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여기 왔으니까 기회되면 갈 때까지 상담 좀 해줄래?

좋지! 그런데 말이 통해야지?

영어로 하면 되니까, 여기 사는 사람들을 보니까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되어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은 것 같아. 내가 외과의사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계를 느껴 안타깝더라.

듣고 있던 시중은 범선을 보며 말을 한다.

알았어. 기회가 되면 할게. 이렇게 범선이가 타지에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나도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지.

그래. 고마워. 배고프지? 밥 먹으러 나가자. 뭐 먹을래?

~ 여기 왔으니까 필리핀 음식을 먹어봐야 하지 않겠어?

그럼, 레촌이란 바비큐 구이 먹을래?

그게 뭔 바비큐인데?

레촌은 필리핀 말로 어린 돼지를 잡아 숯불에 구워 바비큐처럼 나오는 것인데 바삭하고 맛있어.

좋아. 그거로 먹자.

난 여기 살면서 거의 외식을 안 하고 집에서 해먹는데 시중이 왔으니 특별 대우하는 거야?

알았어. 그 대신 돈은 내가 낼게. 선교사가 무슨 돈이 있겠어.

범선은 시중을 쳐다보며 오! 그래! 그렇다면 또 난 사양 안하지. 웃는다.

그렇게 둘은 어스름한 저녁 햇살을 곁눈질 하며 병원을 나와 차를 몰고 마닐라 시에 있는 전통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 여기 맛있는데! 난 고기를 잘 안 먹는 편이지만 이 돼지고기는 쫄깃하니 맛있는데!

그렇지? 나도 고기는 잘 안 먹는 편인데 더운 곳에서 살다보니까 가끔 먹는데 여기 고기가 느끼하지 않고 쫄깃하니 먹을 만해.

그나. 시중 너 언제 결혼 하는 거야? 아름이가 여태까지 기다리는 게 용하다.

그게. 좀 그래.

. 무슨 문제 있어?

아니. 우리 둘은 괜찮은데 아름이가 아직 부모님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를 안했나 봐.

그래. ~ 니들 만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 도야?

그러게.

혹시 아름이 시중이가 자기 부모에게 먼저 말해 주길 바라는 거 아냐?

그런 거 같은데!

그럼. 너가 먼저 용기를 내야 되는 거 아냐?

너도 그렇게 생각 하는 거야?

그래! 또 너는 장애인이잖아. 누가 자기 딸을 선 뜻 장애인에게 주겠어! 아름이 아버지를 내가 옛날에 몇 번 봤는데 성격이 꼬장꼬장 하더라. . 상담을 한다는 애가 그걸 못 푸니?

아 그러게. 시중은 대꾸를 하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여기서 지낼 만 해?

범선은 시중을 보며 웃는다.

. 지낼 만은 한데 매일 같이 전쟁이야. 빈민촌에 가 보면 하루에도 못 먹어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야.

그리고 여기저기서 살기 힘드니까 좀 도둑이 너무 많고 그래. 그래서 하루하루가 전쟁이야.

너는 결혼 안 해?

글쎄. 하고는 싶은데 누가 나 같은 선교사와 같이 할 사람이 있을까?

범선은 말을 하며 호호 웃는다.

둘은 그렇게 밥을 먹고 저녁노을을 마주보며 마닐라 도시 한 복판에 있는 베이라는 바닷가 거리를 걷는다.

베이라는 바닷가를 걷는데 일몰이 너무나 아름다워 둘이 걷다가 멈추어 해질녘 아름답게 사라지는 노을을 손으로 가리키며 시중은 감탄을 한다.

와우~~ 저렇게 아름답게 넘어가는 해가 있다니 진짜 너무 환상인데!

시중은 말을 하며 너무 벅차 웃음을 연발 내뱉는다. 옆에서 같이 보는 범선도 좋아하며 시중에게 말을 한다.

작가 헤밍웨이 알지! 그 사람도 여기 와서 저 해질녘 노을을 보며 반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야. 너무 아름답지?

. 너무 너무 아름답다.

둘은 지는 노을을 마주보며 바닷가 가로 길 위에 나란히 앉았다.

범선이가 멀어져가는 노을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그마하게 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원어로 말이다.

 

 

<Oh Danny boy>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대니야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골짜기마다에서 저 산 언저리까지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flowers dying,

 

여름도 가고 모든 꽃들도 시들어 죽고

 

'Tis you, 'ti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넌 떠나야 하고 난 기다려야만 하네

 

But come ye back when summer's in the meadow,

 

저 초원에 여름이 올 때면 네가 돌아와 줄까

 

Or when the valley's hushed and white with snow,

 

계곡이 숨을 죽이고 눈으로 뒤덮일 때면 네가 돌아와 줄까

 

And all I'll be there in sunshine or in shadow,

 

햇빛이 비추어도, 그늘이 드리워도 난 여기서 기다리네

 

Oh Danny boy, oh Danny boy I love you so.

