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때 매트릭스를 처음으로 봤다. 1999년 1편이 나올 땐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까 매트릭스를 볼 수가 없었을 테고, 볼 이유도 없었고, 만일 봤다 하더라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보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나름대로 머리가 컸던 중학교 3학년때 이 영화를 보고야 말았다. 친구 추천으로 다운받아(...)서 봤는데, 보고 나서 몇 달 동안이나 충격과 고민에 빠져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내가 정말 깊이있게 감상적이거나, 공상에 잘 빠지는 성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꽤 자주 '지금 이 세상도 매트릭스가 아닐까?'하는 고민을 하곤 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배우는 역사도 모두 어쩌면 내가 상상해낸 것이고, 지금 이건 다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페이퍼 제목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아니, 책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가?'라고 써놓고는 매트릭스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고민하며 살아가던 중, 수학시간에 이런 생각까지 해냈다. 중학교 3학년 여름이니까 아마 2차방적식을 할 때가 아닐까싶은데, 선생님이 칠판에 이런저런 문제풀이를 해주시는데 그걸 바라보면서 '저게 지금 우리한테 진짜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정한 것이니까 사실 저건 틀린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매사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은 고등학교 비평준화지역었고, 고입 연합고사는 내 생각을 점점 단순하게 만들어갔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줄여나가다가 결국 나는 '이거 내가 고민해봤자 답이 안나온다. 그냥 접자'라고 내 고민을 끝내버렸다. 

 

대학 진학 후,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철학입문 강의를 수강했다. 당연히 데카르트를 만났다. 수업시간에 나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인간 지성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구축하는 과정에는 내가 중학교 3학년때 했던 고민과 상당히 비슷한 생각이 포함되어있었다! 수학적 진리에 대해서도 어떤 악마가 자신을 속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발견하기 위해 거쳤던 논증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만일 어릴적부터 책을 읽고, 데카르트가 저런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중학교 3학년 당시에 알았다면 생각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중학교 3학년이 데카르트의 책을 직접 읽는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다른 철학개론서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아직까지 데카르트의 원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 경험, 혹은 깨달음에서 난 책을 읽어야 할 이유, 혹은 책을 읽는다면 무엇이 좋은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다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정도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진짜 이유로 부족하다. 간접체험이라면 영화나 드라마 등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심지어 3D화면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지금 현재' 마주치고 있는 문제와 고민을 제대로 바라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이 힘들고 지칠수록 책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만남들이 우리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책이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영상과 하이퍼텍스트, 더 나아가 요즘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까지 우리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경로는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앞서 말했듯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매체는 책이 유일하다. 내가 눈감는 그날까지 난 독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내 앞에 닥친 상황을 고민하면서 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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