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1분 철학 관계수업
서정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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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면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삶이 팍팍해질수록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점점 희미해진다. 어디선가 병신공장이라도 세워진 듯 불통과 독단으로 똘똘 뭉친 병신들이 늘어나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이들과 부딪히며 인간관계는 점점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을 잘 다루는 성향의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사람에 상처받고, 관계에 아파하며 인간관계에 대한 답을 어디선가 찾고 싶어한다. 그런데 의외로 어렵고 딱딱해 보이던 철학 속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과 삶을 깊이 탐구해온 철학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고민을 본질적으로 다루어왔다. 결국 삶의 많은 문제는 관계에서 비롯되기에, 철학자들의 사유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관계에 대한 통찰을 건넨다.

[만화로 보는 1분 철학 관계수업]은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등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10명의 철학자들의 사상과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낸다. 각 장에서는 철학자의 핵심 사상을 베이스로 이를 인간관계 속 갈등이나 소통, 공존과 같은 문제에 적용한 뒤, 철학자와의 가상 대화 형식을 통해 조언을 건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어려운 학문적 이론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친근한 대화를 통해 철학적 사상과 개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돕고, 인간관계에서 마주하는 고민을 질문과 답의 형식으로 직접 연결해 제시하기 때문에 평소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을 보다 쉽게 접하면서 실질적인 통찰과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철학 이론을 아무리 공부해도 실제 삶의 구체적인 고민에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처음부터 고민과 해답을 직접 연결해 주어 한층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철학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인간관계 문제를 깊이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책의 순서를 보면 우선 '나'에 대해 설파하는 두 고대 철학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흥미롭다. 수많은 고대의 네임드 철학자들을 제쳐두고 유독 '나'라는 가치를 강조했던 프로타고라스와 제논을 가져온 것은 저자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강조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이 정확히 ‘나’라는 개념 자체를 중심에 두었는지, 아니면 두 사람의 철학 사상 속에서 ‘나’라는 측면을 부각시켜 해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관계의 출발점을 ‘자기 자신을 세우는 것’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이 책의 기본적인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인간관계에서 중심이 되는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나'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사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보통 인간관계라 하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을 먼저 떠올리지만, 관계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임을 일깨워 준다. 특히 프로타고라스가 주장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에 따르면 모든 것은 사람 각자가 판단하는 기준에 정해지는데 이 말은 결국 모든 사물의 옳고 그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달려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관계에서의 진리라는 것은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수시로 바뀌게 되는데 이때 '자기 판단력'에 기인한 나만의 기준을 확실히 함으로써 인간관계에서의 거리감과 균형감을 가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자기 주장이 없이 남에게 공감만 하다가는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기만 하고 결국 끌려다니다 상처받고 흔들리게 되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출발은 '나'라는 기반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중심이 되는 관계 형성을 통해 비로소 상대와의 건강한 거리감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라는 기반을 다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제논의 이성적 절제를 제안한다. 제논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으로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스토아학파의 키워드는 금욕이다. 불필요한 쾌락을 멀리하고 이성적인 삶을 추구하며 선을 실현하려 했는데, 이러한 금욕적 사상은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쾌락에 따라 사람을 찾다 보면 내 기분을 좋게 해주는 사람만 곁에 두려 하게 되고, 사람을 소비하는 태도는 결국 관계를 망치게 된다. 따라서 관계에서도 감정을 절제하고, 체면을 넘어서며, 쾌락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관계를 왜곡시키는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이성적 절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행동 하나하나를 삼가고 마치 단련하듯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잘 생각해보면 제논의 조언은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지침서에 반드시 등장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관계의 중심은 바로 '나'이고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올바른 인간관계를 이끄는 통로가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한다.

일단 만화라서 좋다. 진짜 만화라서 좋다. 이상하게도 최근에 "만화로 보는"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책들 중 상당수는 실제 만화라기보다는 삽화 하나가 덩그러니 들어가 있는 텍스트북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림보다 글자가 훨씬 많고, 단순히 삽화 몇 장 끼워넣고는 "만화로 쉽게 이해하는", "만화로 보는" 같은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 종종 속았다는 느낌, 심하면 우롱당했다는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정말 만화로 이루어진 만화책이다. 그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만화로 보는"이라는 제목을 보면 어려운 철학 개념과 이론을 만화를 통해 쉽게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준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철학을 통해 추구하는 관계에 대한 해답을 마치 즉문즉답처럼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해주어 철학을 공부하는 목적에도 잘 부합한다. 그래서 만족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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