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덧그림
그림자씨 지음 / 에이원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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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눈길을 잡아 끌었던 것은 저자의 나이 때문이다. 저자는 올해 20살이 된 학생이라고 한다. 열아홉 나이 때부터 SNS에 글과 그림을 올리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데 저자의 글과 그림을 통해 요즘 20살의 평범한 마음을 살짝 엿보고 싶어졌다. 소위 말하는 '요즘 아이들'은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을 안고 사는지, 뭘 좋아하고, 뭘 할 때 행복해하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불안함을 느끼는지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이 궁금했다. 물론 작가 그림자씨가 20대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20대가 그림자씨와 모두 똑같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보편적이진 않더라도, 그림자씨의 글과 그림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시대정신을 일부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스무살 시절을 떠올려보고 그 당시의 나의 마음과 그림자씨의 마음을 비교해보고, 지금의 내 생각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런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 저자는 스스로를 '그림자씨'라는 캐릭터로 의인화 하여 말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그림을 선택했고, 마음 속의 어둠고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을 마치 그림자처럼 나타낸 것이다. 20대만큼 어둡고 불안한 시기도 없으니 불안이나 두려움, 압박감, 책임감 같은 부정적인 어두운 감정을 마주하자는 의미로 자신의 어두운 면, 다크 사이드를 대변하는 그림자씨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그림으로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말장난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 들어간 의미는 제법 말이 된다.


그런데 책 속의 그림자씨는 어둡지가 않다. 탄생부터가 저가의 어두운 곳을 상징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그렇다고 그림자씨의 행동이 모두 어둡고 우울한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그림자씨는 인생을 즐기기도 하고, 다양한 도전을 하고, 엉뚱한 행동도 한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모두 우울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지만은 않다. 밖으로 표현하진 않더라도 누구나 마음 속에 울울, 불안, 슬픔 같은 어두운 면이 들어가 있는데 그런 마음을 안고도 당당하게 그림자를 마주하고, 남들이 뭐라하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부딪히고 도전을 해보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하고 묻는다.


우리는 아홉가지 행복을 가지고 있어도 한가지 불행 때문에 인생이 힘들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여러가지 어두운 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불행의 요소라고 생각하면 결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가 없다. 때론 자신의 불행이 자신의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라고 탓하기도 하는데 마음에 그늘이 있다고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그림자가 져 있다고 도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어두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 자신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놔두고 자신이 행복해지는 결정을 하자고 한다. 그러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신의 내면 속 그림자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어두운 부분, 그림자와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습 또한 자신의 일부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두운 감정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가 삶이 힘들어지고, 지칠 때 그런 감정이 밖으로 튀어나와 맞닥뜨리게 되면 애써 부정하던 모습에 침식당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객관화를 통해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변화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림자 그 자체가 바로 나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그림을 그림자씨로 표현했다. 내가 하는 행동, 나의 생각을 그림자씨의 행동, 그림자씨의 생각으로 그린다. 그리고 마치 3인칭으로 그림자씨를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자기객관화로 자신을 바라보려는 시도로 읽힌다. 적힌 글들은 말 그대로 인스타용 감성글이다. 이런 인스타 감성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들겠지만 이런걸 중2병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손발이 오그라들 수도 있겠다. 꼭 저자의 글이 유독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류의 감성글'은 모두 취향을 많이 타니까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격하게 공감하며 위로를 받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솔직히 그림체는 작가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아주 예쁘거나 잘그린 그림은 아니다. 요즘은 이런 일러스트가 너무나 이쁜 게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림을 잘그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히려 너무 화려하고 뛰어나지 않은 그림이라서 마음이 푸근하고 투박함에 정이 간다. 작대기처럼 표현된 몸이지만 의외로 그림자씨의 움직임은 굉장히 동적이고 작대기치고는 꽤나 디테일하다. 그리고 상당히 귀여운 구석도 있다. 이 책은 그림체보다는 그림 자체의 아이디어나 그림이 나타내는 의미가 좋으니 그것에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겠다. 오른쪽 페이지의 글보다 왼쪽의 그림과 짧은 한문장에 더 눈길이 오래 머무른다.


