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시골의 전형적인 풍경인 아침이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른 낙엽 타는 냄새가 도심 속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들의 오감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정신의 향연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들어 준다.

이틀째 계속되는 집단상담은 지금-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시간 속에서 그 누구하나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첫째 날 보다는 모두 안정이 되어있는 자세로 서로가 서로를 온 몸으로 탐색하고 있다.

마음이의 자세는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좌정 그 자체로 아침 시간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탐색시간이 5분을 넘어가고 있을 때 지평선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입을 뗀다.

오늘 제가 먼저 말을 하지요.

저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지금까지 부모님의 따스함 속에서 살아 온 것 같아요. 저는 어제 모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숲의 말과 같이 세상엔 내가 모르는 삶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어쩜 저런 삶들이 있을 수 있을까? 저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여기 집단원들에겐 미안한 이야기겠지만 감사하는 마음, 안도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때부터 제가 해보고 싶었던 건 거의 다 해보며 살아왔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제 적성에 맞는 상담을 공부하고 있고 즐겁게 살고 있어요.

지평선은 주위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세로 담담히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럼 지평선은 아무 부족함 없는 행복한 삶만을 살아오고 있는 거네요?

샘물의 질문에 지평선은 뭔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하며 말끝을 흐린다.

마음이 순간 들어오는 느낌으로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을 잡아챈다.

지평선 좀 불편한 얼굴이 보여요?

지평선은 마음이의 눈을 보며 누군가에 잘못하여 들킨 눈으로 대꾸를 한다.

그러네요.’

제가 잘못도 안했는데 전 있는 사실 그대로 말을 한 것뿐인데 뭔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마음이 다시 아주 조용하게 지평선에게 말을 건넨다.

그 마음을 아주 천천히 들여다볼래요? 왜 그런 마음이 올라오는지.

지평선은 갑자기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켰다는 듯 표정이 바뀐다. 그러더니 갑자기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턱밑으로 떨어지며 소리 없는 흐느낌에 젖어 든다.

순간 집단원들은 영문을 모른다는 듯 눈들이 커진다.

지평선은 휴지로 눈물을 훔치며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제 이야기를 피상적으로만 하려고 했는데 샘물의 물음에 뭔가 들킨 기분이 들어요.

그러더니 지평선이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진다.

다시 지평선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크크 하며 말을 이어간다.

저는 사실 2살 때 입양되었어요. 부모님께서 아이가 없으셔서 저를 입양하셨대요. 저는 그 사실을 초등학교 들어갈 때 알았어요. 하루는 부모님이 저를 앞에 앉히시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알려 주시는 거여요. 그리고 저를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엄마가 멍하니 있는 저를 꼭 안아 주셨을 때의 그 전율이 지금도 느껴져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입양되었는지도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셨고요. 하지만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고 충격으로 한 동안 멍해지더라고요.

내가 왜? 입양아라고?

한동안 부모님 몰래 많이 울었어요. 그런 저를 부모님은 아동상담을 받게 하셨어요.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대학 교수셔서 인지적으로 지각하시며 행동하시는 분이시라 어느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잘 판단하시는 분들이시죠. 부모님의 돌보심으로 상담을 받으며 저의 존재의 가치성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때 받은 상담 때문에 상담이 이렇게 좋은 것이라는 것도 크면서 알게 되었어요. 나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 비록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은 아니시지만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도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진로를 결정할 때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상담학을 선택했지요. 또 지금도 저에게 큰 힘이 되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점점 살아가며 간혹 이런 생각은 해봐요.

내 친부모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왜 나를 버렸을까?

혼자서 질문을 해보곤 해요.

지평선은 말을 하는 내내 담담한 어조로 처음 말할 때의 눈물은 찾아볼 수 없다.

지평선은 축복받은 사람이네요. 마음이의 코멘트다.

친부모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나요? 새가 말을 건넨다.

그 말에 지평은 고개를 젓는다.

궁금은 한데 찾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저는 지금 부모님을 제 친부모님이라 생각하며 지내거든요. 또 행복하게 살고 있거든요. 저는 상담을 배우며 많이 생각했어요. 지금-여기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참 좋으신 부모님을 저에게 주셨잖아요. 또 저는 오늘이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지평선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마음이 한번 지평선의 마음을 건드려본다.

그래도 나 같으면 나를 낳아주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서라도 찾아보고 싶을 텐데요?

모두 지평선에게 눈들이 간다.

지평선은 모두에게 쏠리는 시선이 갑자기 숨을 턱 막히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순간 주위를 한번 눈으로 둘러보며 담담하다는 어조로 말을 한다.

제가 더 나이를 먹으면 모를까 지금은 좀 그래요. 또 저는 지금 부모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거든요. 부모님들과 같이 공부를 많이 해서 상담학 교수가 되는 것이 제 목표에요.

마음이는 지평선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미동의 목 사레의 흔들림만 할 뿐 좌정한 자세 그대로를 유지한다.

 

주위를 둘러보다 마음이의 눈과 마주친 가시가 숨을 한번 오롯이 내쉬더니 자기 차례가 됐다는 듯 입을 뗀다.

저는 매사에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저도 모르게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떨리고 두려워요. 그래서 저는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수많은 가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부랑아가 말을 건넨다. 언제부터 그런 느낌들이 들었나요?

중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마음이가 지그시 눈을 뜨며 가시를 보며 말을 건넨다.

지금 어떤 느낌이 드나요?

가시가 다시 한 번 마음이의 눈을 불안에 떨 듯 바라보며 말을 받는다.

지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려요.

언제 고여 있었는지 가시의 눈에서 눈물이 바닥으로 급속하게 고공 낙하한다.

모두 가시를 바라보고 있다.

코를 훌쩍거리며 가시가 말을 잇는다.

저는 삼남매인데 중학교 때 가족이 모두 여름 방학 때 차를 몰고 피서를 가고 있었어요. 고속도로를 지나 시골 국도에 접어들어 천천히 달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삼톤 덤프트럭이 급한 속력으로 질주하면서 우리 차를 받았어요. 아빠는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는 논두렁으로 전복되고 말았어요. 운전석에 아빠가 계셨고 둘째 동생이 조수석에 있었고 나와 엄마 막내 동생은 뒷좌석에 있었어요. 차가 갑자기 전복 되는 바람에 엄마와 막내 동생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어요. 저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 눈이 휘둥그레 졌어요.

가시가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두 손은 꽉 쥔 상태로 미세하게 떨며 천천히 말을 잇는다.

저는 그 사건으로 한 동안 말문이 닫혀서 한참 동안 생활하기 힘들었어요. 졸지에 우리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고 남은 가족은 1년 정도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았던 것 같아요.

집단 원들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가시를 눈으로 어루만져주고 있다.

코끝이 시큰한지 코를 지긋이 화장지로 밀어내며 새가 말을 건넨다.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가시가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보냈었을까 생각하니 가슴까지 져려 오는 것 같아요.

새의 말에 가시가 또 한 번 눈물을 쏟으며 이야기를 잇는다.

저는 그때부터 사람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이 두려웠어요. 대학교 들어 올 때까지 집과 학교만 다니면서 공부만 했어요. 그래서 아직 친한 친구도 거의 없어요. 사실 엄마가 안계시니까 공부할 생각도 없더라고요. 근데 아빠가 우리는 돌아가신 엄마와 동생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남매를 정말 지극정성으로 챙기세요. 아빠는 재혼도 안하시고 그냥 우리 남매만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시고 계시죠. 근데 저는 엄마가 안계시다는 허전함과 충격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하는 것들이 겁이 났어요. 그냥 어느 때부터 나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혼자 노는 것이 편했어요. 누가 옆에 있으면 나 때문에 해를 당할 것 같은 강박적인 생각이 너무 괴롭고 싫어서 나도 모르게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곤 했어요.

