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여정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박재연 옮김 / Pensel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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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라는 반 고흐. 한 달도 더 전에 얼리버드로 예매해 놓은 ‘반 고흐 전’을 다녀왔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대기 입장을 할 정도로 줄은 길었고 입장 후에도 사람에 떠밀려 그림을 보는 것에 피곤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고흐의 생애를 그의 발자취로 따라 가 보는 것은 인상적이다. 모든 사물에서 빛을 끌어내는 화가의 눈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풍경화를 보면서 그 장면을, 그 색을 내기 위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반짝임을 표현하기 위해 그곳을 얼마나 자주 찾아 갔을까 에 닿게 된다.


예술이 주는 경험은 예술가의 감정과 경험, 영감이 모여 만들어진 복합적인 결과물이기에 우리는 위안을 얻고 그들의 예술에 벅찬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데이비드 호크니, 칸딘스키, 살바도르 달리, 구스타프 클림트,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반 고흐 등 31명의 위대한 화가들이 떠났던 여행을 통해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그들의 삶과 예술에 미친 영향을 소개한다. 지도와 사진 자료들을 보며 그들의 여행에 함께 참여해 볼 수 있다.


그들의 여행은 지적인 도피처가 되기도,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삶과 경력에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 등 그들의 예술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곳에서 이국적인 공간이 주는 영감을 놓치지 않고 예술로 표현해낸 예술가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시간은 내게 예술을 이해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도에서 밤기차를 타는 것, 멋진 밤공기가 불어오는 가운데 3등석의 딱딱한 좌석에 앉아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즐거움과 기쁨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시간, 공간. 그것이 여행인가 싶었다. 자신의 내면의 것을 끌어올려 주는 여행의 기쁨을 예술가들과 함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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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아트트립 #예술여행 #도서지원 #책 #책친구 #hongeunk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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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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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반()진실의 시대에, 갈수록 노골적인 위선이 판치고 이야기는 현실을 왜곡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역사와 성찰을 담은 문학일지도 모른다. 직접적이고, 진짜이며, 사실을 세심하게 다루는. (p.288)

 

팬테믹 봉쇄 조치로 인적이 뜸해진 뉴욕에서 거주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치 저자 자신처럼. 그러다가 지인의 부탁으로 고급 아파트에서 유레카라는 금강앵무를 돌보는 일을 맡게 되었고 반려 앵무새를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던 주인공은 유레카를 돌보며 삶의 활력과 위안을 얻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전 앵무새 돌보미인 대학생과의 동거로 평온했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많은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동거는 어떻게 이어질까.

 

읽다가 표지를 다시 살펴보게 되는 건 소설이라고 했는데, 에세이인가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화자 위주의 일인칭 시점의 이야기였고, 흐름을 따라잡기 어려워 사실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됐다. 팬테믹 기간이라는 전 인류가 함께 겪은 힘들었던 시기들이 떠오르고 화자와 친구들의 대화들을 읽으며 킥킥거리기 시작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우린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이어 가고 있는 거지? 진실을 많이 알수록 인류가 멸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두려움만 커질 뿐이지. 그런데 우린 여기 앉아서 남자들 없는 세상이라는 판타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구나. (p.74)

 

뒤틀린 시대였음에도 시간은 흘렀고 그 시간 또한 나의 삶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그때의 답답함과 우울한 기억만 남은 것은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작품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로 책 모임은 중단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이라는 앱으로 책 모임은 지속되었고, 갇힌 삶 속에서 갈급했던 대화는 어느 정도 숨통을 트이게 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줌 영화토론 모임을 만들었고 그 기간에 같이 본 영화와 나눈 이야기들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 바빠진 일상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던 그때를 떠올려보면 살짝 그리워지기도 한다. 코로나로 바뀐 문화들. 경조사부터 명절까지.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저자의 나는 기억한다로 시작하는 글들도 너무 재미있어서 내 노트에 적어본다.

나는 기억한다...

그 다음은 내 삶의 이야기들로 채워보면 그때의 불확실함이 꼭 나쁘지 않았다는 문장들이 더 많이 써지리라. 지금의 일상이 가진 눈부신 하루들의 소중함도 함께. 지금이 어쩌면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던 하루 일 수도 있으니.