스무살 시절의 어둡고 우울한 그림자가 그려내는 결코 우울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들.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이 듣고 싶거나 전하고 싶은 위로의 말, 자신이 되고 되돌아보고 싶은 모습들 그리고 엉뚱하기도 하지만 무심히 지나쳐버리지 않고 간직한 생각들을 투박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그림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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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한국사를 다시 읽는 유성운의 역사정치 지도로 읽는다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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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현재의 역사관으로 과거의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건 과거의 역사를 오늘날의 실정에 반영하는 것이건 어떤 경우건 과거의 사건을 토대로 현재의 역사를 새롭게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현재 우리가 처한 여러 문제들을 과거의 선조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피고 과거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현재 우리가 나아갈 바를 생각하고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들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역사는 필요하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의 본질은 똑같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나 외교의 측면에 있어서는 분명 과거로부터 배울점이 많다. 그것이 성공사례이건 실패사례건 어느 것이건 지금 우리에겐 큰 교훈을 주고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저자는 역사 중에서도 정치적인 영역에 집중한다. 정치란 사회의 각종 고민들이 모여들고 이해가 충돌하는 영역으로 역사란 모든 정치적 행위들의 합과 같다고도 하겠다. 사람 사는 것이 결국 이해가 충돌하고 서로간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문제건 국제 사회에서의 문제건 대부분의 사건은 정치적 이거나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제들일 것이다. 고로 현재 발생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나 각종 사회 이슈들이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더라도 과거 역사적 사건에서 오버랩되는 것을 찾아 그것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시각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잘못 알려졌거나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고 한다. 때로는 식민사관에 의해 필요이상으로 낮게 해석되거나, 과도한 국뽕으로 과도하게 뻥튀기 되어 알려진 경우도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는 극적인 이야기는 다 빼고, 담백하게 사실만을 바라보고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되집어본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의 국왕, 조선 사림, 임진왜란, 조선 사회라는 여섯가지 테마로 각각 역사적으로 주요한 정치적 사안을 살펴본다. 이야기의 끄트머리엔 아주 약간 현대 한국의 정치상황을 빗대어 말하고 있는데 그리 많은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다. 저자가 역사를, 정치를 보는 시각이 어떤지 한번 살펴보자.


저자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이 한국 역사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일본과 중국은 임진왜란 이후 권력의 재편이 일어나며 역사적으로 새로운 장이 열렸는데 '가장 무능한 모습을 보였던' 조선만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근대국가로 전환되지 못하고 정체되었다는 견해다. 이런 주장의 기본적인 취지는 동의한다. 당장 류성룡의 징비록이 조선보다는 일본에서 많이 팔렸다고하니 당시의 기득권은 반성을 하지 않았고, 국란을 겪고도 조선은 바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성리학에 함몰되어 유교적으로 꽉 막힌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으니 발전이 더디고, 그 결과 이후 열강들에 나라를 빼앗긴 수모를 당한 것이리라. 같은 논리로 일제 강점기 이후 친일조선이 망하지 않았던 것과 두 번의 군부독재 이후 독재국가로서의 한국이 망하지 않은 것 역시 뼈아픈 역사의 한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말 저자의 말처럼 임진왜란 때 과연 조선이 '무능한 모습'만 보였던가? 이 의견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최근 임진왜란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공부할수록 그동안 몰랐던, 역사시간에는 배우지 않았던 수많은 눈부신 승리의 기록을 접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오직 이순신 장군의 활약과 명나라 덕분에 전세가 뒤바뀌고 왜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배웠는데 정말 대단한 조선의 용장, 맹장들이 존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조선군이 그저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명나라의 도움으로 겨우 어려움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명의 참전 이전에 이미 전세가 뒤바뀌고 있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오히려 한양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패주하는 왜군을 일격에 섬멸할 수도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왜와 휴전을 해버린 명의 방해로 적을 눈앞에서 놓아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명이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우리땅에 발을 디딘 왜군은 모두 말살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저자는 사실과 다른 뇌피셜은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려 건강을 해칠 뿐, 역사를 제대로 인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정작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활약을 폄하하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지양해야한다고 말한 왜곡된 역사의식이 아닐까한다.


