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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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조가 없으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사회적 약자, 최저시급을 받는 저소득층, 영어가 외국어인 40대 늦깎이 학생으로서 캐나다 사회가 차려놓은 밥상에 식구 수 만큼 빈 숟가락을 얹은 지 3년째 되던 20184, 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렌프루 카운티 소속 공무원이자 파라메딕으로 채용되었다.

 

한국에서 실패해서, 혹은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에 스스로 미치지 못한 탓에, 그리고 내 역량으로는 그 기준을 맞출 자신이 없어서 여기로 왔다. 할 줄 아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뭐든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현재의 직업인 파라메딕으로 일하는 중에도 , 이 직업 참 괜찮다싶은 경우가 있다. 멈췄던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어 의식을 회복했을 때도 좋았고, 출혈이 심한 환자나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환자의 상태가 점차 좋아질 때나, 살 수 있을까 싶은 외상 환자를 신속히 헬기에 실어 보내고 한숨 돌릴 때도 좋았다. 그렇게 삶과 죽음을 오가는 극적인 순간만큼이나 이 직업이 좋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사소한 한마디를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건넬 수 있을 때이다.

 

2년 전 만났던 환자를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환자는 그사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발작으로 911을 부른 상태. 더 잘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살던 중 자신이 닮고 싶었던 삶을 사는 사람이 다시 아프자 저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순간 환자는 괜찮아. 나도 괜찮아질 거고, 너도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을 했고 저자는 울음을 터트린다. 맞잡은 손으로 전해졌을 뜨거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비춰보고 배우게 되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제적인 압박이 심할 때 딸아이가 가져온 학교숙제가 저자를 많이 바꾸게 되었다고. ‘나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아오기였다. 그때까지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은 고사하고 그래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저자는 아픈 것도 모르고 스스로를 너무 함부로 대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 참 안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측은해하고 아끼는 마음이 생기고 커져서 슬프고 힘든 감정까지 모두 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40대 가장으로 먹고 살아야 할 걱정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저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치열하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나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 알아오기라는 과제를 들었을 때 놀라웠다. 우리는 이런 주제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소비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니. 시도해 봄 직하다.

 

저자가 파라메딕으로 일하면서 겪은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는 폭력적 현장이기도, 차마 읽어내려가기 어려운 먹먹함이 존재하기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매일에 감사했다는 그의 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매일의 반짝이는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한발씩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책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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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미술 -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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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 용이 나오는 영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다양한 크리처가 나오는 <페니 드레드 풀>, 판타지 소설 <테메레르>, <반지의 제왕>, <십이국기> 등 내가 즐겨 읽고 보던 것들이다. 지금 이 세계에 발 딛고 있지만 내가 꿈꾸는 미지의 그곳에서 나는 용을 보고, 나만의 기린을 꿈꾸고 모험을 떠나곤 했다. 책 속에 있던 삽화들, 혹은 글로 읽으며 상상했던 모습들, 영상 속 주인공들은 한없이 아름답기도 기괴하기도 했다. 판타지에 빠져 있는 동안은 현재를 잊고 다른 내가 되는 시간이었다.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동안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 시절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나는 어떤 미지의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 반드시.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환상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마블 시리즈, DC 코믹스의 히어로와 빌런들에 우리가 열광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의 강한 바램이 환상의 존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으니 우리는 아직도 환상의 세계에 한 발 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상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저자의 초대에 응해보자.

 

저자는 말한다.

생동하는 캔버스를 응시하며 깊고 차분하게 호흡한 뒤 당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 즉 고도로 훈련한 상상력을 휘두르기만 하라. 그러면 다른 세계로, 신비로운 통로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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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 - 자폐인 심리학자가 탐구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법
데번 프라이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디플롯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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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고 구분 짓는 사회 속에서 자폐인인 자신을 드러내며 연구함으로써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 자폐인이 무엇인지 당사자들의 여러 경험을 공유하고 자폐를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함을 말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적 차별들이 수면 위로 점점 올라오고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게 된다. 책을 통해 만난 신경 다양인들의 모습을 읽으며 나 또한 어느 정도 자폐 성향이 있음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자폐 성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받는 차별과 차가운 시선을 두려워해서 가면을 쓴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로 글로 쓰면서 나 역시 차별적 시선을 가지고 있음에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저자는 가면을 벗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삶에서 경이로웠던 순간들 다섯 가지 적어보고,

이 각각의 이야기에 적힌 핵심 단어를 찾아봄으로써

자신만의 결정적 기억과 이 단어들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현재의 삶과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삶을 대조해볼 수 있어 가면을 벗어 던지는데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누구나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 되는 사회를 이 책이 앞당겨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회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에 마중물이 되는 책 <모두가 가면을 벗는 다면>이다.