 

오 대니 보이 오 대니 보이 내 사랑하는 아들아

 

And if ye come when all the flowers dying,

 

네가 돌아 올 때 모든 꽃들도 시들어 죽고

 

And I am dead, as dead I well may be,

 

그리고 나 또한 죽어 아마도 이 세상에 없겠지

 

You'll com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네가 돌아와 내가 누워 있는 그 곳에 와서

 

And kneel and say an "Ave" there for me.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아베 마리아를 부르면

 

 

And I shall hear, tho' soft you tread above me,

 

내 또한 무덤 위로 부드럽게 떠도는 그 소리 들으리라

 

And all my dreams will warm and sweeter be,

 

그러면 나의 모든 꿈들이 더욱 밝고 따스해 질 것이며

 

If you'll not fail to tell me that you love me,

 

내가 묻힌 그곳은 더욱 밝고 따스해 질 것이며

 

I simply sleep in peace until you come to me.

 

네가 올 때까지 나 편안하게 잠들어 있으리라.....

 

 

범선이 목소리 좋은 건 여전하네.

범선이는 노래를 잔잔히 끝내며 바닷가의 물결을 보며 시중에게 말을 한다.

난 이 노래의 음율이 마음에 와 닿는다. 조금은 슬픈 노래이지만 그 선율이 하나하나 내 마음을 울리지. 이 타국에 와서는 더 그런 것 같아. 그래서 가끔 어수선 할 때 여기 와서 이 노래를 부르지 .

시중은 그런 범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고요하게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역시 범선이는 하나도 안변했어. 그 풍부한 감성과 목소리가 말이야.

그런가? 범선은 그렇게 말하는 시중을 보며 웃는다.

! 너도 이렇게 혼자 와서 살아 봐. 이렇게 되지.

나도 여기 와서 살까?

아름인 어쩌고?

. 포기해야지. 요새는 헛갈려. 내가 아름일 정말 사랑하는 건지.

내가 보기엔 너가 자신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

시중은 후훗 웃으며 맞아 그런 것인지도 몰라. 내 몸에 대한 것을 난 뛰어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 봐.

아니야. 시중. 누구나 한가지씩은 자신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

상담소 원장님이 그렇게 말하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구?

어둠이 어느새 둘의 마음과 몸을 감싸며 일렁이는 파도 소리만이 정적을 달래고 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중은 늣 봄 4월 초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 마닐라로 간다.

시중의 아무도 모르는 방랑의 객기가 발동한 것이다.

태생적인가! 사물에 대한 무료함인가! 복잡하다 생각되면 아무도 모르게 현실을 도외시하며 떠나버리는 습성이 안에서 발동한 것이다.

상담소는 실습하는 소랑에게 맡기고 아름이가 저녁마다 와서 봐주는 걸로 해놓고 무작정 필리핀에서 외과의사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다니는 교회에서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동갑내기 친구인 김범선에게 가는 거다.

마닐라 공항에 범선이가 나와 시중을 반갑게 맞이한다.

범선이는 아직 결혼은 생각이 없어 안하고 여자의 몸으로 혼자 선교단체의 소속으로 필리핀에 와서 빈민촌인 뿔로 지역을 대상으로 의료선교를 하고 있다. 범선이는 키가 165정도로 목소리도 걸쭉하지만 성격은 천생 여자로 자기가 친하다 싶으면 애교를 작살나게 부려 다들 웃음바다로 만든다.

시중은 범선이를 보며 반갑게 포옹을 한다.

반갑다 친구! 근데 왜 갑자기 여기에 온 거야?

'뭐! 범선이 보고 싶어 왔지'. 시중은 범선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범선도 그런 시중을 보며 잘 왔다며 포옹을 한다.

둘은 공항에서 범선이가 끌고 온 옛날 코란도 차를 타고 마닐라 외곽에 있는 빈민촌 뿔로 지역 근방에서 자그마하게 병원을 차려 선교하는 곳으로 몰고 간다.

나 아무것도 안 사왔는데 그냥가면 안 되는 거 아냐?

범선이는 그런 시중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우리사이에 체면 차리는 거야!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그런 말을 해?

아니 그래도 너에게 처음 오는 거고 여긴 외국이잖아?

괜찮아요. 시중! 이렇게 날 찾아 준 것만도 고마워! 사실 여기서 혼자 살려니까 조금 외로웠거든?

