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으로 돌아오다
호르바 지음 / 좋은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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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사였던 화자가 파란 뫼라는 카페를 열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부제에서 보여주 듯 어느 수학 교사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원점이라 두고 그 원점을 중심으로 도는 화자의 사랑은 한결같다. 사랑하는 여성과 만남, 헤어짐, 다시 만남, 헤어짐, 또다시 만나기까지의 여정은 한결같은 성품의 사람임을 보여준다. 진짜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이 결핵에 걸려 헤어지게 되는 부분은 안타깝기도 했지만 여자는 일방적인 결별에 완전 열 받았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다시 만났는데 별로 화 안난 거 같아서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된 것이 안타까웠다.

 

지고 지순한 첫사랑을 수학이라는 개념을 접목해서 보여주려는 소설이다. 또한 하나의 주제를 통해 모인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재미 포인트였다. 책 속에 소개되는 다양한 수식과 모임 중 나왔던 수학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수학교사였던 저자의 첫 책인 <원점으로 돌아오다>를 읽게 되어 감사하고 앞으로도 또다른 책으로 만나길 기다려 본다.

 

 

오늘도 하늘이 다했다.”

그녀가 지금 이곳에 있었다면 하늘을 보며 두 팔을 벌려 눈을 감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 벌린 팔 사이로 꼭 껴안아 주고 싶었는데, 그럴질 못했다. (p.007)

 

숫자 0으로 이뤄진 원점답게 그녀는 주변을 사라지게 했다. 0에 어떤 수를 곱해도 0이 된다. (p.118)

 

전 원래 밝은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제가 욕심이 없다고 해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아요. 어릴 땐 욕심쟁이는 나쁜 사람이라고 배웠는데, 왜 지금은 욕심을 가지라고 하죠? 그냥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단지 그것 뿐인데. 사는 게 왜 이리 복잡한지 모르겠어요.”(p.140)

 

미국의 한 수학 잡지에서 많이 알려진 공식 24개를 제시하고,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을 고르기 위한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오일러 공식이 최종 선택되었다. 이 공식이 최종 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함 때문이다. 수학의 각 영역을 대표하는 값과 기본 연산으로 짧게 만들어진 이 공식은 단순해서 아름답고 신비롭다. (p.141)

 

그녀는 나에게 충분조건이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그녀와 나는 서로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그녀가 존재하고, 날 기억해 준 것으로 행복했다. 그녀가 나를 위해 존재할 필요는 없다.(p.151)

 

나는 원점을 중심으로 맴도는 원이 될 것이다. 때론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하며 타원을 그리겠지만, 포물선이나 쌍곡선처럼 영영 멀어지는 일은 없길 바랐다.(p.153)

 

원점을 다시 찾았다. 내 삶은 원점을 중심으로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움직일 것이다. 그녀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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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움
이아람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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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해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는 곳. 벙커 안에서 어머니와 살던 소년이 벙커 밖으로 나와 어머니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소년은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비밀과 이 세상을 둘러싼 거대 음모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게 된다. 외계 문명과의 접촉으로 탄생한 성장하는 인공지능 AI 헨리에타를 이용해 인류를 구하려는 인간들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소년의 어머니가 있었는데...

 

예상했던 방향으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 소설에서 당황스러웠지만 처음부터 답을 주었다.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p.9)’ 이다. 인류가 망하게 만든 세상과 새로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변화가 이 소설의 주제였다. 인류의 이기심으로 황폐해져 버린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생물들이 공존할 수 있을까를 소설은 진지하게 묻고 있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지구에게,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하다 보면 우리는 책 속의 그곳처럼 변해버릴 거라는 경고를 준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요즘 출간되는 SF소설들에서 나오는 배경들은 다가오는 미래처럼 느껴져 두렵다. 실제로도 방사능 오염수 유출로 앞으로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몸서리 처지는 밤에 이 책을 만나서 더 몰입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변화일까.

 

이 병은 폐쇄 생태계란다. 이 새우들은 여기서 나갈 수 없고, 빛 외의 것은 들어오지 않아. 그래도 이것들은 이 안에서 살아 남는단다. 새우는 이끼를 갉아 먹고 물을 마시고, 이끼는 새우의 배설물을 먹고 햇빛을 받아 수분과 산소를 만들어내면서, 조화롭고 아름답게 내부의 균형을 지키며 살아가. 그게…….”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긴 침묵은 아니었다.

