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 아침 동이 트기 전 민박집에서 나와 안면도 벗개 해변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걷는다.

초겨울의 아침 바닷가 공기는 좀 써늘하다. 그러나 한산한 해변가는 혼자 걷기에는 너무 좋다. 시중은 걸으며 아름을 떠올린다.

아름을 만난 것은 너무 좋은데 이 만남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를 생각해 본다.

자신은 너무 좋은데 현실의 벽이 너무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불현 듯 밀려온다.

시중의 꼼꼼하고 세심함이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옥죄인다.

백사장의 바람이 귓불을 가만히 터치하며 지나간다. 해변 끝에서 나이 많게 보이는 남자가 지평선에서 사라지는 해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멀리서 보는데도 인상이 좋아 보인다. 키는 보통 키에 수염이 많이 나있다.

옷은 전통개량한복을 입었다.

시중은 해변 끝에 서있는 그 남자에게로 다 걸어가서 겸연쩍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좀 상투적이지만 넓은 해변에 그와 나 단 둘이라 모른 척 하는 것보단 아는 척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인사를 했다.

그 남자도 시중을 보더니 목례를 한다. 담뱃재를 손가락으로 털면서 말이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니 시원합니다. 시중은 또 말을 붙였다.

그러니까 남자는 그제서야 아~ 좋네요. 한 마디 했다.

약간의 침묵이 또 흘렀다. 그러더니 이번엔 그 남자가 말을 건넨다.

보니 학생 같은데 여기 혼자 왔나요?

. 나는 말을 붙이는 게 반가워 웃으며 대답을 했다.

여기 혼자 가끔 옵니다. 저는 대학생입니다.

아저씬 여기 사시나요?

아니요. 나도 여기 오고 싶을 때 혼자서 가끔 와요. 아침 해가 넘어가는 지평선을 눈부시다는 듯 실눈을 뜨고 바라보며 대꾸를 한다.

그러시군요. 그러고 보니 아저씨하고 저하고 비슷하네요. 말을 하며 웃었다.

그도 빙그레 웃는다. 웃는 상이 너무 푸근한 인상이다.

아저씨는 뭐하시는 분이세요?

나는 친근하게 말도 텄겠다! 다정하게 물어 보았다.

아참 우리 통성명해요. 아저씨?

저는 강시중이라고 하고 심리학과2학년생입니다.

시중은 처음 보는 누구를 만나도 이렇게 아는 척을 하고 만다. 붙임성이 좋다고나 할까.

~ 나는 김상충이라 하고 명상요법 강사요.

그럼 아저씨도 심리학 전공하셨겠네요?

그래요, 초월 영성 전공 했어요.

혹시 그럼 교수님!!!

허허, 그 친구 빠르네. 요가 교실 운영하며 강사로 활동하고 있지.

아하.. 교수님? 그러시군요. 교수님 말 노세요.

23살입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자는 나에게 말을 놓는다.

그런데 자넨 왜 이 서늘한 아침에 혼자 다니지! 혼자 왔나?

~ 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전 혼자 가끔 교수님처럼 여기 와서 혼자 둘러보며 바다와 친구해요. 시중은 겸연쩍다는 듯 흐흐 웃으며 머리를 극적인 다.

상충은 시중의 말에 뭔가를 느끼는 듯 바라본다.

날씨는 좀 쌀쌀하지만 시중 저 지평선 너머로 해가 져가는 것이 너무 환상적이지 않나?

맞아요. 저는 여기 올 때마다 술을 많이 먹고 자도 아침에 꼭 나와서 해가 떴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꼭 봐요.

교수님도 여기 자주 오시면 저와 똑같을 것 같은데요?

맞아 나도 아침에 떴다 사라지는 해를 여기 오면 꼭 감상하지.

저 것을 보면 아침에 떳다 사라지는 해가 마치 우리네 인생 같기도 해서 말이야.

또 사라지는 해가 너무 아름답지요. 시중도 한마디 한다.

시중은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은데 혼자 이런데도 잘 다니나보지?

시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저 이래봬도 안 다니는데 없어요. 제가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 하거든요 웃었다.

상충은 그런 시중의 꾸밈없는 말과 행동에 친근감을 느낀다.

시중은 상담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상담에서 어느 파트를 주로 관심 있이 공부하고 있나?

저는 집단상담 쪽에 관심이 있어 그쪽 파트를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상충은 순간 눈을 크게 뜬다.

집단상담은 개인 상담과 달리 10여명 이상 집단원들을 이끌고 가야하는 고도의 순발력과 테크닉을 요하는 상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상충도 요가 센터를 운영하며 집단 상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집단에 대해서 잘 안다.

