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리는 윤 교수를 중심으로 방에 둘러앉았다.

방에는 어김없이 침묵이 흐른다.

한참 침묵의 시간이 지나갈 때 쯤 시궁창의 얼굴이 굳어지며 말을 꺼낸다.

작정했다는 듯 눈에 힘을 주며 말을 한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요. 그래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갑자기 눈에서 닭 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며 말을 잇지 못한다.

마음이 물어본다.

시궁창이란 이름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는데 왜 죽어버리고 싶은지 말해 줄래요?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며 흐느낀다.

시궁창이 거친 숨을 내쉬며 스스로 진정을 해가며 서서히 말을 잇는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오빠는 나만 보면 만지기 좋아했고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내 옷을 벗기고 성행위를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반항했지만 오빠는 막무가내로 내 몸을 더듬으며 나를 못살게 했어요. 오빠와 난 3살차 이에요. 오빠는 부모님이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입양했어요. 엄마가 저를 낳고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허전해 하셨데요. 그래서 아빠는 엄마와 상의해 사내아이를 키워 보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으로 오빠를 데리고 왔데요. 오빠는 키도 크고 잘 생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를 쓰다듬어 주더니 내 가슴을 아무도 모르게 만지는 거예요. 나는 그때 너무 이상해했지만 오빠니까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그 이후에도 가끔 둘만 있을 때 그런 행동을 반복하더니 거기까지 만지기 시작했어요.

말을 하며 펑펑 울어댄다.

시궁창의 말에 다들 놀라며 눈들이 뚱그레진다.

마음이도 말을 잇지 못하고 그냥 좌정한 자세로 시궁창을 바라보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화초가 말을 건넨다.

근데 왜 시궁창이란 표현을 쓰죠?

시궁창이 눈물을 훔치며 힘들게 말을 잇는다.

그런 오빠의 행동에 난 어느 날부터 그냥 내 몸을 함부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오빠뿐만이 아니라 누가 내 몸을 원하면 서슴없이 내 몸을 던졌어요.

다들 놀라는 눈들이다.

방 안의 공기가 너무 무거워 누구하나 말을 잇는 사람이 없다.

마음이 침묵을 깨며 말을 건넨다.

지금은 어떤가요?

대학에 들어와 개인 상담을 받고 있어요.

눈물이 얼굴을 타고 쏟아지며 너무 창피해요흐느낀다.

마음이 말을 건넨다.

난 시궁창이 참 용기 있는 따뜻한 사람 같아요. 그래도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며 고쳐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진짜 하기 힘든 자기만의 이야기인데 드러내어 치유해 보아야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느껴져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새가 말을 한다.

오빠가 너무 미울 것 같아요. 오빠는 지금 같이 사나요?

아니요.

대학교 3학년 때 독립해서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오빠가 전화해서 놀러 오라고 하는데 안가요.

난 그 오빠라는 사람에게 욕을 해주고 싶어요. 이 배은망덕한 새끼 야라고요.

새가 큰 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주위에서 맞아라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터져 나온다.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래. 갑자기 뜬금없이 부랑아가 얘기를 해 순간 방안의 공기가 피식대며 웃음으로 넘어간다.

창피해하지 말아요. 그것은 시궁창 잘못이 아니잖아요.

숲이 말을 한다.

그리고 시궁창이 아까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시궁창은 너무 순수하고 여린 사람 같아 보여요.

역시 상담을 배우는 학생들이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 주고 경청하며 공감해 주며 지지해주는 자세가 돼 있는 우리다. 남의 말을 비웃거나 조롱하지 않고 감싸주는 이 분위기는 상담에서만 가능하리라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사모님께서 벌써 점심상을 안방에다 널따랗게 차려 놓고 계신다. 여자 아이들은 부엌으로 들어가 사모님을 도와 밥상을 마무리한다. 우리 모두는 안방에 차려놓은 밥상에 둘러앉아 조용하게 밥을 먹는다. 사모님이 먹고 더 먹으라며 큰 대접에다 숭늉을 가지고 방에 앉으신다.

유진이가 사모님도 같이 드시죠! 말을 한다.

그때서야 모두 사모님을 바라보며 같이 드세요! 한마디씩 한다.

사모님은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으라고 우리에게 손사래를 치시며 방을 나가신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이 많이 스쳐 지나가는 점심을 먹고 다시 집단을 하기 위해 사랑채로 건너갔다.

 

방안의 공기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이 둘러 감싼다. 밖에서는 가끔씩 짹짹 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과히 나쁘지 않다.

 

 

숲이 입을 뗀다.

저는 집단이 두 번째인데 저한테는 큰 충격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교수님께 이론 강의만 듣다 시피하고 이렇게 교수님과 함께 직접 해보니 좋기도 하고 나름 아~ 내가 모르는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많이 생각하게끔 하네요.

그러고 숲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있다가 계속 이야기를 한다.

저는 숲인데 제 이야기는 별로 할 게 없는 것 같아요.

숲은 말을 하다 순간 또 침묵을 한다.

저는 진짜 큰 숲이 되어서 모든 힘든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싶거든요.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고3 방학 때였어요.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갔었어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아파서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리고 나는 참 행복하고 감사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상담을 전공하게 되었고요. 나중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며 살아가기 원하고 있어요. 여기 모인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아무 사건 없이 살아 온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네요.

숲은 말을 마무리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분위기를 살핀다.

마음이 숲에게 묻는다.

지금 느낌이 어떤가요?