그렇게 시중은 범선의 집이자 병원인 곳에 도착하여 시중은 짐을 푼다.

병원은 2층으로 20여 평 되 보인다.

~ 소독 냄새 장난 아닌데?

, 여긴 공기도 안 좋고 날씨가 더워서 소독약을 좀 강하게 뿌려놓지.

그렇구나. 이런데서 고생하는구나?

아니야 고생은! 이게다 한 생명을 귀하게 살리시는 예수님의 마음이지.

그래. 내가 선교사님 앞에서 괜한 이야길 했다.

여긴 얼마나 있을 거야?

~ 봐서! 그냥 머리도 식힐 겸 무작정 떠나 온 거야.

상담소는 어쩌고?

아름에게 부탁하고 왔어.

아름이는 잘 지내?

. 병원에서 잘 나가는 싸이코 드라마 정신과전문의로 통하는 것 같아.

아름이 보고 싶다.

여기 온다니까 너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라. 자기도 보고 싶다면서.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중은 집단을 마치고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마음치유 상담소입니다.

. 거기 원장님 계신가요?

. 제가 원장인데요. 목소리가 아주머니인 것 같다.

. 안녕하세요?

. 말씀하세요?

제 아들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아들이 병으로 누워 있어서 거동을 못하는데 상담을 받고 싶어 전화 드렸어요. 원장님께서 장애인들 상담을 전문으로 하신다고 하시기에. 혹시 집으로 와 주실 수 있나요?

, 네 갈 수 있습니다. 아드님이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몸이 굳어가는 병으로 3년째 집에서만 지내요. 아직까지는 말은 하는데 전신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러시군요. 찾아뵙겠습니다.

시중은 전화를 끊고 실습생인 김소랑에게 상담소를 맡기고 알려준 주소로 차를 몰고 간다.

집에 도착하여 거실에 앉는다. 어머니가 차를 내와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한다.

우리 아들이 33세살인데 어느 날 갑자기 손에 힘이 없어지면서 물건을 자꾸 떨어뜨리더니 서서히 온 몸에 힘이 빠져 저렇게 3년째 누워 지내요.

어머니는 이야기를 하며 눈에서 눈물이 글썽 거린다.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병원에서는 아직까지 원인을 알 수없는 병으로 고칠 약이 없다고 하며 진행을 늦추는 약만 처방해줘요.

그러시군요. 어머니께서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럼 아드님을 볼까요?

아들이 누워있는 방으로 인도하여 시중은 인사를 하며 방문을 닫으며 둘은 상담을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강시중입니다.

. 선생님 저는 조명석입니다. 제가 누워 있어 이렇게 말로만 인사해요.

아니요. 그런 건 상관없고 명석씨가 이렇게 상담 요청을 하셨다니 반가워요.

명석은 키가 큰 편이고 몸집이 호리호리 한편이다. 인상도 좋아 보인다. 명석은 침대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얼굴도 강직되어 입만 움직이는 것 같다. 웃는 얼굴도 웃었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저 목소리만 낼 뿐 인 것 같다.

그럼 우리 상담을 시작해 볼까요? 시중은 조용히 말을 하며 명석을 본다.

명석씨가 지금 어느 것이 제일 불편한지 또 마음은 어떤지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이야기 해 볼래요?

명석은 시중의 말을 듣더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시중은 휴지로 눈물을 닦아주며 고개를 미세하게 움직이며 명석의 눈과 마주한다.

명석은 천천히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제가 왜 이런 병이 걸렸는지 이해가 안 돼요. 저는 나쁜 일도 안하고 살았어요. 남을 속이지도 안았고 학교 다닐 때에도 그저 열심히 공부만 했어요. 집에서는 장남으로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들로 살았어요. 그런데 왜 제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시중은 명석의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명석의 팔을 쓰다듭는다.

이렇게 되기 전에는 건강이 어땠나요?

건강했어요. 나 혼자 산에도 다니고 가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며 지냈어요. 그런데 어느 여름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오른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철석 주저앉는 거여요. 그래서 그때는 운동을 무리하게 해서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직장에서도 앉았다 일어날 때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려 주저앉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하며 진찰을 했더니 근육이 원인도 모르게 힘이 빠지며 굳어가는 병이라고 하며 이병은 치료약도 없다고 하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저 진행만 늦추어 주는 약만 처방해 주더라고요. 저는 황당했어요. 그래서 직장도 그만두고 이렇게 서서히 몸이 움직일 수 없이 굳어져 지금은 입만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있으면 이 입도 벌리기가 힘들어 진다고 의사 선생님이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집에서 TV를 보는데 마음이 안 좋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며 마음을 추스르는 것을 보고 저도 마음이나 편안하게 해 볼까 해서 엄마에게 말을 한 거여요.

