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한 불행 - 부서지는 생의 조각으로 쌓아 올린 단단한 평온
김설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설 작가의 생활 에세이 '다행한 불행'은 작가의 '망한 결혼'을 솔직담백하게 그려낸 책입니다.

처음 읽어가면서는 에세이 형식을 차용한 소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가의 삶은 꽤나 극적이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결혼 1년 여 만에 딸 아이를 낳았지만 바로 이혼.. 그리고 20년 간 이어진 싱글맘으로서의 고군분투... 어느 순간 그녀 가족의 곁을 계속 맴돌던 전 남편과의 재결합.. 그리고 약 5년.....

에세이의 주된 내용은 재결합 이후 남편과의 새로운 5년 간의 삶에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녀는 섬세하지만 까칠하고 모든 일에 이유를 찾는 성격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무던하지만 한편 무심하고, 또한 상당히 충동적인 인물입니다. 이혼의 이유는 남편의 도박 중독 때문이었고 재결합 이후엔 남편의 알콜 중독으로 의심되는 증세로 여전히 갈등 중이죠..

이런 전제만 본다면 사실 작가의 결혼 생활은 망한 것이고, 삶 자체도 그닥 행복하다고 말할 순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전제와 초반 글의 전개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소소한 반전이 계속 에세이 전체로 이어집니다.. 갈등이 어느 순간 이해로 바뀌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갑니다. 긴 이혼의 과정이 있었지만 재결합 이후 이 두 부부의 삶은 행복하게 살아온 여느 부부 들의 삶과 그리 다름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성숙한 결혼 생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소 심각한 생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에세이지만 글 자체가 상당히 위트 있습니다. 그녀의 자조적인 셀프디스를 읽다 보면 분명 혀를 차야 할 상황임에도 어느새 미소를 짓곤 하는 제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원 하나하나가 부정으로 시작하지만 항상 긍정적 자세로 마무리 되어집니다. 당연히 재미있게 읽힐 수 밖에 없는 에세이입니다..


작가의 표현처럼 이 세상은 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살러 왔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고생과 불행이 시작됩니다. 삶은 잠시 관광이나 소풍 온 것처럼 느껴져야 합니다. 그래야 매순간 닥치는 고난이 잠시 후 지나갈 에피소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통해 한없는 평온과 긍정의 철학을 터득하게 된 작가의 마인드가 부럽더군요.. 잘살고 있든, 아님 매일 다투고 있든, 주변의 부부 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에세이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치다 에이지의 장편 소설 미드나잇 스완,,, 작가가 영화감독이 본업이다 보니 당연 영화로 제작되었고 44회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9관왕을 휩쓴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초난강으로 잘 알려진 스맙 출신의 배우 쿠사나기 츠요시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특이하게도 그가 맡은 나기사 역은 성전환 수술을 앞둔 트랜스젠더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즉, 성소수자 역할이죠..


아직 영화를 못봤지만 꼭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짜여진 소설이었습니다.

홀엄마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중학생 소녀 이치카... 그녀는 집안 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 집안의 결정에 따라 도쿄에 와 있던 외사촌 오빠(?)인 나기사의 집에 억지로 떠맡겨지게 됩니다. 소위 게이빠에서 트랜스젠더 쇼를 하며 성전환 수술을 준비하던 나기사에게 이치카는 짐이나 다름 없었죠. 이치카 또한 어른 들에 대한 기대를 버린지 오래입니다.

이들의 동거는 처음부터 삐걱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치카가 평소 열망하던 발레를 다시 배우게 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극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합니다. 이치카의 재능을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나기사에게 싹트게 되고 이는 평소 여자의 마음을 가졌기에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기사의 능을 일깨웁니다.


물론 서사 자체가 그대로 해피엔딩으로 흘러가 나기사와 이치카는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미드나잇 스완이라는 뭔가 슬픈 존재로부터 유추되 듯 이 이야기는 끝내 비극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잉태하죠...

영화화된 작품이 소설로 옮겨진만큼 기본적인 서사는 재미있었지만 전개가 조금은 빠르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나기사와 이치카가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조금은 빠르게 축약되어 있어 살짝 아쉽기도 했구요. 아마도 영화를 보면서 그 느낌을 보완하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성소수자인 나기사를 편견 없이 보고 끝내 마음을 열어 그의 마지막 길에 삶의 보람을 불어주었던 이치카...

문제아였던 이치카의 재능을 알아보고 엄마의 마음으로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나기사...

세상에서 환영 받지 못하던 두 존재의 합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진 소설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인의 세계사 - 잘난 척 인문학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이상화 지음 / 노마드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잘난척 하기 위한 것이 책을 읽는 주목적은 아니지만 가끔은 잘난척 할 수 있는 기회를 종종 맞기도 합니다. 책 제목부터 도발적이고 의미 심장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악인의 세계사'.... 현실은 비극이었겠지만 역사가 되면 흥미가 된다는 악인 들과 주로 종교, 극우 단체 들의 잔혹한 짓거리와 최후를 상세히 알 수 있어서 좋은 인문학 서적이었습니다.


대략 목차만 보더라도 나쁜 넘(?)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책에도 일부 언급되지만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평소엔 모범적인 가장, 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잘못된 제도나 종교, 정치에 휩싸였을 때 너무나 평범하게도 앞장서 악을 실천한다는 이론이죠.. 나찌즘 부역자들이 그랬고, 교회의 허락을 받은 노예상인들이나 극우 단체인 KKK단 들이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자행한 짓은 절대적, 상대적 기준으로 보더라도 분명히 인류 역사에 남는 악한 일 들입니다..

