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때 매트릭스를 처음으로 봤다. 1999년 1편이 나올 땐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까 매트릭스를 볼 수가 없었을 테고, 볼 이유도 없었고, 만일 봤다 하더라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보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나름대로 머리가 컸던 중학교 3학년때 이 영화를 보고야 말았다. 친구 추천으로 다운받아(...)서 봤는데, 보고 나서 몇 달 동안이나 충격과 고민에 빠져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내가 정말 깊이있게 감상적이거나, 공상에 잘 빠지는 성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꽤 자주 '지금 이 세상도 매트릭스가 아닐까?'하는 고민을 하곤 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배우는 역사도 모두 어쩌면 내가 상상해낸 것이고, 지금 이건 다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페이퍼 제목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아니, 책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가?'라고 써놓고는 매트릭스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고민하며 살아가던 중, 수학시간에 이런 생각까지 해냈다. 중학교 3학년 여름이니까 아마 2차방적식을 할 때가 아닐까싶은데, 선생님이 칠판에 이런저런 문제풀이를 해주시는데 그걸 바라보면서 '저게 지금 우리한테 진짜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정한 것이니까 사실 저건 틀린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매사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은 고등학교 비평준화지역었고, 고입 연합고사는 내 생각을 점점 단순하게 만들어갔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줄여나가다가 결국 나는 '이거 내가 고민해봤자 답이 안나온다. 그냥 접자'라고 내 고민을 끝내버렸다. 

 

대학 진학 후,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철학입문 강의를 수강했다. 당연히 데카르트를 만났다. 수업시간에 나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인간 지성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구축하는 과정에는 내가 중학교 3학년때 했던 고민과 상당히 비슷한 생각이 포함되어있었다! 수학적 진리에 대해서도 어떤 악마가 자신을 속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발견하기 위해 거쳤던 논증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만일 어릴적부터 책을 읽고, 데카르트가 저런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중학교 3학년 당시에 알았다면 생각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중학교 3학년이 데카르트의 책을 직접 읽는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다른 철학개론서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아직까지 데카르트의 원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 경험, 혹은 깨달음에서 난 책을 읽어야 할 이유, 혹은 책을 읽는다면 무엇이 좋은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다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정도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진짜 이유로 부족하다. 간접체험이라면 영화나 드라마 등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심지어 3D화면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지금 현재' 마주치고 있는 문제와 고민을 제대로 바라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이 힘들고 지칠수록 책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만남들이 우리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책이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영상과 하이퍼텍스트, 더 나아가 요즘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까지 우리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경로는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앞서 말했듯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매체는 책이 유일하다. 내가 눈감는 그날까지 난 독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내 앞에 닥친 상황을 고민하면서 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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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유시민 - 2012년 대선, 박근혜를 이긴다
서영석 지음 / 리얼텍스트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유시민의 책을 처음 만난 때는 중학교 3학년때였다.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던 내가 대체 왜 어떤 이유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책을 읽고 드레퓌스 사건이라든지 말콤X라든지 내 또래 친구들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지금은 그 책 내용이 거의 기억나질 않기에 다시 빌렸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을 당시에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고, 그냥 이름이 '시민'이길래 참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진지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별 생각 없이 지냈던 중학교 3학년 시절인데, 정치인 유시민을 몰랐던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처음 만난 유시민. 23살이 된 지금 나는 '유빠'가 되어있다. 항상 관심은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더더욱 정치와 정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안그래도 타오르기 시작하던 불씨는 2008년 촛불정국,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10년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더더욱 큰 불씨가 되어 내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학생회 생활에 치여 사느라 2008년엔 정치적 관심이 덜했지만, 공익근무를 시작한 2009년에는 차분하게 우리 사회를 관찰할 수가 있었고, 그 중심에서 유시민을 발견했다. 2003년 처음 만났던 유시민을 드디어 7년만에 재회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유시민의 행보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난 '유빠'가 되어갔고, 지난 6.2선거에서 김문수 현 도지사에게 패하던 날, 내 꿈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내가 유빠를 넘어 유시민 지지자가 될 수 있게 도와준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의 과거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1부부터 3부까지 일관되게 한 가지 주제를 밀고나간다.  