잘 했어요.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몸을 지배하기도 하지요. 몸이 이렇게 됐지만 마음과 살아있는 정신은 명석씨의 감정을 지배하지요. 그래서 슬픔과 기쁨과 또 자신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니까요. 단지 지금 명석씨는 몸만 움직임이 없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쩜 명석씨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몸이 좋아 질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적이 존재하니까요. 혹시 종교가 있나요?

. 교회 다녔어요.

그렇군요. 나도 교회 다녀요.

그럼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고요.

명석씨가 상담 받기를 선택했으니까 나도 도울 게요. 우리 힘내요.

. 선생님 고맙습니다.

자 계속 해볼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미건조하게 살아 온 것 같아요.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봐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어요. 나와 상관없는 일들은 무관심 했어요. 그리고 저는 내 일만 했어요. 학교 다닐 때도 공부에만 집중을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어요. 그냥 공부하다 지치면 잠간 혼자 나가 걸어 다니고 했어요. 그래서 친구도 많지 않아요. 직장 들어가서도 동료들과 어울려 술자리 하는 것이 싫었어요. 저는 누가 옆에 있는 것이 싫었어요. 그냥 나 혼자 공부하고 나 혼자 있는 것이 좋았어요.

명석씨! 왜 혼자 있는 것이 좋았을까요?

명석은 시중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저도 모르게 불편 했어요. 왜 그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저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좋았어요.

그럼 명석씨 왜 그랬는지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볼래요? 왜냐하면 그런 것이 원인이 됐는지도 모르니까요?

다시 생각에 빠지더니 명석이 말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네요. 제가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다가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는 복도 끝 구석에서 우리 반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돈을 빼앗기며 구타를 당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화장실 가는 척하고 화장실 문 쪽에서 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욕을 하며 돈을 뺏으며 또 내일도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그이야기를 듣고 저는 갑자기 아이들이 무서워졌어요. 나도 저렇게 당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서 친구 사귀는 것이 싫어졌고 그때부터 자율학습도 안하고 집에 와서 공부하곤 했어요. 또 원래 제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그때부터 아이들을 피했던 것 같아요. .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혼자 있기 좋아 한 시기가요. 그리고 내 물건에 누가 손을 대는 것도 싫어했고요. 결벽증까지 있었나 봐요. 그리고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내가 어떻게 될까 봐 그 자리를 저도 모르게 피하곤 했어요.

그럼 명석씨도 모르게 불안해 졌던 시기가 고등학교 때 그 시기였네요?

.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가끔 꿈을 꿨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잡으려 쫓아오는 꿈을요. 그 꿈을 꾸고 나면 몸에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어나 화장실 갈 힘도 없을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갑자기 나도 모르는 공포가 밀려와서 소리를 지르곤 했어요.

그런 증상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계속 되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인 것 같아요.

직장 다닐 때는 어떠했나요?

가끔 그랬던 것 같아요.

명석은 이야기를 하는 내내 동공이 커지며 눈물이 눈꼬리를 따라 흘러내린다.

많이 힘들었겠네요?

명석은 눈을 감았다 뜨며 눈물 고인 눈으로 눈물이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내리 듯 흘러내리며 애처롭게 쳐다본다.

시중은 명석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한다.

일단 명석씨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는 심한 불안을 가지고 살아 왔던 것 같아요.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명석씨가 너무 오랫동안 마음에 불안증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신체화 즉 몸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볼 수 있네요.

선생님 저는 이대로 죽어가야 하나요?

명석은 시중을 보며 간절한 눈빛으로 시중에게 물어본다.

명석씨 그것은 본인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명석씨처럼 원인도 모르는 병으로 앓아 누운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힘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가 살아보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기적적으로 났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하지요. 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기도로 병이 났기도 하고요. 명석씨는 눈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요. 명석씨의 병의 근원이 심리적인지 유전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를 만났으니 나와 상담을 하며 하나하나 풀어가 봐요. 심리적이든 유전적이든 아니면 환경적이든 상관하지 말고 먼저 명석씨의 그 아픈 마음부터 치료해보도록 해요. 마음과 정신이 올바로 살아 있으면 육체의 병도 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우리 같이 노력해 봐요. 그리고 병원 약도 꼬박 챙겨먹고요.

듣고 있는 명석은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며 시중을 보며 눈을 깜빡 거린다.

그런 명석을 시중도 동생을 달래 듯 손을 어루만지며 화장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명석씨 눈을 감아 볼래요?

명석은 눈을 스르르 감는다.

