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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평점 :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회고록 형식의 저작이다.
다만 일반적인 기억 서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소설적인 성격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사실과 상상을 혼합한 소설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논픽션 같기도 하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익히 보아온 회고록의 형태를 띄고 있고 소설적 요소를 첨가했다고는 하나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독자들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회고록일 뿐인 이 책을 읽으며, 자꾸 손이 가서 찾게 되고, 읽는 내내 사색을 촉진하는 묘한 기능을 체험하며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책을 뭔가 다른 수준의 회고록으로, 혹은 지적인 자극을 주는 저작으로 만드는 것일까.
먼저 일차적으로 특색을 띄는 것은 저자의 정신적 불안과 문학적 소양이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문은 병원에까지 입원할 정도로 저자를 괴롭힌 내적인 문제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다.
그러나 단순히 하소연하거나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근원과 이유를 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면서 자신이 가진 강점을 활용한다.
그것은 그녀가 지닌 문학적 소양이다.
과거 기라성 같았던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 그녀들의 작품 속에서 자신이 찾는 해답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그 깊은 곳에 숨겨진 의미를 추출하려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성을 작동시킨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독보적인 분위기와 작품성을 취득한다.
다음으로, 위와 같은 시도를 통해 극히 개인적인 문제와 사유를 보편적이고 실존적인 사유로 끌고들어간다는 것이 백미이다
플라스, 울프, 프레임, 파이어스톤 등 엉망진창인 삶을 산 여자들에 대한 글을 써내려가며, 과연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그 삶들은 혼란스럽기만 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구원으로서의 자살'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자살이란,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삶의 자연적 마감', 그러나 능동적인 '해방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격분, 거부, 분열, 혼란 등 온갖 흉한 감정들을 겪고, 게다가 자신의 삶마저 그 파괴적 영향을 받았던 여성들은 그런 광기에도 불구하고, 그 삶 속에서 자신들만의 성취를 이뤄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실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폭발적 실천이자 파괴라고 재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