한때는 멀쩡하게 행동했기에 각 국의 지도자 위치에까지 올랐던 이들이 흑화되는 과정이나 잘못된 정치, 종교적 신념에 물들어 자신과 다른 인종이나 종교, 성별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악인들의 모습을 바라 보면 묘하게도 현재의 우리 사회와도 오버랩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정적에 대한 탄압, 성적 지향성이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 표출, 묻지마 살인 등등... 어느 사이에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곳에도 악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분명 어느 한쪽에선 칭찬도 받고 모범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겠지만 그들이 다름을 인식하는 방법은 혐오와 차별일 뿐입니다.

악의 평범성은 역사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반복되는 것일까요..

현재를 단순히 선악의 차원으로만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때론 국익이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악'이 구현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증오에 의한 노골적 살인이나 폭력행위, 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분명히 인정할 수 있는 악의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나부터가 그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다시 생각해 보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외로 악은 '평범한' 곳에서부터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
홍선기 지음 / 모모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홍선기 작가의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는 현 세대의 인스턴트식 러브를 그려낸 장편 소설입니다. 근래 유행하는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만남, 갈등, 이별을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특이하게 한국 작가의 소설임에도 배경이나 주인공은 일본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작품이죠..

작가는 사업가를 겸하고 있는데 뉴욕 타임 스퀘어 광고판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광고를 게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소설 속에서도 나름 의미를 갖고 등장하게 됩니다.


케이시는 20대 나이에 재산 1조원을 갖게 된 성공한 벤처 사업가입니다. 그러나 어려서 함께 입양되었던 여동생을 사고 내지는 자살로 잃은 과거가 있기에 늘 가슴 속에 공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후배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가즈키는 평범한 유학생 출신의 회계사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반듯한 인물이죠..

이들은 데이팅앱을 통해 각자의 연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소모성, 일회성 만남만을 거듭하게 되고 점점 마음이 피폐해지는 케이시와 달리 가즈키는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됩니다. 물론 가즈키의 연인 또한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재력과 키크고 잘생긴 용모 등 모든 것을 가진 케이시이고 주변엔 능력 있는 미녀들로 넘치지만 좀체 자신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해줄 여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가즈키는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하츠네를 만나 이별의 위기를 극복하고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 연인 들에게 버림 받고 스스로 죽음을 결심하게 되는 케이시.. 뜻밖에도 그를 구하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정형화된 틀과 결론을 지향하며 나아가는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삶이 오히려 불행할 수도 있고, 평범한 삶이 더욱 가치 있을 경우가 우리네 인생사엔 그야말로 부지기수입니다..

누구나 뛰어난 용모와 거대한 부를 꿈꾸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실제 이를 이뤄낸 그들의 삶은 범인 들의 시각에선 너무나 행복하고 멋져 보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들의 삶은 행복하기만 할까요? 한계효용의 법칙은 경제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역시나 작용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삶에 더욱 깊이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여자가 아닙니까? - 성x인종x계급의 미국사
벨 훅스 지음, 노지양 옮김, 김보명 해제 / 동녘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미국 사회에서 가장 큰 공포는 태어나 보니 흑인이었고 그것도 흑인 여자였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노예제 때부터 이어져온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성 차별에까지 흑인 여성 들은 고스란히 노출되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참혹한 상황이었을 것이라 짐작은 했었지만 이 책을 보니 분노를 넘어 슬픔까지 느껴지더군요..

1952년 생 작가인 벨훅스는 여전히 아파르트헤이트가 진행 중이던 미국 켄터키주 흑인 분리 구역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입니다. 20세기 중후반을 살아갔음에도 그녀 역시 인종, 여성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노예제는 흑인이 인간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교묘하게 성경의 구절을 들어 흑인이 열등함을 내세웠던 백인 지배자들.. 나중엔 오히려 백인 여성보다 참정권을 먼저 획득했던 것이 흑인 남성 들입니다. 이러할진데 흑인 여성 들의 지위는 가장 밑바닥 계급에 다름 아니었죠.. 백인들뿐 아니라 같은 인종인 흑인 남성 들로부터도 차별 당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노예 해방이 된 이후 흑인 여성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는 가모장적이라든지 성적으로 헤푼 인종이라는 오명이었습니다. 이 같은 이미지 형성에는 같은 편이었어야 할 백인 여성 들과 흑인 남성들까지 합세했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입니다. 결국 사회 가장 아래 위치에 놓여져 온갖 차별과 욕받이가 되어야 할 대상이 바로 흑인 여성 들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흑인 여성들이 여성 인권을 주장할 때 많은 이들은 의아해 합니다. 그들을 덧씌우고 있는 인종 차별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흑인 여성이 당당히 내뱉을 수 있는 말이 바로 '난 여자가 아닙니까?'라는 문구 되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자유와 인권을 대표하는 나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라이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는게 있듯 여전히 미국 내에서도 차별과 혐오를 당연시 하고 이의 지속화를 꾀하는 종교나 세력 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밑바닥에 놓인 '흑인 여성'의 자각과 투쟁은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그들이 자유로와질 때 진정 만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니까요...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 또한 상당히 많은 좋은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