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전쟁 후 1980년대 전라북도 이리의 외곽의 이곡리. 동네 건달이던 종술은 벼락부자인 최 사장의 저수지를 감독하는 일을 맡게 된다.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그 일을 수락한다. 스스로 감독이란 글자를 넣어 완장을 만들어 차고 다니며 저수지 감독뿐 아니라 마을의 온갖 일에 위용을 부린다.

 

-그해 이른 봄부터 이곡리 일대를 온통 휘젓고 다니며 마냥 으스대는 종술의 모습은 참 가관이었다.

 

종술은 완장이 주는 권력의 매력에 취해 어느새 저수지가 자기 것인 양 행동하고 설상가상으로 저수지는 가뭄으로 인해 물을 빼야 할 처지가 된다. 과연 완장의 종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도시에서 완장의 위력에 눌려봤던 종술은 완장이라는 말에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든다. 그 권력의 힘에 처참히 굴복했던 자신을 떠올렸으니. 그런 권력을 준다 하면 누구나 한 번쯤 차보고 싶다고 할 것이 바로 완장이다. 그런 완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발버둥을 치는 종술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가 바로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일 수도 내 주변에 있는 이일수도. 그런 종술의 몰락해가는 삶을 통해 권력을 희화화하는 풍자와 해학으로 저자는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한다. 이 소설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완장 앞에서는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이었다. 완장 때문에 녹아나는 건 늘 제 쪽이었다. 제각각 색깔 다르고 글씨도 다른 그 숱한 완장들에 그간 얼마나 많는 한을 품어왔던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완장들을 얼마나 또 많이 선망해왔던가.

 

어릴 적 학급의 주번이 <주번>이라고 써 있는 노란 완장을 왼팔에 찼다. 그건 돌아가면서 쓰레기 버리고 칠판 지우는 일이었기에 완장의 의미와는 맞지 않았다. 교실 내의 권력이란 <반장>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없을 때 떠드는 아이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고 조용히 시키는 것이 반장의 역할.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을 때는 거친 반격이 돌아온다. 반장은 선생님에게 혼나고 아이들에게는 인심을 잃는다.

 

-다름 아닌 그놈의 완장이란 물건이 화근이었다. 운암댁의 문을 똑똑 두드리는 불행은 바로 그 완장으로 언제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지금 정치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이 존재한다. 완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항상 우리 곁에 존재했고 그것을 쥐고 휘두르고 싶은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그들에게 권력을 주고 숨어있는 이는 누구이며 그 완장에 휘둘리는 이는 누구인가. 완장이 힘을 갖지 못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는 완장을 찼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이라 믿고 있는 완장 찬 이들이 떠오른다. 권력의 꼭두각시로 완장을 차고 오늘도 부지런히 종술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의 성별 - 가족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 Philos Feminism 7
셀린 베시에르.시빌 골라크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느끼는 빈부격차를 가족 안에서 찾아본다. 자본이 집중되는 것에 성별이 큰 영향이 되며 원인이 됨을 책을 읽으면서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혼 가정의 경우 양육비도 남성의 수입에 근거하고 여성 판사 또한 남성적 시각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가족에 관한 가장 새빨간 거짓말은 가족은 경제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라는 말이다. 여성에게 가족은 자연재해이며, 모든 불평등의 시작 지점이다.-최현숙작가의 추천사 중 발췌 라는 말이 과언이 아님을.

 

무급 노동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 일을 함으로써 일터로 복귀할 때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 반면 남성은 여성의 돌봄으로 계속 자신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부를 축적한다. 가족 내에 있는 부의 불평등이라고 하면 당장 와닿지 않겠지만 부모로부터의 재산 증여부터 교육의 기회, 부부 사이의 재산까지 다양한 자본의 차별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이제 자본의 사회적 차별을 넘어 자본에는 성별이 있음을 가족 안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불평등의 재생산 시작은 바로 거기부터다! 사회적으로 어떻게 용인되어왔고 더 공고히 다져졌는지 <자본의 성별>을 통해 알아볼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도 좋아했죠,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지.”

침울한 목소리에 실린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이 묘했다. (p.12)

 

아버지는 가족을 떠난 지 10년 만에 조부의 상을 치르기 위해 귀국한다. 상을 치르고 출국하러 돌아가는 아버지와 나는 가벼운 점심을 나누며 그간의 일들을 나눈다.