 

-차이에 너그러워진 세상은 우리 모두에게 더욱 안전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받아온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 자신으로 당당하게 존재하기를 선택함으로써 바로 오늘부터 그런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침묵하기를 거부하고, 분리되고 은폐되기를 거절하며, 온전한 우리 자신으로서 다른 장애인 및 소외 집단과 굳건하게 연대하겠다는 의미다. 우리는 자기 정체성 의식과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다는 인식을 통해 확고하고 급진적인 수용으로 무장할 때 비로소 강인하고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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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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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여름이나 늦은 가을 혹은 초겨울이 되면 우리 가족은 강원도 양양의 바다에 간다.

그곳은 바닷가에 몽돌이 있어 파도가 치면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와 돌들이 내는 소리에 어느새 젖어 든다.

엉덩이 깔개는 필수.

돌이라서 아프다.

자체 쿠션이 많으면 괜찮을 듯.

 

처음 그곳을 찾은 날은 밤이었고 비가 많이 왔다.

차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틀어 놓고 라면을 먹고 한참을 이야기하다 돌아왔다.

계획 없이 떠나서 바다만 보고 왔는데도 오랫동안 그곳이 기억이 났다.

 

그날 이후 그곳은 우리의 바닷가가 되었다.

이제는 그곳에 가면 서로 뿔뿔이 흩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갖다가 다시 만나서 돌아온다.

바다를 보며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바닷가를 걷기도 하면서 답답하고 힘들었던 것들을 바다에 털어두고 온다.

작년 11월에 다녀오고 올해는 아직 못 갔는데 책 속에 <바닷가에 대하여>를 읽으니 떠올랐다.

나만의 바닷가 정암 해변.

돌멩이와 파도가 내는 소리를 또 들으러 가야겠다.

그곳에서는 엉엉 울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크게 웃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서로 말없이 바라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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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의 감각 -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 Philos 시리즈 26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박제윤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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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식에 관해 논의되는 가장 유력한 이론 중 하나인 통합정보이론에 관한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이론서이다. 저자는 통합정보이론을 통해 어떤 경험적 증거로부터, 의식에 대한 어떤 속성들로 지지 될 수 있는지를 논증적으로 펼친다. 통합정보이론을 신경과학에 근거한 과학적 이론인 동시에, 하나의 철학 이론으로 보여주려 함으로서 이 책은 의식 이론에 대한 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를 다룬 이 책에서 저자는 의식은 경험이다라고 정의한다. 의식이란, 가장 평범한 것에서 가장 고귀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험이다. 이에 따라 여러 철학자들의 추론하고 논증한 것을 예를 든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나는 오해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 등이다. 또한, 의식적 경험은 다섯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경험이 각각이 그 자체로 존재하고, 구조화되어 있으며, 정보적이며, 통합적이고, 제한적이라고 한다. 이것이 모든 의식적 경험의 다섯가지 본질적 특징이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로부터 의식과 뇌, 의식을 측정하는 도구, 의식이 기능을 갖는지, AI가 경험을 가질 수 없는 이유, 의식 가진 것을 무엇인지에 대해 추론하고 밝혀냄으로 통합정보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AI가 경험을 갖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부분이었다. 곧 다가올 미래에 AI가 의식을 가지고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SF를 많이 봐서 더 두렵게 느꼈을까. ‘뇌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영혼 같은 물질에 의해서라기보다, 뇌 자체의 인과적 힘에 의해서다. 그러한 인과적 힘을 복제하면, 의식이 뒤따라 나온다. (p.293)’ 의식은 계산이 아니므로 결코 시뮬레이션 될 수 없고, ‘뇌의 경험은 환원불가능한 완전체를 구성하는 뇌 자체의 인과적 힘에 의한 것임을 주장한다. 또한, 이런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에 국한되는 것인지도 밝혀낸다.

 

과학 분야의 책을 만나 다소 어려웠으나 흥미로운 주제였다. 인간이 망가트리고 있는 것들이 만연한 지금,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 중에 과학적인 접근으로도 모든 생명체는 존재로서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는 저자의 주장에 관심이 갔다. 의식의 문제를 다룬 흥미롭고 놀라운 시간을 선사한 책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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