마음이 가시를 보며 말을 건넨다.

요새는 어떤가요?

대학에 들어와 교수님께 개인상담을 받으며 많이 그런 강박적인 현상들이 적어졌어요. 저는 상담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상담심리학과를 들어오게 된 동기도 그냥 단순히 배워 볼게 마땅치 않아 아버지가 대학은 나와야한다는 말에 눈에 띄는 학과가 상담심리학과였어요. 그래서 내 심리도 알아 볼 겸 지원해 들어오게 됐어요. 들어와 공부하며 상담을 받으며 상담이 이런 거구나 느꼈고 상담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집단상담을 한번 체험해 보고 집단상담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같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 지금은 어느 정도 내면의 아픔이 치유돼 있는 상태인가요? 벌레가 말을 건넨다.

네 좀 전에 말했다시피 개인 상담을 받으며 많이 좋아졌어요.

마음이 좌정한 상태로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인다.

 

자 쉬었다 하자 말이 떨어지자 다 들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부엌에서 사모님이 나오시며 우리를 보자 쟁반에 식혜와 다과를 접시에 담아 방으로 들어가시며 모두 들어와 차 한 잔씩 해요 말씀하신다.

'네...' 

밖에서 한 사람씩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차 마시는 방안의 공기는 윤 교수와 방안에 앉아 있는 4명의 집단원들의 고요를 깨지는 못했다. 좀 있으니 나머지 집단원들이 들어와 앉으며 식혜를 손에 들고 마신다.

영희가 오! 교수님 식혜 정말 맛있어요.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윤 교수가 웃으며 말을 한다.

이거 집사람이 만든 거야.

! 그래서 이렇게 맛있나 봐요. 정우가 웃으며 대답을 한다.

모두 정우의 응답에 웃으며 다과와 식혜를 먹는다.

자 또 들어가 볼까?

윤 교수의 말이 떨어지자 다과와 찻상은 밖으로 내보내고 우리는 집단속의 여행으로 다시 모든 것을 던져본다.

 

어김없이 침묵의 시간들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넓은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정막이 좀 지났을까?

부랑아가 입을 뗀다.

제가 얘기 할게요. 조금은 어눌한 어투로 말을 잇는다.

집단원들은 어느 시간보다 귀를 쫑긋 세우는 것 같다.

저는 제 몸에 대해 불만이 많아요. 어째서 장애인으로 태어나야만 했는지. 이 답답한 마음을 누구한테 털어놓고 해결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를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게 한 하나님이 미워요.

부랑아는 말하는 내내 담담한 표정이다.

저는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도외시 당하는 때가 너무 많아 그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나요.

졸지에 방안 분위기는 무거워, 좀 전보다 더 긴 침묵이 흐른다.

평소에 부랑아의 호탈하고 웃음 많은 성격인 줄만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 의아해 하는 표정들이다. 그래도 장애인으로 장애인 같이 내색을 안 하며 모든 면에 적극적이고 호탕한 성격으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부랑아는 무엇이 떠오르는지 눈에 눈물이 글썽 고인다.

저는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인 몸만 보고 판단해요.

장애인이기 때문에 너는 안 돼.

할 수 없어.

못해.

여기까지가 너의 한계야.

이런 말과 행동을 하며 저의 기를 죽이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이렇게 취급받을 때마다 저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냥 현실이니까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나?

아니면 모든 것에 전투하듯 투쟁하며 살아가야만 하나 생각이 많아요.

부랑아의 눈에서 눈물이 몽글몽글 맺혀 떨어진다.

마음이도 그냥 눈을 감은 채 좌정하고 있다.

집단원들도 말없이 그저 앉아 있을 뿐! 또 침묵이 흐른다.

새가 입을 연다.

부랑아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 많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이해해요. 그러나 자신의 몸을 그대로 인정하면 좀 살아가는데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방안의 집단 원들이 다 새의 말에 부랑아를 주시한다.

그 말은 아까 제가 말했다시피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란 이야기로 들리네요?

부랑아의 어조는 좀 날카로웠다.

아니 난 그런 뜻이 아니라 부랑아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어요.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현실이잖아요?

그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잘 납득이 안 되는데요?

부랑아는 좀 불쾌하다는 어조로 말을 한다.

새가 좀 당황한 어조로 말을 한다.

아니 부랑아가 너무 자신의 신체에만 집착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하는 말이었어요.

부랑아는 그제서야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며 알았다는 듯 말을 한다.

저는 생각을 해봐요.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건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몸이 멀쩡해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동물과 같은 존재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올바르고 현명한 자아 즉 정신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상담을 하는데 있어서 상담을 몸으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담 전문가가 앉아서 상담을 하는 거잖아요. 물론 저는 언어가 좀 어눌하긴 하지만요. 그렇지만 못 알아들을 언어는 아니거든요. 저는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못한다 다 치부하지 말고 이런 걸 알아 줬으면 하는 바람 이예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몸만 보지요. 이런 것 때문에 답답하다는 이야기여요.

새의 말을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녀요.

제 장애를 인정하지만 저는 장애인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여요. 또 저는 제가 못하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거든요. 살아가는데 있어 몸으로 힘을 쓰며 살아가는 세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거의 머리를 쓰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요?

모두 부랑아의 말에 눈만 꾸뻑인다.

마음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넨다. 그래서 닉네임이 부랑아인가요?

네 부랑아라는 것은 처음에도 말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돈다는 뜻에서 제 자신을 표현해 본 것도 있지만 저의 인생을 자유로이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에 방랑의 의미로 부랑아로 표현해 본거여요.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가려면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마음이의 말이 이어졌다.

네 하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무너질 것 같거든요.

모두 부랑아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마음이도 고개만 미세하게 끄덕이며 눈을 감는다.

마음이가 이윽고 말문을 연다.

부랑아는 단순히 자신의 몸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자신 자체의 삶에 대한 물음에 고민하는 것 같아요. 내가 볼 때 부랑아는 대단한 사람이라 느껴요. 자신의 삶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도전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장애인이면 대개 조용히 어디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며 살아가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부랑아는 더 열심히 알려고 하고 적극적인 마인드가 있다는 것을 알아봤지요.

그런데 부랑아! 내가 생각할 때 삶은 다 누구나 아픔이 있잖아요. 지금껏 집단 원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느꼈잖아요. 사람들의 시선과 의식을 개개인이 바꿀 수 없지만 부랑아가 말한 것처럼 하나하나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삶을 임하면 어떨까요? 부랑아가 늘 아름다운 것처럼 아름답게 도전하며 대처하며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모두 공감한다는 듯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만 끄덕인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날 저녁은 교수님이 마지막 밤이라 마당에 있는 가마솥에다 손수 별미의 밥을 안치시고 장작불을 지펴서 삼겹살 파티를 준비하고 계신다.

여자 아이들은 사모님을 도와 반찬들을 밖에 차려놓은 상에 나르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교수님을 도와 고기를 이리저리 뒤치며 구워가고 있다.

오늘 따라 깊어가는 초 겨울밤 별들이 더 또렷하게 우리를 비춰주고 있다.

모두 장작불에 빙 둘러 서서 막걸리 잔에 잔을 채우고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자 모두 집단 하느라 수고들 했다. 내일이 마지막 시간인데 안 한사람 있나?

경희가 빠끔히 손을 들며 저요 한다.

그래 경희 안했지! 내일 오전 시간이 있으니까 잘 활용해 보도록!

