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식탁 - 양장, 영혼의 허기를 달래는 알랭 드 보통의 132가지 레시피 오렌지디 인생학교
알랭 드 보통.인생학교 지음, 이용재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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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식탁]은 일반적인 레시피북은 아니다. 일단 저자가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이라는 것에서부터 바로 감이 오겠지만 이 책은 평범한 요리책이 아니라 요리책의 형식을 빌려서 심리학과 철학을 말하고 있는 음식 철학서, 요리 인문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알랭 드 보통이 세운 것으로 유명해진 '인생학교'가 공동저자로 되어 있는데 인생학교는 관계의 형성 원리나 실패 원인, 위대한 사상가들이 남긴 삶의 교휸, 어린 시절이 성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외로움·불안·절망의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등 삶 속의 크고 작은 질문들을 놓고 함께 공부하고 배우는 학교라고 알려져 있다. 인생학교에서 다루는 이런 주제들을 요리 레시피나 저녁 메뉴와 접목시켜서 이야기한다.


앞서 음식 철학서나 요리 인문학서라는 말을 했는데 이런 책들은 음식 쪽에 방점이 찍힌다. 음식이나 요리를 메인에 두고 역사나 예술, 문학, 인류학, 철학 등으로 맛과 음식을 해석하는 식이었다면 이 [사유 식탁]은 음식이나 식재료를 하나의 철학적 소재로 치환하여 철학 이야기를 하는데 좀 더 치우쳐 있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것에 착안하여서 정신에 좋은 요소를 식재료(소재)로 선정하여 '좋은 시민' '좋은 개인'이 되기 위한 레시피(방법)를 배워보자는 식이다. 쉽게 말하면 요리책을 코스프레한 철학서인 셈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좋은 요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당시의 이상적인 시민을 규정하는 열두 가지 미덕을 현대적으로 치환해서 희망, 장난기, 성숙함, 안도감, 외교술, 냉소, 예민함, 지성, 친절, 인내심, 비관주의, 자기 이해, 자기애, 자기주장, 동정심,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총 열여섯 가지 원료로 확장시켜 다루고 있다.


음식 그 자체나 식재료에 관련된 인문학이 아니라 요리와 식재료에서 출발해서 철학으로 자연스럽게 연착륙하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선듯 이해가 안될텐데 예컨데 인내심의 상징을 나타내는 '피스타치오'로 설명을 해보면 피스타치오는 맛은 좋지만 먹기가 불편하다. 단단한 껍데기을 벗기는 것이 무척 귀찮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껍데기를 벗기다가 손톱을 다치기도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힘겹게 껍데기를 벗기고 얻는 보상은 달콤하지만 그 양은 너무나 적고 더 먹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생긴다. 하지만 다시 껍데기를 벗기는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손이 가지 않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껍데기를 제거하고 알맹이만을 큰 봉지에 담아서 팔고 있어서 돈만 더 내면 더 이상 맨손으로 껍데기를 벗기지 않아도 편하게 맛있는 피스타치오 알맹이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풍요로움은 감사함을 잊게 만든다. 아무런 수고 없이 피스타치오를 막 먹다보면 결국 감사할 줄 모르게 되는데 껍데기를 제거하지 않은 피스타치오는 쉬운 성취의 불공정함과 인간을 약화시키는 편안함에 반하는 개념이자 인내심과 꾸준한 노력으로 언젠가 성취한 보상을 의미한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인내는 마냥 슬픈 미덕 같지만 원하는 것을 당장 손에 넣는 게 최선이 아닐 수 있으며 욕망이라는 장애물과 끈질지게 싸워야 한다는 중요한 통찰력 위에 자리한다는 나름의 교훈을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피스타치오 하나 까먹으면서 뭘 이렇게까지나 생각을 하나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피스타치오 껍데기에서 이런 의미를 발견해내는 통찰이 놀랍기도 하다.


아무튼 책은 이런 식으로 하나의 식재료에서 인간의 미덕을 발견하고 인간의 본성과 감성을 통찰한다. 그리고 그 식재료를 활용한 진짜 요리 레시피를 몇가지씩 덧붙이고 있는데 그 음식에까지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냥 식재료에서 의식의 흐름으로 인간의 미덕을 통찰하며 머리를 채우고, 요리로 배를 채우라는 식인가보다. 책에 따르면 서양의 지식인들은 음식을 대화 주제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정신적 열망과 육체적 만족 사이에 거리를 두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음식이나 먹는 행위를 지적이고 심리적인 부분과 연관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데 그런 것치고는 아까 말했듯이 음식 철학서나 요리 인문학서를 상당히 많이 봤다. 물론 이 사유 식탁은 그런 책들과 형식이 전혀 다르고, 철학이 메인디쉬인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건 맞는 것 같다.


우선 여기까지가 파트1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간성을 가치있게 만드는 여러 요소들은 식재료에 비유하여 하나씩 소개하였고, 이후 '우리 자신을 돌보기, 친구들과 함께, 관계, 충분히 좋아, 사유를 위한 음식'이라는 총 5가지 테마로 우리의 고민이나 수많은 걱정들, 사랑, 대인관계 등의 조금 더 깊고 실체가 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며 그 이야기의 주제에 걸맞는 요리 레시피를 짝패로 묶어서 소개하고 있다. 철학적이라고는 했지만 어려운 철학적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식사 자리에서 나눌만한 가벼운 스몰 토크 정도의 철학적 에세이라서 마치 에피타이저 스프를 떠먹듯 술술 넘어간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놓은 음식 이야기로 스무스하게 이어지며 그 둘이 하나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좀 억지스럽게 묶어놓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있지만 크게 거슬리거나 문제되지는 않는다.


