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 - 민주화 운동가 이오순 평전
임수정 지음 / 밥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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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이오순이란 개인의 일대기를 그렸다기 보다는 해방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온 야만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왔던 우리 민중의 삶을 그려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오순... 대부분의 한국인에겐 참으로 낯선 이름입니다. 80년 대 대학생이었던 이들에겐 어느 정도 알려진 이름인 '송광영 열사'의 어머니이며, 그 자신이 아들 못지 않은 투사로 살아가다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평전'이란 이름 하에 그녀의 삶이 책으로까지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개인적 의구심을 말끔히 지워 버린 것이 이 책을 읽고 느낀 바입니다.

워낙 많은 학생, 노동자들이 맞아 죽고, 고문 당해 죽고, 의문사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던 시기입니다. 시위에 참가했단 이유로 경찰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것이 당연했고, 그렇게 선 채로 죽음을 맞이했던 이가 명지대 신입생이었던 강경대였습니다.

시대는 이오순 여사를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어머니로만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왜 아들이 죽음을,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형태의 분신 자살을 선택해야했는지 그녀는 생애 끝까지 반추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얻게 된 결론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가장 선두에 서서...


이 책에는 참으로 힘들었던 우리 민중 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상경해 돗자리 장수를 하며 가족들을 건사해야 했던 이오순,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피복 공장에 나가야 했던 그녀의 딸, 정말 간신히 교육의 끝자락을 잡을 수 있었던 송광영을 비롯한 아들들까지 피폐했던 우리의 역사가 그녀 가족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당시의 민주화 항쟁을 폄하하고 심지어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이들은 당시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작금의 우리의 삶이 가능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오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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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유령들
M. L. 리오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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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유령들... 제목부터 일단 근사한 느낌입니다. 역대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꼽히는 셰익스피어를 제목의 일부로 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의 배경은 예술 대학, 특히 연극을 전공하는 학교이며 주요 등장 인물 또한 배우를 꿈꾸는 학생 들입니다. 또한 소설 곳곳에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온 대사들이 높은 빈도로 등장합니다.

일단 작가인 M.L. 리오부터가 원래 직업이 배우였던 분입니다. 소설의 전개 또한 연극식으로 전개되며 1막으로 시작되어 5막으로 종결됩니다. 주인공들의 이름부터가 또한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옴직한 고전적 이름들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밝혀가는 과정에서 치열한 심리전이 펼쳐집니다.

참고로 이 학교는 무사히 졸업할 경우 공연 예술계에 탄탄한 앞날이 보장되는 명문학교입니다. 그렇지만 학년이 상승할수록 재능에 한계를 보이는 학생들을 강제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구조이기에 서로간의 경쟁 의식과 열패감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죠. 즉, 남을 밀어내야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 이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누군가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하게 쌓이는 셈이죠..

조금씩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연극처럼 이 소설 또한 한번에 휙 몰아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적절한 반전도 존재하고, 긴박한 장면도 존재하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재미는 차근차근 쌓아가는 빌드업 및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하는 인물 들의 추악한 실체를 보는 것이죠.

어쨌든 제대로 잘 쓰여진 미스터리물입니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 살인이 굉장히 노골적이고 바로 범인이 드러나는 구조라면 이 소설은 조금 더 숨겨진 채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꽤나 독특하게 진행되는 소설입니다. 영상화까지 된다니 더욱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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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사양 -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다자이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더스토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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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많은 일본인들이 일본 최고의 작가로 꼽는 인물입니다. 언제 조사하더라도 최소한 3위 안에 드는 작가죠.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동경제대에 진학했지만 사회주의에 심취했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드라마틱한 생애 또한 많은 이들의 감수성을 제대로 자극하죠..

소설 사양은 그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인간실격에 살짝 가려져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작가의 작품 중 재미 측면에서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양은 저무는 해를 가리키는 말이죠.. 한국에선 '사양세'에 접어들었다는 관용어로도 많이 쓰입니다.. 제목 그대로 태평양 전쟁 이후 몰락한 어느 일본 화족(귀족) 집안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소설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폐번치현을 단행한 일본 정부는 그간 각 번을 지배하던 영주나 신정부 건설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유럽식 작위제를 본딴 화족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황족 다음의 귀족제가 도입된 것이죠,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화족제는 폐지되고 수많은 이들이 허울뿐인 전직 귀족들로 전락합니다.

소설은 여전히 귀족의 품위가 남아 있는 어머니, 화자인 딸 가즈코, 아편 중독 등으로 방황하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남동생 나오지, 나오지의 스승이면서 가즈코의 애정 대상이 되는 통속소설가 우에하라 등 4명의 이야기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을 연상케 하는 작품입니다. 제대로 몰락했음에도, 끝까지 알량한 귀족의 품격을 내세우고자 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만 벚꽃동산보다 훨씬 비극적이고 어두운 느낌의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한참 전에 이미 읽어 봤던 소설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또다른 느낌과 해석으로 다가오네요.