'유시민이 야권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권이 이기기를 원한다면, 그 후보는 유시민 외에 대안이 없다.'  

1부. '유시민을 떠받치는 두 개의 정치 요소 

말 그대로 유시민을 둘러싼 두 가지 정치적 요소를 살펴본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만들어진, 그러나 현실'인 정치요소인 영/호남 분할구조,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 마지막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개혁세력 15%의 존재이다.  

보수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영남의 표 분열을 유도하고, 호남의 지지를 공고히 다지고 그 외 지역에서 최대한 많은 표를 얻어 승리해야한다는 분석이다. 지역기반 정치문화가 아무리 좋지 못한 문화라 할지라도, 그것을 마냥 거부하기만 한다면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뒤쳐질 뿐이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진흙탕이고, 내가 그 안에 넘어져 있을지라도 우리가 그곳에서 일어나고 싶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민감한 사항인 지역기반 정치를 지역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매우 설득력있게 분석했고, 읽는 동안 우리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2부. 유시민의 힘, 그 실체는?   

유시민이 왜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가에 대해 분석한 부분인데, 다 맞는 말이지만 특히 세 단계에 걸친 유시민의 정치적 각성을 설명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유시민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 앞에 서는' 심정으로 '해설자'의 자리를 박차고 '선수'로 등단한다(칼럼니스트,백분토론 진행자인 '해설자' , 직업정치인인 '선수').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노무현에 대한 민주당내 인사들의 흔들기와 반칙행위,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상식에 대한 분노에서 정치판이라고 하는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현장 속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소시민 유시민'이 '정치인 유시민'으로 변신하기 위한 '1차 각성'이라고나 할까.   -127쪽

재선거를 통해 국회의원 배지를 단 유시민은 개혁당을 거쳐 열린우리당에 안착하게 되는데, 그의 정치적 2차 각성은 아마도 2005년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127쪽

유시민의 진화과정에서 '2차 각성기'는 중요하다. 그것은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스스로 하고 싶어했다는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29쪽 

그러나 유시민의 기다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2009년 5월 23일, 도저히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명박 집권 이후 '바닥을 다지고 있었던'유시민의 '3차 각성'은 노 대통령의 서거가 계기가 된 것이 틀림없다. 유시민은 자신이 정리한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 에필로그에서 "그가 남긴 말과 글을 정리하면서 끊임없이 자문해보았따. 그는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 나는 그와 어떻게 작별해야 하는가?"라고 고민했다고 실토했다.      -134쪽 

노 대통령의 자서전을 마무리하면서 쓴 에필로그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그친 것 같지만, 유시민의 심경고백이 지향하는 바는 명백하다. 그는 노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진정한 '권력 의지'를 획득한다. 노 대통령이 남긴 '사람 사는 세상'을 자기 손으로 이루겠다는 소망, 진정한 '노무현 시대'를 이루겠다는 소망, 그것은 차기 대통령을 향해 나가겠다는 명백한 의지 표현에 다름 아니다.    -135쪽 

 3부. 유시민, 이길 수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증명된 선거 연합을 통해 야권의 통합 후보로서 유시민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물론 앞에서 말한 영남권, 다시말해 보수층의 분열을 반드시 '끌어내거나' 분열이 생기길 '바라야'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을 끝까지 합리적으로 밀고나간다.  

