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 휴가를 가지 않았다.

그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난 3~4일 급 콧바람 계획을 두 가지 세우고는 마음이 붕붕 뜬다.



그러고는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나는 왜 길바닥을 미친듯이 걸어다닐 때가 좋을까?



봄에 책을 펼칠 때는 모지? 싶었다. 그 때는 이북이었다.

여행책을 쓰려 중국에 갔다 비자를 안받아가서 돌아왔다는 일화가 책의 시작이었다. 책을 바로 덮었다.



12월. 언니가 다 읽었다며 나에게 책을 주었다. 이 책은 읽을 운명이군. 이건 읽어줘야해.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거나, 철저히 혼자가 된다거나,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떠나야한다거나, 진탕 술을 마셔야 된다거나 하는 것들.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오래 내면화된 것들이라 하지 않고 살고 있으면 때로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런저런 합리화를 해 가면서 결국은 그것을 하고야 만다.”
여행의 이유,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 부터 달아나기. 55쪽

아~! 내가 가끔씩 미친 사람처럼 걸어야했던 이유를 찾았다. 이 말을 듣고 싶어서 책을 펼쳤나보다. 누구는 그래서. 술을 마시는구나, 나에게 계속 말을 하러 오는 그 분은 그래서이구나. 살려고 하는 행동이었구나.



현재를 살자 마음먹지만 과거의 거기에서 웅크리고 있는 내가 있고, 오지 않은 날을 생각하며 걱정하고 아쉬워하는 내가 있다. 현재를 살기가 쉽지가 않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의 이유 82쪽.

여행 계획을 지금 이렇게 과하게 세우고 하려는 것도 이 때문인가 보다. 현재를 살고 싶은데 잘 안되어서 그런거구나.



연말이다. 교사로 평일 낮 시간을 살아가며 짐을 쌓아야 하는 때이다. 사랑과 정성을 듬뿍 쏟았던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또 낯선 공간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행을 가는 것이 회피라면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더 열심히 해야지 마음 먹어야 하는 것?



온전히 현재를, 나를 바라고 싶어서 여행을 하는가보다.

나의 여행을 생각해보게 된 귀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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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9-12-25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방학이군요. 하루살이님, 아이들과도 떨어져 훌훌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