네 교수님! 경희가 미소 지으며 밝게 대답을 한다.

! 이 밤에는 앞으로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건배하자.  

교수님의 건배 제안에 모두 잔을 들어 건배를 외치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술을 술술 넘기며 좋아 한다. 짙은 밤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들을 신기한 듯 보며 흥에 겨운 노래들을 한 가락씩 뽑으며 풀벌레 우는 밤을 우리는 노래 부르며 마음껏 즐긴다. 또 귀뚜라미 노래 소리에 쏟아지는 별과 달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 삼일 째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이날 좀 늦게 주섬주섬 일어나 세수를 하고 9시까지 방에 모여 앉았다.

자 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12시까지 한다. 화초만 안했는데 알아서 하기 바란다. 11시쯤 그동안 삼일동안 느낌이나 소감 등을 각자 짧게 말하며 마무리 하겠다.

화초가 마음이의 말이 끝나자 말을 잇는다.

저는 삼일동안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모두 같은 생각이겠지만 내가 모르는 다양한 삶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 했어요. 그리구 어제 부랑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가슴이 먹먹했어요.

그렇다 화초는 부랑아와 입학하면서부터 알게 됐다. 누구보다 신실한 우정을 느끼며 클래스메이트로 각별히 생각하고 있다.

화초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저도 제 삶에 특별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정상적인 부모님 슬하에서 공부하며 제가 공부하고 싶은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있어요. 화초라고 한 것은 상담을 공부해서 몸과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들에 꿋꿋이 죽지도 않고 생존해 있는 화조가 되고 싶은 마음에 붙여 봤어요.

화초는 이야기하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모두 화초의 이야기를 들으며 집단에서의 우리의 미지의 이야기들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 같다.

초겨울 고요하고 아늑한 시골 아침 굴뚝에 새파란 하늘로 김이 몽글몽글 올라오듯 모두 소리 없는 웃음을 짓고 있다.

그렇게 화초는 마지막 오전 시간을 산뜻하게 마무리 하고 있었다.

우리는 상담심리를 대학에 들어와 배우며 학과 교수님인 윤 교수에게는 처음으로 집단상담을 받으며 아름다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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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는 윤 교수를 중심으로 방에 둘러앉았다.

방에는 어김없이 침묵이 흐른다.

한참 침묵의 시간이 지나갈 때 쯤 시궁창의 얼굴이 굳어지며 말을 꺼낸다.

작정했다는 듯 눈에 힘을 주며 말을 한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요. 그래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갑자기 눈에서 닭 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며 말을 잇지 못한다.

마음이 물어본다.

시궁창이란 이름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는데 왜 죽어버리고 싶은지 말해 줄래요?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며 흐느낀다.

시궁창이 거친 숨을 내쉬며 스스로 진정을 해가며 서서히 말을 잇는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오빠는 나만 보면 만지기 좋아했고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내 옷을 벗기고 성행위를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반항했지만 오빠는 막무가내로 내 몸을 더듬으며 나를 못살게 했어요. 오빠와 난 3살차 이에요. 오빠는 부모님이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입양했어요. 엄마가 저를 낳고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허전해 하셨데요. 그래서 아빠는 엄마와 상의해 사내아이를 키워 보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으로 오빠를 데리고 왔데요. 오빠는 키도 크고 잘 생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를 쓰다듬어 주더니 내 가슴을 아무도 모르게 만지는 거예요. 나는 그때 너무 이상해했지만 오빠니까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그 이후에도 가끔 둘만 있을 때 그런 행동을 반복하더니 거기까지 만지기 시작했어요.

말을 하며 펑펑 울어댄다.

시궁창의 말에 다들 놀라며 눈들이 뚱그레진다.

마음이도 말을 잇지 못하고 그냥 좌정한 자세로 시궁창을 바라보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화초가 말을 건넨다.

근데 왜 시궁창이란 표현을 쓰죠?

시궁창이 눈물을 훔치며 힘들게 말을 잇는다.

그런 오빠의 행동에 난 어느 날부터 그냥 내 몸을 함부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오빠뿐만이 아니라 누가 내 몸을 원하면 서슴없이 내 몸을 던졌어요.

다들 놀라는 눈들이다.

방 안의 공기가 너무 무거워 누구하나 말을 잇는 사람이 없다.

마음이 침묵을 깨며 말을 건넨다.

지금은 어떤가요?

대학에 들어와 개인 상담을 받고 있어요.

눈물이 얼굴을 타고 쏟아지며 너무 창피해요흐느낀다.

마음이 말을 건넨다.

난 시궁창이 참 용기 있는 따뜻한 사람 같아요. 그래도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며 고쳐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진짜 하기 힘든 자기만의 이야기인데 드러내어 치유해 보아야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느껴져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새가 말을 한다.

오빠가 너무 미울 것 같아요. 오빠는 지금 같이 사나요?

아니요.

대학교 3학년 때 독립해서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오빠가 전화해서 놀러 오라고 하는데 안가요.

난 그 오빠라는 사람에게 욕을 해주고 싶어요. 이 배은망덕한 새끼 야라고요.

새가 큰 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주위에서 맞아라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터져 나온다.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래. 갑자기 뜬금없이 부랑아가 얘기를 해 순간 방안의 공기가 피식대며 웃음으로 넘어간다.

창피해하지 말아요. 그것은 시궁창 잘못이 아니잖아요.

숲이 말을 한다.

그리고 시궁창이 아까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시궁창은 너무 순수하고 여린 사람 같아 보여요.

역시 상담을 배우는 학생들이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 주고 경청하며 공감해 주며 지지해주는 자세가 돼 있는 우리다. 남의 말을 비웃거나 조롱하지 않고 감싸주는 이 분위기는 상담에서만 가능하리라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사모님께서 벌써 점심상을 안방에다 널따랗게 차려 놓고 계신다. 여자 아이들은 부엌으로 들어가 사모님을 도와 밥상을 마무리한다. 우리 모두는 안방에 차려놓은 밥상에 둘러앉아 조용하게 밥을 먹는다. 사모님이 먹고 더 먹으라며 큰 대접에다 숭늉을 가지고 방에 앉으신다.

유진이가 사모님도 같이 드시죠! 말을 한다.

그때서야 모두 사모님을 바라보며 같이 드세요! 한마디씩 한다.

사모님은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으라고 우리에게 손사래를 치시며 방을 나가신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이 많이 스쳐 지나가는 점심을 먹고 다시 집단을 하기 위해 사랑채로 건너갔다.

 

방안의 공기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이 둘러 감싼다. 밖에서는 가끔씩 짹짹 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과히 나쁘지 않다.

 

 

숲이 입을 뗀다.

저는 집단이 두 번째인데 저한테는 큰 충격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교수님께 이론 강의만 듣다 시피하고 이렇게 교수님과 함께 직접 해보니 좋기도 하고 나름 아~ 내가 모르는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많이 생각하게끔 하네요.

그러고 숲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있다가 계속 이야기를 한다.

저는 숲인데 제 이야기는 별로 할 게 없는 것 같아요.

숲은 말을 하다 순간 또 침묵을 한다.

저는 진짜 큰 숲이 되어서 모든 힘든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싶거든요.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고3 방학 때였어요.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갔었어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아파서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리고 나는 참 행복하고 감사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상담을 전공하게 되었고요. 나중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며 살아가기 원하고 있어요. 여기 모인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아무 사건 없이 살아 온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네요.

숲은 말을 마무리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분위기를 살핀다.

마음이 숲에게 묻는다.

지금 느낌이 어떤가요?

내가 괜히 이야기를 했나 싶어 조금 당황스러워요.

방안에 적막이 흐른다.

