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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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족으로부터 성추행, 이를 방관하고 희생양으로 삼았던 어머니.

저자의 이야기는 그것을 직면하기까지를 솔직하게 내보인다.

 

세계 곳곳의 학대받고 차별받는 여성들.

강간이 만연한 곳.

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과 함께 나눈 것들도 글로 담았다.

그것은 곧 저자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한편 한편이 모두 강렬하다.

문장들은 슬픔을 담고 있으나

뜨겁고 다정하며 아름답다.

 

최근 책 모임에서 읽은 <속죄>가 생각났고

지금 읽고 있는 책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도 겹쳐진다.

속죄, 용서, 가족 살인... 무거운 주제이나 우리는 알아야 하고 소리 내야 한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소리 내어 말이 될 때.

그것은 이야기가 되고 서로가 될 수 있다.

혼자가 아닌. 여기에 내가 있다고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연대가 필요하다.

서로를 해방시켜 줄 수 있도록 말이다.

 

나 또한 해방을 위해 노력 중이다.

말하지 않고 숨기는 것이 아니고 말하고 또 말할 것이다.

 

땅속에 파묻혀 지하 세계 속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읽는 법을 배우고,

폭력적이지 않은 유일한 방어책은

수백만 마리가 일제히 함께 날아오는 것이라는

매미처럼 말이다.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니.

함께 서로를 껴안고 또 말하고 해방되기를 바라게 된다.

이 책은 뜨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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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뒤에서
사라 델 주디체 지음, 박재연 옮김 / 바람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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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은

대부분 커튼 뒤에서 시작되고, 커튼 뒤에서 끝났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에 프랑스에 살던 소녀 야엘의 이야기이다. 야엘의 엄마는 유대인이고 아빠는 아니다. 엄마는 병환으로 자리를 보전하다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곧 재혼을 한다. 야엘과 여동생은 학교를 다니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프랑스 정세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야엘은 우연히 아빠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고 아빠에게 배신감을 느끼기도.

 

아버지는 전쟁에 징집당하고, 야엘은 독일군의 진격을 매일 라디오로 들으며 남은 가족과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군의 폭격으로 야엘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며 자란 야엘은 유대인이 아니어야 하는 지금의 삶이 혼란스러웠고 주변의 시선도 따가워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모습들이 따스한 그림으로 그려져 마치 전쟁 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책에 이런 귀여운 그림이라니. 어두운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아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묵직한 여운이 느껴진다.

 

프랑스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 조부모 중 유대인이 있으면 유대인으로 분류되어 아이들은 수용소 구금을 당하게 되어 경찰이 집으로 찾아온다. 야엘과 동생은 커튼 뒤에 숨었다. 자신을 잡으러 온 경찰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나쁜 생각을 담아놓는 단지에 담아둘 끔찍한 생각들이 넘쳐난다는 상상을 한다.

 

숨 막히는 수색이 조여온다.

 

한 장의 커튼 뒤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소녀를 보며 가슴을 졸이게 된다.

야엘은 이대로 죽는다면 다음 생에는 무엇이 될지 생각해본다.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나 자신으로 태어나고 싶다.”

 

야엘의 바램은 나 자신으로 억압받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말하는 것이겠지. 커튼 뒤에서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아이를 보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제발...하는 마음으로 마지막장을 넘긴다. 당연히 보호되어야 할 아이가 커튼 뒤에서 죽음 후를 상상한다는 것이, 그 두려움이 전해지는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을 책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전쟁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을지 두려워진다. 전쟁으로 희생되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아이들의 희생이라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 더 이상 어른들의 폭력적인 세상에 희생되는 아이들이 없기를.

 

-당시 비시정부가 관리하던 프랑스 남부 수용소에서는 수감자들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용소의 상황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렀다. 76,000명의 유대인들이 프랑스 정부 관할 수용소에 수감되었는데, 그중 어린이의 숫자는 11,000명에 이르렀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2,500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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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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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후 1980년대 전라북도 이리의 외곽의 이곡리. 동네 건달이던 종술은 벼락부자인 최 사장의 저수지를 감독하는 일을 맡게 된다.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그 일을 수락한다. 스스로 감독이란 글자를 넣어 완장을 만들어 차고 다니며 저수지 감독뿐 아니라 마을의 온갖 일에 위용을 부린다.

 

-그해 이른 봄부터 이곡리 일대를 온통 휘젓고 다니며 마냥 으스대는 종술의 모습은 참 가관이었다.