한동안 나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건 그해 봄의 많은 불확실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아는 작가 중에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이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지 알고 싶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도무지 사라지려 하질 않는다. (pp.19~20)

 

내 인생의 이야기는 네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좋은 시간들, 나쁜 시간들. (p.185)

 

시간이 지나가는 건 삶이 지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방향으로 빠르게 흐르고 붙잡거나 멈출 수 없다. 그게 어른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피할 수 없는 힘이다. 내 삶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지나간다. (p.249)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삶을 이루려면 수십 년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삶을 이루었을 때쯤엔 그 삶이 곧 사라질 거란 말은 듣지 못했다. (p.303)

 

헤세드의 서재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hyejin_bookangel @openbook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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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 소설, 향
최정나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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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의 세계는 슬픔의 실체는 없고 자기 연민만 가득했다. 타인은 없고 자신만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도 없는 세계,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이용 가치에 따라 선과 악이 바뀌는 세계, 그 안에서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기에 늘 불안에 시달리는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는 상처도 슬픔도 모두 전형이다. 전형적인 사고에 갇힌 자에게 자기 언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므로 생각도 없고 변화도 없는 세계, 고작 그런 세계, 고작 그런 사람, 나를 불안에 떨게 했던 이의 실체.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p.144

 

기주는 남편을 여의고 상은과 함께 살고 있는데 고모 집에 맡겨 두었던 로아를 집으로 데려온다. 상은은 로아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겨 제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만들려 한다. 한파가 있던 날 욕조에 물을 받아 로아를 발가벗겨서 물속에 밀어 넣고, 이후로도 끊임없이 폭력을 가한다. 온몸이 무지개빛으로 멍이 든 로아는 상은의 폭력에 대항할 힘이 없는 어린아이다. 기주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언니 말을 잘 들으라는 말밖에는, 상은이 부리는 패악이 무서워 로아를 감싸지도 못하는 엄마이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로아는 병상에 누워 생각에 잠긴다. 이 고통의 근원을 찾아보기로.

그러려면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서 지난 일들을 되짚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상은이 되어 보기로. 가해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고통의 시간을 마주해서 현실을 보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다.

 

해설에 김이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을 다 읽고는 다시 도입부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폭력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악인에게 서사를 주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자신에게 씌워진 피해자라는 틀을 부수고 나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도구로 사용되는 회귀의 방식을 말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시선으로 폭력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낯설고 불편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폭력의 본질을 꿰뚫고 그것에 당위를 주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어딘가에 수많은 로아들이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닫힌 현관문 안에서 폭력의 연쇄를 끊어내는 방법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도.

 

가슴 서늘한 소설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폭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도 배우게 된다. 우리의 세계는 지금 안전하지 않으니까.

나는 방치하는 언니가 아니다. 나는 열네 살, 일곱 살이나 많은 로아의 언니다. 짓밟아야 로아도, 나도 살 수 있다. 누구도 구해주지 않는 아이,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아이, 길에서 태어나 길에 버려진 아이, 길바닥에서 살아온 아이, 그게 로아이고 동시에 나다. p.25

 

그렇게 해가 거듭될수록 집은 아름다운 무질서의 세계, 아름다운 폭력의 세계가 되어갔다. 무질서와 폭력의 질서가 잡힌 부드러운 세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물렁물렁한 세계, 결핍을 결핍으로 채우는 달콤한 나의 집. 이곳에 로아가 있었다. 무지개빛 육체가 있었다. p.52

 

어차피 맞을 거였어. 덜 맞고 싶기는 했지. 그것보다도 살기 위해 생각을 하지 않는 척했는데 결국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안게 더 끔찍했어. 계속 그렇게 사는 건 내가 나를 방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끔찍해지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지.” p.135

 

내 슬픔의 기원은 내가 그들을 닮았다는 것, 그들의 또 다른 몸뚱이라는 것.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모습을 바꿔 나를 또다시 시험대에 올리지. 몸통을 자르면 여러 마리로 증식하는 것처럼. p.133~134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은 몰이해의 증거일 뿐이니까. p.144

 

