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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 여성 학자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 개정판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자식 농사 성공은 무엇으로 좌우될까?
부모라는 것은 무엇일까?
낳아 놓는다고 무조건 부모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 반 교실 아이들을 보며 많이 느낀다. 아이들은 부모의 부속물도 아니도 더불어 원수도 아니다.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하루에 100번도 넘게 다짐한다.
이 책을 쓴 분은 직업주부이다 다시 전업주부이다 다시 늦게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더불어 아이들이 학교에 갈 즈음부터는 다시 직장과 공부로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간다. 근데 그 아들들이 다 서울대에 갔단다. 사실 서울대에 간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우리 똥땡이들이 아직 많이 어려서인지 공부잘하는 자식에 대해서는 아무 감흥이 없다. 내가 바라는 우리 똥땡이들은 건강하고 자신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이 넘쳐서 다른 사람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이 작가는 굉장히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더불어 아이들을 존중할 줄 알고 인격체로 대하고자 노력했다. 이해하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굉장히 잘 파악한 편이다. 난 잘 못한다. 쩝.. 아쉽다.
물론 굉장히 독특한 방법을 몇가지 쓰고 계시고, 교사를 굉장히 싫어하시어서 몇몇 글들은 읽으며 마음이 쓰렸지만 그거야 학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느낄 수있고 실제로 그러할 것 같다.
나같이 시골학교에 다닌 어른도 치마바람을 느낄 정도의 시대였으니까.
울엄마는 학교에 안왔다. 소키우시느라 바빠서. 소풍갈 때도 생각해보면 엄마들이 따라와서 선생님들 식사 대접하고 그랬었다. 울엄마는 1학년 때부터 한 번도 안오셨다. 오빠랑 언니가 어련히 알아서 먹이겠거니하고. 그래도 선생님들이 날 그리 구박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딴 생각이 들어버렸다. 쩝.. 이 아줌마는 선생을 너무 싫어한다. 다도 그런 선생인가.......휴..
믿는 만큼 자란다는 것은 교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선생도 사람인지라 나랑 잘 맞는 아이가 있고 나랑 잘 맞지 않는 아이가 있다. 볼수록 그냥 좋은 아이도 있다. 한 예로 과학교담을 할 때 수 많은 아이들중 은서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워낙 참하기도 했고, 우리 따님과 이름이 같아서 반 농담으루 "우리 은서, 우리 은서"했었다. 결과는 과학 점수가 굉장히 상승.. ^^a
우리 아이들을 나는 얼마나 믿고 있을까? 읽는 동안 가끔 반성도 하게 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었다. 음.. 자녀 교육서 중 기중 마음에 들었다. 서울대 이야기가 너무 자주 나와 불편하긴 했지만.
--> 글 속에서
* 아이들 마음의 구김살은 아이들이 만드는 게 아니다.
* 아이들은 부모가 보지 않는 사이에도 자라는 버이다. 그러니 부모라고 해서 어떻게 아이디ㅡㄹ을 속속들이 안다고 큰 소리칠 수 있으랴.
* 엄마 노릇에 정답이 없듯이 아빠 노릇에도 정답은 없다. 다만 아빠라는 사람을 아이들이 잘 이해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적할 것 같다.
* 아이가 미워서 매일 청소를 시켜도 좋고 벌을 세워도 좋다. 사람이란 한 번 감정이 나면 아주 쉽사리 통제 불가능한 상태까지 굴러가는ㄱ ㅔ 보통이나까. 그러나 천직이니 성직이니 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로 거창하게 수식할 필요도 없이, 그냥 직업으로써 교사를 택한 사람이라 해도 이처람 자기 직업을 모독할 수는 없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면 적어도 그것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아이가 가르침을 원하면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 오래 알고 지내는 어떤 시인은 그런 걸 바로 "결핍의 미학'이라고 한다며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일침을 가했다. 글쎄. 정말 그럴까. 누구나 다 제 시력만큼의 세상을 보는 법이니까...
*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단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이다.
* 엄마라는 이름에 나의 인생을 온통 옮겨놓음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느끼게 하지 않았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