그렇게 눈을 감은 상태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에 불편한 것들을 쓰러버린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자신 안에서 모든 불편한 것들을 밀어버리는 손이 있다고 생각하며 정수리부터 쓰러내려 보세요.

아주 천천히. 이 작업을 10회 반복해 봐요.

명석씨의 몸에 있는 나쁜 것들을 다 쓸어 밖으로 밀어 버린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해보세요.

명석은 누운 자세에서 눈을 감고 시중의 말을 들으며 10분이 넘도록 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 천천히 눈을 떠 보세요?

명석은 눈을 천천히 뜬다. 눈을 뜨는데 시야가 맑아지는 느낌을 갖는다.

선생님 앞이 맑아 보여요. 그리고 몸도 조금 강직 된 것이 풀리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런 좋은 느낌이 생기면 신체가 요동한다는 증거여요. 이 작업을 수시로 해 보세요. 단순히 생각을 하자면 우리 몸은 피와 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피가 우리 몸에서 깨끗하게 순환이 되 면은 병이 안 걸리는데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고 오염된 공기에 시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우리 몸에 있는 피가 둔탁해 지고 묽어져 각 종 병이란 놈이 찾아오지요. 그래서 이것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정신인 것이지요. 우리의 정신이 몸을 컨트롤 하면 몸은 거기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우리의 몸에 좋은 에너지를 공급하여 피가 맑아져 각종 병에 걸리지 않도록 저항력을 높여주지요. 명석씨는 이미 이렇게 됐지만 그래도 이 작업을 계속하면 피가 더 나빠져 순환되지 않는 것들을 막을 수 있을지 누가 알아요. 또 인체의 신비스러움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깨끗하고 총명한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되면 안 좋은 몸이 반응을 일으켜 좋아질 수도 있어요.

시중은 그렇게 명석과 상담을 마치고 방을 나와 거실에 명석의 어머니와 마주 앉는다. 시중은 명석의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니 혹시 가족들 중에 유전병으로 고생하신 분이 계신가요?

어머니는 시중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한다.

명석은 모르지만 아들 고모가 신경이 약해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명석이 5살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시중은 들으며 명석의 어머니를 보며 안됐다는 눈으로 미간을 조이며 숨을 들이 쉰다.

명석씨는 마음의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많이 가지고 살아 온 것 같아요. 마음이 정상인 보다 약한 상태가 돼 있었던 것 같아 보여요. 다른 말로 말하면 신경 쇠약증이라 말 할 수 있어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유전적인 것도 있는 것 같네요.

명석의 어머니는 시중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

제가 일주일에 한번씩 이 시간에 와서 상담을 하겠습니다. 어머니께서도 힘드실 텐데 힘내시고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상담소에서 시중은 장애인들을 데리고 한 달 째 집단상담을 하고 있다.

오늘도 장애인 내담자 여섯 명과 함께 집단에 몰입하고 있다.

 

23살인 소아마비로 양쪽에 크러치를 집고 다니는 닉네임을 아픔으로 쓰고 있는 리아가 말을 한다. 리아는 키가 155정도에 얼굴은 갸름하고 통통한 편으로 장애만 아니면 평범한 아가씨다.

집단원들은 아픔에게 집중하고 있다.

저는 소아마비 장애로 인하여 내 삶의 제약되는 일이 많아 살아가는데 참 힘이 들어요. 저는 지금 대학 4학년 졸업반인데 친구들은 취업준비를 한다고 다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내는데 저는 제 몸이 소아마비라 직업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속상해요. 같은 장애인이라도 크러치를 집고 안집고의 차이가 많은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크러치를 집은 장애인이라 면접시험을 보러 나가면 면접관들이 내 외모만 보고 고개를 저어요. 어떤 면접관들은 노골적으로 그런 몸으로 빠리빠리하게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완전 실망해서 내가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난 거지 생각하며 화장실가서 울기도 많이 울어요.

듣고 있던 집단 원들이 아픔의 말에 다 공감 한다는 듯 고개를 떨군다.

나는 생각해 봐요.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나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내 마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좋게 보려고 하는데 왜 사람들은 나를 자기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내가 소아마비로 발만 좀 불편하지 다른 곳은 다 멀쩡하잖아요. 그런데 왜 나를 아메바처럼 볼까요.

아픔은 말을 하며 눈물이 눈가에 고여 흘러내린다.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이 누구의 잘 못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를 보는 주위의 시선들이 나를 절망으로 몰고 가요. 내가 더 정신을 차려 나의 이런 몸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려고 해도 주위 환경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때가 많아요.

리더인 부랑아는 아픔의 눈을 보며 같이 공감한다는 듯 눈을 감았다 뜬다.

부랑아가 말을 한다.

