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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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을 읽고 계곡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그 계곡의 이름은 한국 문학이었고 나는 그 계곡에서 나는 내 목까지 잠기는 깊은 물가지 걸어간 뒤, 목만 내밀고 내 얼굴 쪽으로 치는 물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기껏해야 계곡의 물결 따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발목만 물에 담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눈앞에서 물이 출렁거리는데, 저기서 애 하나가 다이빙을 하면 내 코로 물이 들어올 탠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는가.

 

이 책을 읽고 나서 37도에 달하는 폭염이 잊힐 정도로 시원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몸을 담구고 있는 세상의 얘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는 것이었다. 그 몰입은 45일 동안 일본을 여행한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고 나는 기껏 비행기타고 날아간 곳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그만큼 내게 필요한 얘기였고 공감이 갔다. 평소에 궁금해 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필독서라고 권할 수는 없겠지만, “요즘 좋은 책 없어?”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장강명 작가는 장편 공모전을 통해서 많은 수상을 한 작가로 유명하다. 나도 자세히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4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합치면 거의 1억을 넘은 액수였고, 심지어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여행을 갔다 온 얘기를 <7년 만의 신혼여행>이라는 책으로 펴낸 작가였다. 기자 출신이었던 그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 느껴왔던 여러 가지 고민들을 했나보다. <당선, 합격, 계급>은 그런 고민들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솔직히 여기서 다뤄지는 내용이 아예 처음 듣는 것들은 아니지만, 기자 출신답게 철저한 자료조사와 문학계의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실어놓았다. 일반적으로 문제제기에서만 그치는 다른 글들과는 다르게 나름의 해결책도 내놓는다. 그 해결책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해결책에 도달하기 위한 문제제기와 현 상황에 대한 고찰은 내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기이한 인재채용 시스템이 있다. 공개채용이라는 몇몇 기업이 대상자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는 시스템이다. 사실 공채 같은 시스템은 유독 우리나라에 더 많은 듯하다. 수능, 사법고시(이제는 없어졌지만), 자격증, 공무원채용시험 등등. 이러한 채용방식은 그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적자원이 낭비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비교적 공정한 채용방식으로 여겨진다. 장강명 작가는 여기에 더해서 한 가지 시스템을 더한다. 바로 문학 공모전이다. 작가지망생이 공모전을 통해서 작품을 세상에 소개시켜주고 그 다음부터는 작가로서 인정받는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법고시생이 그 순간부터는 사법고시생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 공모전에 대한 여러 비판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는 나로서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왔다. 몇몇 소수의 평론가와 작가가 스스로의 입맛대로 작품을 선택함으로서 대중의 인식과는 괴리된 소설이 책으로 출판되고, 평론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소설들은 출판될 기회도 얻지 못한다는 일명 문단권력, 너무 많은 문학 공모전이 난립함으로써 오히려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상황. 이러한 문학공모전의 단점을 작가는 수혜자이자 분석자의 입장으로 철저히 분석한다. 물론 그러한 분석은 결과적으로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여진다.

 

장강명 작가가 문학 공모전에 대한 비판점을 분석하고 내린 결론은 비록 단점도 존재하기는 하나 그래도 작가지망생이나 한국 문단을 통틀어서는 필요한 제도라는 점이다. 그러한 결론에 나기까지에 흥미로운 지점이 몇 부분 있다. 먼저 일명 문단권력이라고 불리는 소수의 인물들이 한국 문학을 조종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작가자신은 동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대형 영화 배급사가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를 수 십 억을 들여 광고하고 스크린을 몰아준다고 하더라도 <7광구>, <군함도>처럼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한 영화들은 실패하지 않았는가. 문단권력이란 말이 나도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았기에 나도는 말이라는 것이다. 나만해도 책을 살 때. 비평가의 말보다는 표지가 예뻐서 사는 경우는 있어도 비평가의 말에 기울여서 사지는 않는다. 어떤 영화가 비평가의 외면을 받는다고 해서 흥행에 참패하지는 않는다. 그와 같은 이치다. 어떤 책을 선택할 때. 평론가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또 문학계와 유사한 영화계를 예로 들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것이 더럽게 힘든 점을 지적한다. 일단 스크린에 영화를 올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곳에서 투자를 받아야하고 그 과정에서 감독은 자신의 창작물에 여러 사람들이 손을 대는 것을 지켜봐야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꽤나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설은 쓰면서 돈이 안 들지만, 영화는 돈이 든다. 장편 독립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수천 만 원의 돈이 든다. 그걸 벌기위해서 고생하는 감독지망생들의 고생이란. 영화계에서는 문학 공모전 같은 과정이 별로 없고, 있어도 그 규모가 작다. 검증된 데뷔루트가 없다보니 감독지망생들은 기연에 의지하기도 하며, 개고생을 한다. 그에 비교하면 작가지망생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소한 공모전을 목표로 한편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영화를 찍어도 상영관을 못 구해. 창고 속에 썩어가는 필름들도 많다.

 

결과적으로 공모전의 단점으로 지적된 문제는 독자들이 한국소설을 외면함으로서 벌어지는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몇몇 작가들은 공모전을 폐지하고 외국처럼 출판사가 직접 책을 내는 투고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나나 장강명 작가나 그 의견에는 회의적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소수의 평론가나 작가에서 소수의 편집자로 바뀌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경우였고, 장강명 작가는 2000년대 초에 유행한 판타지 소설을 예로 들면서 그 의견에 반대했다. 평론이 배제된 한국장르소설계가 어떻게 압도적인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고, 어떻게 스스로 자살했는지를 설명한다. 한때 판타지 소설을 한창 읽었던 나에게는 눈에 보이듯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작가는 공모전의 문제점들은 독자들이 한국소설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 소설에 대해서 자세한 의견을 남기는 서평문화의 활성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한국 문학에 어떤 기여를 한다는 거창한 말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이 책을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한국 문학이라는 계곡에 목만 내밀고 몸을 담굴 정도로 그 세계에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여러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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