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가 끝나고 침묵의 시간이
10여분이 너머 갈 때 쯤 샘물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윤 교수는 좌정한 자세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집단원들도 토끼처럼 긴장한 눈으로 조용히
샘물의 입 땜을 반기는 눈으로 주시한다.
나는 내 안에 불안한 생각들이 많다는 것을
느껴요.
늘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불안 할 때가 많아요.
갑자기 얼굴이 먹구름
상이 되며 고개를 숙인다.
용암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물어본다.
어떤 불안이 괴롭히나요?
좀 어설픈 질문 같았다는 자책에 용암의
자세는 말을 하고나서 몸을 자신도 모르게 움츠린다.
그것은 아마 의문이 많은 학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쪼그라드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집단에서는
서로 존대를 하기로 윤 교수의 말에 동의를 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아빠와 심하게
싸우시고,
어느 날 집을
나가셨어요.
그 때부터 나는 동생과 밤만 되면 엄마가
언제 오시나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빠는 어느
날 새 엄마를 데리고 와 우리들에게 인사를 시켜 주시면서 이제부턴 너희들 엄마는 이 사람이다 하셨어요.
그런데 그 때부터 새
엄마는 우리들에게 혼만 내시며 구박이 심했어요.
학교 갔다 오면 집안
청소며 빨래며 일을 안 하면 욕을 하면서 때리기까지 했어요.
특히 우리 여 동생이
학대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 남매는 밤만 되면 우리 방에서
창문사이로 맑게 떠있는 달을 바라보며 엄마 언제 와! 우는 날이 많았어요.
지금은 나와 동생이
커서 새 엄마가 못 그러지만 고등학교까지의 생활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엄습할 때가 많아요.
아직까지도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엄마도 너무 보고 싶고 원망하는 마음도 많아요.
샘물은 말하는 내내 눈에서 눈물을
훔쳐낸다.
한참을 경청하고 있는 집단원들도 눈물을
훔쳐낸다.
윤 교수인 마음이 말을
건넨다.
샘물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어요.
마음이 말을 떼자 샘물이 갑자기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한다.
그 울음은 아마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뒤범벅된 것이라...
잠시 분위기가 정적으로
흐른다.
샘물이 울음을 그치고 휴지로 소리 없이 코를
훔치자 가시가 입을 뗀다.
나 같으면 가출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샘물은 그런 것도 생각 안 해 봤나 봐요?
갓 멈춘 울음의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한다.
생각해봤죠.
그런데 내가 가출하면
동생이 새 엄마한테 너무 구박을 당할 것 같아 생각을 접었죠.
그럼 아빠한테 말을 해보지
그랬어요?
라고 시궁창이 말을
한다.
아빠한테 말을 했죠!
그러면 아빠는 너희가
더 잘해야 새 엄마가 너희를 예뻐한다며 그냥 우리들을 다독여 주시기만 하셨어요.
그때 당시는 아빠도
새엄마 치마폭에 싸여서 새엄마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으시며 따라 주셨거든요.
그리고 아빠 계실
때는 우리에게 잘 하는 척을 많이 했어요.
집단원들이 모두 긴 한 숨을 내
쉰다.
마음이 샘물에게 말을
한다.
지금 샘물의 마음이
어떤가요?
저도 모르게 내 안에 숨어있었던 것들이
밖으로 튀어 나와 버렸네요.
좀 후련한 것도 같고
저도 모르는 분노가 순간 가슴에서 올라오는 것 같아요.
지금 새 엄마가 내
앞에 있으면 내가 당한 것만큼 욕을 퍼부으며 마구 때려주고 싶어요.
샘물의 눈에 혈기가
비친다.
음~
그럼 그 감정 그대로
지금-여기서 표현해 볼래요?
저기 베개하나 이리주지.
이 베게가 새엄마라 생각하고 그 감정 그대로
한번 표현해 볼래요?
샘물은 앞으로 조금 나와 베게와 종이로 만든
두둑한 몽둥이를 손에 집어 들었다.
갑자기 몽둥이로 베개를 몇 번
내리친다.
눈이 벌게지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왜 우리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어.
우리가 당신에게
나쁘게 한 것도 없는데.. 버럭버럭 소리를 치며 몽둥이를 세차게 연신 내리친다.
샘물의 분노는 엄청나게 깊은 것
같다.
이 나쁜 년 하며 갑자기 욕이 나오더니
몽둥이를 베게에다 다시 있는 힘껏 수차례 내리친다.
샘물의 울부짖음이 아침 공기와 함께 방
밖으로까지 울려 퍼져 나가는 것이다.
모두 샘물의 거침없는 행동에 안타깝고 또
놀라는 표정들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지금 어떤 마음이
느껴지나요?
마음이 천천히 묻는다.
큰 숨을 들이마시며 여태까지 속에 있던
무거운 돌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시원한 것 같아요! 휴지로 얼굴을 훔쳐낸다.
그러며 정신이 낫다는 듯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샘물은 주위를 둘러본다.
오늘 첫 시간부터 제가 갑자기 무거운 이야길
한 것 같아요.
닉네임을 정하는데 불현듯 어릴 때 생각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흥분을 했네요.
아니 오늘 첫 시간부터 난 너무 샘물이
고마워요?
드러내기 힘든 감정이었을 텐데 솔직하게
그대로 드러내 줘서 난 고마웠어요.
마음이가 다독인다.
모두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있다 용암이 말을
꺼낸다.
나는 화가 많은 것
같아요.
