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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드 바이 하트 - 미친 사랑의 편지 ㅣ 아르테 미스터리 24
엠마 도노휴 지음, 박혜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평점 :
모든 순간이 내 머릿속에 생생히 살아 있어. 열네 살 때 어떻게 감기처럼 사랑이라는 병에 걸렸는지, 아니면 네가 사랑병에 걸려 그걸 나에게 옮겼는지, 그게 우리 사이에서 어떻게 타올랐는지. 우리가 어떻게 자석처럼 딱 붙어서 자고, 일어나고, 배우고, 놀고, 먹었는지. 나는 내 맥박과 네 맥박도 구분하지 못했어. 우리는 잉크처럼 우리 자신을 쏟아부었어. p.289
이렇게 뜨겁게 누군가에게 각인된 사랑을 오랜만에 문장으로 만났다.
열 네살 열 다섯살에 규율이 엄격한 기숙학교에서 만난 그들에 사랑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사랑은 과연, 완료가 되는 것일까.
리스터는 일라이자를 불안하고 짜릿하게 만든다. 마치 선반에서 뭔가가 곧 떨어질 것처럼. 마치 뇌우가 다가오는 것처럼. p.107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하는 그 역동의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함께하는 동안 비밀스러운 사랑을 키웠다. 아무도 모르게. 소녀들의 사랑은 어쩌면 공공연했지만 누구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 작품 또한 작가의 전작 <룸>처럼 실화 바탕의 소설이라 흥미를 자아내며 마지막 작가의 말에 소개된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미 포인트다.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태어난 주인공 일라이자 레인은 동인도회사 의사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짙은 피부색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였고 그녀를 사랑한 리스터는 자유분방하고 날카로운 시각을 지닌 이지적인 소녀였다. 학창 시절 우리는 성숙하고 남다른 생각을 지닌 친구들에게 끌리지 않았던가.
레인이 리스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리스터의 사랑이 변해감이 느껴졌다.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들고 사랑의 대상이 계속 바뀌는 리스터를 향한 변함없는 레인의 사랑은 안타까움을 준다. 먼저 좋다 해놓고! 사랑이 변하니!
미완료 또는 미완료 과거형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현재와 과거의 특징 모두를 불완전하게 지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진행 중이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p.36
‘사랑 참 아프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에 이미 빠져버린걸. 그렇다. 사랑은 빠졌다고 표현한다. 갑자기 감기처럼 지독한 사랑의 열병에 걸린 것. 미숙하기에 더 뜨겁고 아팠을까.
어릴 적 만난 평생의 연인을 향한 사랑이 담긴 편지와 리스터의 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매혹적이고 강렬하다. 평생 한 사람만을 향해 뛰도록 배운 그 사랑. 미친 사랑의 편지라는 국내 제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뜨겁고 열정적인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사랑 이야기에 한동안 긴 여운이 남는다. 미완료 또는 미완료 과거형이 내게도 있었으니까.
앤 리스터는 평생 500만여 단어의 일기를 남겼는데 학창 시절에 여성과의 관계뿐 아니라 당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분야의 사건들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고 한다. 영국 최초의 레즈비언 결혼을 한 것으로도 알려진 그녀의 일기가 저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모티브가 되어 이 소설로 태어났다.
영화 <아가씨>,<타오르는 초상>이 연상되는 소설!
너와 내가 직접 만날 수 있다면 나는 펜 대신 혀를 사용해 종이에서는 차갑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게 흐르는 유창한 말로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잃어버린 걸 모두 되찾을지도 몰라. 너는 별자리가 도는 것만큼이나 필연적으로 나에게 돌아올 거야, 리스터. 너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해안에서 나를 이끌어 준 밝은 별이야. p.147
“우리는 더 이상 두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거야. 두 영혼이 하나인데 우리가 어떻게 분리될 수 있겠어?” p.278
사랑이 일종의 광기일지는 몰라도 내 안에 처음으로 가느다란 금을 낸 건 사랑의 상실이었어. p.299
너는 나를 첫사랑이자 가장 소중한 사랑이라고 불렀어. 나는 그런 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최상급은 비교를 의미하고, 나한테는 언제나 오직 너뿐이었으니까. 천천히 죽어가는 이 긴 10년은 나를 너에게 더욱 단단히 묶었고 우리를 영원히 휘감고 얽어맸어. p.300
@21_arte 아르테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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