시중 대단한데! 집단이 시중한테 맞나보지?

네 전 집단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어요.

시중 대단해! 언제 우리 센터에 한번 놀러오지!

정말요? 시중은 좋아한다.

상충은 시중에게 말을 한다.

그런데 여기 자주 온다고 했는데 그것도 혼자 말이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시중은 웃는다.

역시 상담학 교수님이시네요.

네 전 올해 23살인데 상담을 공부하고 있는데 제가 장애인이라 어디 실습할 때도 마땅치 않고 앞으로 상담을 전공해서 집단상담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너무나 전 작게 보여요.

또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 제가 이래서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할 것 같아요.

결론적으론 제 인생의 전반적인 문제를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 위해서 미친 놈 같이 가슴에서 뭔가가 욱하고 요동치면 여기 아무도 모르게 오곤 해요.

시중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된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술술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중이 활달한 성격이지만 자기 속마음을 들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 찬 공기가 목을 타고 스며드는 백사장과 지평선 사이로 시중의 이야길 듣고 있던 상충은 1년 전에 근육마비로 세상을 떠난 여동생 상희가 생각이나 시중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상충의 동생 상희는 18살 때 갑자기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 굳어져 가는 원인도 모르는 불치의 병으로 35세에 세상을 떠났다. 상충은 동생을 고쳐 보려고 상담을 시작했고 급기야 박사과정까지 하게 되어 명상전문가 겸 집단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중에게 말을 한다.

시중 우리 아침 먹으러 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자네 말대로 인연인데 내가 아침 살게 가지.

오호! 교수님 좋아요. 가시죠.

둘은 안면도에 들를 때마다 자주 가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 아침을 식혀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상충은 시중이 자기 막내 동생같이 느껴진다.

시중 너무 자네 신체적 핸디캡 때문에 지나치게 기죽을 것 없어. 내가 보니 자네는 몸이 좀 불편할 뿐이지 성격도 좋은 것 같고 정신도 맑고 깨끗한 것 같아 보여. 난 상담을 하면서 몸은 멀쩡한데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돼 있는 정신 장애인들을 많이 보지. 그런 사람들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몸은 멀쩡하게 생겼어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많이 보거든. 그래서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런데 내가 보기엔 자넨 정신이 건강한 사람 같아 보여? 또 이건 내 개인적인 슬픈 이야기인데.

내 동생도 근육이 굳어가는 병으로 오랜 세월 투병하다 세상 떠났다네. 그러니 너무 자네 몸에 대해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누구나 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 살다 죽는 건 똑같단 말이지. 단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겠지만 육체적 아픔보단 정신적 아픔이 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내가 살아 보니 그냥 삶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열심히,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면 되는 것 같아. 아까 자네가 얘기한 여자 친구 문제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쪽에서 정말 자네를 좋아 한다면 자네도 감사함으로 그 여자를 사랑하면 될 것 같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보이는, 있는 그대로 말이야.

한 참을 듣고 있던 시중은 이론적으로는 다 아는 이야기인데 시중의 입장에서 진솔하게 이야기해주는 상충선생의 말이 가슴에 하나하나 와 닿는다.

시중은 상충에게 말을 한다.

교수님 말씀은 다 제가 알고 있는 말인데도 힘이 되네요.

시중은 말을 하면서 상을 앞에 놓고 마주 앉은 상충의 얼굴을 웃음으로 바라본다.

시중은 또 말을 한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에서 좀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제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고 행동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상대방이 넌 장애인이니까 여기까지 라며 선을 그어버리고 만다는 것을요. 그럴 때는 저도 모르게 죽고 싶어지고,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그런 편견이 있잖아요!

저는 제가 자신 있는 일에 있어서 인정받으며 모든 것을 하고 싶은데 너는 안 돼 하며 치부해 버리는 것이 있어요. 저도 제가 못하는 것은 안하거든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누구나 이런 사람 마음은 똑같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것 자체도 제 나름대로 뛰어 넘어 보려고 노력을 해보지만 한계가 느껴지는 때가 많아요.

상충은 시중의 말을 듣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저렇게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극복해 보려는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시중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상충은 남아 있는 밥을 마저 비운 후 시중에게 한마디 한다.

시중 어쨌거나 한번 태어난 인생 잘 살아 보자고!

둘은 식당을 나와 상충은 자기 차로 시중을 버스 타는 데까지 데려다 주며 상충은 서슴없이 차에서 내려 시중을 가슴으로 안아주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