아픔의 힘듦이 느껴지네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나름대로 혼자 슬퍼하고 속이 많이 상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런 몸으로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번뇌가 저를 괴롭혔거든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다 죽어가는 것은 똑같은데 누구는 비장애인으로 살아가고 누구는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불공평 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대꾸를 많이 했어요.

아픔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보았어요.

아픔은 그래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네요. 그 정도 사정이 되면 대개가 자기 자신까지 원망하며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아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앞으로 나가보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감사하고 보기가 좋아요.

집단원들이 다시 한 번 아픔을 보며 고개를 움직인다.

 

잠시 공간속의 침묵이 흐른다.

이윽고 그 침묵을 깨고 조용히 수치라는 닉네임을 붙인 올해 30살인 차형미가 말을 한다. 형미는 뇌성마비 5급으로 오른 쪽 다리와 팔이 부자연스럽다.

6살 때 난간에서 떨어져 운동신경을 건드려 약간씩 불편하다. 그래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며 무명 화가로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키가 크고 언뜻 보기에는 장애인이라는 표시가 안 난다.

 

저는 어릴 때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어요. 저의 성격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친한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제가 장애인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집에서 혼자 그림 그리기를 하며 지냈어요. 제 몸이 이래서 친구들과 어울리어 뛰어 노는 것들이 싫었어요. 부모님께서는 그런 저를 아시고 저에게 그림 도구를 많이 사주셨지요. 그래서 항상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지냈어요. 그렇게 살면서 고등학교 다닐 때 일이었어요. 학원에서 아이들 서너 명이 화실에서 뎃생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남자 아이가 갑자기 다가와 나보고 니가 그렇게 도도해! 말이 없다고 하며 호기심이 생긴다고 하더니 누드를 그리자고 하더니 저보고 옷을 벗으라고 하는 것이어요. 안 벗으면 자기가 벗기겠다고 종용하는 것이어요. 그때 난 갑자기 공포와 수치심이 밀려와 안절부절 하다가 그곳에서 뿌리치며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때 이후로 저는 남자가 무서웠고 밤에는 혼자 다니는 것이 겁이 났어요. 언제, 어느 때 그 남자아이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내가 장애인이라고 주위 남자아이들이 함부로 나에게 말을 막하고 터치를 하는 것들이, 그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고 수치심이 밀려왔었어요. 그래서 화실을 여러 번 옮겨 다닌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이 나이가 되도록 남자가 무섭고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되어 연애한번 안 해 봤어요. 집에서는 자꾸 선을 보라고 하는데 저는 남자란 자체가 싫어요. 그냥 나 혼자 있는 것이 좋고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해요.

 

부랑아가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같은 장애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느껴서일 것이다. 또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억울함에서 느끼는 분노일 것이다.

 

부랑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수치에게 말을 한다.

그럼 수치는 앞으로 계속 혼자 살아 갈 건가요?

집단원들이 모두 수치가 안쓰럽다는 듯 바라본다.

. 저는 혼자가 편해요. 좀 전에 이야기 했지만 혼자 살며 그림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 저는 좋아요.

그래도 사람이 한번 태어났는데 결혼은 한번 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요? 아픔이 말을 한다.

제가 수치라면 그 한계를 뛰어 넘어 보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이왕 이렇게 태어났으니까요. 수치는 학생 때의 그 일로 두려움이 많이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저라면 한번 그 두려움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넘어 보려 할 것 같아요.

수치가 아픔의 말을 들으며 미간이 구겨진다.

부랑아가 그런 수치를 보며 수치님! 왜 아픔의 이야기가 불편한가요?’

수치가 부랑아의 말에 고개를 떨구며 생각하더니 말을 한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잘 안 돼요. 이왕이란 말을 썼는데 그 말은 좀 저에게 안 와 닫네요. 아픔은 제가 보기에 성격이 활달해 보여요. 그래서 아픔 같으면 그렇게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가 못해요. 그렇게 해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여요. 그리고 저는 무조건 남자 싫어요.

부랑아가 수치의 말에 조용히 묻는다.

지금 수치가 무조건 싫다고 했는데 또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수치가 부랑아의 말에 침묵을 하며 있다가 잠시 집단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한다.

 

제가 이 말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안 하려 했는데 하게 되네요.

사실은 저하고 아주 친한 비장애인인 사촌 언니가 있어요. 이 언니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시거든요. 그래서 저와 잘 통해요. 그런데 이 언니는 대학교 때 만난 사람과 일찍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이 남자는 결혼하고 변변한 직장하나 없이 그저 언니가 그림 그려서 버는 돈으로 안주하며 사는 거여요. 언니가 말했어요. 거기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고 말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남자가 언제부턴가 저녁만 되면 술을 마시고 언니를 구타하며 강제로 부부관계를 요구한데요. 그것도 욕을 하면서요. 그럴 적마다 언니는 치욕스럽고 불쾌하다며 나에게 와서 있곤 했어요. 그런 걸 보며 저는 생각 했어요. 저렇게 멋쟁이인 언니도 결혼 한번 잘 못해서 저런 고생을 하는데 난 평생 결혼 안 한다, 생각했어요.