 

종술은 완장이 주는 권력의 매력에 취해 어느새 저수지가 자기 것인 양 행동하고 설상가상으로 저수지는 가뭄으로 인해 물을 빼야 할 처지가 된다. 과연 완장의 종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도시에서 완장의 위력에 눌려봤던 종술은 완장이라는 말에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든다. 그 권력의 힘에 처참히 굴복했던 자신을 떠올렸으니. 그런 권력을 준다 하면 누구나 한 번쯤 차보고 싶다고 할 것이 바로 완장이다. 그런 완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발버둥을 치는 종술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가 바로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일 수도 내 주변에 있는 이일수도. 그런 종술의 몰락해가는 삶을 통해 권력을 희화화하는 풍자와 해학으로 저자는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한다. 이 소설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완장 앞에서는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이었다. 완장 때문에 녹아나는 건 늘 제 쪽이었다. 제각각 색깔 다르고 글씨도 다른 그 숱한 완장들에 그간 얼마나 많는 한을 품어왔던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완장들을 얼마나 또 많이 선망해왔던가.

 

어릴 적 학급의 주번이 <주번>이라고 써 있는 노란 완장을 왼팔에 찼다. 그건 돌아가면서 쓰레기 버리고 칠판 지우는 일이었기에 완장의 의미와는 맞지 않았다. 교실 내의 권력이란 <반장>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없을 때 떠드는 아이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고 조용히 시키는 것이 반장의 역할.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을 때는 거친 반격이 돌아온다. 반장은 선생님에게 혼나고 아이들에게는 인심을 잃는다.

 

-다름 아닌 그놈의 완장이란 물건이 화근이었다. 운암댁의 문을 똑똑 두드리는 불행은 바로 그 완장으로 언제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지금 정치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이 존재한다. 완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항상 우리 곁에 존재했고 그것을 쥐고 휘두르고 싶은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그들에게 권력을 주고 숨어있는 이는 누구이며 그 완장에 휘둘리는 이는 누구인가. 완장이 힘을 갖지 못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는 완장을 찼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이라 믿고 있는 완장 찬 이들이 떠오른다. 권력의 꼭두각시로 완장을 차고 오늘도 부지런히 종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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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성별 - 가족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 Philos Feminism 7
셀린 베시에르.시빌 골라크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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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느끼는 빈부격차를 가족 안에서 찾아본다. 자본이 집중되는 것에 성별이 큰 영향이 되며 원인이 됨을 책을 읽으면서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혼 가정의 경우 양육비도 남성의 수입에 근거하고 여성 판사 또한 남성적 시각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가족에 관한 가장 새빨간 거짓말은 가족은 경제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라는 말이다. 여성에게 가족은 자연재해이며, 모든 불평등의 시작 지점이다.-최현숙작가의 추천사 중 발췌 라는 말이 과언이 아님을.

 

무급 노동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 일을 함으로써 일터로 복귀할 때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 반면 남성은 여성의 돌봄으로 계속 자신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부를 축적한다. 가족 내에 있는 부의 불평등이라고 하면 당장 와닿지 않겠지만 부모로부터의 재산 증여부터 교육의 기회, 부부 사이의 재산까지 다양한 자본의 차별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이제 자본의 사회적 차별을 넘어 자본에는 성별이 있음을 가족 안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불평등의 재생산 시작은 바로 거기부터다! 사회적으로 어떻게 용인되어왔고 더 공고히 다져졌는지 <자본의 성별>을 통해 알아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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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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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좋아했죠,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지.”

침울한 목소리에 실린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이 묘했다. (p.12)

 

아버지는 가족을 떠난 지 10년 만에 조부의 상을 치르기 위해 귀국한다. 상을 치르고 출국하러 돌아가는 아버지와 나는 가벼운 점심을 나누며 그간의 일들을 나눈다.

 

봄에 떠나 봄에 돌아온 아버지는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아버지와 헤어질 때쯤 나는 이해하게 된다. 두 아들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 공항에서의 가벼운 점심은 장은진 작가의 표제작으로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p.23) 외로웠던 한점의 사람이었던 아버지. 그의 한점은 어떻게 봄을 맞아 활짝 피게 되었을까. 외로움이 사무치고 그것이 병이 된다면 삶의 지속이 의미가 있을까. 결국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가. 한점이 여럿이 되어 우리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날 안 닮아 다행이야.”

아버지는 또 그 다행이란 말을 썼다. (p.25)

 

-난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아무리 손가락질하고 비난해도 사는 거 같거든. 밥도 맛있고 물도 맛있는 삶이면 된 거 아니겠니. 잠을 잘 자면 괜찮은 인생 아니겠니.

-다만 가슴 한쪽에 미안함을 품고 내가 선택한 삶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 (p.38)

 

봄으로 시작해서 겨울까지 이어지는 각각의 단편들은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다. 짙은 고독과 외로움이 담겨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또 그런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책을 덮고 방안을 어둡게 하던 커튼을 열어 지금 계절을 느껴본다. 나는 이 계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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