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잘 부탁해, 도쿄! - 도쿄 새내기의 우당탕탕 사계절 그림일기
장서영 지음 / 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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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이지만 일본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정의하는데 이 말처럼 적당한 말은 또 없을 것 같다. 한국의 정서나 분위기와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이색적이고 낯선 재미가 있는 묘한 느낌 때문에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런데 단 며칠동안 여행을 가서 접하는 일본과 그곳에 생활하며 매일 마주하는 일본은 아마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같은 장소에 방문하더라도 여행으로 한두번 갈 때는 방문했던 그 계절, 그 시간에서의 그 순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전부지만 만약 그 곳에 거주한다면 훨씬 다채롭고 다양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즘 제주도 1년 살이라는 것이 유행하는데 단 1년일지라도 1주일의 여행에서는 보지 못한 수많은 계절의 변화와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공간의 얼굴을 새롭게 대하게 될 것이다. 여행으로서는 느끼지 못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겪게 되는 얼굴이라는 것이 분명 있다.

[내일도 잘 부탁해, 도쿄!]는 4년째 도쿄에 거주 중인 그래픽 디자이너가 자신이 겪은 일상을 노트에 그림으로 담아낸 그림일기다. 저자는 일상 또는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트래블러스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 특기라는데 익숙하거나 처음 가보는 찻집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자신이 갔었던 현지인들만 아는 숨은 맛집과 카페를 탐방한 후 트래블러스 노트에 그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고베, 나라, 교토 등 도쿄 근교의 여행지까지 방문하고 그 여행기를 노트에 적어놓기도 했다. 디자이너답게 직접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다꾸를 하듯 노트를 꾸며놓았는데 그 자체로 마치 일러스트북을 보는 것처럼 눈이 즐겁다. 또 작가의 일본 생활에 대한 일상의 기록도 꼼꼼히 적혀있어서 여행만으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본에서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간첩체험도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놓치기 쉬운 작고 소소한 디테일까지 모두 꼼꼼하게 기록해놓아서 도쿄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일러스트북이라는 말을 했는데 꼭 일러스트,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외로 텍스트도 굉장히 많은데 애초에 이 책은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단순히 그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함께 작가의 기억과 감상, 다짐 등이 오밀조밀하게 꽤 많이 적혀있다. 그리고 텍스트는 인쇄용 폰트글씨가 아니라 전부 작가가 직접 쓴 손글씨로 되어 있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좀 더 친근하고 내밀한 작가의 일상에 다가가게 되는 느낌도 있다. 보통 블로그 등의 카페 탐방기는 자기가 갔었던 곳이 얼마나 맛있었고 좋았는지를 자랑하는 글이 많은데 작가의 일기에서는 거리를 돌아다녔으나 맛집 찾기에 실패했다거나, 맛이 너무 없었던 찻집이라는 식의 실패담도 적지 않게 실려있어서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냥 하루의 에피소드를 적은 일기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림일기라는 형식을 취한 것은 당연히 작가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맛있게 먹은 음식을 그림으로 그려두면 맛은 당연하고 그것을 먹었을 때의 감정이나 주변의 분위기도 기억이 나기 때문에 그림으로 기억을 남겨둔다고 한다. 우리는 똑같은 이유로 휴대폰 사진으로 음식 사진을 찍어대는데 사진보다 그림이라는 것이 조금 더 정감있고 예쁘게 느껴진다. 물론 작가도 사진을 찍고 그것을 다이어리에 올려놓기도 하는데 작가가 찍은 사진은 기차표나 영수증 정도이고 음식 사진은 전부 직접 그리고 있다. 음식을 사진으로 찍으면 그 순간의 기억을 모두 사진 속에 담아놓고 잊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일러스트로 그려서 일기에 담아 놓으면 그것을 그리기 위해 따로 시간을 투자하고 채색을 하는 등의 수고스러움이 더해지는 중에 어쩌면 조금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훗날 그 일러스트를 보면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시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릴 때의 시간까지 떠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의 부제는 [도쿄 새내기의 우당탕탕 사계절 그림일기]인데 책의 구성도 책의 부제에 맞게 계절별로 4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아무리 자주 여행을 가더라도 이렇게 일본의 365일의 사계절을 골고루 경험하고 그 계절 특유의 감성과 감정을 느끼기란 쉽지가 않다. 단순히 봄의 벚꽃, 가을의 단풍 같은 특정 시기의 도쿄의 풍광이 아니라 그 속에서 쭉 살면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의 연속성을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인 것 같다. 프롤로그에는 4년동안 4번의 지구의 일주와 함께 계절의 변화를 지켜본 작가의 주관적인 도쿄의 365일 감상이 짧게 적혀 있는데 6월은 장마와 수국이라거나 가을 옷을 꺼내 입을 타이밍이라던가 하는 표현들은 정말이지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것들이라서 이런 작은 표현 하나에서 일상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사실 그림일기라서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귀염뽀짝의 일러스트에 눈길이 먼저 간다. 그런데 그림과 함께 글을 읽어보면 글이 또 예사롭지가 않다. 소소하고 평온한 일상을 담담하게 적어놓고 있는데 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미사여구가 없이 담백하면서도 작가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 놓아서 그 글들이 예뻐보이고 감성적으로 느껴져서 나중에는 그림보다 글을 읽는 재미가 더 좋았다. 아마 꾸미지 않아도 글이 예뻐 보이는 건 작가 자체의 감수성과 감성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 뭐 말하자면 예술가적 감수성이 있을테니 그런 예술가적 기질이 편하게 쓰는 글에도 배어있는 듯. 숙소에서 본 시바견과 고양이가 살이 쪄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둘 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지 두툼한 살집이 참 사랑스러웠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식인데 나 같으면 그냥 '많이 먹어서 뚱뚱한가보다'라고 생각했을텐데 작가는 세상을 사랑스럽게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글을 읽으면 그런 감정이 전해져서 괜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냥 일러스트가 예쁠 것 같아서, 일본의 평범한 일상이 궁금해서, 일본의 숨은 맛집을 알고 싶어서와 같은 이유로 책을 펼쳤지만 나중에는 작가의 밝고 긍정적이고 사랑스런 감성에 동화되서 점점 작가의 어떤 평범하고 재미있는 일상이 소개될지 기대하며 읽게 되었다. 재미있는 그림일기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일러스트만 보고 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일기는 끝까지 흐뭇한 미소를 간직한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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