 

집단원들이 수치의 말을 들으며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젓는다.

 

지랄이 묻는다. 그 언니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올 초에 견디다 못해 합의 이혼 신청을 하고 지금 저와 같이 있어요.

부랑아도 수치의 트라우마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말을 한다.

그런 아마 엄청난 사건들을 수치님이 직, 간접적으로 체험 했으니까 결혼 안한다는 생각이 고착화 될 만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치의 언니 부부와 같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어요. 누구나 자기가 처한 공간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지만 세상은 우리가 모르게 넓고 크다는 것이지요. 또 우리는 몸에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자칫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비장애인들 보다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시야를 가능한 크고, 넓게 가질 필요가 있어요.

 

수치님의 그 고착화 돼 있는 그 생각도 어쩜 한 삶의 일부분이지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일부분의 삶과 고등학교 때의 트라우마로 수치님이 자기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집단원 모두가 부랑아의 멘트에 다시 한 번 공감한다는 눈빛으로 수치를 바라본다.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던 닉네임이 지랄이란 강성태가 말을 한다.

지랄은 뇌성마비 5급으로 문창과를 나와 여기저기 다니며 글을 쓰며 사는 29살의 남자로서 약간 왼 손이 불편하며 왼 발을 전다. 언어의 장애는 없고 키는170정도의 키로 훤칠하다.

 

저는 이런 모임이 처음이라 좀 어색하네요.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들만 모인 자리라 그런지 마음은 편하네요.

모두 지랄의 말에 눈들이 집중을 한다.

 

저는 직업이 없어요. 장애가 있는 몸이라 어디 취직이 안 돼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 강사로 일을 하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 봤지만 면접에서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에이 쌍 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지랄 같은 세상에서 내가 구걸하지 말자, 그때부터 생각하고 시와 글을 쓰며 돌아다니며 살고 있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언제 부턴가 공허해지고 내가 왜 살아야 되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해요. 사는 것이 재미가 없어져요.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부랑아가 묻는다.

 

그럼 지랄은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아버지께서 개인 사업을 하세요. 아버지는 저에게 늘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뭐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보라고요.

 

지랄은 그래도 부모님 복을 많이 가진 것 같네요. 아픔이 말을 한다.

 

지랄이 들으며 아픔을 쳐다보며 그래요. 저는 부모님께 감사하지요. 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가야 되나. 약간 다른 사람보다 불편할 뿐인데! 어느 날부터 내 몸이 싫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몸에 욕을 가끔 해요. 너 병신아 왜 이렇게 지랄같이 태어나 내 인생의 발목을 잡느냔 말이야. 그럴 때는 나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술을 마시고 막 소리를 쳐 봐요.

그런데 그렇게 해봐도 현실에선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괴로워요.

 

부랑아가 말을 한다. 그래도 지랄은 살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네요?

 

. 저는 부모님이 좋으시고 내 형제들도 좋고 하는데 나만 이렇게 장애인이 되어 너무 속상하고 분해요.

 

그럼 지랄은 자신도 똑같이 형제들처럼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지랄이 부랑아의 말을 들으며 멈칙 고개를 떨구며 생각에 잠긴다.

 

바람이 공간을 스쳐간 자리같이 주위가 잔잔해진다.

 

지랄이 이윽고 부랑아에게 말을 한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저는 제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싫다는 거죠. 그것도 약간의 장애정도인데 말이죠.

 

제가 보기에 지랄은 지금 자기 몸의 장애를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 보여요. 지랄의 말대로 다른 장애인들 보다 장애 정도가 경미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도 이런 몸으로 여기까지 살아오며 지랄과 같이 많이 고민하는 시간들이 많았어요. 아까 지랄이 말한 것처럼 현실은 나를 바꿔주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는 제 몸의 장애를 인정하고 내 나름의 삶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지랄이 그 생각에서 계속 머물러 있으며 결국은 우울증이란 병에 자기 자신을 놓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집단원들이 지랄을 숨을 들이 마시며 담담하게 바라본다.

시중은 집단원들을 하나하나 보며 마무리를 하려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만나지요.

다들 감사합니다인사를 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나간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해는 아침에 아름에게 전화를 한다.

아름! 나야. 몇 시 쯤 갈까?