 

읽는 과정에서 내 사전지식의 부족으로 몇몇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현재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 관심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읽어볼 만한 책이고, 또 읽기도 쉬운 책이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표준적인 지능을 가진 평균인으로서, 평균적인 분석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강제로 훈련을 받았다는 점'을 밝혔는데, 서영석이라는 저자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 또 이런 책을 쓰게 된 것은,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에게 행복하기만 했던 시절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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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항상 남자가수들을 더 좋아할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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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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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나는 아직 20대 초반이다. 우리 20대에게 민주주의는 과연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나는 어릴적부터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자랐고, 지금도 사회적 불평등을 보면 혼자서 고민하고 고뇌해왔다. 그런데 갈수록 그 강렬함이 약해지는걸 느낄 때마다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만 느껴졌는데, 모처럼 그런 느낌들을 되살릴 수 있을만한 좋은 책을 만났다. 참 잘 읽었는데, 다 읽고나니 아쉬운 점은 왜 작년에 미리 이 책의 모태가 되는 민주주의 특강을 알지 못해서 직접 참여할 수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어찌하랴. 이 책으로라도 다시 생각을 일깨우고, 또 다시 언젠가 그때와 같은 민주주의 특강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자주 열려서야 안되겠지만... 사람이 아플 때 병원을 가듯, 민주주의가 아플 때 민주주의 특강이 열리는 법 아니겠는가?  

모두 12명의 저자가 참여했는데, 정말 화려하고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도정일, 한홍구, 박명림, 정희진, 우석훈, 김상봉, 김종철, 오연호, 진중권, 홍성욱, 김찬호, 박원순.. 이들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한번 일깨워줄 지 기대하며 책표지를 열었다. 12명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각자 몸담고 있는 분야가 다르기에 그 분야도 참 다양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흐름을 돌아본 한홍구선생님의 글부터, 정치, 경제, 교육, 법, 언론, 미디어, 과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되돌아볼 수 있게 쓰여졌다.  

어떤 분의 글인지 하나하나 나열하기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순서대로 책을 다시 보며 인상적인 구절들을 옮겨적고, 그에 대한 생각들을 같이 적어보겠다. 

46쪽, 1990년대 이후에 학생운동의 쇠퇴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당연한 겁니다. 시민사화의 다른 세력들이 성숙하지 못해 지나치게 많은 지을 부여받았던 학생들이 시민사회의 발전에 따라 그 짐을 벗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한국 사회가 너무 급격하게 변하다 보니까 여러 다른 요인과 학생들의 탈정치화가 맞물려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뿐입니다.   

 -> 우리 시대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왜 적극적으로 운동에 가담하지 않는가에 대한 많은 이유 중에서, 지금의 현상만을 보고 진단내렸던 다른 많은 의견들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분명 있다는 점을 알고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물론 이러한 상황 자체는 절대 만족스럽지 않다. 우리는 왜이리 무관심한 태도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할까? 

55쪽, 직접 주인으로서 참여할 공간이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서울 시장 선거에 20대가 나가서 발랄하게 도전해보면 안 되나요? 

-> 지난 6.2지방선거때 우리 광명시에서 20대 여성 시의원 후보가 당선됐다. 당선 소식을 듣고는 앞으로 쭉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또 내 생활에서 그 시의원에 대한 관심은 멀리 쫓겨나버렸다. 다시 관심을 갖고 지켜보자. 

60쪽, 우리는 통제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특히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는 더욱 그렇죠. 

-> 지금 내가 중학교에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기에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과연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받았던 규제들, 그리고 지금 학생들이 받고 있는 규제들은 정당한가? 난 항상 궁금하다. 넘어가면 안 되니까 담장을 세운 것인지, 아니면 담장을 세워 놓으니까 넘어가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학교 내에서 규칙을 세우고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관계자들(단순히 교내 선생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이 부디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사고능력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방목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 내부에서 공존하는 교사집단과 학생집단이 왜 서로의 요구를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한 집단이 일방적으로 다른 집단에게 억눌려야만 하는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69쪽, 기업, 언론, 교육, 종교, 금융, 통신, 유통, 법률 같은 영역들은 역민주화 또는 역근대화하면서 점점 더 소수 상류층에게 권력과 재화와 가치가 집중되었습니다. 지나친 과두화라고 할 수 있죠. 사회 주요 부문의 과두화가 진행될수록 정부와 이들의 갈등도 커졌습니다.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과두화의 공존이자 충돌이죠. (....)결국에는 민주정부가 이들 과두세력에게 포위된 섬이 되어버린 거에요. 