내가 괜히 이야기를 했나 싶어 조금 당황스러워요.

방안에 적막이 흐른다.

마음이가 숲에게 말한다.

난 숲이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다 똑같을 수 없으니까요. 또 숲이 얼마나 따듯한 사람인지 난 느껴져요.

그때서야 숲의 경직돼있던 얼굴이 풀어진다.

그때 벌레가 말을 잇는다.

저도 숲이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라고 느껴지네요.

 

벌레가 말을 한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특히 혼자 있으면 더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있으면 갑자기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사는 것이 재미없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 한 밤에 주방에 들어가 칼을 엄마 몰래 방안으로 들고 들어와 칼을 앞에 놓고 칼하고 대화를 하곤 하는 시간들이 꽤 있었어요. 그리고 약국에서 수면제를 수차례 걸쳐 많이 모아놓곤 했지요. 또 내 자신이 너무 더럽다 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혼자 자위하는 것을 즐겼거든요.

자위를 하고나면 누가 나에게 욕을 하는 것 같은 음성이 들리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렬하게 들었거든요. 그럴 때면 저 혼자 어쩔 줄 몰라 울기도하고 대굴대굴 굴러보기도 하다 주방에 가서 칼을 가져와서 칼을 휘두르며 어떻게 찌르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곤 했어요.

조용히 듣고 있던 마음이가 벌레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며 묻는다.

요새는 어떤 마음으로 지내나요?

벌레는 흥분한 몸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키며 요새는 그런 증상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학교에 입학하면서 개인 상담을 1년 이상 받고 있거든요.

언제 눈가에 눈물이 맺혔는지 눈가가 눈물로 촉촉이 맺혀져 있다.

그래도 상담을 받을 생각을 했네요?

마음이의 말을 벌레가 받는다.

제가 상담학과를 택한 것도 이렇게 살 봐 에야 다른 과는 눈에 안 들어왔고 상담이나 배워보자 하고 지원했거든요. 왜냐하면 대학도 포기하려고 했거든요. 그리고 입학하고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먼저 자신의 문제로 괴롭고 고민이 많은 사람은 개인상담을 신청해서 받아 보라는 말씀이 있어서 저는 얼른 신청하여 지금까지 받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는 중이에요. 또 제가 상담학과에 잘 들어왔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벌레의 말에 잠시 방안의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윽고 주위의 적막 속에 새가 말을 뗀다.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네요.

그래도 벌레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애를 쓴 것 같아 대단해 보여요.

모두 벌레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새가 이어 말을 연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서울로 유학을 와 동생과 자취생활을 하며 살고 있어요. 부모님은 여수에서 어업을 하시며 사세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바다를 벗어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께 졸라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었어요. 부모님은 저 혼자 보내는 것이 불안해 6학년인 제 동생과 함께 유학을 보냈어요. 진짜로 제가 생각했던 새가 되어 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 졌던 거예요. 옆에 동생이 있어 좀 그렇지만요. 저의 아버지는 어부신데 한쪽 눈이 안보이셔서 안대를 하셨어요. 그래도 건강하셔서 지금도 어느 누구보다도 고기를 많이 잡으시는 분 성실하신 분으로 소문이 나 있으세요. 그런데 저는 학교만 가면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어요. 너의 아버지는 애꾸눈이지? 놀리는 거여요. 저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막 따지기도 했어요.

엄마 왜 아빤 애꾸눈이야? 난 아빠가 너무 싫어! 막 울기도 했어요.

그러면 엄만 나를 달래며 아빤 훌륭한 분이야. 아빤 저 멀리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셔셔 고기를 잡는데 갑자기 상어 떼가 나타나 배를 툭툭 치며 배가 위험에 빠졌단다. 그때 아빠가 큰 대 꼬챙이로 상어 떼를 쫓으려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며 요동을 칠 때 꼬챙이가 흔들리는 배에서 아빠 눈을 찌른 거야. 그때 다행히 지나가는 배가 없었더라면 아빤 위험해지셨을 거야. 아빤 우리 가족을 위해 그렇게 위험한 일을 무릅쓰시며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시란다. 엄마는 나를 그렇게 달래셨지요. 그때는 그 소리도 너무 듣기 싫었어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나를 놀린다는 거였지요. 그래서 서울로 유학 오고 나서 방학 때도 집에는 잘 안 갔어요.

그런데 대학을 들어오며 상담을 배우며 부모님이 참 많이 서운해 하셨겠구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빠는 지금도 어부로 일하시며 동생과 나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시니 까요. 너무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요.

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새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거네요?

마음이의 말에 새가 휴지로 눈가를 훔치며 네.

이 이야기는 누구한테도 안한 이야기인데 오늘 하게 되네요.

이야기하고 나니 어떤가요?

마음이가 묻는다.

새는 침묵하다 제가 부모님을 너무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져요. 그리고 저는 새처럼 지금 저의 이상을 향해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게 뭐지요? 샘물이 묻는다.

새는 생각에 잠긴다.

저는 여자지만 결혼은 생각이 없고 우선 상담학박사학위까지 공부하고 그다음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행을 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주며 사는 것이 제 꿈이에요. 제가 기독교인이라 NGO라는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거든요.

모두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살랑 흔든다.

꼭 그렇게 멋진 삶을 살아가길 바랄게요! 마음이의 코멘트이다.

자 휴식하고 저녁 먹자.

우리는 그렇게 첫째 날을 훈훈하게 보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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