사실 음식 레시피는 대충 훑어보는 것으로 넘어가고 심리학과 철학을 다룬 파트를 중점으로 읽었다. 한번쯤 하게 되는 고민이나 문득 떠올릴 때가 있는 생각들을 소제목으로 하여 그와 관련해서 가볍게 사유를 하고 있어서 평소 그런 고민이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면 그에 대한 가벼운 조언을 받는 듯한 기분도 들고 전체적으로 꽤나 공감도 가는 글이라서 그 글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렵지가 않아서 가볍게 읽기 좋다. 좋은 음식이 몸을 건강하게 하듯, 좋은 사유는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매일 식사를 하듯 가볍게라도 일상을 돌아보고 사유하며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 필요할텐데 그럴 때 사유 식탁이 도움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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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잘 부탁해, 도쿄! - 도쿄 새내기의 우당탕탕 사계절 그림일기
장서영 지음 / 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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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이지만 일본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정의하는데 이 말처럼 적당한 말은 또 없을 것 같다. 한국의 정서나 분위기와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이색적이고 낯선 재미가 있는 묘한 느낌 때문에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런데 단 며칠동안 여행을 가서 접하는 일본과 그곳에 생활하며 매일 마주하는 일본은 아마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같은 장소에 방문하더라도 여행으로 한두번 갈 때는 방문했던 그 계절, 그 시간에서의 그 순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전부지만 만약 그 곳에 거주한다면 훨씬 다채롭고 다양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즘 제주도 1년 살이라는 것이 유행하는데 단 1년일지라도 1주일의 여행에서는 보지 못한 수많은 계절의 변화와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공간의 얼굴을 새롭게 대하게 될 것이다. 여행으로서는 느끼지 못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겪게 되는 얼굴이라는 것이 분명 있다.

[내일도 잘 부탁해, 도쿄!]는 4년째 도쿄에 거주 중인 그래픽 디자이너가 자신이 겪은 일상을 노트에 그림으로 담아낸 그림일기다. 저자는 일상 또는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트래블러스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 특기라는데 익숙하거나 처음 가보는 찻집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자신이 갔었던 현지인들만 아는 숨은 맛집과 카페를 탐방한 후 트래블러스 노트에 그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고베, 나라, 교토 등 도쿄 근교의 여행지까지 방문하고 그 여행기를 노트에 적어놓기도 했다. 디자이너답게 직접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다꾸를 하듯 노트를 꾸며놓았는데 그 자체로 마치 일러스트북을 보는 것처럼 눈이 즐겁다. 또 작가의 일본 생활에 대한 일상의 기록도 꼼꼼히 적혀있어서 여행만으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본에서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간첩체험도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놓치기 쉬운 작고 소소한 디테일까지 모두 꼼꼼하게 기록해놓아서 도쿄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일러스트북이라는 말을 했는데 꼭 일러스트,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외로 텍스트도 굉장히 많은데 애초에 이 책은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단순히 그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함께 작가의 기억과 감상, 다짐 등이 오밀조밀하게 꽤 많이 적혀있다. 그리고 텍스트는 인쇄용 폰트글씨가 아니라 전부 작가가 직접 쓴 손글씨로 되어 있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좀 더 친근하고 내밀한 작가의 일상에 다가가게 되는 느낌도 있다. 보통 블로그 등의 카페 탐방기는 자기가 갔었던 곳이 얼마나 맛있었고 좋았는지를 자랑하는 글이 많은데 작가의 일기에서는 거리를 돌아다녔으나 맛집 찾기에 실패했다거나, 맛이 너무 없었던 찻집이라는 식의 실패담도 적지 않게 실려있어서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냥 하루의 에피소드를 적은 일기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림일기라는 형식을 취한 것은 당연히 작가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맛있게 먹은 음식을 그림으로 그려두면 맛은 당연하고 그것을 먹었을 때의 감정이나 주변의 분위기도 기억이 나기 때문에 그림으로 기억을 남겨둔다고 한다. 우리는 똑같은 이유로 휴대폰 사진으로 음식 사진을 찍어대는데 사진보다 그림이라는 것이 조금 더 정감있고 예쁘게 느껴진다. 물론 작가도 사진을 찍고 그것을 다이어리에 올려놓기도 하는데 작가가 찍은 사진은 기차표나 영수증 정도이고 음식 사진은 전부 직접 그리고 있다. 음식을 사진으로 찍으면 그 순간의 기억을 모두 사진 속에 담아놓고 잊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일러스트로 그려서 일기에 담아 놓으면 그것을 그리기 위해 따로 시간을 투자하고 채색을 하는 등의 수고스러움이 더해지는 중에 어쩌면 조금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훗날 그 일러스트를 보면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시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릴 때의 시간까지 떠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의 부제는 [도쿄 새내기의 우당탕탕 사계절 그림일기]인데 책의 구성도 책의 부제에 맞게 계절별로 4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아무리 자주 여행을 가더라도 이렇게 일본의 365일의 사계절을 골고루 경험하고 그 계절 특유의 감성과 감정을 느끼기란 쉽지가 않다. 단순히 봄의 벚꽃, 가을의 단풍 같은 특정 시기의 도쿄의 풍광이 아니라 그 속에서 쭉 살면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의 연속성을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인 것 같다. 프롤로그에는 4년동안 4번의 지구의 일주와 함께 계절의 변화를 지켜본 작가의 주관적인 도쿄의 365일 감상이 짧게 적혀 있는데 6월은 장마와 수국이라거나 가을 옷을 꺼내 입을 타이밍이라던가 하는 표현들은 정말이지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것들이라서 이런 작은 표현 하나에서 일상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사실 그림일기라서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귀염뽀짝의 일러스트에 눈길이 먼저 간다. 그런데 그림과 함께 글을 읽어보면 글이 또 예사롭지가 않다. 소소하고 평온한 일상을 담담하게 적어놓고 있는데 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미사여구가 없이 담백하면서도 작가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 놓아서 그 글들이 예뻐보이고 감성적으로 느껴져서 나중에는 그림보다 글을 읽는 재미가 더 좋았다. 아마 꾸미지 않아도 글이 예뻐 보이는 건 작가 자체의 감수성과 감성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 뭐 말하자면 예술가적 감수성이 있을테니 그런 예술가적 기질이 편하게 쓰는 글에도 배어있는 듯. 숙소에서 본 시바견과 고양이가 살이 쪄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둘 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지 두툼한 살집이 참 사랑스러웠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식인데 나 같으면 그냥 '많이 먹어서 뚱뚱한가보다'라고 생각했을텐데 작가는 세상을 사랑스럽게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글을 읽으면 그런 감정이 전해져서 괜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냥 일러스트가 예쁠 것 같아서, 일본의 평범한 일상이 궁금해서, 일본의 숨은 맛집을 알고 싶어서와 같은 이유로 책을 펼쳤지만 나중에는 작가의 밝고 긍정적이고 사랑스런 감성에 동화되서 점점 작가의 어떤 평범하고 재미있는 일상이 소개될지 기대하며 읽게 되었다. 재미있는 그림일기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일러스트만 보고 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일기는 끝까지 흐뭇한 미소를 간직한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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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취미가 절실해서 - 퇴근하고 낭만생활
채반석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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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 보면 어른들을 위한 취미생활 가이드나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취미의 영역을 알려주는 취미 소개서 또는 설명서 같은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그런 류의 책은 아니다. 일명 '조립식'이라 불리는 프라모델 만들기를 취미로 하는 저자의 프라모델 만들기 예찬론 혹은 그러한 취미를 가진 어른의 낭만적인 취미 생활에 대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른의 가치는 그 사람이 놀 수 있는 놀이의 갯수에 비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젊었을 때야 특별한 취미가 없어도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마시고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그 때는 취미는 자소서의 항목을 채워넣을 때만 자신의 취미가 뭘까 하고 생각을 하는 게 전부였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취미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혼자서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라는 것이 절실해진다. 언제까지나 술에 컴터 게임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무언가 열중해서 빠져들 수 있는 즐길거리가 필요하다.