 

봄에 떠나 봄에 돌아온 아버지는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아버지와 헤어질 때쯤 나는 이해하게 된다. 두 아들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 공항에서의 가벼운 점심은 장은진 작가의 표제작으로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p.23) 외로웠던 한점의 사람이었던 아버지. 그의 한점은 어떻게 봄을 맞아 활짝 피게 되었을까. 외로움이 사무치고 그것이 병이 된다면 삶의 지속이 의미가 있을까. 결국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가. 한점이 여럿이 되어 우리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날 안 닮아 다행이야.”

아버지는 또 그 다행이란 말을 썼다. (p.25)

 

-난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아무리 손가락질하고 비난해도 사는 거 같거든. 밥도 맛있고 물도 맛있는 삶이면 된 거 아니겠니. 잠을 잘 자면 괜찮은 인생 아니겠니.

-다만 가슴 한쪽에 미안함을 품고 내가 선택한 삶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 (p.38)

 

봄으로 시작해서 겨울까지 이어지는 각각의 단편들은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다. 짙은 고독과 외로움이 담겨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또 그런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책을 덮고 방안을 어둡게 하던 커튼을 열어 지금 계절을 느껴본다. 나는 이 계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썰의 흑역사 - 인간은 믿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톰 필립스.존 엘리지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모론의 황금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론은 통제되고 걸러진 뉴스만 방송되고 있다. 반면 유튜브와 각종 개인 방송 채널들로는 정체 모를 뉴스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방송하는 말들 과연 그냥 믿어도 될지 의심하던 중에 만난 <썰의 흑역사>이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음모를 만들고 퍼뜨렸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음모론들 중에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도 있어서 더 놀라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 이가 있다는 것에도 놀라움. 그게 나라는 것도.

 

-음모론은 보통 대중이 지배계층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통념이 있다. 힘없는 자들이 힘 있는 자들에 반발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음모론은 지배계층이 만들어 퍼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모론이 소외층이나 교육 수준 낮고 정보에 어두운 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안이한 관점은 사실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음모론 신봉자 가운데는 군주와 정치 지도자, 법률가와 사업가, 수학자와 화학자, 저명한 물리학자와 선구적인 발명가도 있다. 군장교도 수두룩 성직자도 있다. 노벨상 수상자에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사람도 한 명 있다.

 

음모론은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친다. 음모론을 웃어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진짜 문제가 주목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우리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 안개가 낀 날 같은 흐릿한 시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이 음모론이다.

 

가짜 패턴에 속지 말고 진짜 패턴을 세심히 밝혀냄으로써 음모론을 인지하고 그것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함을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 매사를 예민하게 매의 눈으로 봐야 하니 더 피곤해질 것이 뻔하지만 그동안 그러지 못해서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흘러가는 대로 두지 말고 왜 그리로 흘러가는지 한 번쯤은 되짚어 생각해보자.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게 있다면, 그 같은 관점을 의문시하는 자세일 것이다.” 라는 핵심문장이 남는다. 어떤 것이든 의문시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지적 흥미를 채워주는 책 <썰의 흑역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시아나로 가는 길
로버트 바이런 지음, 민태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건축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저자 로버트 바이런은 10개월의 여행을 여행기로 남긴다. 1933년에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키프로스,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를 거쳐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는 여정이다. 분쟁지역만 골라서 가는 걸까? 지금도 쉽지 않은 위험한 일정이다. 게다가 당시는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암울한 시기였고 지금보다 더 안전하지 않았음이다.

 

당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져 당시 역사를 찾아보게 한다. 또한, 이슬람 건축물을 묘사하는 글을 읽으면 당장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이다. 사진이 실려있어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여행지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보니 일종의 모험기이다. 항상 긴장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저자의 배짱에 놀라웠다. 몽골여행도 고사하고 있는 나는 어떤가. 입에 모래가 씹힌다는 말만 듣고 두려워했다.

 

-지구상에서 이 장소를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곳으로 오는 우리의 험난한 여정 그 자체였다.

 

정치적 견해를 밝힐 때는 날카롭게, 건축물이나 자연을 말할 때는 아름답게 표현하여 여행 에세이를 읽는 듯하다. 또한, 여행하는 지역의 문화와 삶을 당시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 흥미롭기도. 가디언이 꼽은 20세기 최고의 여행서 <옥시아나로 가는 길>을 통해 이슬람, 이란, 아시아를 여행하는 저자와 동행해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려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