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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30/pimg_7158381404586908.jpg)
우리가 사는 이 반(反)진실의 시대에, 갈수록 노골적인 위선이 판치고 이야기는 현실을 왜곡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역사와 성찰을 담은 문학일지도 모른다. 직접적이고, 진짜이며, 사실을 세심하게 다루는. (p.288)
팬테믹 봉쇄 조치로 인적이 뜸해진 뉴욕에서 거주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치 저자 자신처럼. 그러다가 지인의 부탁으로 고급 아파트에서 ‘유레카’라는 금강앵무를 돌보는 일을 맡게 되었고 반려 앵무새를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던 주인공은 유레카를 돌보며 삶의 활력과 위안을 얻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전 앵무새 돌보미인 대학생과의 동거로 평온했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많은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동거는 어떻게 이어질까.
읽다가 표지를 다시 살펴보게 되는 건 소설이라고 했는데, 에세이인가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화자 위주의 일인칭 시점의 이야기였고, 흐름을 따라잡기 어려워 사실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됐다. 팬테믹 기간이라는 전 인류가 함께 겪은 힘들었던 시기들이 떠오르고 화자와 친구들의 대화들을 읽으며 킥킥거리기 시작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우린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이어 가고 있는 거지? 진실을 많이 알수록 인류가 멸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두려움만 커질 뿐이지. 그런데 우린 여기 앉아서 남자들 없는 세상이라는 판타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구나. (p.74)
뒤틀린 시대였음에도 시간은 흘렀고 그 시간 또한 나의 삶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그때의 답답함과 우울한 기억만 남은 것은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작품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로 책 모임은 중단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줌’이라는 앱으로 책 모임은 지속되었고, 갇힌 삶 속에서 갈급했던 대화는 어느 정도 숨통을 트이게 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줌 영화토론 모임을 만들었고 그 기간에 같이 본 영화와 나눈 이야기들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 바빠진 일상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던 그때를 떠올려보면 살짝 그리워지기도 한다. 코로나로 바뀐 문화들. 경조사부터 명절까지.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저자의 ‘나는 기억한다’로 시작하는 글들도 너무 재미있어서 내 노트에 적어본다.
나는 기억한다...
그 다음은 내 삶의 이야기들로 채워보면 그때의 불확실함이 꼭 나쁘지 않았다는 문장들이 더 많이 써지리라. 지금의 일상이 가진 눈부신 하루들의 소중함도 함께. 지금이 어쩌면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던 하루 일 수도 있으니.
한동안 나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건 그해 봄의 많은 불확실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아는 작가 중에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이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지 알고 싶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도무지 사라지려 하질 않는다. (pp.19~20)
내 인생의 이야기는 네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좋은 시간들, 나쁜 시간들. (p.185)
시간이 지나가는 건 삶이 지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방향으로 빠르게 흐르고 붙잡거나 멈출 수 없다. 그게 어른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피할 수 없는 힘이다. 내 삶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지나간다. (p.249)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삶을 이루려면 수십 년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삶을 이루었을 때쯤엔 그 삶이 곧 사라질 거란 말은 듣지 못했다. (p.303)
헤세드의 서재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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