마음이가 숲에게 말한다.

난 숲이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다 똑같을 수 없으니까요. 또 숲이 얼마나 따듯한 사람인지 난 느껴져요.

그때서야 숲의 경직돼있던 얼굴이 풀어진다.

그때 벌레가 말을 잇는다.

저도 숲이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라고 느껴지네요.

 

벌레가 말을 한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특히 혼자 있으면 더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있으면 갑자기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사는 것이 재미없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 한 밤에 주방에 들어가 칼을 엄마 몰래 방안으로 들고 들어와 칼을 앞에 놓고 칼하고 대화를 하곤 하는 시간들이 꽤 있었어요. 그리고 약국에서 수면제를 수차례 걸쳐 많이 모아놓곤 했지요. 또 내 자신이 너무 더럽다 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혼자 자위하는 것을 즐겼거든요.

자위를 하고나면 누가 나에게 욕을 하는 것 같은 음성이 들리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렬하게 들었거든요. 그럴 때면 저 혼자 어쩔 줄 몰라 울기도하고 대굴대굴 굴러보기도 하다 주방에 가서 칼을 가져와서 칼을 휘두르며 어떻게 찌르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곤 했어요.

조용히 듣고 있던 마음이가 벌레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며 묻는다.

요새는 어떤 마음으로 지내나요?

벌레는 흥분한 몸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키며 요새는 그런 증상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학교에 입학하면서 개인 상담을 1년 이상 받고 있거든요.

언제 눈가에 눈물이 맺혔는지 눈가가 눈물로 촉촉이 맺혀져 있다.

그래도 상담을 받을 생각을 했네요?

마음이의 말을 벌레가 받는다.

제가 상담학과를 택한 것도 이렇게 살 봐 에야 다른 과는 눈에 안 들어왔고 상담이나 배워보자 하고 지원했거든요. 왜냐하면 대학도 포기하려고 했거든요. 그리고 입학하고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먼저 자신의 문제로 괴롭고 고민이 많은 사람은 개인상담을 신청해서 받아 보라는 말씀이 있어서 저는 얼른 신청하여 지금까지 받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는 중이에요. 또 제가 상담학과에 잘 들어왔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벌레의 말에 잠시 방안의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윽고 주위의 적막 속에 새가 말을 뗀다.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네요.

그래도 벌레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애를 쓴 것 같아 대단해 보여요.

모두 벌레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새가 이어 말을 연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서울로 유학을 와 동생과 자취생활을 하며 살고 있어요. 부모님은 여수에서 어업을 하시며 사세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바다를 벗어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께 졸라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었어요. 부모님은 저 혼자 보내는 것이 불안해 6학년인 제 동생과 함께 유학을 보냈어요. 진짜로 제가 생각했던 새가 되어 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 졌던 거예요. 옆에 동생이 있어 좀 그렇지만요. 저의 아버지는 어부신데 한쪽 눈이 안보이셔서 안대를 하셨어요. 그래도 건강하셔서 지금도 어느 누구보다도 고기를 많이 잡으시는 분 성실하신 분으로 소문이 나 있으세요. 그런데 저는 학교만 가면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어요. 너의 아버지는 애꾸눈이지? 놀리는 거여요. 저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막 따지기도 했어요.

엄마 왜 아빤 애꾸눈이야? 난 아빠가 너무 싫어! 막 울기도 했어요.

그러면 엄만 나를 달래며 아빤 훌륭한 분이야. 아빤 저 멀리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셔셔 고기를 잡는데 갑자기 상어 떼가 나타나 배를 툭툭 치며 배가 위험에 빠졌단다. 그때 아빠가 큰 대 꼬챙이로 상어 떼를 쫓으려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며 요동을 칠 때 꼬챙이가 흔들리는 배에서 아빠 눈을 찌른 거야. 그때 다행히 지나가는 배가 없었더라면 아빤 위험해지셨을 거야. 아빤 우리 가족을 위해 그렇게 위험한 일을 무릅쓰시며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시란다. 엄마는 나를 그렇게 달래셨지요. 그때는 그 소리도 너무 듣기 싫었어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나를 놀린다는 거였지요. 그래서 서울로 유학 오고 나서 방학 때도 집에는 잘 안 갔어요.

그런데 대학을 들어오며 상담을 배우며 부모님이 참 많이 서운해 하셨겠구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빠는 지금도 어부로 일하시며 동생과 나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시니 까요. 너무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요.

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새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거네요?

마음이의 말에 새가 휴지로 눈가를 훔치며 네.

이 이야기는 누구한테도 안한 이야기인데 오늘 하게 되네요.

이야기하고 나니 어떤가요?

마음이가 묻는다.

새는 침묵하다 제가 부모님을 너무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져요. 그리고 저는 새처럼 지금 저의 이상을 향해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게 뭐지요? 샘물이 묻는다.

새는 생각에 잠긴다.

저는 여자지만 결혼은 생각이 없고 우선 상담학박사학위까지 공부하고 그다음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행을 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주며 사는 것이 제 꿈이에요. 제가 기독교인이라 NGO라는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거든요.

모두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살랑 흔든다.

꼭 그렇게 멋진 삶을 살아가길 바랄게요! 마음이의 코멘트이다.

자 휴식하고 저녁 먹자.

우리는 그렇게 첫째 날을 훈훈하게 보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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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가 끝나고 침묵의 시간이 10여분이 너머 갈 때 쯤 샘물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윤 교수는 좌정한 자세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집단원들도 토끼처럼 긴장한 눈으로 조용히 샘물의 입 땜을 반기는 눈으로 주시한다.

나는 내 안에 불안한 생각들이 많다는 것을 느껴요. 늘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불안 할 때가 많아요.

갑자기 얼굴이 먹구름 상이 되며 고개를 숙인다.

용암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물어본다.

어떤 불안이 괴롭히나요?

좀 어설픈 질문 같았다는 자책에 용암의 자세는 말을 하고나서 몸을 자신도 모르게 움츠린다.

그것은 아마 의문이 많은 학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쪼그라드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집단에서는 서로 존대를 하기로 윤 교수의 말에 동의를 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아빠와 심하게 싸우시고, 어느 날 집을 나가셨어요.

그 때부터 나는 동생과 밤만 되면 엄마가 언제 오시나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빠는 어느 날 새 엄마를 데리고 와 우리들에게 인사를 시켜 주시면서 이제부턴 너희들 엄마는 이 사람이다 하셨어요. 그런데 그 때부터 새 엄마는 우리들에게 혼만 내시며 구박이 심했어요. 학교 갔다 오면 집안 청소며 빨래며 일을 안 하면 욕을 하면서 때리기까지 했어요. 특히 우리 여 동생이 학대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 남매는 밤만 되면 우리 방에서 창문사이로 맑게 떠있는 달을 바라보며 엄마 언제 와! 우는 날이 많았어요. 지금은 나와 동생이 커서 새 엄마가 못 그러지만 고등학교까지의 생활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엄습할 때가 많아요. 아직까지도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엄마도 너무 보고 싶고 원망하는 마음도 많아요.

샘물은 말하는 내내 눈에서 눈물을 훔쳐낸다.

한참을 경청하고 있는 집단원들도 눈물을 훔쳐낸다.

윤 교수인 마음이 말을 건넨다. 샘물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어요.

마음이 말을 떼자 샘물이 갑자기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한다.

그 울음은 아마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뒤범벅된 것이라...

잠시 분위기가 정적으로 흐른다.

샘물이 울음을 그치고 휴지로 소리 없이 코를 훔치자 가시가 입을 뗀다.

나 같으면 가출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샘물은 그런 것도 생각 안 해 봤나 봐요?

