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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ㅣ 아르테 오리지널 31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평점 :
“난 열아홉 살이었는데, 그가 날 훔쳤어.”
“난 학생이었어. 이른 아침이었지. 대학 도서관에 가려고 주차장을 걸어가면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어쨌든 어떤 남자가 달려와서 도와달라는 거야. 개가 발작을 일으켰는데 죽을 것 같다면서.”(p.113)
아이는 아침마다 시리얼 100개를 세고 그릇에 우유를 담고 아기 예수에게 감사기도를 올렸다. 식사 후에는 양치질을 하고 엄마와 함께 노래 제목 맞추기 놀이, 천장으로 난 창으로 밖을 보고, 5권의 동화책은 내용을 외울 만큼 줄줄 읊는다. 책 속 세상에서 상상력을 키우며 방 안에서 터널과 요새를 짓고, TV를 보고 세상을 배우고, 가끔 찾아오는 거미, 쥐, 개미와도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가로 11, 세로 11피트의 방안에서 모두 이루어졌다니!
대학생이었던 엄마는 어느날 학교 가던 길에 개가 발작을 일으켰다고 도와달라는 남자를 따라서 그의 트럭으로 갔다가 납치를 당해 7년 동안 감금당한 채 성폭행을 당해왔다. 잭은 그런 그녀의 두 번째 아이이다. 아놔, 아빠는 상상하기도 싫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성폭행과 폭력에 시달리던 그녀는 ‘잭’을 출산 후 아이를 살뜰히 보살핀다. 글을 가르치고 매일 조금씩 운동을 시키고 세상 밖으로 나갈 연습을 한다. 그녀에게 아이는 갇힌 삶에서 유일한 희망이자 살아야 할 이유였다.
“나는 납치당했어요.”
우리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죽은 척하기, 트럭, 빠져나오기, 뛰어내리기, 달리기, 사람, 쪽지, 경찰, 토치. 아홉 가지였다. 머릿속에 한꺼번에 다 넣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당연히 할 수 있지, 넌 엄마의 영웅이니까, 다섯 살이니까, 라고 했다. 아직 네 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158)
드디어 대탈출 계획은 성공하고 그 둘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엄마에게 상처가 된다. 엄마는 단절된 시간 동안 잊었던 자기 자신을 찾는 것과 엄마의 역할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우울증이 깊어지게 된다.
“계속 엉망이야. 너한테는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데, 동시에 어떻게 해야 내가 될 수 있는지 기억해 내려니까 자꾸만 이상해져.”(p.265)
“대단하네요. 자, 여러 전문가들이 이상한 결단이라고 지적하는데요, 잭에게 가로 11, 세로 11피트의 방이 세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러니까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 몇 권 안 되는 책에서 읽는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가르치셨어요. 아이를 속인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나요?”
“잭을 바라보면서 아이의 근본을 마음 아프게 떠올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신가요?”(p.283)
삶을 이어가고 살아낸 엄마에게 쏟아지는 격려와 함께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는데 그저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으로서 그녀의 행동은 정말 대단하고 용감하니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잭이었다. 엄마의 원가족으로부터의 다정한 보살핌으로 하나둘씩 세상을 익히고 배워나가면서 엄마와 자신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잭은 믿음과 신뢰로 확신하고 있었다.
“난 요즘 항상 넘어져. 세상에는 발을 거는 게 많아.”
“그래, 하지만 이 잔디는 아주 푹신하잖니.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거다.”(p.372)
잭은 엄마의 손을 잡고 갇힌 공간이었던 그 방에게 “안녕, 방아.” 하면서 그곳에서의 시간에 결별을 고함으로써 그들은 진정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두웠던 시간을 묻고 잊으려는 엄마와는 다르게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스스로 선택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가슴 벅찬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잭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 우리 사회에 당연한 것들이 사실은 삐뚤어진 것이었음을 알게 되어 암울하기도 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다. 그러나 단단한 신뢰와 믿음의 사랑은 결국 해낸다는 걸 느끼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 영화제 50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21_arte 아르테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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