명나라 대장 이여송은 조선인을 죽여 머리를 깎게한 후 왜구를 죽였다며 공을 부풀려 보고하였다가 명나라 본국에서 감찰이 뜨기도 했다. 또 공을 세우려고 무리하게 진격했다가 고니시의 역습에 걸려 참패하고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친 이여송은 그 후로 왜군과 싸우지 않고 엉뚱하게 사기꾼 같은 심유경을 보내 고니시와 휴전을 맺고 몇 년 동안 지지부진한 시간만 보낸다. 마치 6.25때 유엔군과 공산군측이 2년 동안 휴전회담을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우리땅에서 벌어진 우리의 전쟁이지만 전작권을 우리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패싱당하고 다른 열강들끼리 우리나라의 처분을 두고 회담을 벌렸던 굴욕적인 사건으로, 아쉬울게 없는 그들은 지지부진 시간만 끌었으며 그동안 우리 민초들만 죽어나갔다. 이런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국방을 바로세우고 자주국방의 기치아래 전작권을 가져와야만 한다. 그런데 책에 이런 내용은 전혀 없다. 가장 중요한 결론은 그것인데 왜 이것과 관련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는 것인지 심히 궁금하다. 이 글이 실린 <중앙일보>는 현재까지도 전작권 환수는 안된다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이런 두 번의 뼈아픈 역사를 보고도 아무것도 배운게 없다는 뜻이다. 이들은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전혀 없이 오히려 나라가 망하는 길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분노하는 지점이다.


또 저자는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활약을 소개하며 지난 신천지로 인한 코로나 1차 확산 때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인 의료진을 의병들에 비유하였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정부를 선조처럼 묘사하고 대구 시장을 분조를 이끌고 의병들을 통솔한 광해군처럼 묘사하는 늬앙스를 풍긴다. 왜 아니겠는가? 그게 <중앙일보>의 스탠스 아니었던가? 아주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조정에 반기를 들고 일본을 따랐던 순왜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정말 코로나 사태 때 나라를 위태롭게 한 순왜가 누구인지 무릎을 맞대고 따져보자. 저자는 마치 현정부를 선조에 빗대어 의병들간에 불화를 가져오고 혼란을 초래했다고 말하는데 정작 국민들을 편을 갈라 갈라치기하고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로 극도의 혼란을 부추긴 것은 언론이었다. 이런 추악한 모습의 언론이야말로 조정에 대항하여 나라가 망하건말건 일신의 영달만 꾀하던 순왜를 연상시킨다.


다른 대목을 보자.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고려는 지속적으로 일본에게 국교 수립을 요청한다. 하지만 일본은 냉담했고 고려의 요청을 계속 거절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은 고려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고려의 문종은 (하필 '문'종이다)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정성을 다해 일본을 대하며 국교 수립을 요청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굴욕외교인 셈이다. 그런데 저자는 고려의 이런 굴욕 외교가 정확한 외교적 판단에 의한 결정이었다고 칭찬한다. 즉,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북쪽 압록강 유역에서 거란과 여진과의 갈등이 심했으므로 군사를 북방에 집중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후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혼란을 겪다가 나라가 넘어간 것을 이유로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려는 외교적 행동은 올바른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문종이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기 위해 대가리를 숙이고 낮은 자세로 기었던 것도 대의를 위해 잘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아주 기가 찬다. 그래서 문종의 굴욕외교의 결과 고려가 일본과 국교 수립이 되었나? 일본이 고려의 든든한 동맹이 되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게나 정성을 다하고, 제발 함께 해달라고 일본에게 설설 기었지만 일본은 자신들에게 대가리를 숙이는 고려를 우습게 봤고, 자신들의 아래로 생각했다. 그런 나라와 국교를 수립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굴욕 외교는 고려를 약한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일본이 고려를 침략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고려 말기 40여년간 왜는 고려를 600회 가까이 침략하였다. 고려는 줄곧 소극적으로 회유책을 썼으나 왜의 침략은 계속되었고 뒤늦게 강경책으로 돌아섰지만 그땐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저자는 이 사건을 작년에 있었던 일본의 경제공격과 연관지어서 우리 정부를 향해 '실리'를 위해서는 '문'통이 일본에게 대가리를 숙일줄도 알아야 한다는 늬앙스로 글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저자가 요구하는 문종식 굴욕외교는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시키지 못하는 실패한 마키아벨리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벤치마킹하라는 것인가?