갓 멈춘 울음의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한다.

생각해봤죠. 그런데 내가 가출하면 동생이 새 엄마한테 너무 구박을 당할 것 같아 생각을 접었죠.

그럼 아빠한테 말을 해보지 그랬어요? 라고 시궁창이 말을 한다.

아빠한테 말을 했죠! 그러면 아빠는 너희가 더 잘해야 새 엄마가 너희를 예뻐한다며 그냥 우리들을 다독여 주시기만 하셨어요. 그때 당시는 아빠도 새엄마 치마폭에 싸여서 새엄마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으시며 따라 주셨거든요. 그리고 아빠 계실 때는 우리에게 잘 하는 척을 많이 했어요.

집단원들이 모두 긴 한 숨을 내 쉰다.

마음이 샘물에게 말을 한다.

지금 샘물의 마음이 어떤가요?

저도 모르게 내 안에 숨어있었던 것들이 밖으로 튀어 나와 버렸네요. 좀 후련한 것도 같고 저도 모르는 분노가 순간 가슴에서 올라오는 것 같아요. 지금 새 엄마가 내 앞에 있으면 내가 당한 것만큼 욕을 퍼부으며 마구 때려주고 싶어요.

샘물의 눈에 혈기가 비친다.

~ 그럼 그 감정 그대로 지금-여기서 표현해 볼래요?

저기 베개하나 이리주지.

이 베게가 새엄마라 생각하고 그 감정 그대로 한번 표현해 볼래요?

샘물은 앞으로 조금 나와 베게와 종이로 만든 두둑한 몽둥이를 손에 집어 들었다.

갑자기 몽둥이로 베개를 몇 번 내리친다.

눈이 벌게지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왜 우리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어. 우리가 당신에게 나쁘게 한 것도 없는데.. 버럭버럭 소리를 치며 몽둥이를 세차게 연신 내리친다.

샘물의 분노는 엄청나게 깊은 것 같다.

이 나쁜 년 하며 갑자기 욕이 나오더니 몽둥이를 베게에다 다시 있는 힘껏 수차례 내리친다.

샘물의 울부짖음이 아침 공기와 함께 방 밖으로까지 울려 퍼져 나가는 것이다.

모두 샘물의 거침없는 행동에 안타깝고 또 놀라는 표정들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지금 어떤 마음이 느껴지나요?

마음이 천천히 묻는다.

큰 숨을 들이마시며 여태까지 속에 있던 무거운 돌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시원한 것 같아요!  휴지로 얼굴을 훔쳐낸다.

그러며 정신이 낫다는 듯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샘물은 주위를 둘러본다.

오늘 첫 시간부터 제가 갑자기 무거운 이야길 한 것 같아요.

닉네임을 정하는데 불현듯 어릴 때 생각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흥분을 했네요.

아니 오늘 첫 시간부터 난 너무 샘물이 고마워요?

드러내기 힘든 감정이었을 텐데 솔직하게 그대로 드러내 줘서 난 고마웠어요.

마음이가 다독인다.

모두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있다 용암이 말을 꺼낸다.

나는 화가 많은 것 같아요. 샘물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자꾸 반문하면서 아마 집을 나왔거나 새 엄마와 싸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듣는 내내 온 몸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가슴에서 불이 올라오는 것 같았어요.

용암의 눈이 둥그레지며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쥔다.

마음이 그런 모습을 감지하며 말을 건넨다.

용암이 지금 느끼는 그 불은 어떤 것인지 말해 줄래요?

용암은 말을 잇는다.

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그래서 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것이 불안했어요. 아버지는 건축하시는 분이었어요. 일이 없으실 때는 아침부터 집에서 술을 드셨지요. 그러면 하루 종일 소주병을 옆에다 갖다 놓고 마시셨어요. 술을 마시면 평소에는 말이 전혀 없으시던 분이 엄마와 우리 3남매를 불러 앉혀 놓고는 입에 담기조차 불쾌한 욕과 폭언을 일삼으셨어요. 그러면서 소주 10병째를 돌파할 때쯤 엄마에게 구타와 욕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옷을 벗으라고 버럭 소리로 위협을 하고 발가벗긴 우리를 방 밖으로 내쫓으며 욕을 하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엄마와 우리는 공포에 떨어야 했어요. 그러면 엄마는 눈물로 우리들을 챙기시며 옷을 입혀 이웃집으로 피난을 보내셨어요. 그러고 엄마는 그날은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구타와 모욕을 당하는 날이었지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런 아빠가 너무 원망스럽고 싫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죽일려고 그날도 엄마와 우리에게 폭언과 구타가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분에 못 이겨 아버지가 일을 다 치르고 조용히 잠들었어요. 그때가 새벽 쯤이었나 봐요.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가지고 아버지가 누워 정신없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에게 내리 치려고 할 때였어요.

그때 잠시 눈을 붙이고 계셨던 엄마가 놀라며 울음으로 말리시는 바람에 저는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그러고도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아버지의 그 행태는 계속 되었지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결국 알코올 중독에 위암과 합병증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행이 아버지가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있어서 그 돈으로 엄마는 장사를 시작하시게 되셨어요. 그 덕에 우리 형제들은 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지금도 주위에서 술을 먹고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와요. 나는 아버지가 없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용암은 동공이 커지며 얼굴이 불그락 거렸고 두 손을 계속 불끈 쥐고 있었다.

지금 어떤 마음이 느껴지나요?

마음이 물어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용암이 마음의 눈을 보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 고인 눈으로 입을 뗀다.

답답해요. 말을 하면 좀 시원할 줄 알았는데 가슴을 쥐면서 답답해요’.

눈물이 눈가를 지나 얼굴 밑으로 떨어진다.

아버지를 한번 만나 볼래요.

마음이 용암을 앞으로 끌어 앉힌다.

마음이도 용암이 앞에 면대면 으로 앉는다.

용암이보고 말을 한다.

내가 용암이 아버지니 아버지에게 용암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볼래요?

용암이 순간 아버지를 쳐다보며 눈에서 한없는 눈물이 쏟아 흘러내린다.

아버지 왜 그랬어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먹었어요. 아버지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알아! 한없는 눈물과 콧물이 앞을 가린다.

마음이 어깨를 좀 수그리며 용암의 손을 가만히 잡아준다.

그거 알아 내가 아빠를 죽이려 했다는, 거라며 펑펑 운다.

아빠가 나 어릴 때 어린이 대공원에 데려가서 목마 태워주며 놀아주던 아버지를 내가 기억하는데!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난 아빠가 좋았는데 왜 왜 그렇게 술을 먹고 빨리 죽었냐 말이야.

울부짖음의 목청이 한 마리 길 잃은 어린 늑대처럼 엉엉댄다.

모두 숨을 죽이며 소리 없는 눈물을 훔쳐내는데 휴지가 꽤 고생을 한다.

마음인 그렇게 용암의 손을 어루만져 주면서 침묵의 시간이 꽤 흘러 제자리에 모두 정승처럼 소리 없이 앉아 있다.

정적을 깨고 새가 얘기를 한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휴지로 눈가를 훔친다.

용암! 아버지를 만나보니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마음이 묻는다.

나도 몰랐던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도 있었구나. 새삼 놀랬어요. 저는 그저 아버지를 생각하면 알코올 중독자로 우리 가족을 괴롭혔던 기억만 생각했었는데 아빠가 저 어렸을 때는 목마도 태워주고 대공원에도 데리고 간 기억들이 뇌리를 스치면서 아빠가 나에게 이렇게도 해 주셨구나! 느꼈어요. 또 아빠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요. 또 운다.

마음이 용암에게 말을 한다.

