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맨 눈의 마을 트리플 22
조예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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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고 싶었다는 조예은의 이야기는 진실되다. 감염으로 변한 신체변형자들과 변형이 이뤄지지 않은 이들을 나누는 방식은 지금의 소수자와 다수의 사람들을 나누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프레임을 벗어나서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 시선 비틀기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다름을 더 나음으로 만드는 조예은의 세계에 발을 딛은 나는 더 깊이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할 듯하다. 희망을 주는 조예은의 진짜같은 가짜를 나는 진짜라고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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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 요리사 박찬일이 발품으로 찾아낸 오사카 술집과 미식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모비딕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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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술맛의 기원을 찾아서, 술꾼이 술꾼 다울 수 있는 공간에 젖어 들고 싶어서 일본의 대폿집 기행이 시작되었다. 오사카 사람들은 언제나 마신다고 한다. 술이 윤활유인 그들 안으로 저자는 스며들어 갔다. 오사카 곳곳을 여러 계절 누비고 다닌 저자의 노력이 책 속에 여실히 보인다. 각각의 음식점에는 별점이 있고 꼭 먹어야 할 안주와 술 가격까지 깨알 팁이 가득하다. 저자는 이 책이 알코올로 농축한 일종의 액체 책이라고 소개한다. 짜면 술이 흐를지도 모를 만큼 많이 마셨다는 얘기다. 그의 알코올 책을 열고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본다.

 

인상 깊었던 곳

-에치겐-완벽한 구시카쓰를 위하여, 건배 *강력추천하는 집

구시카쓰는 뜨거운 라드(돼지 기름)나 참기름에 튀기는 것이 정석. 일반 식용유는 잘 쓰지 않는다. 고운 빵가루를 묻혀 튀기는 것이 정석이라 입에 닿는 촉감도 특이하다. 뭐든 튀긴다. 그게 구시카쓰의 비밀. ‘진짜 구시카쓰를 맛보려면 여기!’, 추천 메뉴는 모든 구시카쓰, 특히 채소류

 

-와스레나 구사-이보다 완벽할 순 없는, 최고의 다치노미야

두 젊은 점주의 완벽한 호흡, 요리 쇼를 볼 수 있다. “이 집은 화가 나고 우울할 때 옵니다. 그럼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항상 뭔가 색다른 안주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기대를 하고 옵니다. 분명히 충족시켜 줍니다.” ‘안 가면 손해, 그들은 매일 밤 공짜 디너 쇼를 연다’, 추천 메뉴는 모든 안주.

 

-상하이엔-엄청난 솜씨, 단연 최고의 중국 식당

어쩌다 찾은 보물같은 집. 세 번을 갔는데 모두 만족한 집. 그저 가보시길 추천. ‘오사카 최고의 해산물 중심 중국 식당’, 추천 메뉴는 그날의 해물 요리

 

-다코우메-Since 1844,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뎅집

서서먹는 집이며, 개성이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음식을 낸다. 여러 지방의 술을 갖추고 있다. ‘오뎅 맛이 이런 것이었소’, 추천 메뉴는 오뎅, 제철 생선 요리

 

-안케라소-가장 힙한 내장구이 스탠딩 바, 이건 뭐지?

전통적인 야키니쿠를 스탠딩 철판구이로 맛볼 수 있는 곳. 내장을 파는 집 중에서 분위기는 가장 힙하다. ‘또 가고 싶을 것이다, 반드시’, 추천 메뉴는 호르몬구이, 잡채

 

일본어를 1도 못해도 당당하게 술 먹는 법, 술 고르는 법, 메뉴를 고르는 법 등을 실어 실행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하고 자세히 설명해 두어 당장 오사카로 달려가고 싶게 한다. 특히 책에 소개된 그들의 술에 대한 열정(?)에 나도 모르게 취기가 오르는 듯하다. 지친 샐러리맨들, 혹은 육체 노동자들의 힘든 하루를 한 잔 술로, 맛있는 안주 한 접시로 씻어 버리고 다음날을 기약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음을 본다. 마주한 사람과의 한잔이 우리를 또 일으킬테니.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속에서 따로 또 같이 한 잔의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욱한 연기 속으로 책을 통해 여행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는 직접 먹어보고 진짜 맛집을 엄선하고 그 집에 얽힌 이야기들까지 소개하고, 사진과 함께 한 권의 책을 다 읽었을 때 같이 그 길을 걸어온 듯 착각이 든다. 생생한 사진으로 음식을 보는 건 역시 괴로웠지만 말이다.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로 오사카 술집 미식 여행을 대신해보며 꼭 가보고 싶은 집을 메모한다. 고독한 대식가 박찬일의 추천을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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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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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은 정말 알 수 없다니까. 우리는 패싱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용서하잖아요. 경멸하면서 동시에 감탄하고요. 묘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패싱을 피하지만 그걸 보호하기도 하죠.” (p.110)