샘물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자꾸 반문하면서 아마 집을 나왔거나 새
엄마와 싸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듣는 내내 온 몸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가슴에서 불이 올라오는 것 같았어요.
용암의 눈이 둥그레지며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쥔다.
마음이 그런 모습을 감지하며 말을
건넨다.
용암이 지금 느끼는 그 불은 어떤 것인지
말해 줄래요?
용암은 말을 잇는다.
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그래서 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것이 불안했어요.
아버지는 건축하시는
분이었어요.
일이 없으실 때는
아침부터 집에서 술을 드셨지요.
그러면 하루 종일
소주병을 옆에다 갖다 놓고 마시셨어요.
술을 마시면 평소에는
말이 전혀 없으시던 분이 엄마와 우리 3남매를 불러 앉혀 놓고는 입에 담기조차
불쾌한 욕과 폭언을 일삼으셨어요.
그러면서 소주
10병째를 돌파할 때쯤 엄마에게 구타와 욕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옷을 벗으라고 버럭 소리로 위협을 하고 발가벗긴 우리를 방 밖으로 내쫓으며 욕을 하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엄마와
우리는 공포에 떨어야 했어요.
그러면 엄마는 눈물로 우리들을 챙기시며 옷을 입혀 이웃집으로 피난을 보내셨어요. 그러고
엄마는 그날은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구타와 모욕을 당하는 날이었지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런 아빠가 너무 원망스럽고
싫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죽일려고 그날도 엄마와 우리에게 폭언과 구타가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분에 못
이겨 아버지가 일을 다 치르고 조용히 잠들었어요.
그때가 새벽 쯤이었나 봐요.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가지고 아버지가 누워 정신없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에게 내리 치려고 할 때였어요.
그때 잠시 눈을 붙이고 계셨던 엄마가 놀라며
울음으로 말리시는 바람에 저는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그러고도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아버지의 그 행태는 계속
되었지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결국 알코올 중독에 위암과
합병증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행이 아버지가
보험을 들어 놓은 게 있어서 그 돈으로 엄마는 장사를 시작하시게 되셨어요.
그 덕에 우리
형제들은 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지금도
주위에서 술을 먹고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와요.
나는 아버지가 없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용암은 동공이 커지며
얼굴이 불그락 거렸고 두 손을 계속 불끈 쥐고 있었다.
지금 어떤 마음이
느껴지나요?
마음이 물어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용암이 마음의 눈을
보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 고인 눈으로 입을 뗀다.
답답해요.
말을 하면 좀 시원할
줄 알았는데 가슴을 쥐면서 ‘답답해요’.
눈물이 눈가를 지나 얼굴 밑으로
떨어진다.
아버지를 한번 만나
볼래요.
마음이 용암을 앞으로 끌어
앉힌다.
마음이도 용암이 앞에 면대면 으로
앉는다.
용암이보고 말을 한다.
내가 용암이 아버지니 아버지에게 용암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볼래요?
용암이 순간 아버지를 쳐다보며 눈에서 한없는
눈물이 쏟아 흘러내린다.
아버지 왜 그랬어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먹었어요.
아버지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알아! 한없는 눈물과 콧물이 앞을 가린다.
마음이 어깨를 좀 수그리며 용암의 손을
가만히 잡아준다.
그거 알아 내가 아빠를 죽이려
했다는,
거라며 펑펑
운다.
아빠가 나 어릴 때 어린이 대공원에 데려가서
목마 태워주며 놀아주던 아버지를 내가 기억하는데!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난 아빠가 좋았는데 왜 왜 그렇게 술을 먹고
빨리 죽었냐 말이야.
울부짖음의 목청이 한 마리 길 잃은 어린
늑대처럼 엉엉댄다.
모두 숨을 죽이며 소리 없는 눈물을
훔쳐내는데 휴지가 꽤 고생을 한다.
마음인 그렇게 용암의 손을 어루만져 주면서
침묵의 시간이 꽤 흘러 제자리에 모두 정승처럼 소리 없이 앉아 있다.
정적을 깨고 새가 얘기를
한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휴지로 눈가를
훔친다.
용암!
아버지를 만나보니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마음이 묻는다.
나도 몰랐던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도
있었구나.
새삼
놀랬어요.
저는 그저 아버지를
생각하면 알코올 중독자로 우리 가족을 괴롭혔던 기억만 생각했었는데 아빠가 저 어렸을 때는 목마도 태워주고 대공원에도 데리고 간 기억들이 뇌리를
스치면서 아빠가 나에게 이렇게도 해 주셨구나!
느꼈어요.
또 아빠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요. 또 운다.
마음이 용암에게 말을
한다.
오늘 아빠의 다른 면을 만나
본거네요?
말없이 용암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이렇게 자기 가족은 아무리 나쁜 기억만
가지고 증오하며 살아간다 해도 조금만 더 생각을 한다면 어딘가 좋은 기억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강도가
얼마인가의 차이겠지요.
용암은 상대가
아버지니까 증오와 미움이 더 컷을 거여요.
오늘 용암이 아버지와의 만남은 우리에게도
좋은 배움의 장이 됐다고 봐요.
윤 교수는 약간의
코멘트를 한다.
자!
10분
휴식.
이야기가 떨어지자 예라며 거의 방을 빠져
나간다.
하늘이 참 맑고 공기도 시원하다.
아이들은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편다.
그러나 어느 한사람도
말을 섞는 사람은 없다.
그저 먼 하늘과 산만을 바라보며 공기를 들이
마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