오늘 아빠의 다른 면을 만나 본거네요?

말없이 용암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이렇게 자기 가족은 아무리 나쁜 기억만 가지고 증오하며 살아간다 해도 조금만 더 생각을 한다면 어딘가 좋은 기억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강도가 얼마인가의 차이겠지요. 용암은 상대가 아버지니까 증오와 미움이 더 컷을 거여요.

오늘 용암이 아버지와의 만남은 우리에게도 좋은 배움의 장이 됐다고 봐요. 윤 교수는 약간의 코멘트를 한다.

 

! 10분 휴식.

이야기가 떨어지자 예라며 거의 방을 빠져 나간다.

하늘이 참 맑고 공기도 시원하다.

아이들은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편다. 그러나 어느 한사람도 말을 섞는 사람은 없다.

그저 먼 하늘과 산만을 바라보며 공기를 들이 마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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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학교는 한적하다.

월요일이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우리는 내일인 토요일부터 집단상담을 하기로 결정했다.

시중은 집단상담 때문에 학과 동아리 사무실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창수, 성식, 경희, 정우 그리고 집단에서 같이 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다 모여 한명씩 소개와 인사를 나눈다.

영희, 상명, 인주, 효선, 유진이가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우리 기존 친구들도 돌아가며 소개를 한다. 그렇게 우린 통성명을 하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집단상담 장소와 시간에 대해 시중은 이야기를 한다.

자 내일부터 3일간 있을 윤 교수님과의 집단상담 장소는 윤 교수님 자택에서 하게 됐어.

그리고 시간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야. 윤 교수님 댁은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 근처 개량 한옥 주택이시래. 또 교수님이 우리 모두 교수님 댁에서 3일간 숙박을 하라고 말씀하셨어.

시중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애들은 와 소리를 질러댄다.

우리는 학교에 들어와 윤 교수님 댁을 처음 가보는 거고 서울이 아닌 산정호수 근처라 하여 더욱 마음이 들뜬다. 마치 초등학교 때 아무 생각 없이 소풍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즐거워했던 동심의 세계라 할까?

우리는 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유진이가 이야기를 했다.

저기 우리 집에 12인승 스타렉스가 있는데 그거 타고 가면 될 것 같은데?

그럼 운전은 누가하지? 정우가 말을 했다.

유진이가 운전도 내가 할게! 웃는다.

오우! 유진 멋있는데!

혹시 너네 부르주아 아냐! 성식이 깔깔 웃어댄다.

얘들도 같이 웃어댄다.

유진이도 뭐~ 눈을 올렸다 내리며 같이 웃는다.

그래 그럼 내일 아침 7시까지 종각역에서 모이기로하자.

시중이 말을 한다.

아이들이 그래 좋아! 

동아리 사무실에서 나와 우리 10명은 어김없이 촌뜨기 집에 들러 모처럼 10명이란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 군대에 막 입대를 남겨 둔 새파란 훈련병들처럼 내일부터 있을 집단상담에 대한 이야기와 각오를 나누며 새벽 1시나 돼서야 우리는 헤어졌다.

 

그 다음 날 우리는 종각에서 만나 유진이의 차에 모두 몸을 싫어 교수님 댁으로 향한다.

우리는 교수님 댁에 다 와갈 때 쯤 시중이 전화를 했다.

교수님 저희 한 2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교수님의 목소리는 강의 할 때 목소리보다도 맑게 들린다.

, 그럼 내가 나가 있지 라는 교수님의 말과 함께 나는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유진이의 차에 실려 교수님 집 대문 앞에 정차를 했다.

교수님은 아침인데도 단정한 차림으로 우리를 맞아 주신다.

그래 어서들 와. 다들 이른 아침부터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창수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교수님 댁을 보며 와~ 교수님 죽입니다요. 탄성을 지른다.

아이들 모두도 주변을 둘러보며 시골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아침 공기의 고적함을 가슴 속 깊이 들이마시며 손을 벌려 기지개를 한없이 펴댄다.

'자 들어가자'

우리를 개량 한옥 대문을 지나 대청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인도 하신다.

 

우리는 대문에서 처음 대하는 사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교수님은 차를 들고 들어오시는 사모님에게서 찻상을 받으며 어서 한 잔씩 마시지라며 우리에게 3일간 있을 집단에 대해서 주의 사항을 일러 주신다.

자 오늘부터 3일간 집단을 할 터인데 이 기간 동안은 서로가 대화하는 것을 가급적 삼가하고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또 내가 이따 집단 할 때 말하겠지만 3일 동안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비밀 보장의 원칙에 의하여 여기서 알고 여기서 끝내길 바란다.

너희들은 앞으로 각자의 상담인 으로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오늘 나와 같이 하는 집단상담 뿐 아니라 다른 집단 리더들에게 받아 보길 원한다. 또 개인상담도 될 수 있으면 많이 받아보길 바란다.

네 교수님!

자 그럼 여자들 방과 남자들 방을 지정해 놨으니 가서 짐 풀고 10분 후에 사랑채로 모이기로 하자. 아침은 모두 먹고 왔지?

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사랑채로 모였다.

사랑채는 안방 바로 건너 방으로 방은 넓고 깨끗한 벽지와 단아한 찻상이 놓여 있었다.

교수님은 찻상을 밖으로 내보내며 사모님께 이것 좀 치워줘요문을 닫는다.

우리는 방석을 깔고 빙 둘러 앉았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페이퍼 한 장씩을 돌리신다.

자 이것은 여기에서 있는 일들은 여기에서 끝낸다는 비밀보장의 서약서이다. 모두 읽어보고 밑에 이름 쓰고 싸인 해서 주기 바란다.

이 중에 집단 처음인 사람 있나?

영희와 인주가 손을 들었다.

그래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우리 과 학생들이니까 처음이라도 이론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자기를 알릴 수 있는 닉네임 하나씩 만들도록 하고 그 이름에 대한 각자 간단한 소개를 하면서 시작하기로 하자.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서로가 눈치를 보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경희가 처음 입을 뗀다.

'제가 먼저 할게요'  말을 한다. 나는 화초라고 해요.

화초는 어디서든 생명력이 강해 꿋꿋이 살아남는다는 뜻에서 화초로 했어요. 화초는 말을 맺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유진이가 또 입을 뗀다. 나는 지평선이라고 해요.

끝없는 파란 바다에 지평선을 따라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붙여 봤어요.

성식이가 말을 한다. 나는 샘물이라고 해요.

언제나 내 안에서 맑게 솟아나는 깨끗한 물이 되고 싶어요.

영희가 말을 받아 나는 새라고 해요.

새처럼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에서 새라고 해요.

창수가 나는 용암이라고 해요.

내 안에 끌어 오르는 모든 것을 재거하고 싶어서요.

효선이가 입을 뗀다. 나는 가시라고 해요.

내 안에 가시를 뽑아 버렸으면 좋겠어서 지어봤어요.

인주가 말을 받는다. 나는 시궁창이라고 해요.

내가 너무 깨끗지 못한 것 같아서요.

상명이도 이어 말을 받는다. 나는 벌레라고 해요.

내 안에 벌레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정우도 말을 받는다. 나는 숲이라고 붙여 봤어요.

아름다운 숲에 있고 싶어서요.

마지막으로 시중이 친구들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한다.

나는 부랑아라고 해요.

나란 존재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부자연스러워 보이거든요. 그래서 세상과 불일치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에서 부랑아라고 붙여 봤어요.

우리의 소개가 다 끝나고 윤 교수가 말을 한다.

그럼 내 소개를 해야겠군. 나는 마음이라고 불러요.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어서요.

