하나 없었던 것 같다.

아들과 딸을 결혼 시키고 조금 편해지려하나 했는데 이제는 엄마의 몸이 하나씩 고장이 난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다니던 엄마의 무릎이 상할 때로 다 상해 이제는 걷고 앉기가 불편한 지경까지 되었다. 그리고 맞벌이하는 누나네의 힘듦을 도와주시겠다면서 어린 조카의 육아도 도와주시고 있으시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엄청난 경제성장, 가족 구성원의 급변화, 가부장적 가계구조에서 남녀 평등 시대를 다 겪는 엄마는 참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딸과 아들이 각자 분가하고 그럭저럭 살고 있는 것에 엄마의 큰 희생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제는 그 짐을 덜어버리고 엄마도 엄마 하고 싶은대로 무엇이든 하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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