이미 역사적으로도 굴욕외교를 했던 고려는 일본과 화친을 맺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의 침략을 당해서 나라가 멸망했다. 저자 스스로 그런 내용을 책에 적어놓았으면서도 어떻게 일본에게 굴욕적이더라도 대가리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당시 고려는 앞서도 말했듯이 북쪽으로 거란, 여진과의 갈등이 있었다. 이것을 지금의 국제정세에 대입하면 한마디로 북쪽에 있는 북한이 주적인데 북한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일본에게 굴욕협상을 하더라도 일본 비위를 맞추라는 소리다. 애초에 북한을 적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종전선언과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하면 될일이 아닌가? 왜 굳이 북을 적으로 삼고, 북에 대응하기 위해서 일본에 굴종의 모습을 보여야 한단 것인가? 백보 양보해서 북이 우리의 주적이라 한들 북을 상대하는데 일본의 힘이 필요한가? 아니면 우리가 북한을 견제하는 동안 일본이 다시 침략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그런 뜻인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사란 해석의 영역이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를 대입하여 과거의 역사를 읽어내는 것은 좋지만 제대로 된 비유와 정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정치적 해석에는 그 사람의 정치적 시각이 들어갈 수 밖에 없으니 지극히 주관적이 해석이 될 수 밖에 없겠지만 이렇게 되면 그저 현 정부를 비난하고, 일본을 추종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가져오는 것 밖에는 안된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자신의 정치적 시각에 문제점은 없는지 곰곰히 따져보고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순신 장군의 왜에 대한 평가로 글을 가름한다.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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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것들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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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획득한 그밖의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총체라고 정의한다. 현재 우리의 문화에는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과 과거로부터 이어진 문화의 역사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즉, 문화는 동시대 사람의 가치관과 그 지역 사람들의 전통의 집합체이므로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는가 하는 문화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 대한 고찰이 된다. 여러 문화적 산물 중 책에서는 인간의 의식주를 중심으로 문화적 의미를 찾아본다. 특히 의식주의 '최초'라는 부문에 집중하여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는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떤 경로로 전파되었는지 역사적 맥락을 찾아본다.


의식주는 인류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붙어 있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화이다. 누구나 매일 접하고 항상 마주하게 되는 생활양식이라서 의식주가 곧 인간의 삶의 모습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의식주에는 인간의 지식과 신앙, 예술, 법과 도덕까지 모두 녹아있다는 의미도 된다. 종교에 따라 금기시 하고 있는 음식이라던지, 술에 담긴 종교적 함의, 콜라병의 예술적 의미와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백화점과 침대가 가구가 아닌 과학이 되버린 사연 등 의식주를 종교, 과학, 법, 예술의 영역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책은 의식주에 숨어있는 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의, 식, 주'라는 세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장례식의 검은 옷
지금은 결혼식 날 하얀 드레스를 입지만 고대 로마시대 때는 노란색 드레스와 노란 베일을 썼다고 한다. 베일은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사용되기 전부터 있었는데 동양과 이슬람 사회, 로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의 모든 나라에서 베일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순종과 종속의 의미를 가진 의상용품이었다고 한다. 이럴 때는 전세계가 하나가 되는가보다. 즉, 베일은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고상함과는 관계없이 여성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의상용품이었던 것이다. 하얀 웨딩드레스가 여성의 순결을 의미하는 표현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혼반지는 왜 생겼을까
결혼반지는 기원전 2800년 경 이집트 왕조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는데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을 나타내는 고리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결혼의 징표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혼반지는 처음 시작부터 영원한 사랑이라는 지금의 의미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결혼반지를 약지에 끼는 관습은 그리스인 의사들의이 사랑의 혈관이 약지에서 심장으로 다이렉트로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에 약지에 낀 것이라고 한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에 대한 맹세를 하는 의식에서 약지에 반지를 끼우게 되었다는데 같은 관습이라도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교가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시킨 이유
아랍인과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금기시 한다. 이슬람교도는 좀 더 엄격해서 돼지고기가 없는 요리라도 칼이나 조리도구에 돼지고기가 닿았을까봐 일반 식당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 이슬람과 유대교에서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이유는 코란이나 구약성서에 돼지를 먹지 말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법서와 성서에 콕 찍어서 '돼지'를 먹지 말라고 한 이유는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아마도 돼지는 발정기가 빠르게 돌아와서 성욕이 강한 동물인데 그런 점이 불결하게 느껴져서 금욕적인 이슬람교나 유대교와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청한다. 일각에선 중동처럼 더운 지역에서는 부패하기 쉬운 돼지를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먹지 못하게 했다는 썰도 있다