많은 취미 중에서도 저자가 즐기는 취미가 바로 이 조립식, 프라모델이다. 개인적으로도 소식적에 만들기를 꽤 많이 샀었는데 주로 밀리터리류를 사모았는데 비용적인 문제와 아이도 아닌데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는 인식 때문에 어느 순간 그만두게 되었다. 프라모델은 덕후스럽다는 사회적 인식과 다 큰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는 이미지 때문에 아직까지는 마이너한 취미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걸 드러내놓고 즐기는 게 약간 꺼려지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키덜트가 등장하고 뉴트로가 새로운 문화로 대두되면서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흐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런 취미를 가진 사람은 저자의 말처럼 찐따 취급하고, 또 그런 사회적인 인식과는 별개로 이걸 제대로 즐기려면 비용이 꽤나 들어가기 때문에 나처럼 중도하차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거의 모든 취미 생활이 제대로 즐기려면 비용이 발생하지만 그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다가는 비용이 감당되지 않을 것 같다. 즉, 이쪽 길을 걸으려면 찐따(덕후) 이미지와 비용의 압박이라는 두 가지 어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프라모델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게 밀리터리나 로봇류가 아닐까 한다. 그 외에도 기차라던지 자동차, 비행기 같은 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아마 대부분이 밀리터리나 로봇일 것이다. 이중에서 로봇은 크게 건담류와 나머지로 나눌 수 있겠다. 그만큼 건담의 비중이 큰데 오죽하면 건프라(건담 프라모델)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만큼 건담은 하나의 하위장르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꼭 건프라 뿐만 아니라 다른 로봇까지 다양하게 섭렵한다고 한다. 저자의 프라모델의 첫기억은 학교앞 문방구에서 팔던 500원짜리 '만들기'라고 한다. '만들기'라는 말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봤는데 우리 때는 프라모델이라는 쎄련된 말은 몰랐고 그냥 만들기라고 불렀다. 아무튼 저자가 성인이 된후 다시 로봇 프라모델의 세계로 회귀한게 2010년 중반 경이라는데 이때까지도 소위 용자 로봇 관련 제품은 드물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로봇 프라모델은 건담류 밖에 없었단다.


