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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같은 소리 하네 -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
데이브 레비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 선거 기간 동안 마리화나(우리나라에서는 대마초라고 한다)에 관한 이야기가 정치,사회면을 떠들썩하게 했다. 마리화나에 대한 정치적인 이슈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2015년 공화당 대선후보 크리스 크리스티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단언했다.
“마리화나는 중독성 마약으로 넘어가기 전의 입문용 약물이다.”
이 말은 마리화나를 피우면 마약중독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을 범죄행위로 처벌하겠다고 했다.(워싱턴과 콜라라도 주에서는 마리화나가 합법적이다.)
그런데, 마리화나가 중독성 마약으로 넘어가기 전의 입문용 약물이라는 크리스 크리스티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사실 이는 극단적인 형태의 지나친 단순화다.
과학적으로 마리화나가 입문용 약물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반대로 마리화나가 절대 입문용 약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부정확하다.
과학은 명확한 결론을 내고 싶지만 그렇다고 그 결론을 내리기까지 모든 것이 단순하지는 않다. 책임감 있는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확실한 결론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주저 없이 인정한다.
입문 효과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는 2가지가 있다.
첫째, 생물학적으로 한 약물을 사용하면 다른 약물의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뇌나 인체가 변한다.
둘째, 사회노출학적으로 어떤 약물을 사용하거나 남용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은 또 다른 약물을 구하거나 사용하기가 더 수월할 수 있다.
마리화나가 이 2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암시하는 증거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니코틴이나 알코올 같은 다른 합법적인 약물들도 마리화나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입문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도 얼마든지 있다.
마리화나의 입문효과가 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술이나 담배를 하는 사람은 모두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나친 단순화는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이스크림 판매가 늘어나면 폭력범죄와 살인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가정은 옳은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여름에 즐겨 먹는 간식이 살인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까?
물론 아이스크림 판매가 늘어날 때, 폭력범죄와 살인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아이스크림과 상관없이 덥고 짜증나는 여름에는 폭력사건이 최고점에 이른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공교롭게도 아이스크림은 겨울보다 여름에 훨씬 더 당기는데, 이것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미쳤을 뿐, 아이스크림과 폭력범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든 사람이 살인을 저지를 만큼 분노에 휩싸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는 아이스크림이 폭력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리화나가 입문용 약물이라고?
글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코카인이나 헤로인, 메탐페타민 같은 약물이 순서상 마리화나보다 뒤에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마리화나를 만약 중독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마리화나는 중독성 마약으로 넘어가기 전의 입문용 약물이다.”라는 선언은 마치 정밀하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주장처럼 들린다.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으로 시작되는 국회의원들의 헛소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묘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이리만큼 사악한 방식으로 과학을 조작함을 알아야 한다.
교묘하게 조작된 과학을 간파하고 터무니없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반박하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과학같은 소리하네”... 간만에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해줄 재미있는 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