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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재발견 - 노력은 왜 우리를 배신하는가
안데르스 에릭슨.로버트 풀 지음, 강혜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6월
평점 :

"1만 시간의 노력이 성공을 만들어 내는가?"
"그런데 나는 왜 성공하지 못하고 있지?"

금수저, 은수저...흙수저
선천적인 재산의 불평등에 절망을 느낀 대중들은 1만 시간의 법칙을 열렬히 환영했다.
되는 놈의 재능마저 그저 잘 타고나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것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노력하면 된다고 하니...
비록 내 뜻과 상관없이 금수저를 들고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노력으로 이를 극뽁(?)할 수 있다는 소식처럼 들리는 이 말은 진정한 희망의 찬가였다.
희망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1만시간을 채우기 위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여기저기에서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서 야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똑같이 1만 시간을 한 분야 또는 직업에 쏟는다면 누구나 성공을 해야 하는데 결과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었다.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도태되는 사람도 생기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1만 시간의 법칙 무용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정말로 존재는 하는 것일까?

‘모차르트’하면 다들 음악의 신동으로 알고 있다.
그는 음악에 대한 놀라운 천재성을 많이 보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절대음감’이다.
그는 한번 들은 음을 잊어먹지 않을뿐더러, 한치의 오류없이 악보에 그려 넣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는 자명종 소리, 교회 종소리, 심지어는 ‘에취’하는 재채기 소리도 충분히 음악적이다 싶기만 하면 정확하게 음높이를 식별할 수 있었다. 이 능력은 대단히 희귀한 것으로 1만명당 1명꼴로 나타나는데, 거장 음악가 사이에서도 결코 흔한 능력은 아니었다.
이런 절대음감은 하늘이 준 선척적인 재능의 절대적 사례로 오래동안 보여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250년이 지난 현재, 절대음감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 질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2014년 일본의 심리학자 사카키바라 아야코는 절대음감에 대한 실험을 실시했다.
2~6세 사이의 어린이 24명에게 피아노의 음을 식별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설계하여 이수하게 한 것이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은 모두가 절대음감을 가질 수 있었다.
모두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일부는 1년이 안되어 교육을 마친 반면 일부는 1년 반이 걸렸다는 것에 대한 차이밖에 없었다.
이 실험은 절대음감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만이 아닌, 적절한 환경과 훈련이 수반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되는 구나'를 찾지만...
사실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 키워드는 ‘적절한 환경’과 ‘훈련’이 있었다는 점이다.
적절한 환경과 훈련
다시 말하자면 이 2가지가 결여된 훈련 시간은 '성공을 위한 1만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2가지를 간과한다.
그리고 그저 1만 시간을 채우기 위한 밤새도록 영어 테이프를 틀어놓거나 이와 유사한 행동을 하고 있다.

훈련은 체계적인 과정, 적절한 스트레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는 과정이다.
하나의 과정을 넘으면 또 다른 과정이 계속적으로 주어진다. 이런 노력과 시간속에서 사람의 내부는 변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노력이 수반된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라면 그 시간은 1만시간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 1만 시간은 양질의 시간만을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가 1만 시간에 포함시켰던... 많은 시간들...
'1만 시간의 법칙 무용론'을 주장하기 전에,
혹시 무의미하게 그저 반복적으로 행동했던 단련되지 못한 불순물의 시간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자.
그러면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영어테이프를 틀어놓고 잤던 것은 어떤 의미를 갖냐고?
상술에 놀아나서 그냥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힘들게 잔 것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