->강렬한 충격. 우리 사회를 민주화된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강력한 한 방을 선보이는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가 갑자기 거꾸로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원래 우리 사회 자체가 아직은 비민주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지 그 비민주적 방법이 권력자들에 의해(시간이 갈수록 그들 중에서도 경제권력자들에 의해) 교묘해지고 세련되졌기에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거기에 더하여 민주'사회'를 만드려는 민주'정부'의 노력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이미 민주화 된 것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까마귀 백 마리 있는 곳에서 백로 한 마리가 울음소리를 낸다면 단연 백로의 울음소리에만 우리 신경은 집중될 테니까... 

79쪽, 학원 경영과 인터넷 강의, 논술 시장을 비롯한 사교육을 주도하고 참여하는 세력은 거의 386세대입니다. (...) 저는 이 공동체에서의 삶을 이토록 비인간화하고 불안하게 만든 데 대하 386세대가 앞으로 역사 앞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정말 두렵습니다. 

->학교에 근무해서 더 심해진 것이 하나 있다면, 아이들 교육에 대한 내 관심이다. 작년 1월 공익근무를 시작하기 전에도 항상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나 자신이 사교육시장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씁쓸했지만(영어과외를 쭉 했었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지난번 조선일보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다.(바로가기) 거기에 이 기사까지..(바로가기) 학원 강사들에게 왜이리 공격을 퍼붓는가 싶었는데, 그들이 386세대라는 점을 다시한번 인식하자(두 기사 모두 그들의 사상적 배경(?)을 언급하고 있지만, 기사를 읽을 당시에는 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언론들의 공격적 태도가 조금 더 이해될수 있었다. 물론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해였지만.. 

106쪽, 저는 갈 길의 방향을 놓고 소통하는 과정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전제해서는 안 되는 거죠. 민주주의는 목표나 결과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목표나 결과가 아니라고 했지만, 과정의 건강함을 확보하는 것도 목표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도로란 자동차가 다니기 위한 수단이지만, 도로의 완공도 하나의 목표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위한 통로가 얼마나 건강하느냐 건강하지 못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이고, 그 통로에 완벽한 완성은 없겠지만 일정 수준을 향한 목표는(추상적 목표일 수밖에 없지만)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쪽, 제가 생각하는 파시즘의 특징은 혼란을 정리하는 거에요. 혼란을 정리하는 사람이 파시스트이고 권력자이며, 혼란을 조직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동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 : 인기영합주의적 정책이 될 수 있고, 학교별 다른 실정 부분을  다 반영하지 못하는, 또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 간의 정책 의견이 다를 경우에 충돌이 예상됩니다.] 출처 sbs(바로가기) 한국교총 대변인은 위 분류에서 어떤 사람인가? 

109쪽, 모든 발언은 평등해야 합니다. 하지만 평등은 같음이 아니라 공정함입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발언권을 더 줄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특혜가 아닙니다. 특혜는 조건이나 기회가 같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인데, 사회적 약자는 이미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니까요. 

->평등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앞으로는 이 견해를 항상 마음에 품어야겠다. 그동안 평등이라는 개념에 대해 막연히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큰 진전이 없었는데, 이 글 덕분에 내 머리속 평등이 개념이 조금은 더 분명해졌다.

161쪽, 학벌사회라는 책을 냈는데, 학벌 문제에 대한 현상적인 비판 말고 이론적인 분석을 하겠다고 작심하고서 썼습니다. 

->큰 울림이 있다기보단..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구별짓기 이론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된다.  

