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에서 시중은 장애인들을 데리고 한 달 째 집단상담을 하고 있다.
오늘도 장애인 내담자 여섯 명과 함께 집단에 몰입하고 있다.
23살인 소아마비로 양쪽에 크러치를 집고 다니는 닉네임을 아픔으로 쓰고 있는 리아가 말을 한다. 리아는 키가 155정도에 얼굴은 갸름하고 통통한 편으로 장애만 아니면 평범한 아가씨다.
집단원들은 아픔에게 집중하고 있다.
저는 소아마비 장애로 인하여 내 삶의 제약되는 일이 많아 살아가는데 참 힘이 들어요. 저는 지금 대학 4학년 졸업반인데 친구들은 취업준비를 한다고 다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내는데 저는 제 몸이 소아마비라 직업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속상해요. 같은 장애인이라도 크러치를 집고 안집고의 차이가 많은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크러치를 집은 장애인이라 면접시험을 보러 나가면 면접관들이 내 외모만 보고 고개를 저어요. 어떤 면접관들은 노골적으로 그런 몸으로 빠리빠리하게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완전 실망해서 내가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난 거지 생각하며 화장실가서 울기도 많이 울어요.
듣고 있던 집단 원들이 아픔의 말에 다 공감 한다는 듯 고개를 떨군다.
나는 생각해 봐요.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나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내 마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좋게 보려고 하는데 왜 사람들은 나를 자기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내가 소아마비로 발만 좀 불편하지 다른 곳은 다 멀쩡하잖아요. 그런데 왜 나를 아메바처럼 볼까요.
아픔은 말을 하며 눈물이 눈가에 고여 흘러내린다.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이 누구의 잘 못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를 보는 주위의 시선들이 나를 절망으로 몰고 가요. 내가 더 정신을 차려 나의 이런 몸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려고 해도 주위 환경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때가 많아요.
리더인 부랑아는 아픔의 눈을 보며 같이 공감한다는 듯 눈을 감았다 뜬다.
부랑아가 말을 한다.
아픔의 힘듦이 느껴지네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나름대로 혼자 슬퍼하고 속이 많이 상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런 몸으로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번뇌가 저를 괴롭혔거든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다 죽어가는 것은 똑같은데 누구는 비장애인으로 살아가고 누구는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불공평 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대꾸를 많이 했어요.
아픔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보았어요.
아픔은 그래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네요. 그 정도 사정이 되면 대개가 자기 자신까지 원망하며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아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앞으로 나가보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감사하고 보기가 좋아요.
집단원들이 다시 한 번 아픔을 보며 고개를 움직인다.
잠시 공간속의 침묵이 흐른다.
이윽고 그 침묵을 깨고 조용히 수치라는 닉네임을 붙인 올해 30살인 차형미가 말을 한다. 형미는 뇌성마비 5급으로 오른 쪽 다리와 팔이 부자연스럽다.
6살 때 난간에서 떨어져 운동신경을 건드려 약간씩 불편하다. 그래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며 무명 화가로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키가 크고 언뜻 보기에는 장애인이라는 표시가 안 난다.
저는 어릴 때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어요. 저의 성격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친한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제가 장애인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집에서 혼자 그림 그리기를 하며 지냈어요. 제 몸이 이래서 친구들과 어울리어 뛰어 노는 것들이 싫었어요. 부모님께서는 그런 저를 아시고 저에게 그림 도구를 많이 사주셨지요. 그래서 항상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지냈어요. 그렇게 살면서 고등학교 다닐 때 일이었어요. 학원에서 아이들 서너 명이 화실에서 뎃생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남자 아이가 갑자기 다가와 나보고 니가 그렇게 도도해! 말이 없다고 하며 호기심이 생긴다고 하더니 누드를 그리자고 하더니 저보고 옷을 벗으라고 하는 것이어요. 안 벗으면 자기가 벗기겠다고 종용하는 것이어요. 그때 난 갑자기 공포와 수치심이 밀려와 안절부절 하다가 그곳에서 뿌리치며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때 이후로 저는 남자가 무서웠고 밤에는 혼자 다니는 것이 겁이 났어요. 언제, 어느 때 그 남자아이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내가 장애인이라고 주위 남자아이들이 함부로 나에게 말을 막하고 터치를 하는 것들이, 그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고 수치심이 밀려왔었어요. 그래서 화실을 여러 번 옮겨 다닌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이 나이가 되도록 남자가 무섭고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되어 연애한번 안 해 봤어요. 집에서는 자꾸 선을 보라고 하는데 저는 남자란 자체가 싫어요. 그냥 나 혼자 있는 것이 좋고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해요.
부랑아가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같은 장애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느껴서일 것이다. 또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억울함에서 느끼는 분노일 것이다.
부랑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수치에게 말을 한다.
그럼 수치는 앞으로 계속 혼자 살아 갈 건가요?
집단원들이 모두 수치가 안쓰럽다는 듯 바라본다.
네. 저는 혼자가 편해요. 좀 전에 이야기 했지만 혼자 살며 그림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 저는 좋아요.
그래도 사람이 한번 태어났는데 결혼은 한번 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요? 아픔이 말을 한다.
제가 수치라면 그 한계를 뛰어 넘어 보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이왕 이렇게 태어났으니까요. 수치는 학생 때의 그 일로 두려움이 많이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저라면 한번 그 두려움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넘어 보려 할 것 같아요.
수치가 아픔의 말을 들으며 미간이 구겨진다.
부랑아가 그런 수치를 보며 ‘수치님! 왜 아픔의 이야기가 불편한가요?’