이렇게 우리 모두는 첫 집단 안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풀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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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 내일이 주일인데 집으로 가지 않는다.

고속버스를 타고 2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시인이신 정남수 선생님을 만나러 몸을 실었다.

정 선생님은 1년 전 수덕사 근처로 낙향하여 사모님과 함께 조용히 글을 쓰시면서 대학교에 가끔씩 나가 강의도 하시면서 지내고 계신다. 안면도에서 선생님께 미리 전화도 안하고 가는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대학 입학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인사동 근처에 있는 계간 잡지사에서 시 창작 교실 과정을 개설했을 때 처음 뵈었던 분이고 나에게 시를 가르쳐 주신 은사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내가 시를 써 가면 혹독하면서도 부드럽게 평을 해주시곤 했다. 지금도 시를 쓰면 선생님께 메일로 평을 받곤 한다.

선생님 댁에 가는 길이 초겨울 길가라 고목들에 붙어있는 가지들이 속살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시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야말로 길 가는 나무들의 옷과 잎들이 알록달록 여기저기 널브러져 발을 딛는 곳마다 반갑다고 놀아보자고 아삭 스으 아삭 스으 소리를 내며 나를 반기며 혼의 노래에 조용히 초대를 한다.

잠간 나는 발에 밟히는 소리에 이끌리어 눈을 살며시 감아본다. 느낌이 온다. 소리 없이 가는 바람과 발에 푹 들어 밟히는 마른 낙엽들이 귓전을 간질거린다.

난 네가 좋은데 여기서 나와 놀자며 가슴을 아주 부드럽게 쓰윽 민다. 그러더니 마음 깊이 다가와 나의 오감을 아주 정말 부드럽게 미는 것이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시중은 선생님 댁을 20분 쯤 남겨두고 전화를 한다.

선생님 안녕하셔요. 저 시중입니다.

그래 시중 오랜만이야.

선생님의 반갑다는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내 귓전에 구수하게 전해진다.

선생님 저 선생님 댁에 다 와갑니다. 한 이십여 분만 가면 도착합니다! 라고 하며 웃었다.

핸드폰 사이로 좀 당황한 목소리로 어 우리 집?

네 선생님 갑자기 찾아오죠?

선생은 말을 추스리며 아니야 언능 오기나해, 반갑다는 감응의 뉘앙스가 폰을 타고 나의 귓전에 전해진다.

네 선생님 금방 뵈요.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 집은 전통한옥이라 마당이 넓고 마루가 크고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있어 거기서 두레박으로 우물을 퍼 올려 먹는 맛이 일품이다.

시중은 삐거덕 소리가 나는 큰 나무대문을 열면서 선생님하며 소리친다.

선생님은 햇볕이 넓은 마루를 가득 메운 자리에서 일어나 어! 시중 어서와, 나에게로 다가오시더니 손을 잡으며 덥석 안아주신다.

시중 여기 앉아. 방석을 주시며 그래 갑자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 어제 저녁에 혼자 안면도 왔다가 집에 가려다 문득 선생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이 생각나 그냥 버스타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 발길을 옮겼어요! 시중은 웃는다.

~ 잘 왔어. 그래 뭔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휘 집어 놀 땐 무작정 떠나는 게 최고지.

선생님은 나의 마음을 아시는 것처럼 내 마음을 다독여 주신다.

시중 여기 왔으니 우리 점심 먹고 수덕사 구경이나 가볼까?

시중은 반가운 듯 네 선생님 저야 좋지요.

선생님과 시중은 간단한 점심을 먹고 수덕사로 향한다.

선생님과 나는 길가에 지천으로 널브러져 있는 낙엽과 혼을 공유하며 수덕사 가는 길목 길목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선생님은 가시는 내내 말씀이 없으셨다.

그냥 하얀 고무신에 닫는 사아악 사아악 낙엽 소리에 발걸음만 천천히 뒷짐을 지시고 평화로이 수덕사 입구로 향하고 계신다.

시중도 선생님의 침묵에 어울려 뒤뚱거리며 따라 갈 뿐이다.

시중은 태어나 수덕사를 처음 와 본다.

수덕사 입구에 도착해 입구를 좀 지나 걸어가는 옆에 수덕사의 유래를 알리는 아담한 나무 알림판에 까만 글씨로 자욱하게 쓰여 있었다.

난 선생님의 침묵을 깨고 싶어 선생님 하고 말을 걸었다.

저는 여기 처음인데 수덕사의 유래가 여기 적혀있네요, 선생님!

그래! 시중 난 몇 번 오며 읽어 봤는데 한번 읽어보지!

선생님과 난 그 푯말 앞에 서서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고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 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나는 다 읽고 선생님에게 웃으며 결국은 사랑이야기네요, 말을 했다.

옆에서 내 말을 받아 선생님도 훗흐 웃으시면서 그렇지, 얼굴에 정적이 없어지시며 부드러운 톤으로 말씀하신다.

시중은 수덕사 안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이곳이 이렇게 큰 절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하긴 천년이 넘는 고찰이라니 안 웅장할 수가 없겠지. 수덕사를 중심으로 빙 둘러있는 산속의 단풍들이 너무 웅장하고 멋스럽다.

~ 선생님 너무 좋아요! 감탄사를 연발 터트린다.

선생님께서 왜 여길 택하셔서 이사 오셨는지 알 것 같았다. 조용하고 웅장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수덕사이다. 사시사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해 줄 것 같은 이 수덕사의 말없는 아름다움을 선생님은 생각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은 수덕사 안에 있는 여관이란 푯말이 세워져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기신다. 그러시더니 여관 툇마루에 앉으신다.

시중! 여기 경치가 정말 좋지? 내가 여기로 이사 온 것이 이 수덕사의 고요함과 고적함 때문인지도 몰라.

. 선생님 저도 여길 들어오면서 선생님께서 여기로 오신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일어나 조금 걸으니 우물이 보였다. 선생님은 이내 옆에 있는 자그마한 쪽박을 집어 물을 담으셨다.

자 시중 여기 물이 얼마나 달고 시원한지 마셔 보게. 하시며 나에게 건네주신다.

네하며 주시는 물을 받아 마시니 진짜로 너무 물맛이 시원하고 달다.

~ 선생님 이런 물맛을 서울에서는 생각도 못할 거예요! 시중은 하하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물을 마시며 조용한 산사 안으로 또 걸어 들어갔다.

선생님은 조금 더 걸으시더니 통나무 의자와 탁자가 보이는 곳에 머무르셨다.

자 시중 우리 여기 좀 앉자 하시며 초겨울 수덕사를 둘러싸고 있는 나뭇잎들이 얼마 남지 않은 수목들을 배경삼아 앉으신다. 시중도 나란히 선생님 옆에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낙엽을 밟으며 맑은 하늘에 멍게 구름들이 뭉게뭉게 흩어져 흘러가는 하늘을 보며 약간의 침묵의 시간을 흘러 보낸다.

선생님이 말을 꺼내신다.

그래 시중은 요새 무슨 생각들을 하며 지내지?

선생님의 말씀은 나를 말없이 건드리시는 것 같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감지하시는 것 아닌가! 그것은 세상을 많이 살았다 고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리라. 그 만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리하다는 것일 것이다. 평생 시를 쓰시며 많은 사람들을 접하신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선생님만의 시각일 것이다.

! 선생님 요새 제가 생각이 좀 복잡해요. 이번 겨울이 지나면 3학년인데 뚜렷이 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요샌 그래서 잡생각이 많아 글도 잘 안 써지고 그래요.

제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되고 너무 복잡해요 선생님!

시중은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듯 말을 한다.

