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들이 희었을 때 - 새로운 시대의 탄생, 르코르뷔지에가 바라본 뉴욕의 도시
르 코르뷔지에 지음, 이관석 옮김 / 동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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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스케치

여기서 스케치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문자 그대로 그림으로서의 스케치와 비유적인 표현으로서의 스케치.

전자는 본문에 실린 그의 간단한 스케치들인데, 
양이 많지는 않지만 건축계의 거장이 직접 남긴 흔적답게 선이 정갈하고 보여주고자 한 핵심을 잘 드러낸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지만, 
도시, 거리, 건물, 자신의 단상, 요약, 예측을 담고 있어 마치 소장가치가 있는 희귀본과 같은 감흥도 준다. 

후자는 그가 표현하는 사회, 도시, 문화 등에 대한 스케치이다. 
그는 건축에만 시선을 머물게 하지 않고, 도시의 여러 요소들, 문화적인 다양한 분야들, 그리고 그것들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사회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그 생각을 이 책에 남긴다. 
그리고 건축 외 부문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적인 기저를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위인답게 숙성된 통찰, 빛나는 지성, 고준위의 소양을 마음껏 발휘한다. 
따라서 독자는 그의 서술을 따라가며, 건축 외에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다각적인 면을 돌아볼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스케치를 통해, 미적인 즐거움과 지적인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그의 역량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거장의 글쓰기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의 문장력이다. 
높은 수준의 비유와 상징을 뽐내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독자들을 매료시키지만, 
본문의 내용은 예상을 뛰어넘어 놀라운 성취를 내보인다. 
건축가는 흔히 글쓰는 사람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그는 달랐다. 
여러 측면을 함축하고 있는 입체적인 묘사와 서술, 자신의 아이디어를 뚜렷히 전달하는 문단,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위트 있는 비유, 자신의 고찰을 품위 있게 풀어내는 문학적 소양은 독자로서 놀라움을 느꼈다. 
건축가로서 글마저 논리적으로 구축해갈 수 있는 그의 능력이 엿보인다. 

또한 그 당시 시대의 변화, 새로움의 발현을 본질적으로 짚어내는 식견도 빼어나다. 
예컨대, 1930년대의 조류, 뉴욕의 부상 등을 보며, 기계문명이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작품 속에 등장하고,
그 모든 형태를 바꿔놓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정말 정확한 통찰이자, 예언이었다. 
아울러 이런 흐름은 현 시대의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신기술의 급진전의 상황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제목에서의 '희었다'는 의미는 새 시대의 자신감, 새로움, 전도유망함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만큼이나 분명하고 에너지에 가득찬 것이 그의 저자로서의 재능이다. 



#대성당이 희었을 때 #르코르뷔지에 #이관석 #동녘
#책과콩나무 #책과콩나무서평단 #책과콩나무리뷰단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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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긴 이, 김상유 - 100년의 시간, 작품 회고집
김상유.김삼봉 지음 / 아이리치코리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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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는 회화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 
부식이라는 자연 작용을 통해 시간성을 반영할 수 있고, 
찍어낼 때마다 달라짐으로써 우연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반복해서 생산해내지만 매번 다르다는 인생의 일상성을 내포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판화와 판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표지에서 느껴지는 저작물에 대한 정성이 느껴진다. 
그림 부분만 별도의 재질로 만들어 독자가 온전하고 선명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책의 내부 역시, 질 좋은 종이와 인쇄가 돋보인다. 

김상유는 한국 미술사에서 동판화의 선구자라는 분명한 위상을 지닌다. 
또한 새로운 기법, 추상적 요소, 소박하고 친근한 화면 구성 등으로 그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인상적인 면은 전통적인 물건, 무늬, 풍경 등을 소재로 삼지만, 그 형상성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브제의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들에 자유롭게 자신 내면의 감정과 사상을 발현한다.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소재, 고전적 문양, 시서화, 민화적 소재, 집과 정자 등 다양한 대상을 그렸지만 그만의 정취가 묻어나는 이유이다. 