초판본 디자인이 주는 매력에 읽다가도 종종 표지를 다시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다소 공허하게 들리지만 소설 곳곳에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소설 속 그 누구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사안들이고 심지어 다자이 오사무 본인 또한 끝내 닿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끝내야 했었습니다.

가즈코는 우에하라의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정신 승리하며 혼자 살아 남지만 솔직히 '아무 의미 없다'란 것이 이 소설 전반을 흐르는 기조일 것입니다. 패전 이후 일본인들이 뼈저리게 느꼈을 좌절감이 이 소설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역시나 위대한 작가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 여운을 남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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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조각들
연여름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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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조각들.. 연여름 작가의 장편 SF 소설입니다. 연작가는 장르 문학에서 일정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작가이며, 이 소설은 2025 부산국제영화제 스토리마켓 공식 선정작으로 뽑히기도 했네요. 중쇄 찍기 어려운 요즘 출판환경 하에서 출간 전임에도 이미 중쇄를 확정지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인류가 행성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점의 미래 사회가 이 소설의 배경입니다. 당연히 인간의 고장난 신체 또한 인공 장기 등으로 대체될 수 있죠..

화자이자 관찰자격인 뤽셀레는 저명한 화가인 소카의 집을 청소하는 직업을 얻게 됩니다. 뤽셀레의 전직은 행성 이동 우주선을 조종하는 파일럿이었지만 사고로 모든 사물이 흑백으로만 보이는 증세를 앓고 있고 그로 인해 연인 등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었죠.

소카는 그리는 그림마다 고가에 낙찰되는 초일류화가였지만 선천적으로 폐가 약해 청정화된 집을 제외하곤 맨 몸 외출이 불가한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폐를 인공 장기로 대체할 경우 화가로서의 자격이 박탈되기에 이를 숙명처럼 여기고 지내고 있었죠.

그의 삶에 뤽셀레를 비롯 여러 인물 들이 자그마한 파동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화가로서의 자긍심과 막대한 부를 포기하고 마음껏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얻을 것인지 소카는 끝내 선택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죠..


작가가 그려낸 세계관이 꽤나 핍진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서사 진행도 꽤나 빠른 편이기에 상당히 몰입해서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만일 소카의 입장에 나 자신이 위치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은근스레 대입까지 되더군요.

소설의 제목은 천재 화가 소카가 그려내는 작품을 상징합니다. 흑백증을 앓고 있는 뤽셀레의 입장에선 그 가치 판단이 불가하지만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모든 이들에겐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는 불후의 예술 작품들이죠. 소카가 그리는 그림은 그 자체로 인류에 대한 봉사이지만 소카의 개인적 삶을 극도로 제약하는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은 은근 철학적이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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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지음 / 문이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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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방서현 작가, 이전에 '좀비시대'란 장편 소설로 만나 뵈었던 분입니다. 대기업의 기만과 착취에 맞서 싸우던 학습지 교사의 분투와 좌절을 그린 작품이었죠. 허무하면서도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 깊었던 소설입니다.

그의 두번째 장편인 '내가 버린 도시, 서울'에서도 작가가 가졌던 문제 의식은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달동네=똥수저, 오래된 주택가=흙수저, 아파트촌=은수저, 고급빌라촌=금수저로 나뉜 작금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부모가 남긴 부의 규모에 따라 어느 정도 신분제가 고착화된 사회가 된지 이미 오래이죠.


소설은 주인공 격인 버려진 자신을 건사해 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년의 시각으로 전개됩니다. 폐지를 주워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와 소년은 달동네에서 판자집이나 다름 없는 단칸방에 거주합니다. 어쩌다 보니 독지가의 도움으로 주택가 반지하 단칸방으로 옮기게 되지만 똥수저의 삶이 바뀐 것은 아니죠.

그러나 열심히 공부를 파고든 덕에 전교 1등이 되자 반 친구들을 통해 은수저와 금수저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되며 자신이 처한 처지를 여실히 실감하게 됩니다. 역시나 마무리는 꽤나 비극적입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사다리를 올라가기엔 이미 대부분의 사다리는 위로부터 걷어 차여진 상태니까요.

소년이 부의 불평등에 대해 질문하고 다닌 모든 이들의 답은 거의 같습니다. 교사건 목사건, 자영업자건 심지어 도를 닦는 도인이건간에 개인의 수양으로 이런 불평등 자체를 인정하는 것을 배우라는 한결 같은 훈시 뿐입니다. 이미 그들 입장에서도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상대적 가난은 어찌어찌 극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몸 누일 집도 없고, 밥 자체를 굶을 수 밖에 없는 절대적 빈곤은 결코 개인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국가가 필요하고 이도저도 안될 때엔 혁명에 가까운 사회 변혁이 필요한 이유이죠..

읽는 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읽는 재미 자체를 잃지 않는다는게 오히려 용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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