선생님은 허허 웃으신다.

시중 너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닌가? 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으신다.

시중은 겸연쩍듯 뒷머리를 손으로 쓰윽 내리 밀면서 선생님과 말없이 걸으며 수덕사 여기저기를 구경한다. 선생님과 걷다보니 꽤 많이 수덕사를 끼고 등산 코스가 있는 곳까지 걸은 것 같다.

선생님은 자 이제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하며 얘기 좀 할까? 선생님의 말씀이 반가웠다.

선생님도 나와 같이 막걸리를 좋아 하신다. 우리는 수덕사를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들어서니 사모님이 밖에서 들어오셨는지 나를 반갑게 반기신다.

어이구! 시중 학생 언제 왔어라 며 내 손을 잡으신다. 사모님도 나를 자식같이 챙기신다.

내가 서울 사실 때 집에 가면 나 먼저 챙겨주셨던 엄마 같은 분이시다.

선생님께서 사모님에게 말을 건네신다.

이봐요! 저번에 막걸리 담아 논거 있지요?

오늘 시중과 한잔 할 건데 좀 챙겨 주세요. 맛난 부치미도 좀 부쳐주시고. 허허 웃으신다.

사모님은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여부가 있겠어요. 좀만 기둘 리세요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시며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선생님은 마루에서 방석을 두 장 짚으시더니 자 여기 안자라며 방석 한 장을 주신다.

우리는 해가 저물녘 마루 아래로 사라지는 볕을 깔고 앉으며 선생님이 말을 꺼내신다.

그래 시중 내일 갈 거지? 여기 오늘 나와 얘기하려고 왔으니 맘 놓고 술 먹으며 놀아보자!

시중은 너무 좋았고 기뻤다. 선생님의 호탕하시면서도 자상하신 성격에 시중은 시 배울 때부터 끌렸다.

네 선생님 저야 너무 영광이지요! 웃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난 자네 웃는 모습이 너무 맘에 들어’  허허하신다.

다들 그렇게 말해요 선생님 나도 따라 웃었다.

시중의 꾸밈없고 솔직한 성격이 들어난다.

그래 아까 잡생각이 많다고 했는데 무슨 잡생각인지 이야길 한번 풀어보지’  나를 바라보시며 지긋이 눈가에 주름이 접히신다.

그 사이에 사모님이 양은 주전자에다 막걸리와 노란 양은 막걸리 잔을 갖다 놓으시며 부엌으로 돌아가신다.

나는 선생님에게 막걸리 한잔을 받아 선생님의 건배 제의에 간단한 목례로 건배를 하며 한잔을 목구멍 깊숙이 시원하게 쭉 밀어 넣었다.

~ 선생님 막걸리 맛이 정말 환상 죽입니다요.

그렇지?

아내가 담근 지 6개월이 넘은 건데 맛이 좋아.

그럼 이 막걸리를 사모님께서 직접 담그셨다는 거네요?

선생님은 허허하시며 그래 사먹는 것보다 맛나지라며 말씀하신다.

나도 웃으며 네 선생님.

나중에 저도 이런데서 살 거예요.

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면서 그래 시중도 이다음에 이런 시골에 와서 살어.

내가 살아보니 조용하고 공기 좋고 아주 좋아.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시중은 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리 듯 말을 풀어놓는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술이 좀 목 넘김을 할 때 바람에 부딪치듯 시중은 자기 속엣 것을 밖으로 들어 내놓는다.

자꾸 생각이 많아져요’  시중은 막걸리를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켰다.

선생님 저 여자 친구 생겼어요, 양 눈썹이 올라감을 느끼며 웃는다.

선생님은 그래! 축하할 일이군 하시며 선생님도 막걸리를 들이키신다.

그런데 제가 몸이 이래서 그 애를 만나는 것이 조심스럽고 좋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져요.

사모님은 부치미를 먹기 좋게 잘라 큰 접시에 담아 도토리묵과 함께 상에 밀어 넣으시며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신다.

시중 자네가 몸이 불편해서 자신이 없다는 것인가? 선생님은 직설법으로 물으신다.

네 그런 것도 있고요. 내년에 그 애가 우리 학교에 들어와 저와 같은 과로 입학하여 같이 다니자고 하는데 저는 너무 좋으면서 제가 장애인이라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요.

,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상담을 전공하고 있는데 제가 장애인이라 저는 지금부터 상담 실습을 해야 하는데 저를 실습하라고 받아주는데도 없는 것 같고 해서 속상해요.

친구들은 다 여기저기 찾아 실습을 하고 있는데 저만 이렇게 있어요.

어느새 주전자에 막걸리가 바닥을 드러낸다.

사모님께서 주전자를 확인하며 다시 갖다 놓고 가신다.

선생님은 말없이 막걸리를 마시고 계시더니 나에게 말을 건네신다.

생각이 진짜 복잡하겠구나! 그래서 시중 결론이 있나?

아니요 선생님! 제가 결론이 있으면 이렇게 방황하겠어요?

선생님은 막걸리 한잔을 또 들이키시더니 말씀을 하신다.

시중 세상살이란 자네가 얘기한데로 결론이 없는 거야.

많은 이들이 자기 인생의 결론을 보려 찾아 헤매지만 결국엔 결론을 내리지 못하며 죽는 게 인생이지. 자네가 지금 자네의 불편한 몸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온전하게 만들어 보려는 것.

게다가 여자 친구가 생겨서 그 여자에게 잘 보이려 하는 마음. 그리고 자네의 진로를 걱정하고 있는 거 같은데 자네가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들은 이 시간이 지나가면 과거가 된다는 것 아나? 자네에겐 지금 이시간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거야.

난 자네를 참 의지가 강하고 인간으로서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매사에 열정이 있어 보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 나에게 시를 배우러 왔을 때 난 자네의 적극적인 열정을 봤지. 수강생들 중에 장애인이라고는 자네 혼자였으면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임하는 것을 보고 난 조금 의아 했었어. 몸에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그 열정이 순수했고 기특했단 말이야. 또 요새 젊은 친구들에게서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을 느꼈지. 선생님은 시중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시중은 막걸리 기운이 몸을 좀 감싸는 기분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말을 하며 고개를 꾸뻑인다.

그러는 시중을 보며 선생님은 한 마디 더 말씀하신다.

시중아 내가 다시 말하지만 자넨 너무 훌륭하게 살고 있는 것만 생각하면 돼.

또 자넨 신앙의 힘도 있다고 늘 말하잖아! 자네 자신을 자네가 스스로 사랑하며 살아가면 되는 거야?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어.

마음에 물욕이 없으면 이는 곧 가을 하늘이나 잔잔한 바다요.

옆에 거문고와 책이 있으면 이는 곧 신선이 사는 곳이로다.’

이 말은 마음에 욕심이 없으면 근심과 괴로움이 자기 안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야.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곳이 극락이라는 것이야.

이 말처럼 너무 자네의 신체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아가면 그것이 극락이고 행복이라는 것이야. 또 자네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다고 난 생각해.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시중은 조금 도는 술기운에 웃으며 선생님을 바라보며 대답을 한다.

네 선생님 명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오늘 집으로 가지 않고 선생님을 만나러 온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중은 취기가 거나해 앞에 계신 선생님을 바라보며 목례를 한다.

그날 그렇게 시중은 자기 인생에 있어 존경하는 분 중의 한분의 멘토 이신 정남수선생님과 평상에 앉아 초겨울의 저녁노을이 저물어 가고 있음을 즐기고 있었다.

그 다음날 시중은 선생님과 사모님의 따스한 아침 밥상을 받으며 인사를 드리고 서울 행 버스에 몸을 싫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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