용자 로봇이란 쉽게 말해서 TV에서 방영해주는 로봇 만화영화(에니메이션이 아니라 만화영화다!)의 로봇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용자물 로봇은 변신이나 합체를 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트랜스포머처럼 소방차, 경찰차 등의 탈것이 로봇으로 변신을 하는 것이 포인트란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는데 솔직히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이 나오면 얼마나 나오겠나. 그냥 아이들 눈높이에서의 고민 정도라고 하겠다. 아무튼 TV에서 방영하는 로봇 만화영화는 사실상 장난감을 팔아먹기 위한 움직이는 브로마이드이다. 일본에서는 로봇 장난감을 팔아먹기 위해 만화영화를 만들어서 TV에서 방영하는데 우리는 만화만을 수입해와서 틀어줄뿐 로봇 프라모델에 대한 수요는 없다보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용자물 관련 프라모델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새로 로봇 프라모델의 세계로 입문하게 되면 선택지가 없는 상태에서 거의 강제로 건프라만을 선택되어지는 진형이 구축되어버린 것 같다.


밀리터리 관련이건 로봇 관련이건 어릴 때는 그냥 부품들을 하나씩 뜯어서 뽄드로 붙여서 완성시키는 것이 전부였지만 조금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부품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도색까지 하는 레벨까지 가게 된다. 프라모델을 그냥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놀이의 느낌이지만 도색을 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전문적인 취미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도색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꽤나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전용 도료에서부터 공기압으로 락카를 칠하는 도구인 에어브러쉬는 기본으로 있어야 하고, 이런 도색 장비 외에도 유해가스를 내보내는 환기장치나 도색된 부품을 안전하게 말리는 건조대까지 생각지도 못한 장비와 공간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무작정 도색작업에 뛰어들었고 처음에는 장비도 없이 락카와 이쑤시개 같은 것으로 도색을 했었다고 한다. 장비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도구들로 도색을 했는데 그 완성품의 성취는 생각보다 더 컸다고 한다. 도색 전에는 85점 짜리가 도색 후에는 92점이 되었다고 하니..


처음 장비를 구입할 때는 이 취미를 오래 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도구를 다 갖추지도 않고, '비싼 도구를 살 돈이면 프라모델을 하나 더 살 수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그나마도 가장 저렴이를 사서 썼단다. 아마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이걸 얼마나 할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비싼 걸 구입하는 건 꺼려진다. 부속을 떼어내는 니퍼를 가장 싼 걸 사서 사용했더니 부속이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다시 커터칼로 다듬는 작업을 해야만 했단다. 즉, 비싸고 좋은 니퍼로 작업을 했다면 한번에 쉽게 끝날 작업이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때까지만해도 어차피 부품을 잘라내는 기능은 똑같은데 비싼 장비라고 해봤자 얼마나 다르겠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비싼 장비를 사용해보니 과연 확실히 편하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취미 생활의 퀄리티가 달라졌다고 한다. 결국엔 취미는 장비빨이다. 말하자면 프라모델을 구입하는 비용에 좋은 장비를 구입하는 비용까지 부담은 두배가 되고, 그만큼 진입장벽이 되는 셈이다. 사실 나 역시 성인이 된 후 어릴 때 하던 프라모델을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진 않지만 여러가지 비용이나 공간 등에 대한 부담과 제약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책에는 저자가 성인이 된후 다시 프라모델을 시작하고, 그 재미를 느끼면서 점점 좋은 장비를 사고, 프라모델 만들기를 즐기는 과정이나 어려움은 물론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 중고거래와 관련된 에피소드 등 관련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경험담이 소개되고 있어서 프라모델을 취미로 삼기 위한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개인적으로도 프라모델을 취미생활로 누려보고 싶다고 꿈꾸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글이 상당히 공감되기도 하고, 프라모델 입문에 대한 조언을 받는듯한 기분도 들어서 프라모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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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포레스트 에디션) - 아직 행복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곰돌이 푸 시리즈
곰돌이 푸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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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디즈니표 곰돌이 푸의 삽화와 메세지를 담은 에세이다.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한 일련의 에세이집이 몇권인가 출간되었는데 그중에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가 가장 유명하고 베스트셀러까지 되었던 꽤나 인기가 있던 책으로 알고 있다. 그 책이 몇 년만에 새롭게 포레스트 버전이란 이름으로 재출시되었다. 약간 생소할 수도 있는데 책임 의식 있는 방식으로 산림자원의 경영 및 관리가 이루어지는 숲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는 'FSC 인증'도 받았고, 석유 의존도와 독성이 낮은 콩기름으로 인쇄를 한 '포레스트 버전'이란 이름에 걸맞는 그야말로 친환경 컨셉이다. 곰돌이 푸라는 캐릭터 자체가 숲에서 자연과 함께 어울려 유유자적 살아가는 자연인과 같은 느낌이고, 거기다 책의 내용 역시 팍팍한 현실과 숨가쁜 생활 속에서 잠시 쉼을 주는 메세지라서 전체적으로 이 책과 포레스트 에디션이라는 컨셉이 잘 들어맞는다고 느껴진다. 


책 표지가 곰돌이 푸 단독샷에서 푸와 친구들의 단체샷으로 바뀌었는데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쪽이 더 좋다. 그리고 매끈한 캐릭터 디자인에서 파스텔풍의 삽화로 바뀐 것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더 좋다. 표지의 촉감도 참 좋다. 비닐이 아닌 까슬까슬한 종이라서 책을 들고 읽을 때 손끝에 닿을 때마다 따스함이 느껴진다. 말하자면 매끈한 펜이 아니라 사각거리는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와 같은 감성이 느껴진다고 하겠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삽화는 아마 디즈니 만화영화의 장면들이 사용된 것 같은데 그외에도 캐릭터 스케치와 일러스트 같은 여러 형식의 삽화가 들어가 있어서 다양한 푸의 그림을 즐길 수가 있다. 삽화가 상당히 퀄리티가 높고 깔끔해서 이것만으로도 곰돌이 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소장가치가 있겠다.