. 언니. 점심 같이 먹게 12시쯤에 와요.

알았어. 이따 보자.

바해는 조금 일찍 갔다.

바해가 일하는 곳을 둘러보다 마침 아름이가 싸이코드라마를 하는 아담한 강당을 본다. 문 유리 틈으로 보는데 아름이 한참 열중을 하며 드라마를 진행하고 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아 아름이가 진행해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름의 능수능란한 진행이 시중의 상담소에서 본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내담자를 다루는 모습이 힘이 넘치고 카리스마까지 보인다.

바해는 아름을 보며 생각한다.

저렇게 멋진 아름이가 자기와 전화를 해 자기가 얼마나 시중을 좋아하며 그것 때문에 걱정하며 우는 것을 생각할 때 아름도 시중을 많이 좋아하고 생각하는 구나를 느낀다.

아름이가 드라마를 다 끝내고 바해를 보며 언니한다.

. 아름이 멋져 보이는데. 밖에서 본 아름이가 아니야?

아름은 쑥스러워 하며 언니는’ 입가에 미소를 띤다.

언니 점심 먹으러 가요?

아름은 병원 식당에 가지 않고 바해와 프랑스식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간다.

식당 이름이 몽마르뜨 언덕이다.

파스텔톤의 테이블과 통 유리 너머로 햇살이 뿜어져 들어오는 안의 풍경은 마치 날 좋은 곳으로 소풍 온 것 같은 깔끔하고 화사한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아름이가 메뉴를 보더니 런치 코스요리를 주문한다.

바해는 메뉴 판에 가격을 보고 야! 점심 한 끼인데 너무 비싸다.

아름은 바해를 보며 미소 지으며 말을 한다.

언닌~ 언니하고 처음 밥 먹는 건데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나 그 정도 실력은 된다구!

물론 오빠하고는 한 번도 이런 곳은 안 와 봤지만.

그러며 오빠한테는 비밀! 손가락을 입에 갔다대며 쉬이.

바해는 그런 아름의 말과 행동에 같은 여자이지만 귀여워한다.

음식은 수프부터 훈제 연어, 등심과 갖가지 야채 등 정말 코스별로 먹을 만큼씩 다양하게 나온다. 마치 우리가 하늘이 파란 몽마르트 언덕에서 핑크색 식탁보를 펼쳐놓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먹기 좋은 음식만을 골라 먹으며 즐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아름이가 음식을 먹으며 언니 부르며 말을 한다.

저번에 오빠와 두물머리 가서 좋았지?

바해는 아름의 말에 조금 주춤하며 말을 한다.

. 좋았지. 아름이가 있었으면 더 좋았었을 텐데.

그러게. 언니. 나도 아쉬워.  말을 하며 아름은 시무룩해 한다.

아참. 그날 선은 잘 봤어?

언니. 나 그것 때문에 요새 생각이 많아.

아버지는 자꾸 그 사람하고 결혼하라고 다그치시는데 미치겠어!

아름아! 그럼 시중에게 말을 하고 해결책을 둘이 찾아보는 게 낳지 않을까?

언니. 나는 오빠가 당당하게 우리 부모님을 만나 줬으면 하는데 아직도 저렇게 그냥 있으니까. 나는 조금 오빠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오빠에게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바해가 음식을 먹으며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이야기를 한다.

너하고 시중이 마치 평행선상에 있는 것 같아! 둘이 사랑하는데 말이야.

아름은 눈을 크게 뜨며 왜 언니, 무슨 말이야!

내가 너네 둘 사이에서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왜 언니 오빠가 무슨 말 했어?

두물머리 갔을 때 말하더라. 자기가 너를 좋아하는데 너의 부모님을 찾아 뵐 용기가 안 난다고. 자기 몸이 그래서 용기가 안 난다고 말이야!

아름은 바해의 말을 들으며 말없이 어깨를 느려 뜨린다.

언니! 나는 어떻게 해야 돼! 아름은 음식을 먹다 눈물이 글썽거린다.

바해도 그런 아름을 보며 말을 한다.

아름아! 내가 생각하기엔 시중은 자기 몸의 트라우마 때문에 아마 너의 부모님을 못 찾아 볼 것 같이 보이더라. 그러니까 니가 정말 시중하고 결혼할 생각이 있으며 니가 먼저 행동을 해야 될 것 같아 보이더라.

아름은 바해의 말을 들으며 속상하다는 듯 훌쩍거린다.

언니 남자가 그렇게 용기가 없어서 어떻게! 뭐 장애인이 자기 혼자야! 자기 여자를 지키려면 그만한 모험은 감수해야 되는 것 아니야?

바해는 아름의 말을 들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