294쪽, 최근에 위험 연구자들은 이런 내용을 종합해서 보통 사람들의 위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열 가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비자발성 2.불평등성 3.위험에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 4.새로운 위험일 때 5.인간이 만든 위험일 때 6.감춰지고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일 때 7.어린아이들이나 다음 세대에 지속되는 위험일 때 8.두려운 것일 때 9.과학자들이 그 내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을 때 10.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언제 더 위험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연구결과인데, 매우 인상적이다. 위험이라는 단어로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상황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 있는 의견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바랄 때, 그 사람에게 그 일은 비자발적인가, 불평등한가, 싫을 땐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등을 생각해 본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더 많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 

364쪽, 일본의 '가나가와 생활클럽'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공동체' 

->예전에 읽었던 한겨레21 기사가 떠올랐다.(바로가기)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자. 생활협동조합. 아직까지 나의 내면에 남아있는 보수적 기질 때문에 (누구나 보수적 기질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꼭 정치적 의미를 가지느 보수성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거부감, 거기에서 이어지는 기존 것들에 대한 친숙함이 보수성 아닐까?)협동조합을 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했었는데, 다시한번 노력해봐야겠다.  

 

여러모로 고마운 책이었다. 마음 속 시들시들해져가고 있던 사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줬다. 다 쓰고나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버렸는데, 일단 이 글을 마무리짓는대로 자야겠다. 자고 일어난 내일아침은 분명 이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아침이 되리라 기대하며 글으 마무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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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닌 서평을 쓰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동안 항상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압박감 때문에 천천히 서평을 써 볼 여유 있는 시간을 만들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 때문에 이렇게 서평을 써보려고 한다.

자본주의. 정확히 어디서부터 생겨났으며,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라났으며, 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이 괴물. 누구나 이 괴물 때문에 마음 아팠던 적, 상처받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들과 반대로, (속물적 근성에서 오는)우월감이나 우쭐함을 느껴본 적도 있을 것이다.  

당장 나를 돌아보더라도, 어린 시절 돈과 관련된 안타까운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 정확히 몇 살 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 함께 네 살 아래 여동생의 물건을 사러 문방구에 간 적이 있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동생의 선물을 사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당시 나는 아주 큰 박스에 담긴 장난감을 갖고 싶었고, 엄마는 그런 나의 손짓을 매우 미안해하고 또 난처해하는 표정과 함께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 순간 나의 내면에는 무슨 생각이 자리 잡았을까? 굳이 쓰지 않아도 다들 짐작할 수 있으리라. 물론 지금은 부모님 명의로 된 아파트에 네 식구 가족이 잘 살고 있기에 그 어려웠던 시절은 ‘그저 그 때’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보다 훨씬 전에, 내가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는 없지만 엄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내가 세 살 꼬맹이였을 때 옆집 아주머니께서 과자라도 사먹으라고 천 원짜리를 주신 적이 있는데, 세 살의 나는 그 천원을 ‘버렸다.’  

손 안에 들어온 ‘돈을 버린’ 나의 내면과 엄마가 나에게 장난감을 사주시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 집에 돈이 많지 않아서’라는 점을 알고 있던 나의 내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돈을 버린 나에게는 화폐, 혹은 돈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였지만, 돈이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나에게 돈이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어떤 것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경험이 이럴진대, 의식적으로 기억해낼 수 없는 의식 너머의 기억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을까?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는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자본주의에 의해 어떻게 상처받으며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첫 장에서 이상과 짐멜을 통해 돈이 어떻게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지부터 시작하는데,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20년대 모던보이 이상의 적나라한 내면의 실체를 바라보고 있자니 솔직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부분이 드러났는데 그 드러난 부분이 너무나도 불쌍해서, 그리고 그 불쌍한 부분이 너무나도 나와 같아서 처음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의『날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쫓던 ‘모던함’은 결국 ‘돈’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보다. 돈이 왜 없냐면서.(65쪽)

