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창문 유리로 퍼부어 들어오는
토요일 아침.
아파트 숲 사이를 지나 창가로 들려오는
참새들의 합창소리가 요란하다.
시중은 기지개를 쭉 펴며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여유 있게 인터넷으로 동아리 홈페이지에 들어가 우리의 집단 상담에 대한 홍보 글을 올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소리를 친다.
모르는 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누구지!
시중은 의아해 하며
폰을 누르며 ‘여보세요?’
그런데 낯익은 목소리가 갑자기 시중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 목소리는
언제부턴가 시중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나
아름이.
기억나요?
어~
아름이?
기도원에서 돌아 온지 한 달이 좀 지났을 거
같다.
기억하네.
오빠!
그럼 기억하지,
잘
지냈어?
응!
그때 이후로 집에
와서 오빠 말대로 계속 상담소에 다니면서 열심히 상담 받고 교회도 잘 다니며 요샌 잠도 잘 자고 기분도 괜찮아 져서 잘 지내고
있어.
아름은 쉼 없이 자기 말을
늘어놓는다.
오빠도 잘 지내?
그럼 나야 학교 다니느라
정신없지.
시중도 아름일 잊지 않고
있었다.
기도원에서 헤어질 때
시중은 자기 핸드폰 번호만 가르쳐 주고 아름이 핸드폰 번호는 입력을 안했다.
그때도 시중은 자기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 아름이가 자기한테 과분한 상대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해 연락을 하고 안하고를 아름에게 넘긴
것이다.
시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름을 여자로 느꼈던 것이다.
시중은 너무 반가워 얼굴 꽃이 아침 하늘을
날으며 아름에게 말을 한다.
아름아 만나자,
오늘
시간돼?
응,
좋아
오빠.
어~
그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나올래?
알았어.
그럴게.
오빠!
지금 11시니까 1시까지 보기로 할까!
음~
점심은 만나서 같이
먹기로 하자?
알았어.
오빠 대학로에서
봐.
시중은 전화를 끊고 아름이의 뜻밖의 전화에
너무 기쁘고 좋아서 그날 밤을 생각하며 ‘니논 헤세가 18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
영혼의 동반자이었던 헤르만 헤세를 그리며 편지를 쓰며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시중의 마음도
토요일 파란하늘에 뭉게구름 떠가듯 떠가고 있다.
「
안녕,
사랑이여,
지극한 내
사랑이여.
안녕하세요!
이제 제 마음 속에는 아무런 두려움도 불안도
없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저는 이처럼
충만하니까요.
당신은 제 안에
있습니다.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요.
날개를 단 듯 충만
합니다.
당신,
당신에게 키스를
보냅니다.
이제 저는 다시
불안해집니다.
당신이
말씀하셨지요.
‘만약 아침에
기
분이 신선하고 명랑하다면 우리는 서로 맞지
않아요!
‘라고요.
그게
정
말인가요?
당신이 저를
사랑하고,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은
하찮은 것이 아닌가요?
......
아뇨,
저는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고 달라지고 싶지 않는 다는 것을
믿지 않아요.
저는 가장 경이롭고
가장 완벽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몸도 마음도,
오직 당신에게 그
가장 경이롭고 가장 완벽한 것을
선사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아,
작은
편지야,
네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당신의
손가락들은
편지를 붙들고 있겠지요.
당신의 두 눈은 편지
위에 쓴 글들을
따라서 미끄러져
내려가겠지요.
어쩌면 당신은 그것을
쓰다듬고,
어쩌면 품 안에
지니시겠지요.
당신 품 안에
있노라면 아주
따스하겠지요.
아 작은
편지야.
나는 가련한
니논.
1926년 3월 27일 리논 헤세가 헤르만
헤세에게.
」
아름아?
여기여기!
시중은 먼발치에서 오는 아름을 보고 손을
흔들며 소리친다.
시중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먼저 가서 앉아 있었다.
아름이가 웃으며
손짓을 하며 시중에게 다가왔다.
아름은 기도원에서 본
모습과 전혀 달라 보였다.
오!!!
아름
몰라보겠는데?
늘씬한 키에 빨간 롱 바바리를 입고
있다.
아름은 보자마자
시중의 손을 잡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오빠 보고 싶었어.
잘
지냈어?
시중은 아름의 적극적인 행동에 잠시
주춤한다.
하지만 아름을 보는
것이 꿈만 같고 좋다.
응,
난 잘
지냈지...
아름이도 좋아 보이는데?
둘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좀
이야기를 나누다 골목을 가로질러 좀 걸으니까 작고 예쁜 낙엽모양의‘사랑’이라는 레스토랑 간판이 붙어있는 음식점이
보여 들어가 앉는다.
시중은 여자와 단 둘이 레스토랑에 와 보는
건 처음이다.
대학을 들어와 친구 아이들과 어울려 몇 번
갔었던 것 말고는 말이다.
오빠!
우리 뭐
먹을까?
오늘은 내가
살게.
맛있는 걸로
주문해.
시중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아니야,
아름이가 주문해 난
아름이 먹는 걸로 먹을게.
시중은 레스토랑이 좀
어색하다.
친구들과 만나면
포장마차 아니면 선술집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말이다.
오빠!
진짜!
그럼 내가
주문한다?
응.
아름인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 웨이터를
불러 이것저것 주문한다.
시중은 넋이 나간 듯 아름이 얼굴만 바라보며
옅은 웃음만 자아내며 바라보고 있다.
오빠?
아름이가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한다.
나 내년에 오빠 학교 상담학부에
들어가려고.
아름이의 말에 시중의 눈이
둥그레진다.