@jakkajungsin 작가정신출판사의 작정단13기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작정단 #작정단13#소설향 #아동학대 #방조 #가정폭력 #국내소설 ##책친구 #hongeunk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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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드 바이 하트 - 미친 사랑의 편지 아르테 미스터리 24
엠마 도노휴 지음, 박혜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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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내 머릿속에 생생히 살아 있어. 열네 살 때 어떻게 감기처럼 사랑이라는 병에 걸렸는지, 아니면 네가 사랑병에 걸려 그걸 나에게 옮겼는지, 그게 우리 사이에서 어떻게 타올랐는지. 우리가 어떻게 자석처럼 딱 붙어서 자고, 일어나고, 배우고, 놀고, 먹었는지. 나는 내 맥박과 네 맥박도 구분하지 못했어. 우리는 잉크처럼 우리 자신을 쏟아부었어. p.289

 

이렇게 뜨겁게 누군가에게 각인된 사랑을 오랜만에 문장으로 만났다.

열 네살 열 다섯살에 규율이 엄격한 기숙학교에서 만난 그들에 사랑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사랑은 과연, 완료가 되는 것일까.

 

리스터는 일라이자를 불안하고 짜릿하게 만든다. 마치 선반에서 뭔가가 곧 떨어질 것처럼. 마치 뇌우가 다가오는 것처럼. p.107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하는 그 역동의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함께하는 동안 비밀스러운 사랑을 키웠다. 아무도 모르게. 소녀들의 사랑은 어쩌면 공공연했지만 누구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 작품 또한 작가의 전작 <>처럼 실화 바탕의 소설이라 흥미를 자아내며 마지막 작가의 말에 소개된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미 포인트다.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태어난 주인공 일라이자 레인은 동인도회사 의사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짙은 피부색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였고 그녀를 사랑한 리스터는 자유분방하고 날카로운 시각을 지닌 이지적인 소녀였다. 학창 시절 우리는 성숙하고 남다른 생각을 지닌 친구들에게 끌리지 않았던가.

 

레인이 리스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리스터의 사랑이 변해감이 느껴졌다.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들고 사랑의 대상이 계속 바뀌는 리스터를 향한 변함없는 레인의 사랑은 안타까움을 준다. 먼저 좋다 해놓고! 사랑이 변하니!

 

미완료 또는 미완료 과거형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현재와 과거의 특징 모두를 불완전하게 지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진행 중이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p.36

 

사랑 참 아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에 이미 빠져버린걸. 그렇다. 사랑은 빠졌다고 표현한다. 갑자기 감기처럼 지독한 사랑의 열병에 걸린 것. 미숙하기에 더 뜨겁고 아팠을까.

 

어릴 적 만난 평생의 연인을 향한 사랑이 담긴 편지와 리스터의 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매혹적이고 강렬하다. 평생 한 사람만을 향해 뛰도록 배운 그 사랑. 미친 사랑의 편지라는 국내 제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뜨겁고 열정적인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사랑 이야기에 한동안 긴 여운이 남는다. 미완료 또는 미완료 과거형이 내게도 있었으니까.

 

앤 리스터는 평생 500만여 단어의 일기를 남겼는데 학창 시절에 여성과의 관계뿐 아니라 당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분야의 사건들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고 한다. 영국 최초의 레즈비언 결혼을 한 것으로도 알려진 그녀의 일기가 저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모티브가 되어 이 소설로 태어났다.

 

영화 <아가씨>,<타오르는 초상>이 연상되는 소설!

 

너와 내가 직접 만날 수 있다면 나는 펜 대신 혀를 사용해 종이에서는 차갑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게 흐르는 유창한 말로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잃어버린 걸 모두 되찾을지도 몰라. 너는 별자리가 도는 것만큼이나 필연적으로 나에게 돌아올 거야, 리스터. 너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해안에서 나를 이끌어 준 밝은 별이야. p.147

 

우리는 더 이상 두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거야. 두 영혼이 하나인데 우리가 어떻게 분리될 수 있겠어?” p.278

 

사랑이 일종의 광기일지는 몰라도 내 안에 처음으로 가느다란 금을 낸 건 사랑의 상실이었어. p.299

 

너는 나를 첫사랑이자 가장 소중한 사랑이라고 불렀어. 나는 그런 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최상급은 비교를 의미하고, 나한테는 언제나 오직 너뿐이었으니까. 천천히 죽어가는 이 긴 10년은 나를 너에게 더욱 단단히 묶었고 우리를 영원히 휘감고 얽어맸어. p.300

 

@21_arte 아르테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러니드바이하트 #엠마도노휴 #아르테 #소설 #아일랜드문학 #미친사랑의편지 ##책추천 #hongeunk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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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오리지널 31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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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열아홉 살이었는데, 그가 날 훔쳤어.”

