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여기 왔으니까 기회되면 갈 때까지 상담 좀 해줄래?
좋지! 그런데 말이 통해야지?
영어로 하면 되니까, 여기 사는 사람들을 보니까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되어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은 것 같아. 내가 외과의사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계를 느껴 안타깝더라.
듣고 있던 시중은 범선을 보며 말을 한다.
알았어. 기회가 되면 할게. 이렇게 범선이가 타지에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나도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지.
그래. 고마워. 배고프지? 밥 먹으러 나가자. 뭐 먹을래?
음~ 여기 왔으니까 필리핀 음식을 먹어봐야 하지 않겠어?
그럼, 레촌이란 바비큐 구이 먹을래?
그게 뭔 바비큐인데?
레촌은 필리핀 말로 어린 돼지를 잡아 숯불에 구워 바비큐처럼 나오는 것인데 바삭하고 맛있어.
좋아. 그거로 먹자.
난 여기 살면서 거의 외식을 안 하고 집에서 해먹는데 시중이 왔으니 특별 대우하는 거야?
알았어. 그 대신 돈은 내가 낼게. 선교사가 무슨 돈이 있겠어.
범선은 시중을 쳐다보며 오! 그래! 그렇다면 또 난 사양 안하지. 웃는다.
그렇게 둘은 어스름한 저녁 햇살을 곁눈질 하며 병원을 나와 차를 몰고 마닐라 시에 있는 전통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와~ 여기 맛있는데! 난 고기를 잘 안 먹는 편이지만 이 돼지고기는 쫄깃하니 맛있는데!
그렇지? 나도 고기는 잘 안 먹는 편인데 더운 곳에서 살다보니까 가끔 먹는데 여기 고기가 느끼하지 않고 쫄깃하니 먹을 만해.
그나. 시중 너 언제 결혼 하는 거야? 아름이가 여태까지 기다리는 게 용하다.
그게. 좀 그래.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 우리 둘은 괜찮은데 아름이가 아직 부모님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를 안했나 봐.
그래. 야~ 니들 만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 도야?
그러게.
혹시 아름이 시중이가 자기 부모에게 먼저 말해 주길 바라는 거 아냐?
그런 거 같은데!
그럼. 너가 먼저 용기를 내야 되는 거 아냐?
너도 그렇게 생각 하는 거야?
그래! 또 너는 장애인이잖아. 누가 자기 딸을 선 뜻 장애인에게 주겠어! 아름이 아버지를 내가 옛날에 몇 번 봤는데 성격이 꼬장꼬장 하더라. 너. 상담을 한다는 애가 그걸 못 푸니?
아 그러게. 시중은 대꾸를 하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여기서 지낼 만 해?
범선은 시중을 보며 웃는다.
뭐. 지낼 만은 한데 매일 같이 전쟁이야. 빈민촌에 가 보면 하루에도 못 먹어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야.
그리고 여기저기서 살기 힘드니까 좀 도둑이 너무 많고 그래. 그래서 하루하루가 전쟁이야.
너는 결혼 안 해?
글쎄. 하고는 싶은데 누가 나 같은 선교사와 같이 할 사람이 있을까?
범선은 말을 하며 호호 웃는다.
둘은 그렇게 밥을 먹고 저녁노을을 마주보며 마닐라 도시 한 복판에 있는 베이라는 바닷가 거리를 걷는다.
베이라는 바닷가를 걷는데 일몰이 너무나 아름다워 둘이 걷다가 멈추어 해질녘 아름답게 사라지는 노을을 손으로 가리키며 시중은 감탄을 한다.
와우~~ 저렇게 아름답게 넘어가는 해가 있다니 진짜 너무 환상인데!
시중은 말을 하며 너무 벅차 웃음을 연발 내뱉는다. 옆에서 같이 보는 범선도 좋아하며 시중에게 말을 한다.
작가 헤밍웨이 알지! 그 사람도 여기 와서 저 해질녘 노을을 보며 반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야. 너무 아름답지?
응. 너무 너무 아름답다.
둘은 지는 노을을 마주보며 바닷가 가로 길 위에 나란히 앉았다.
범선이가 멀어져가는 노을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그마하게 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원어로 말이다.
<Oh Danny boy>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대니야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골짜기마다에서 저 산 언저리까지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flowers dying,
여름도 가고 모든 꽃들도 시들어 죽고
'Tis you, 'ti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넌 떠나야 하고 난 기다려야만 하네
But come ye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저 초원에 여름이 올 때면 네가 돌아와 줄까
Or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계곡이 숨을 죽이고 눈으로 뒤덮일 때면 네가 돌아와 줄까
And all I'll be t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햇빛이 비추어도, 그늘이 드리워도 난 여기서 기다리네
Oh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오 대니 보이 오 대니 보이 내 사랑하는 아들아
And if ye come when all the flowers dying,
네가 돌아 올 때 모든 꽃들도 시들어 죽고
And I am dead, as dead I well may be,
그리고 나 또한 죽어 아마도 이 세상에 없겠지
You'll com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네가 돌아와 내가 누워 있는 그 곳에 와서
And kneel and say an "Ave" there for me.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아베 마리아를 부르면
And I shall hear, tho' soft you tread above me,
내 또한 무덤 위로 부드럽게 떠도는 그 소리 들으리라
And all my dreams will warm and sweeter be,
그러면 나의 모든 꿈들이 더욱 밝고 따스해 질 것이며
If you'll not fail to tell me that you love me,
내가 묻힌 그곳은 더욱 밝고 따스해 질 것이며
I simply sleep in peace until you come to me.
네가 올 때까지 나 편안하게 잠들어 있으리라.....
범선이 목소리 좋은 건 여전하네.
범선이는 노래를 잔잔히 끝내며 바닷가의 물결을 보며 시중에게 말을 한다.
난 이 노래의 음율이 마음에 와 닿는다. 조금은 슬픈 노래이지만 그 선율이 하나하나 내 마음을 울리지. 이 타국에 와서는 더 그런 것 같아. 그래서 가끔 어수선 할 때 여기 와서 이 노래를 부르지 .
시중은 그런 범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고요하게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역시 범선이는 하나도 안변했어. 그 풍부한 감성과 목소리가 말이야.
그런가? 범선은 그렇게 말하는 시중을 보며 웃는다.
야! 너도 이렇게 혼자 와서 살아 봐. 이렇게 되지.
나도 여기 와서 살까?
아름인 어쩌고?
뭐. 포기해야지. 요새는 헛갈려. 내가 아름일 정말 사랑하는 건지.
내가 보기엔 너가 자신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
시중은 후훗 웃으며 맞아 그런 것인지도 몰라. 내 몸에 대한 것을 난 뛰어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 봐.
아니야. 시중. 누구나 한가지씩은 자신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
상담소 원장님이 그렇게 말하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구?
어둠이 어느새 둘의 마음과 몸을 감싸며 일렁이는 파도 소리만이 정적을 달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