수치가 부랑아의 말에 고개를 떨구며 생각하더니 말을 한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잘 안 돼요. 이왕이란 말을 썼는데 그 말은 좀 저에게 안 와 닫네요. 아픔은 제가 보기에 성격이 활달해 보여요. 그래서 아픔 같으면 그렇게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가 못해요. 그렇게 해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여요. 그리고 저는 무조건 남자 싫어요.
부랑아가 수치의 말에 조용히 묻는다.
지금 수치가 무조건 싫다고 했는데 또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수치가 부랑아의 말에 침묵을 하며 있다가 잠시 집단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한다.
제가 이 말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안 하려 했는데 하게 되네요.
사실은 저하고 아주 친한 비장애인인 사촌 언니가 있어요. 이 언니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시거든요. 그래서 저와 잘 통해요. 그런데 이 언니는 대학교 때 만난 사람과 일찍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이 남자는 결혼하고 변변한 직장하나 없이 그저 언니가 그림 그려서 버는 돈으로 안주하며 사는 거여요. 언니가 말했어요. 거기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고 말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남자가 언제부턴가 저녁만 되면 술을 마시고 언니를 구타하며 강제로 부부관계를 요구한데요. 그것도 욕을 하면서요. 그럴 적마다 언니는 치욕스럽고 불쾌하다며 나에게 와서 있곤 했어요. 그런 걸 보며 저는 생각 했어요. 저렇게 멋쟁이인 언니도 결혼 한번 잘 못해서 저런 고생을 하는데 난 평생 결혼 안 한다, 생각했어요.
집단원들이 수치의 말을 들으며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젓는다.
지랄이 묻는다. 그 언니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올 초에 견디다 못해 합의 이혼 신청을 하고 지금 저와 같이 있어요.
부랑아도 수치의 트라우마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말을 한다.
그런 아마 엄청난 사건들을 수치님이 직, 간접적으로 체험 했으니까 결혼 안한다는 생각이 고착화 될 만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치의 언니 부부와 같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어요. 누구나 자기가 처한 공간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지만 세상은 우리가 모르게 넓고 크다는 것이지요. 또 우리는 몸에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자칫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비장애인들 보다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시야를 가능한 크고, 넓게 가질 필요가 있어요.
수치님의 그 고착화 돼 있는 그 생각도 어쩜 한 삶의 일부분이지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일부분의 삶과 고등학교 때의 트라우마로 수치님이 자기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집단원 모두가 부랑아의 멘트에 다시 한 번 공감한다는 눈빛으로 수치를 바라본다.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던 닉네임이 지랄이란 강성태가 말을 한다.
지랄은 뇌성마비 5급으로 문창과를 나와 여기저기 다니며 글을 쓰며 사는 29살의 남자로서 약간 왼 손이 불편하며 왼 발을 전다. 언어의 장애는 없고 키는170정도의 키로 훤칠하다.
저는 이런 모임이 처음이라 좀 어색하네요.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들만 모인 자리라 그런지 마음은 편하네요.
모두 지랄의 말에 눈들이 집중을 한다.
저는 직업이 없어요. 장애가 있는 몸이라 어디 취직이 안 돼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 강사로 일을 하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 봤지만 면접에서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에이 쌍 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지랄 같은 세상에서 내가 구걸하지 말자, 그때부터 생각하고 시와 글을 쓰며 돌아다니며 살고 있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언제 부턴가 공허해지고 내가 왜 살아야 되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해요. 사는 것이 재미가 없어져요.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부랑아가 묻는다.
그럼 지랄은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아버지께서 개인 사업을 하세요. 아버지는 저에게 늘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뭐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보라고요.
지랄은 그래도 부모님 복을 많이 가진 것 같네요. 아픔이 말을 한다.
지랄이 들으며 아픔을 쳐다보며 그래요. 저는 부모님께 감사하지요. 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가야 되나. 약간 다른 사람보다 불편할 뿐인데! 어느 날부터 내 몸이 싫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몸에 욕을 가끔 해요. 너 병신아 왜 이렇게 지랄같이 태어나 내 인생의 발목을 잡느냔 말이야. 그럴 때는 나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술을 마시고 막 소리를 쳐 봐요.
그런데 그렇게 해봐도 현실에선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괴로워요.
부랑아가 말을 한다. 그래도 지랄은 살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네요?
네. 저는 부모님이 좋으시고 내 형제들도 좋고 하는데 나만 이렇게 장애인이 되어 너무 속상하고 분해요.
그럼 지랄은 자신도 똑같이 형제들처럼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지랄이 부랑아의 말을 들으며 멈칙 고개를 떨구며 생각에 잠긴다.
바람이 공간을 스쳐간 자리같이 주위가 잔잔해진다.
지랄이 이윽고 부랑아에게 말을 한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저는 제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싫다는 거죠. 그것도 약간의 장애정도인데 말이죠.
제가 보기에 지랄은 지금 자기 몸의 장애를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 보여요. 지랄의 말대로 다른 장애인들 보다 장애 정도가 경미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도 이런 몸으로 여기까지 살아오며 지랄과 같이 많이 고민하는 시간들이 많았어요. 아까 지랄이 말한 것처럼 현실은 나를 바꿔주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는 제 몸의 장애를 인정하고 내 나름의 삶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지랄이 그 생각에서 계속 머물러 있으며 결국은 우울증이란 병에 자기 자신을 놓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집단원들이 지랄을 숨을 들이 마시며 담담하게 바라본다.
시중은 집단원들을 하나하나 보며 마무리를 하려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만나지요.
다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나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