책의 형식은 곰돌이 푸나 그 친구들의 삽화와 함께 '다 잘될거야, 걱정하지마' 느낌의 짧은 감성 메세지가 보여지는 식이다. '인생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힘' '모든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인생이라는 숲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면'라는 3가지 테마로 챕터가 나뉘어져 있지만 챕터에 따라 그 내용이 많이 다르다거나 각 챕터별로 특별히 차별점이 많이 느껴지는 건 아니다. 여기 소개된 문구들은 아마 원작 만화에서 나왔던 대사들인 것 같다. 디즈니표 곰돌이 푸는 캐릭터 자체가 느긋하고 긍정적인 아이라서 주변에서 여러가지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특징이다. 욕심을 내지도 않고, 좀처럼 화를 내지도 않으며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어떤 일이건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해결해나가는데 이런 점 때문에 애니메이션 자체가 상당히 밝고, 힐링물에 가까워서 작품 속에 나오는 대사들도 감성적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인스타 명언 같은 문장이 많은 것 같다.


책에 소개된 문장에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찰이나 인간에 대한 대단한 통찰이나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시각처럼 너무나 단순하고 원론적인 내용인 것이 많고 때로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서 무책임하게 들리는 것조차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글에서 편안함과 작은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팍팍한 삶 속에서 우리는 답도 없는 수많은 고민, 걱정,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아무리 걱정을 해도 뚜렷한 답도 없는 일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허무하게도 들리지만 결국은 그것만큼 명징한 해결책도 없을텐데 해답은 언제나 가까이 있고 누구나 알지만 막상 생각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는 그런 누구나 알고 있지만 내가 처한 어려움과 팍팍한 삶 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진리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행복을 매일 느낄 수는 없지만, 한번의 행복이 내 삶을 의미 있게 해줘요


요즘들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엄청 많아졌다. 힘든 회사일, 빡빡한 사회생활, 숨막히는 인간관계에서 잠시 벗어나서 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으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데 여행이란 건 단순히 현실을 떠난 며칠간의 행복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날의 좋았던 기억과 앞으로 또 그런 여행을 떠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힘든 현실도 조금은 견디기가 좋다고 한다. 매일 계속되는 힘든 일상도 한번의 행복한 기억으로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꼭 여행이 아니어도,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던 일이나, 멋진 공연을 봤다거나 하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있다. 한번의 행복을 자꾸자꾸 쌓아가면 매일이 행복으로 가득찰 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은 좋아하는 것에 흠뻑 빠져보세요


어릴 때는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입장이나 위치를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참고 하지 못하게 되는 일도 너무 많다. 내 삶의 중심이 가족이나 연인, 회사 등 다른 사람이나 다른 주체로 넘어가버리게 되는데 그런 삶을 살게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게 된다. 가끔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에 흠뻑 빠져보는 것이 진짜 행복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하고 싶은 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미루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맡길 경우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의 선택이 내 마음에 꼭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엔 결정을 대리시킨 사람을 원망하기도 한다. 나의 행복을 다른 사람의 선택에 맡기지 말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는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하겠지만



‘멋진 하루를 보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하루하루 내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행복에 감사하자는 의미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룰 수 없는 큰 행복을 포기한다는 일종의 현실과의 타협인 셈이다. 어차피 우리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멋드러지고 잘난 인생을 살 수는 없다. 물론 그런 멋진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을 부러워만 해서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초라하고 불행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복을 찾는 노력은 좋은 것 같다. 매일 작은 소확행을 누리고 멋진 하루를 보냈다고 만족해한다면 일상이 행복해지겠지



이미 선택한 것에 미련을 두지 마세요


후회는 현실의 자신을 가두는 영겁의 감옥이다. 과거를 후회하고 지나간 일에 미련을 가지게 되면 그 인생은 고달파진다. 이미 선택한 것에 미련을 두지 말자. 그 당시의 선택은 그 때의 내가 많이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테니 그 때의 나를 믿어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나쁜 선택이 되었다고 해도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있다.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것이다. 언제나 좋은 선택만을 하게 되지는 못한다. 때로는 나쁜 선택을 감당하는 것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정직하세요


우리는 자기 변명을 참 많이 한다. 결심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를 굽힐 때, 소신과 신념을 저버릴 때도 항상 자기 스스로도 믿지 못할 거짓말로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자기를 속이기 시작하면서 나중에 후회할 짓을 많이 하게 된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정직하다면 적어도 시간이 흐른 후 후회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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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딴지곰의 레트로 게임 대백과 - 열혈 겜돌이의 명작 고전 게임 추억 찾기 연구소
꿀딴지곰 지음 / 보누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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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게임을 참 많이도 했다. 물론 우리 때는 지금처럼 게임이 아니라 오락이라고 불렀고, 오락실이라고 했지 아케이드 게임장 같은 쎄련된 말은 몰랐다. 오락실 입구에는 지능개발이라는 글이 적혀있었지만 그렇게나 오락을 많이 했음에도 지능이 개발이 안 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오락이 지능개발을 하진 못 했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때면 항상 친구들이랑 오락실에 들러서 오락을 했다. 당장 우리 때만 해도 이미 길거리에서 다망구를 하던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락실의 출입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다망구나 땅따먹기를 하며 흙을 파먹고, 땅바닥을 굴러다녔지만 학교 밖에서는 차도 많이 다니고 마땅히 놀곳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런 놀이를 잘 안했고 오로지 오락실이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지 다른 애들은 학교 밖에서도 스트리트 게임을 더 많이 즐겼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오락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지금은 그 날의 기억이 오롯이 추억이 되었다.