정말, 정말?
응.
정말로!
오빠 학교에 들어가서 상담공부 오빠하고
같이하려고.
와~
뜻밖인데?
시중의 눈이 커지며
아름을 본다.
시중은 한없는 미소를 짓다 아름에게 말을
한다.
그럼 내 후배가 되는
거야?
시중은 너무 좋아
너털웃음이 절로 나오며 아름과 같이 웃어댄다.
아름이가 우리과로 들어온다면 나야 너무
좋지.
그럼 아름이도 자주
볼 수 있고 또 내가 아는 상담에 대해서도 다 가르쳐 줄 거야.
아름이도 좋은가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꽃이
핀다.
갑자기 아름이가 정중한 자세로 선배님 잘
부탁 합니당 너스레로 고개를 꾸뻑이며 웃는다.
시중은 너무 좋아서 손을 저으며
암,
그럼 선배는 하늘
기대하겠어! 같이
웃었다.
그사이 함박스테이크와 음식이 나와 우리는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름아 이것 좀 잘라
줄래?
시중은 오른손이 불편해 보조적 역할 뿐이
못해 양손으로 칼질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아름에게 아무
생각 없이 부탁을 한다.
아름은 또 그런
시중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오빠 이리 줘봐 라며 스테이크를 얌전하게 잘라서 건네준다.
그 사이에 샴페인을 종업원이 가지고
왔다.
시중은 아름에게 샴페인을 따라주고 자기
잔에도 채운다.
그리고 시중은
아름에게 ‘음 내년에 우리 과에 들어오는 것을 미리
축하’한다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대며 투명한
유리잔을 마주치며 건배를 한다.
시중과 아름은 그렇게 음식과 샴페인을 마시며
이야기에 웃음이 그칠 줄을 모른다.
오빠 난 오빠가 많이 생각이 났는데 오빠는
나 안 보고 싶었어?
갑자기 하는 아름의 말에 아름의 얼굴만
쳐다보며 웃고 있다 시중은 순간 당황한다.
어!
어
보고,
보고 싶었지 라며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린다.
사실은 잊으려 했었거든 하는 말이 목구멍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 남 녀 간에는 조그마한 만남도
아름답게 서로가 마음이 끌리면 그 끌리는 마음대로 가다보면 인연이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오빠!
우리 이거 먹고 연극
보러 갈래?
오늘은 내가 풀코스로
쏠게. 아름은 웃는다.
시중은 학생이라 돈이 없어 좀
망설인다.
고작 한 달에
엄마한테 10만원 용돈 받아쓰는데 밥값만 해도 족히
나오는데…
아름에게 남자로서 좀
이렇게 쓰게 하는 게 자존심이 허락지가 않는다.
오빠 무슨 생각해?
그냥 오늘은 나만 믿고 따라오는
거야.
나 돈 많아 라며
아름 환히 웃는다.
음식을 다 먹고 커피를 마실 때쯤 시중은
아름에게 말을 한다.
우리 연극은 나중에 보고 영화 보는 건
어떨까?
음…….
그것도 좋을 거
같네!
라며
웃는다.
아름의 순수하고도 예쁜 말과 동작 하나하나가
시중을 설레게 한다.
그럼 우리 종로 가서 영화
볼까?
알았어.
오빠!
그럼 우리 가볼까요?
아름은 시중을 너무 친근하게 오래 사귄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대한다.
시중 역시 아름의 말과 행동에 너무 좋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둘은 종로에 있는 극장에 가서 시중이 표를
끊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어둑어둑 어둠이 두 사람을 반기고 있다.
아름은 저녁은 자기가
사겠다고 해서 또 레스토랑에 들어가 돈가스에다 맥주 500CC
두 잔을 시켜 먹으며
둘만의 사랑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서로 눈만 바라봐도
좋다.
오빠?
오늘 정말
즐거웠어.
오빠 만나 대학로도 걸어보고 영화도 보고
이렇게 맥주까지 마시니까 너무 좋다.
나도 너무 좋아.
시중도 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내년에 우리 과에 들어온다니 너무
좋다 아름.
아름이 웃으며 말을
한다.
오빠?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운명이 아닐까?
운명인 것 같아.
아름도 환하게 웃는다.
시중은 그 얘길 듣는 순간 가슴이 너무
뛰었지만,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었으면 하는 씁쓸한 마음도 느낀다.
또 한편으론 아름이가
자기를 완전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아름이가 더 시중의 마음 저 깊숙한 언저리에 하트의 물방울로 뽀글뽀글 솟아오르게 함을
느낀다.
그렇다 시중은 자신의 장애 때문에 여태까지
이성간의 데이트는 생각도 안 해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을 때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장애인인데 저렇게 정상적인 여자가 내 마음을 받아 주겠어! 항상 여자
앞에서만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며 살아왔다.
시중은 장애인이지만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라 그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잊게 해준다.
이런 시중의 활달한
성격도 여자에 대한 두려움만은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아름이라는
너무나도 시중에게는 과분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본인
앞에 나타나 장애인이라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온전한 한 남자로 보여 지는 것 같아 시중은 너무나 가슴이 뛰며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시중은 또 헤르만 헤세의 시 중에서
‘사랑의 노래’라는 시를 떠올리며 아름을
바라본다.
「내가 한 떨기의
꽃이라면,
살며시 당신이 다가와서 당신
것으로
당신의 손이
꺾는다면.
빨간 한 잔의
포도주라면,
달콤한 당신 입에 흘러들
수
있다면,
온전히 당신 속에 들어 당신과 내가
싱싱해진다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