난 학생이었어. 이른 아침이었지. 대학 도서관에 가려고 주차장을 걸어가면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어쨌든 어떤 남자가 달려와서 도와달라는 거야. 개가 발작을 일으켰는데 죽을 것 같다면서.”(p.113)

 

아이는 아침마다 시리얼 100개를 세고 그릇에 우유를 담고 아기 예수에게 감사기도를 올렸다. 식사 후에는 양치질을 하고 엄마와 함께 노래 제목 맞추기 놀이, 천장으로 난 창으로 밖을 보고, 5권의 동화책은 내용을 외울 만큼 줄줄 읊는다. 책 속 세상에서 상상력을 키우며 방 안에서 터널과 요새를 짓고, TV를 보고 세상을 배우고, 가끔 찾아오는 거미, , 개미와도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가로 11, 세로 11피트의 방안에서 모두 이루어졌다니!

 

대학생이었던 엄마는 어느날 학교 가던 길에 개가 발작을 일으켰다고 도와달라는 남자를 따라서 그의 트럭으로 갔다가 납치를 당해 7년 동안 감금당한 채 성폭행을 당해왔다. 잭은 그런 그녀의 두 번째 아이이다. 아놔, 아빠는 상상하기도 싫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성폭행과 폭력에 시달리던 그녀는 을 출산 후 아이를 살뜰히 보살핀다. 글을 가르치고 매일 조금씩 운동을 시키고 세상 밖으로 나갈 연습을 한다. 그녀에게 아이는 갇힌 삶에서 유일한 희망이자 살아야 할 이유였다.

 

나는 납치당했어요.”

우리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죽은 척하기, 트럭, 빠져나오기, 뛰어내리기, 달리기, 사람, 쪽지, 경찰, 토치. 아홉 가지였다. 머릿속에 한꺼번에 다 넣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당연히 할 수 있지, 넌 엄마의 영웅이니까, 다섯 살이니까, 라고 했다. 아직 네 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158)

 

드디어 대탈출 계획은 성공하고 그 둘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엄마에게 상처가 된다. 엄마는 단절된 시간 동안 잊었던 자기 자신을 찾는 것과 엄마의 역할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우울증이 깊어지게 된다.

계속 엉망이야. 너한테는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데, 동시에 어떻게 해야 내가 될 수 있는지 기억해 내려니까 자꾸만 이상해져.”(p.265)

 

대단하네요. , 여러 전문가들이 이상한 결단이라고 지적하는데요, 잭에게 가로 11, 세로 11피트의 방이 세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러니까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 몇 권 안 되는 책에서 읽는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가르치셨어요. 아이를 속인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나요?”

잭을 바라보면서 아이의 근본을 마음 아프게 떠올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신가요?”(p.283)

 

삶을 이어가고 살아낸 엄마에게 쏟아지는 격려와 함께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는데 그저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으로서 그녀의 행동은 정말 대단하고 용감하니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잭이었다. 엄마의 원가족으로부터의 다정한 보살핌으로 하나둘씩 세상을 익히고 배워나가면서 엄마와 자신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잭은 믿음과 신뢰로 확신하고 있었다.

 

난 요즘 항상 넘어져. 세상에는 발을 거는 게 많아.”

그래, 하지만 이 잔디는 아주 푹신하잖니.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거다.”(p.372)

 

잭은 엄마의 손을 잡고 갇힌 공간이었던 그 방에게 안녕, 방아.” 하면서 그곳에서의 시간에 결별을 고함으로써 그들은 진정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두웠던 시간을 묻고 잊으려는 엄마와는 다르게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스스로 선택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가슴 벅찬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잭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 우리 사회에 당연한 것들이 사실은 삐뚤어진 것이었음을 알게 되어 암울하기도 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다. 그러나 단단한 신뢰와 믿음의 사랑은 결국 해낸다는 걸 느끼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 영화제 50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21_arte 아르테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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