시대가 흐르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오락도 많이 변해갔다. 처음에는 뿅뿅거리며 미사일을 쏴서 적을 죽이는 갤러그류의 슈팅 게임을 많았는데 나중에는 버튼을 많이 쓰는 스트리트 파이터나 킹오파 같은 격투 게임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PC방이 나오고 스타가 국민 게임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게임'에 밀려 '오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게다가 플스나 닌텐도 같은 콘솔 게임, 휴대용 게임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오락실의 천년왕국은 그렇게 몰락하게 되었다. 가끔 지금도 한번씩 생각이 나서 극장 같은 곳에 갔다가 오락실에 들러보지만 옛날 그맛도 아니고 한판에 500원씩이나 되다보니 선뜻 손이 안 간다. 난 오락을 그렇게나 많이 했지만 결코 잘하는 애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게 오락이란 돈을 깔아놓고 하는 돈지랄이어서 지금처럼 500원이나 되면 순수히 오락을 '즐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에뮬로 옛날 고전 게임을 집에서 하고 있는데 역시 옛날만큼의 맛은 나지 않는다.


아마 내 또래라면 이렇게 '오락'에 대한 각자의 추억도 많고 할 말도 참 많을 것 같다. [꿀딴지곰의 레트로 게임 대백과]는 그 시절의 명작 오락실 게임과 게임 문화의 변천 등을 다루는 본격 추억팔이 오락 이야기이다. 책의 제목은 '레트로 게임'이라지만 우리때는 무조건 오락이라는 말을 썼고, 실제 책에서 다루는 것들도 '오락'이었던 시절의 게임이었기 때문에 레트로 게임보다는 오락이라는 명칭이 더 걸맞고 또 정감이 간다. 책에는 오락실 게임과 콘솔 게임으로 구분하여 과거 1980년 초반의 오락실 시대의 고전게임부터 2000년대 초반의 게임까지 우리가 사랑했던 명작 게임을 쭉 정리해 놓았는데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현재라는 시대별로 구분하여 정리하여 놓았다.


우선 콘솔이라는 말부터 정리를 해야할 것 같은데 콘솔 게임이라는 건 흔히 말하는 게임기다. 패미컴, 플스, 엑스박스, 닌텐도 위, 거기에 휴대용 게임보이도 모두 콘솔 게임에 포함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초기에는 게임, 오락이라고 하면 전부 오락실 게임을 말했지만 콘솔 게임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오락실은 쇠퇴하게 되었다. 지금은 에초에 콘솔 게임기용의 게임이 개발되어 나오지만 과거에는 아케이드 게임이 콘솔용으로 이식되는 경우가 많아서 콘솔 게임기 파트에서 다루고는 있지만 사실 오락실에서 하던 게임도 있다. 초기의 콘솔 게임이라고 하면 책에서도 나오지만 지금의 컴퓨터의 느낌이 나는 MSX였는데 우리집에도 이게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게임팩은 한두개 밖에 없어서 실제로 이걸로 게임을 많이 하진 못 했었다. 그후 나온 콘솔이 패미컴이다. 패미컴이 한국에서 정발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패미컴용 팩은 역시 정발본이 아닌 불법복제본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당시에는 게임팩이건 비디오건 전부 불법복제였다. 그땐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콘솔 전용 게임은 그다지 많이 하지 못 했다. 어떤 게임이 있고, 어떤게 유명한지 정도는 알지만 그런 게임들을 직접적으로 많이 해보진 못했다. 오로지 아케이드 게임 aka 오락실에서의 게임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책에 소개된 게임 중에서도 오락실에서 직접 했었던 게임들에 더 눈길이 갔다. 책에 소개된 게임들은 게임 화면을 보여주는 2장의 스냅샷과 함께 개발사와 출시년도, 그리고 간략한 게임에 대한 개요나 설명 등이 나열되는 형태로 진행된다. 우선 각 게임마다 정식 게임명이 표기되는데 실제로 당시 오락실에 붙어있던 게임명과는 다른 것이 꽤 많다. 당시에는 정식 게임명이 아니라 수입업자나 오락실 주인 아저씨가 갖다붙인 것이 게임명이 되기 때문에 오리지널 게임명과는 다르게 알려진 것이 많았고 때로는 동네마다, 혹은 오락실마다 타이틀이 다른 것도 있었다. 때로는 오락기계에 게임명이 붙어있었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멋대로 아이들끼리 부르던 별칭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책에는 정식 타이틀이 소개되는데 책을 통해 오리지널 타이틀을 처음 알게된 게임도 많이 보있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게임은 1978년 타이토에서 개발된 스페이스 인베이더. 흔히 고전 오락실 게임이라고 하면 갤러그를 떠올리게 되는데 고전게임이라고 알려진 갤러그가 1981년에 만들어졌고, 이미 그 이전에도 인기있는 게임들이 많이 있었던 것.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슈팅 게임의 원형으로 외계인이 등장하는 첫번째 게임이라고 한다. 당시 이 게임은 상당히 센세이션 했던 것 같은데 스페이스 인베이더 때문에 게임산업의 판도가 달라졌다는 말까지 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 전에도 아케이드 게임은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가장 오래된 오락실용 게임인 통칭 벽돌깨기라고 부르는 아타리의 1972년 퐁이다. 책에는 1976년의 퐁의 오락실 아케이드 버전의 브레이크아웃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전까지는 점 하나를 움직여서 벽돌을 깨는 게임을 하다가 우주선이 나와서 외계인을 깨부수는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나오니 그 충격은 엄청났을 것 같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영향으로 이후 더양한 카피 게임들이 쏟아졌다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게 1979년 남코의 갤럭시안이다. 갤럭시안은 이후 1981년 남코의 갤럭시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80년 남코의 팩맨 역시 두말하면 아프다. 남코의 최고 히트작이라는데 아케이드 게임을 다룬 아담 샌들러의 영화 픽셀에서도 영화 포스터에 팩맨의 이미지가 나올만큼 서구권에서는 아케이드 게임의 대명사쯤 되는 모양이다. 1980년 남코의 탱크 바탈리언도 어릴 때 꽤 많이 했었다. 1981년 남코에서 또 하나의 명작이 나오는데 바로 뉴랠리X 일명 빵구차다. 게임 자체도 유명하지만 게임 BGM이 더 유명한 게임이다. 1982년 아이렘의 문 패트롤은 어릴 때 자주 했지만 너무 어려워서 엄청 빨리 끝나서 항상 아쉬워했던 게임이다. 상당한 순발력을 요구하는데 도무지 너무 어려워서 첫판 깨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1982년 유니버설의 미스터 도는 한국 오락실에서는 삐에로라고 불렀는데 꽤나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려워서 한두번 해보다가 더는 하지 않고 대신 뒤에서 구경은 많이 했다.