 

백인과 비슷한 외모와 피부색을 가진 흑인이 백인 행세를 하는 정체성의 탈바꿈에 관한 이 소설은 1920년대의 미국의 경제 호황과 소비 만능주의 속에서 기존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만연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 흑인-백인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교류가 빈번해서 인종 관계의 개선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고 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백인인 고모들에게 자란 아름 다운 소녀 클레어. 백인 행세를 하면서 백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항상 불안하고 외롭다. 흑인 의사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중산층 가정의 삶을 살고 있는 아이린도 하얀 피부로 필요에 의할 때는 패싱을 하면서 살아간다. 어릴 적 헤어졌던 그녀들의 우연한 만남으로 아이린의 인생에 클레어가 깊숙이 들어오게 되는데.

 

독서모임 300의 두 번째 책

-나에게도 패싱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아이린 가족의 교육관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자살인가 타살인가

 

등의 질문으로 풍요로운 토론이 오고 갔다. 우리는 과연 패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패싱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또한 경멸하면서도 감탄하는 패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보며 우리도 지금 그것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지금 어떤 행세를 하고 있는 걸까. 그걸 요구하는 것은 사회일까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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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이피디의 사생활
이동원 지음 / 느린서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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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종속PD 이동원의 이야기다.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그의 일정을 따라가보다가 다시 제목을 봤다. 사생활이 없어서 이렇게 지었구나.

국민들이 즐겨보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과정을 보니 그들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 진다.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사건 사고들,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도와 알린 사건들. 우리가 미쳐 몰랐던, 그러나 알아야 했던 이야기들을 진실 규명의 목소리로 카메라에 담아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는 일개 월급쟁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월급쟁이들의 모여 우리가 되어 시민을 위해 월급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명감을 발휘한다. 아니라고 하지 마시길. 최근 읽었던 언론 관련 책들을 보며 더 관심을 가져야 함을 느끼고, 그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더 응원하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급쟁이일 뿐이라는 말은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말이지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취재 과정 중에 드러나는 저자가 처한 상황이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피해자를 대하는 모습, 사기꾼을 만나는 모습, 어려운 상황에 놓인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만나는 모두가 우리고 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월급쟁이의 그것보다는 사명감, 책임감을 보았다. 누구나 비판은 쉽게 할 수 있다. 비판은 접어두고 읽어 보시길. 암울한 지금 이런 희망을 주는 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지켜 볼께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해주세요. 믿을께요.” 라고 시청자의 연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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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 좋아하는 일, 꾸준히 오래 하면, 생기는 일
정헌재(페리테일) 지음 / 아워미디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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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아남기. 한동안 아이들이 읽었던 정글에서 살아남기 이런 책들의 제목이 떠올랐다. 어디에서든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네의 인생을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책은 그런 나를 우아하게 납작하게 만든다. 작가님이 살아온 세상은 살아남아야 하는 삶임에도 살아남는 것이 아닌 나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 그의 태도들을 읽어 나가며 마음에 다정한 빛이 한 줄기 들어옴이 느껴진다.

 

춥다고 그러면 그냥 안아주고

시끄럽다고 그러면 말을 안 하고

걷고 싶다 그러면 그냥 걸어주면 될 때가 있습니다.

느릿느릿 시간을 쌓으며 얻는

치유의 힘은 대단합니다.”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이 불안하고 미래를 암울한 지금. 이 책이 건네는 따스한 위로와 삶에 대한 태도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귀여운 그림을 그리고 끊임없이 창작하고, 좌절할 때는 유머와 다정함으로 곁을 지켜주는 이와의 모습에 슬며시 미소지어진다.

 

어둠이 가득한 별 위를 혼자 걸을 때

같이 걸어주는 사람입니다.

길을 잃을지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길 위를

묵묵히 걸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 손을 잡고 절대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그 반대의 상황이 되었을 때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 주세요.”

 

내가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었나. 결혼하고 단둘이 살게 되었을 때 들만의 집이 생긴 것에 행복해하고, 아이를 낳았을 땐 그 아이의 작은 발에 매일 밤 입 맞추고, 주말에 다같이 공원을 느긋하게 걷고, 여름밤 미지근한 맥주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마시던. 소중한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을 잡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계속 우리 곁에 있어 주길. 귀여운 거로 다정한 거로 우리가 좋은 사람이게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길. 작가님의 건강을 빌게 된다. 난 좋아하는 사람의 건강을 빈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떡볶이집 사장님의 건강과 안녕을 항상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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