힌두교는 왜 소를 신성시하는가
이슬람고 유대교는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여기는데 반해 힌두교에서는 소를 청결한 동물로 여기고 신성시한다. 유목생활을 하던 아이라인에게 소는 노역의 대상이나 우유나 버터의 공급원이고, 소똥은 비료와 연로로 사용하는 자원이었다. 어느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자신들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기 떄문에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본다. 한국에서도 과거에 소는 마치 자식처럼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비슷한 이미지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창문이 많으면 세금도 많이 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창문세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재산세였는데 창문의 재료인 유리가 워낙 고가였기 때문에 창문 없이 사는 집도 많을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였고, 세금을 줄이기 위해 창문 수를 줄이거나 없애는 집도 생겨났다고 한다. 세금을 내는 대신 어둠을 택한 것이다. 세금을 피하려고 창문을 폐쇄하자 햇빛을 못 보고 습한 곳에 살다보니 우울증이 늘어났고, 각종 병균이 창궐해 전염병이 만연하게 되었단다. 이런 어이없는 정책이 무려 150년간 이어졌다니 그때나 지금이나 공무원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이란 탁상공론에 그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의식주는 우리의 일상 그 자체이므로 특별히 그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습관적으로 행하게 된다. 그래서 매일 접하면서도 왜 이런 식으로 생활양식이 형성되고 의식주 문화로 굳어졌는지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특히 서양에서 들어온 서양의 문화는 애초에 우리의 정서 속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아니라서 그 의미는 물론 원류와 기원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책을 통해 우리 생활 문화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의식주 문화에 대해 살펴보며 그 속에서 역사의 의미까지 읽어낼 수 있어서 다양한 재미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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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인문학 - 도시를 둘러싼 역사 · 예술 · 미래의 풍경
노은주.임형남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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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도시를 책이라고 표현했다. 도시라는 책은 세상의 모든 장르가 망라되어 있으며 수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이야기책이라는 것이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시간이 서로 얽히며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며 열린 결말을 가진 아주 긴 대서사시라서 그것을 알아차리기란 쉽지가 않다고 한다. 도시라는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접해야 비로서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도시를 책이라고 표현한 저자의 감각이 좋다. 실제로 이 도시에서는 멜로, 서스펜스, 스릴러, 호러, 액션, 시대극 등 다양한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으며 도시에 살고 있는 모두가 등장인물이고 어떤 형태로건 그 이야기에 연관되어 있다. 일반적인 책과는 다르게 도시라는 책은 그 속으로 뛰어들어서 공간과 시간을 가로지르며 익숙해졌을 때야 비로서 도시라는 이야기가 보일 것이다.