1982년 세이부 전자의 폰포코 일명 너구리. 폰포코가 너구리라는 뜻이니까 크게 오리지널 타이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역시 당시에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던 게임으로 첨엔 이거 하려고 애들이 동전을 엄청 올려놓았었는데 나는 역시 구경 위주였다. 1983년 자레코의 엑세리온. 우리는 엑스리온이라고 불렀다. 이건 정말 엄청 재미있었는데 물리법칙을 보여주는 미끄러지는 기체의 움직임이 멋있었다. 탄알 수에 제한이 있는 따발총과 무제한의 단발총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적을 죽여야 하는데 총탄이 제한된 따발총을 아끼다가 빨리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관성의 법칙으로 레버를 놓아도 기체가 미끄러지기 때문에 미치 적과 적의 공격을 예상하고 움직여야 하므로 난이도가 높았다. 역시 잘하지는 못하지만 가장 좋아했던 게임이다. 만약 지금 고전 게임을 하나 하라고 하면 이걸 하겠다고 할만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명작.


1983년 남코의 제비우스. 이것도 정말 명작이다. 공중과 지상을 따로 공격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서 신선함을 주었다. 적을 죽일 때 나는 소리가 귀엽고 경쾌했던 기억이 있다. 1984년 산리츠 전기의 뱅크 패닉. 오락실마다 구석에 있는데 이걸 하는 사람은 많이 못 본것 같다. 1984년 캡콤의 1942는 상당히 많이 했다. 이후로도 194X 시리즈가 많이 나왔는데 1942 1943 두개가 가장 유명. 2차대전이 배경으로 일본에서 만든 게임인데 미국 비행기로 일본을 작살내는 아이러니한 스토리. 그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했다. 1942보다는 조금 더 게임성이 많아진 1943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친구랑 오락실 가면 둘이서 항상 1943을 했었다. 1984년 테칸의 봄잭도 정말 인기있었는데 한번도 해본적은 없다. 1984년 코나미의 서커스 찰리와 1983년 코나미의 하이퍼 올림픽은 뒤에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저런걸 왜 하나 몰라 싶었다.


1984년 아이렘의 스파르탄X는 오락실에선 성룡이나 이소룡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던 것 같다. 스파르탄X는 성룡의 쾌찬차의 북미 개봉 타이틀인데 실제 영화는 쾌찬차가 아닌 이소룡의 사망유희와 같다. 게임은 상당히 재미있다. 1986년 테크모의 아르고스의 전사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적과 싸우는 스타일이라던지 무기, 적이 죽을 때 폭사하는 것이라던지 차별화된 부분이 있었다. 1985년 코나미의 그린베레는 너무 좋아하는데 상당히 재미있어서 자주 했었는데 난이도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긴 워낙 오락을 못 하니 어지간한건 다 난이도가 높게 느껴졌다. 1986년 토아플랭의 겟스타는 로봇이 행성을 돌아다니며 그 행성의 적을 죽이는 게임인데 디자인도 그렇고 좀 독특했다. 1986년 세타의 황금의 성은 원코인으로 끝판을 깨는 몇 안되는 게임 중 하나다. 황금성의 묘미는 적의 칼을 부순 후 하나씩 옷을 벗기는 건데 중간에 여기사가 나오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985년 세이부 개발의 너클조. 너클조 이건 정말 엄청 재미지다. 버튼을 빨리 누를수록 너클조도 주먹을 빨리 연타하는데 그래서 연타 실력, 소위 '갈기'를 잘하면 게임에 유리했다. 갈기를 못하는 애들은 문방구에 있는 뽑기 캡슐을 손가락에 끼우고 버튼을 갈아댔다. 1988년 세가의 수왕기는 정말 으스스했다. 괴물과 싸우면서 이상한 구슬을 먹으면 파워업을 하고 마지막엔 늑대인간이나 드래곤으로 변신해서 공격하는가하면 적의 비쥬얼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1987년 NMK의 사이킥5는 당시 꾸러기 5형제라고 불렀다. 당시 엄청나게 인기가 많아서 항상 사람이 버글버글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책을 보니 사탄의 부하와 싸우는 퇴마 액션이었다고 한다. 1987년 코나미의 콘트라는 혼두라라고도 불렀다. 움직임이 상당히 좋고, 총알도 8방향으로 날아가는데 이런 류의 게임 중 가장 게임성이 좋은 잘만들어진 모범사례라고 하겠다.