예컨대, 그의 작품 속에는 고독과 정적이 있다. 정면으로 앉아 있는 정자 안의 사람, 무념무상한 자연과 토속적 정경 등에서 그 주제가 일관하여 흐른다. 
그 안에는 그의 학문적 배경과 작업의 과정이 반영되어 있고, 그가 추구한 가치와 사상도 내포되어 있다.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그가 심취한 동양철학적 요소와 선도적인 기법을 택하여 고독하게 이끌고 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판화라는 매체가 가진 매력도 눈에 띈다. 
금속적 질감과 색감이 독보적인 감흥을 주고, 그림 속 고색창연한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린다. 
거친 면과 매끄러운 면이 공존하면서 만들어내는 조밀함과 조화도 시선을 이끈다. 

구성적으로는 둘째 딸, 친척, 제자의 회고록이 함께 실려있어 본문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아버지, 백부, 스승으로 본 김상유에 대해 차분히 써내려간 내용을 보며, 
그의 가정과 일, 그가 거쳐간 시간과 공간에 대해 내밀한 정감을 느낄 수 있고,
아울러 그 시대, 20세기 한국에 존재했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추억에도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새긴이김상유 #김상유 #김삼봉 #아이리치코리아
#책과콩나무 #책과콩나무서평단 #책과콩나무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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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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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과거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과거는 흔히 추억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대게 고통의 원천이고, 아픔의 근원이며, 회한이라는 지옥을 선사한다. 
죽을 때 우리 모두는 후회하고, 오직 드물게만 만족한다.

이 책은 그런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공들인 표지와 표지그림이 독자에게 차분하지만, 호화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전면의 은은한 진주 그림은 혼란의 현실 진흙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과거를 상징하고, 
일반 책과는 다르게, 미묘하게 코듀로이의 감촉처럼 부드럽게 처리한 표지 종이는 우리의 과거처럼 자꾸 문지르고 싶게 만든다. 
제목에서 '빛난다'는 구절 앞에 공백을 둠으로써 독자들의 사유 공간을 남겨놓은 것도 섬세한 디자인이다. 
 
본문 역시, 빛나는 통찰과 수려한 문장이 필자의 생각을 내보이고 있다. 
예컨대, 기억은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사이고, 
자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과 인격이 동기화 되었을 때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부연하자면,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로서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에 활용되기 위해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또한 자유는, 베르그송의 말을 빌어서, 
무언가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인격과 행동이 일치되어 어느 행동을 해도 자신의 인격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거(기억)의 본질을 이해하고 마주하면서, 
자신의 자유를 통해 과거와의 관계를 정립해야 우리가 온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라는 모호한 주제에 대해, 이렇게 우아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한 저작은 보지 못했다. 
독서 후 자신의 생각에 투영한다면, 저자의 말처럼 과거에 얽매여 있는 '존재의 부종'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즐거움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될 수도 있고, 과거로부터 의미를 발견하고 교훈을 얻는 스토아 학파도 될 수 있다. 



#삶은어제가있어빛난다 #샤를페팽 #이세진 #푸른숲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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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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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친화적인 영화를 판별하는 기준 중에 다음 항목이 있다. 
'여성들끼리만 하는 대화 장면이 있을 것'
이 문장을 보며, 이 기준은 너무 쉽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영화들을 볼 때마다 살펴보니, 그 기준은 충족하기 아주 어려운 항목이었다. 
남자들끼리의 대화는 모든 영화에 나타나지만, 여자들끼리의 대화는 정말 드물다. 
그만큼 여성은 아직 사회에서 소수자이며, 메이저가 되지 못하는 '마이너 리거'이다. 

이 책은 그런 여성들끼리 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집에서만큼은 '여성들끼리의 대화'를 힘들게 발굴할 필요가 없다.

우선 인상을 남기는 것은 작가들의 섬세한 시각과 상징이다. 
여성을 멸시하는 호칭을 하나씩 정하여 작가들이 단편소설로 풀어내는데,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클리셰가 내포된 멸칭을 다루면서도 아주 유연하고 새로운 심상들을 만들어낸다. 
고지식한 언어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들은 그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작가들만의 개성을 발휘한다. 