책을 읽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자니 3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용돈은 한 달 3만원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돈이 매달3만원이긴 했지만 딱히 필요한 것도 없었고, 또 내 수준을 넘어서는 것들은 부모님이 해결해주셨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문방구의 기억 때문인지, 난 부모님을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요구는 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들 중에서도 무리한 요구가 있었기에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한 달 3만원으로 지내던 나였는데, 대학교에 가보니 한 달 3만원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던 나는 입학 전부터 친척 어른들에게서 받은 상당한 용돈이 있었고, 거기에 더해 부모님이 난생 처음 100만원이라는 거금을 나에게 한 학기동안 잘 써보라고 통장에 넣어주셨다. 그런데 ‘돈 쓰는 맛’을 난생 처음 알게 된 나에겐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대략 120만원을 단 두 달 만에 다 써버렸다. 기억에 남는 지출도 없다. 그저 놀러 다니고, 밥 먹고, 술 마시는 데만 그렇게 돈이 새나갔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마음 속 허무함은 커져만 갔고, 결국 잔고가 만 원 대로 내려앉는 순간 마음 속 허무함은 육체적 무기력함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날개』의 주인공(=이상)이 돈의 가치를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느끼는 ‘돈이 없다’라는 느낌을 다시 생각해낼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 시인들과 철학자들이 느꼈던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들은 결코 지금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공상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여러 사건들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

두 번째 장의 보들레르와 벤야민 부분은 패션의 에로티시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푹스에 따르면 패션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합니다. 첫째, 패션은 예링이 지적했듯 상류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계급적인 구별을 두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패션은 계속 매출을 올려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션은 인간에게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 또한 중요합니다.(141쪽)

우리는 왜 계속해서 옷을 살까? 분명 옷장에는 지금 당장 입고 나갈 수 있는 옷들이 몇 벌 있지만, 옷장 앞에 서면 항상 뭘 입을까 고민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사람들의 옷을 관찰하고 또 옷가게 앞을 지나가면 한 두번씩 슬쩍 쳐다보게 된다. 그런 궁금증에 대해서 위의 견해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얘기야 지금까지 나도 생각해봤던 점이었지만, 세 번째 주장은 꽤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에로티시즘이라고 해서 반드시 섹스를 이루어내기 위한 옷차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단지 이 경우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외출할 때, 누구를 만나러 갈지에 따라 의상이 바뀌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성끼리 만나는 경우와 이성을 같이 만날 경우의 옷차림이 다를 것이고, 동성끼리 만난다고 해도 그들이 가는 목적지가 어딘지에 따라 옷차림이 또 달라질 것이다. 이 점을 왜 지금까지 패션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에 포함시키지 못했을까? 앞으로 옷을 사고싶은 욕망에 대해 생각해볼 때 항상 세 번째 이유를 빼먹지 말아야겠다.

세 번째 장에서는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두 명이 등장한다.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바로 ‘허영’.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아래 것들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찬양해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도 찬양자를 갖기를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나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287쪽)

위 인용문은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전에 읽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위 인용문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내 내면의 허영을 다시 한 번 제대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런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것일까. 순수하게 탐구하고 싶은 마음에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주변 친구들과 나 자신을 ‘구별짓기’하고 싶은 욕망을 눈감을 수가 없다.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를 읽는 친구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은 절대로 순수하지 못한 것 같다. 어제 밤에도 친구와 책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친구가 스피치에 관한 어떤 책을 추천했고, 나는 실용서는 보지 않는다고 말하며 친구의 추천을 거절했다. 독서에 대한 나의 취향은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외를 꾸준히 하면서, 부유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모자르지 않을 만큼 돈을 벌고 있는 내가 왜 자꾸만 돈 문제를 가지고 내가 피해를 입은 것처럼 묘사하는 걸까. 모두 나의 내면 속 허영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 같다. 슬프다. 갑자기 글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이런게 저자가 말했던 불편함일까. 자본주의에 관한 책이었지만, 자본주의는 물론 나 자신을 심각하게 되돌아볼 수 있었던 책이다. 이제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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