1987년 캡콤의 블랙 드래곤은 적을 죽이고 먹은 돈으로 원하는 무기로 업그레이드 하거나 필요한 아이템을 사는 RPG게임 같은 시스템이 도입되서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 1988년 테크노스 재팬의 서유항마록은 서유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걸 정말 엄청나게 많이 했다. 친구와 둘이서 학원에 가기 전이나 끝나고 올 때 항상 2인용을 했었는데 나는 사오정을, 친구는 저팔계를 했다. 각자 고유의 특수기술이 있는데 사오정의 번개공격이 광역 공격으로 가장 유용했다. 이것도 컨디션 좋을 땐 원코인으로 끝판을 깨기도 했던 추억의 게임이다. 1987년 세가의 시노비는 상당히 인기가 많았다. 난 잘 못해서 언제나 두번째 판에서 끝이 났는데 구경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던 게임이었다. 1997년 테크노스 재팬의 명작 더블 드래곤. 이건 뭐 말이 필요없다. 어깨치기 기술이 매우 중요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팔꿈치로 치는데 왜 어깨치기라고 했던 것일까? 2인용 게임으로 2인용으로 끝판 대장을 깨면 둘이서 싸우게 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것도 약간 운이 따라준다면 원코인으로 대장을 깨는 몇 안되는 게임 중 하나.


1993년 캡콤의 캐딜락 공룡 신세기. 우린 그냥 캐딜락이라고 불렀는데 이것도 상당히 많이 했다. 노란 모자를 쓴 아저씨인 무스타파가 주 캐릭터였는데 꽤나 잘했었다. 4인용 게임인데 친구랑 할 때도 있고 하다보면 모르는 애들도 붙어서 다 같이 놀자판으로 할때도 있었다. 비슷한 느낌으로 1993년 아이렘의 야구 격투 리그맨 통칭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도 많이 했었는데 난 녹색 캐릭터를 많이 했다. 잘하는 애들은 빨강이나 파랑도 잘 하던데 난 녹색 말고는 다루기가 어려워서 항상 녹색만 했었다. 원코인으로 끝판은 못 가지만 끝판 가까이 갈 정도로 잘 했었던 게임이다. 1991년 캡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2가 나오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말 그대로 혁신이었고 게임 업계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스파2는 이후 수많은 아류작을 만들어내며 격투 게임의 화려한 막을 올렸다. 단순히 게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화 영화 에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며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번졌다. 돌이켜보니 아마 이때가 오락실 문화의 최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파보다는 1993년 SNK의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와 1994년 SNK에서 출시된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를 더 좋아했다. 이후 철권이나 뭐시깽이 같은 전설이 된 게임도 나왔지만 난 사무라이 스피리츠와 킹오파에만 미쳐있었다. 사무라이 스피리츠는 주로 2를 했었는데 타치바나 우쿄나 어스퀘이크가 주캐였다. 사무라이 스피리츠는 아주 고수는 아니지만 꽤나 잘해서 다른 사람과 대전을 하게 되면 승률이 높은 편이었다. 반면 킹오파는 한국팀을 주로 했는데 중수 정도 되는 실력 밖에 안되었다. 꼬라박은 돈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라 하겠다. 나의 게임역사의 마지막은 사무라이 스피리츠와 킹오파가 장식했었다고 하겠다. 특히 킹오파98을 할 때쯤 오락실에 안 가게 되었고, 화려했던 오락실의 추억도 끝이 났다. 이후로는 비디오 콘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많은 게임을 즐겼지만 어느새 다 잊혀지고 겨우 킹오파나 몇몇 게임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책에 소개된 게임들의 면면을 보니 과거에 환장하고 했었던 게임들이 하나둘 떠올라서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상당히 반갑다. 물론 완전 처음 보는 친구도 있지만 과거에 같이 놓던 친구를 마주하니 당시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던 꼬꼬마 시절의 모습, 중고등학생 시절의 모습, 그리고 대학 때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책에 '지극히 사적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꼭 그말처럼 같은 게임을 보더라도 그것에 대한 기억과 그에 얽힌 추억은 개인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서평이 마치 개인적인 게임평처럼 되어버렸지만 이것은 지극히 사적인 나의 게임 연대기이고, 게임이라는 친구를 공유하는 누군가와의 연대이기도 하다.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추억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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