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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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좋아했죠,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지.”

침울한 목소리에 실린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이 묘했다. (p.12)

 

아버지는 가족을 떠난 지 10년 만에 조부의 상을 치르기 위해 귀국한다. 상을 치르고 출국하러 돌아가는 아버지와 나는 가벼운 점심을 나누며 그간의 일들을 나눈다.

 

봄에 떠나 봄에 돌아온 아버지는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아버지와 헤어질 때쯤 나는 이해하게 된다. 두 아들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 공항에서의 가벼운 점심은 장은진 작가의 표제작으로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p.23) 외로웠던 한점의 사람이었던 아버지. 그의 한점은 어떻게 봄을 맞아 활짝 피게 되었을까. 외로움이 사무치고 그것이 병이 된다면 삶의 지속이 의미가 있을까. 결국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가. 한점이 여럿이 되어 우리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날 안 닮아 다행이야.”

아버지는 또 그 다행이란 말을 썼다. (p.25)

 

-난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아무리 손가락질하고 비난해도 사는 거 같거든. 밥도 맛있고 물도 맛있는 삶이면 된 거 아니겠니. 잠을 잘 자면 괜찮은 인생 아니겠니.

-다만 가슴 한쪽에 미안함을 품고 내가 선택한 삶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 (p.38)

 

봄으로 시작해서 겨울까지 이어지는 각각의 단편들은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다. 짙은 고독과 외로움이 담겨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또 그런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책을 덮고 방안을 어둡게 하던 커튼을 열어 지금 계절을 느껴본다. 나는 이 계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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