도시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다. 체계화된 시스템만으로 도시를 규정할 수도 없다. 공간 위에 시간이 쌓이고, 수많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진가가 나타난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존하며, 매 순간 사회, 역사, 문화, 철학이 골목마다 녹아들고, 많은 사람들의 삶이 도시에 집약되어 있다. 그리고 도시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집약된 사람들의 삶은 도시의 건축물이라는 형태로 구현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건축물이건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건축물이건 거기에는 도시의 정신이 담기게 되는 것이다. 부부 건축가인 두 명의 저자는 전 세계 13개 국가의 21개 도시를 건축물이라는 매개체로 건축물에 담겨 있는 도시의 역사, 예술, 미래의 풍경을 읽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홍콩은 중국과 영국이 뒤섞인 양면성을 가진 도시이다. 특히 중국반환을 앞둔 97년의 세기말에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마치 '강시'같은 존재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양면성은 홍콩의 도시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상업화되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도시적인 면모와 낙후된 슬럼 지역이 공존하는 독특한 이미지는 블레이드 러너나 공각기동대 같은 영화에서도 차용되었다. 중국과 영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불안이 실제 도시의 건축물로 구현되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주룽자이성이 그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송나라 때 만들어진 요새였는데 영국과 중국 양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일종의 중립지대 혹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마치 강시 같은 지역이 되면서 난민이 몰려들고 2층이던 건물을 15층까지 쌓아올려 특유의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중국과 영국 사이에 낀 홍콩의 처지가 무허가 건축물에 그대로 현실반영되어 홍콩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은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생경하게 끼워진 첨단의 건축물이다. 아연과 티타늄으로 된 박물관의 벽면에는 창문도 없고, 입구도 찾기 힘들며, 내부가 보이지도 않아서 일반적인 건물이 아니라 갑옷을 두른 조형물처럼 보이는데 벽에는 마치 손톱자국처럼 사선으로 할퀴어진 자국이 상처처럼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는데 동서남북의 방향성도 없고, 빛도 없다고 한다. 혼란을 겪으며 들어가며 중간에 납작한 철로 만든 가면이 깔린 길을 걷게 되는데 가면을 밟으면 비명같은 요사한 소리를 내게 된다. 이는 박물관 건축물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이루어졌으며,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의 책임이 단순히 히틀러나 그의 추종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침묵했던 모두의 잘못임을 말하고 있다.


홍콩의 주룽자이성은 당시 홍콩이 거처온 역사적 배경과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건축물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주룽자이성은 양면성이라는 당시 홍콩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를 상징처럼 껴안고 형성되었다가 중국에 반환된 홍콩의 운명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은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건축물이다. 주룽자이성과 같은 시간의 흐름에 역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지난 역사를 함축하여 의미를 새겨놓았다. 어떤 경우이건 건축물에서 지난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책의 한가지 특징을 꼽으라면 하나의 도시, 하나의 건축물을 소개하기 위해 서론이 무척 길다는 점이다. 영화나 대중음악 등을 빌어오기도 하고, 저자의 경험담을 전해주며 앞으로 설명할 건축물에 대한 밑밥을 까는데 꽤나 장황하게 서론을 길게 늘어놓는 것 같지만 사전 지식과 그것에 담긴 의미를 효과적으로 쉽게 전달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생각하면 특별히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중문화(주로 영화인데)를 인용하여 글이 지루하지도 않고, 함의와 상징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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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란 : 만능장편 - 집밥을 더 쉽게! 맛있게! 건강하게! 알토란
MBN〈알토란〉제작진.김하진.임성근 지음 / 다온북스컴퍼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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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집밥이라고 하면 엄청 쉽게 생각한다. 식당에서 파는 전문적인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는 가볍게 뚝딱 만들어서 먹는 쉬운 요리라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좋은 재료를 써서 정성껏 만들기 때문에 식당보다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집밥은 결코 만들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맛을 내기 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화구가 약하고, 공간과 도구가 제한적이며, 식당처럼 많은 재료를 사용하여 대량으로 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서 깊은 맛을 내는 것이 어렵다. 게다가 나처럼 요리가 서툰 사람이라면 집밥은 더욱 힘든 미션이 된다.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겐 TV에서 방송해주는 쿡방이 꽤나 도움이 된다. 요리를 잘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손재주가 없고, 손맛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칼질, 양조절, 불세기 등의 요리 기술은 물론 재료 선택과 손질, 각 재료간의 궁합 등의 요리 전반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블로그의 레시피만으로는 맛있는 요리를 뚝딱 해내긴 어렵다. 디테일한 레시피는 당연하고, 거기다 눈높이에 맞는 설명과 모든 요리과정을 꼼꼼하게 알려주며, 각 단계에서의 주의사항과 맛을 내는 포인트, 깨알 같은 요리 팁 등을 필요로 한다. 알토란이 바로 그런 것들을 알려주는 쿡방이다.


