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신화라고 하면 제우스, 포세이돈, 헤라클레스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실제로 그리스 신화는 아동용 동화로도 많이 출간되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많았고, 헐리우드 영화나 게임에서도 단골 소재로 쓰이면서 지금까지도 익숙하게 소비되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이야기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주되며 대중문화 전반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나 사건은 다양한 소설, 만화, 영화 등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주되며 상징이나 메타포로 자주 차용되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는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훨씬 낯설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생소하고, 이야기의 구조 역시 단순한 영웅담보다는 어둡고 비극적인 경우가 많아 대중문화 속에서 쉽게 소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북유럽 신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토르나 오딘 같은 인물이 단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캐릭터 중 하나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접할 기회도 거의 없었던 이른바 '듣보잡' 캐릭터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이미 머릿속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가 탄탄히 구축되어 있었기에 굳이 새로운 신화 체계에 눈을 돌릴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마블의 <토르 시리즈>를 계기로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비로소 북유럽 신화라는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마블의 토르 영화 덕분에 예전보다는 인지도와 인기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관련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야기의 구조나 상징 체계도 익숙하지 않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질 수 있다. 새로운 토르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북유럽 신화를 알고 나서 영화를 보면 더 깊이 있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매번 관련 신화를 찾아보곤 했다. 그러나 진입 장벽이 높아 매번 쉽게 다가가지 못한 채 책을 덮길 반복했었다.
[본격 북유럽 신화 만화]는 북유럽 신화라곤 마블 영화를 통해 토르, 로키, 오딘의 이름 정도만 아는 초심자에게 이 책은 입문용으로 아주 적합하다. 우선 책을 통해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북유럽 신화가 생소한 이유가 단순히 접할 기회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던 그간의 인식이 틀렸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리스·로마 신화만이 대중문화에서 자주 인용되고, 북유럽 신화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북유럽 신화도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변주되어 활용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주 접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엘프나 드워프 같은 종족이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관, 바이킹을 모티프로 한 신화적 요소들, 그리고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 역시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고 한다. 꼭 판타지 세계관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북유럽 신화나 그 속 캐릭터에서 모티브를 따온 창작물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책은 총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유럽 신화의 개요를 시작으로 천지창조에서부터 세상의 종말인 라그나로크까지 쭉 달려간다. 그리스 신화가 여러 신들과 영웅, 괴물들의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모여 있는 옴니버스식 이야기라면, 북유럽 신화는 독립적인 신들의 개별 이야기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들마저도 모두 예정된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비극적 서사 속에 포함되어 있어 보다 강한 스토리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라그나로크까지 달려간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데, 큰 줄기를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보니 그리스 신화보다 훨씬 흡입력이 있고, 전개가 더 쫀쫀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앞부분에서 던져진 단편 속 떡밥이 뒷부분에서 회수되는 영화 같은 느낌이어서,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몰입감으로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북유럽 신화 자체가 마치 하나의 극영화처럼 전개되는 구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고, 동시에 각 장면마다 독립적인 에피소드로도 완결감을 주기 때문에, 긴 이야기보다 짧고 강한 인상을 주는 스토리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는 구성이다.
1편에서는 우선 입문자들을 위해 북유럽 신화의 간단한 개요가 제시되고, 신화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세계수 위그드라실(신화의 무대가 되는 세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오딘, 토르, 로키, 프레야 같은 주요 인물들이 먼저 소개된다.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이야기 도중 새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설명을 덧붙이면 흐름이 끊기기 쉽기 때문에, 본격적인 스토리에 들어가기 전에 메인 캐릭터와 조연급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먼저 쭉 정리하고 나서 본편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출판사 서평에서는 ‘서브컬처에 익숙한 독자라면 매 페이지마다 알아볼 수 있는 패러디와 개그 컷이 쏟아진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읽으면서 그 부분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코드가 안 맞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의 서브컬처에서 따온 드립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패러디나 개그라고 느껴지는 장면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타쿠는 아니지만 적어도 유명한 밈이나 온라인 유행어 정도는 아는 편인데도, 눈에 확 들어오는 개그 요소는 거의 없었고, 그래서 ‘웃기다’거나 ‘재미있다’는 느낌은 솔직히 들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만화라는 점이다. 무거운 설명 대신 그림이 중심이 되는 만화 형식이라, 신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이 길고 낯설어서 초반에는 약간 진입장벽이 느껴지지만, 이미지가 중심이 되다 보니 시각적으로 쉽게 눈에 들어오고, 전체적인 가독성도 매우 높다. 그래서 내용에 훨씬 더 몰입할 수 있었고, 어렵게 느껴졌던 이름이나 설정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그림체는 정교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웹툰처럼 비교적 단순하고 캐주얼한 편인데, 오히려 그 덕분에 부담 없이 술술 읽히고, 신화라는 낯선 주제도 가볍고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복잡한 설명이나 장황한 묘사 없이도 대사와 장면 구성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독자도 어렵지 않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고, 이야기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정보의 양보다 리듬과 흐름에 초점을 맞춘 만화라서,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특히 효과적이다. 북유럽 신화가 생소하고 쉽게 접근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