여성에 대한 멸칭에 대해 정면대결을 하겠다는 출판사의 기획도 기발했지만, 
참여 작가들의 노력과 재능을 통해, 
그것을 감정이 앞선 사회적 반항이나, 판에 박힌 사회운동처럼 만들지 않고,
소설적 완성도와 문학적 가능성을 접할 수 있도록 한 단계 위로 승화시킨다.   

Stories of the wicked, wild, and untamed.
이 책의 원서 제목이지만, 이와 상반되는 관대함, 부드러움, 세련됨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는 각 주제에 대한 작가들의 깊은 고민과 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독서 후에는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여성은 항상 여섯 번째 감각을 지닌 영감의 원천이었다는 것을. 


#복수의여신 #마거릿애트우드 #이수영 #현대문학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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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먹었으면 즐길 때도 됐잖아 - 좋은 건 계속하고 싫은 건 그만두는 거침없고 유쾌한 노후를 위한 조언
와다 히데키 지음, 유미진 옮김 / 오아시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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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험자들이 체득한 여러 고민과 그에 대한 솔루션을 보다 보면, 우리에게 생각 측면에서 자극, 행동 측면에서 위급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이라는 선험자의 빛나는 통찰과 조언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노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전체에 적용해도 유용한 '인생 즐기기' 요령이 담겨 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아닌, 우러나오는 이야기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많은 조언들이 있다. 
'인생 즐기자, 재미있게 살자, 타인의 눈치를 보지 말자' 등등.

이 책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을 포함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시니어 세대들에게 마냥 즐기고 허비하며 쾌락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필요하고 좋은지, 왜 이익/효용 측면에서 현명한 것인지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제시한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사고방식에서부터 행동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구분하여 설명한다.  
특히 실천방식을 다음 두 가지로 나눠서 상술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 하던 대로 해야 하는 것 
  - 하지 않던 대로 해야 하는 것 

예컨대 전자는 움직이고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자신에 대한 소비를 줄이지 않는 것,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 등이 되고,  
후자는 스스로를 자제하고 구속하는 것, 절약하고 소비활동을 하지 않는 것, 세상 안목에 구애되는 것 등이 된다. 

또한 노화 과정에서 사람들이 온화해지고 정신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로 괴팍해지고 사고적으로 퇴보하게 된다는 통찰력 있는 설명도 뛰어나다. 
아울러 이런 일련의 변화에 대해 전두엽의 노화 등의 의학적인 근거도 알려주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대처법을 제안한다. 
예컨대, 주위 사람들과 서로 대화를 많이 해야 하고, 자신의 상태 및 의견을 밖을 향해 계속 소리내야 한다는 것 등.

이와 함께 노화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움직임 능력과 인지 능력과 관련한 좋은 습관을 
1년이라도 젊었을 때 루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아주 유용하다. 
필자가 권장하는 소통과 소비, 모두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세삼 느끼게 한다. 

책 전체적으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회 성장의 과실을 만든 주역이었던 시니어 세대에 대한 저자의 걱정, 존경, 애정이 느껴진다. 


지루한 전문의가 아닌, 재미있는 전문의

우선 '늙었다, 노쇠했다'라는 말 대신, '시니어 파워가 생겼다'라고 얘기해야 한다는 저자의 유쾌한 생각이 강한 인상과 쾌감을 준다. 
본문에서는 유머감각 있는 이웃집 지인이 말하는 것처럼 친근하고 위트 있는 문장들로 서술하고 있어, 술술 읽힌다.
게다가 꼼꼼한 디테일까지 갖추고 있어, 심지어 시니어의 말투까지 재미있고 세심하게 조언한다. 
 
또한 저자의 전문적인 경력이 내용의 설득력을 높이는 동시에 현 시점에서 필요한 내용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런 전문성이 있어, 개개인의 생활 팁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거시적으로도 시니어 세대의 복지와 사회적 행복 향상을 위해 준비하고 해결해야 하는 점들을 잘 정리한다. 
이는 초고령 사회을 앞두고 있는 여러 나라에게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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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콩나무 #책과콩나무서평단 #책과콩나무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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