알토란은 집밥을 더 쉽고 맛있고 건강하게 만들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방송이다. 요리연구가 김하진님과 국가공인 조리기능장 임짱 두 분의 쉐프가 고정으로 출연하며 많은 요리의 팁을 알려준다. 때론 너무 퓨전식으로 만들어서 된장찌개 안에 너무 생소한 재료를 넣는다던가 하는 일도 있지만 그 역시 요리의 변화와 다양성, 창의성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요리라는 것은 틀에 박힌 것이 아니라 맛을 내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이므로 그런 새로운 재료들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건 알토란은 다양한 주제로 많은 요리를 알려줘서 꽤나 도움이 되는 방송이다. 그래서 자주 챙겨보며 방송에 나왔던 것들을 자주 따라해보는데 방송의 모토대로 쉽고, 맛있게 만들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번 책은 방송에 나왔던 내용 중 여러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특급 만능장 레시피만 따로 모아놓은 것인데 만능장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쉽게 사용할 수 있어서 요리가 서툰 사람에게는 더없이 유용한 것이다. 요리가 서툰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간을 하고 양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능장이 있으면 그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만능장을 활용하면 쉽고 편하게 요리를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다. 만능장에 익숙해지면 꼭 책에 나오는 레시피 말고도 다른 요리에도 응용할 수 있어서 그만큼 활용도가 높은 것이 바로 만능장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정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알짜배기 정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방송에 나왔던 내용들을 새로 엮은 것이라서 레시피 설명에 방송 화면 장면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레시피 사진에 하진쌤이나 임짱 얼굴이 계속 나오는데 마치 알토란 방송을 보는 기분이라 친근하고 편하게 다가온다. 일단 TV방송에서 연출된 화면이라 화면 자체가 단조롭지 않고 시각적으로도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설명이 잘 되는 느낌이다. 알토란의 방송은 마치 인포그래픽처럼 그림과 그래픽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재료와 레시피 등을 설명하기 때문에 정보 전달이 빠르고 정확한데 방송화면을 활용한 이 책도 그런 장점이 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재료만 덩그라니 나오는 여타의 요리책보다 훨씬 풍성한 기분이다.


책은 만능 양념장과 만능 전통장 두 챕터로 나누어서 구성되고 만능장을 만들고, 그 만능장을 활용한 요리를 만드는 식으로 진행된다. 만능장을 활용한 요리를 책에 모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책에는 한두가지 요리 밖에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그 만능장으로 활용가능한 요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하고 있어서 책에 나오는 레시피를 참고하여 다른 요리도 만들어보면 될 것 같다. 책에 써있는 것처럼 만능장 하나면 요리의 한계란 없기 떄문에 집에서도 쉽고 맛있게 모든 요리에 활용해보면 좋겠다.


레시피의 각 과정마다 TIP이 달려 있어서 디테일한 설명을 볼 수 있고, 셰프의 설명이라는 요리나 재료 준비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주의해야할 설명과 팁도 추가되어 있어서 요리를 할 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재료손질법이나 요리에 대한 비법도 깨알같이 알려주고 만들어놓은 만능장이나 요리를 보관하는 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즉, 모든 면에서 설명을 엄청나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요리 못하는 사람에겐 이런 알짜정보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알토란은 다른 쿡방과는 달리 영양에 대한 고려를 많이 한다는 차별점이다. 방송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요리 도중 꼭 한의사나 가정의학과 의사가 재료의 궁합이나 영양에 대해 설명하는 코너가 있는데 알토란은 단순히 맛만 내는 요리가 아니라 각 재료간의 성질과 궁합을 따져서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재료들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요리를 알려준다는 점이다. 책에도 재료의 효능, 다른 재료와의 궁합 등을 설명해놓고 있어서 건강까지 생각해서 요리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맛있게 먹으면 다 몸에 좋다지만 정말로 몸에 좋은 요리를 할 수 있게 해준다.


TV 방송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을 사람에겐 이 책이 꽤나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다. 물론 요즘엔 방송을 보고 따라서 요리를 하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람들도 많지만 재료나 계량, 조리법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조금씩 변주를 주기도 하기 때문에 정확히 하진쌤과 임짱이 알려준 내용을 찾으려면 꽤나 번거롭다. 특히 비법 만능장 레시피는 요리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건데 그 비율이나 재료가 조금씩 틀어져버리면 제맛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오리지널 레시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각 단계마다 주의사항과 맛을 내는 팁을 빠트리지 않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은 집에 한권씩 가지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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