그게 우리가 본받았어야 할 점이지.”(pp.16~17)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생각도, 신이 왕에게 통치권을 내려줬다는 생각도, 시간이 지나며 전부 무너졌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은 없어. 살면서 내가 알던 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너무 겁먹지 말아야 해.”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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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움
이아람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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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지금 우리가 지구에게,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하다 보면 우리는 책 속의 그곳처럼 변해버릴 거라는 경고를 준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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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그날, 우리가 몰랐던 중남미 세계사
윤장훈 지음 / 팬덤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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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중남미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루에 한 페이지씩 천천히 다가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30개가 넘는 나라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쉽게 읽어 볼 수 있고,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매일 벌어졌던 중요한 일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에 가볍게 읽기 좋다.

-192773일 우루과이에서 여성 참정권이 주어진 날

-2010715일 중남미 최초로 동성결혼을 허락한 아르헨티나

-19821210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등 11일부터 1231일까지 365일 매일의 각 날마다 중남미의 사건,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54. 멕시코 메리다주의 한인의 날이다. 1905541,033명의 한인이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에 도착했고 메리다주는 이를 기리기 위해 2019년부터 한인의 날을 기념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 이민 생활을 하던 한인들의 힘들었음을 기리기 위한 한국이민사박물관도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때의 이야기를 담은 김영하 작가의 <검은꽃>도 생각이 나서 이민자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저자는 브런치스토리에 그날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나 기념일에 대해 짧게 썼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고 하니 앞으로도 더 다양한 중남미 이야기가 나오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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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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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던 화인은 갑자기 집에 불이 나고 아버지는 창밖으로 추락해서 사망한다. 화인에게는 화상 자국이 없고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 발화점도 그 어떤 원인도 찾지 못한 채 미제로 남게 된다.

 

혼자 살던 빌리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k씨의 죽음. k씨는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송곳니로 찢어 놓은 듯한 열상을 목에 입고 사망했다. 옷장 안에는 두 손목과 발목까지 청테이프로 묶인 채 감금된 여성이 있었다. 미제 사건이다.

 

혼자 사는 집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Y. 폐에서 플랑크톤이 검출되었다. 평소 운전기사인 M을 심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CCTV에 잡혔고 같은 아파트의 입주민도 목격자이다. M은 퇴근했고 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움직임이 없었다. 이 또한 미제 사건이다.

 

위 세 사건의 공통점은 현장에 있던 당사자들이 몸에 타투를 했고 같은 문신술사에게서 했다는 점이다. 샐러맨다를 목덜미에 문신한 화인, 표범을 문신한 여성 작곡가, 우키요를 문신한 M. 화인과 같은 회사를 다니는 시미는 50대의 이혼녀이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화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문신술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타투는 부적으로도, 자신을 지켜줄 수호신 같은 의미로도, 단순히 치장의 의미로도 쓰일 수 있겠다. 나를 지켜준다니. 이 책을 읽으니 당장 타투를 하고 싶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기원하기 위해 몸에 타투를 그려 넣는다면 그것을 볼 때마다 심장에 새겨진 듯 나는 생각하겠지. 얇고 작은 책을 한 번 읽고 또 읽었다. 몸에 남은 상흔이 심장에 새겨진 것을 나는 안다. 몸은 기억한다고 하듯이. 상흔은 그때의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하지만 그 상흔이 사라져 갈 때쯤 나는 괜찮아지질 것이다. 상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문다고 하지 않던가. 상흔이 사라지면 스스로 다시 빛나는 날이 찾아오리라 믿고 싶다.

 

흘러넘친 끝에 고갈되었으나 일상의 바닥에 들러붙은 꿈의 침전물을 목격한 어느 날, 충동적으로 몸에 새긴 샐러맨더에 대해. 샐러맨더 한 마리를 몸 안에 키우면서, 잃었던 자신감과 의욕이 다시금 심장에 고이는 듯했던 날들에 대해. 저녁놀이 건드리고 지나간 것 같은 몸통의 그라데이션과, 그 무늬 아래 타래를 틀고 도사린 이야기들에 대해. (p.40)

 

언제가 됐든 사라지니까요.”

그것은 아마도 육신에 관한 이야기. 필멸에 관한 이야기. 아무리 영원해 보이는 피부 위의 흔적이라도 죽음까지 봉인할 수는 없으니. (p.44)

 

정말로 나를 지켜줬어요. 제일 절박했던 순간에. 이러다 죽을 것 같았을 때.”

그리고 자기 일을 마치고 떠나갔어요.” (PP.106~107)

 

단순히 나이와 신분을 표시하기 위해, 사냥이나 자수 등 기량의 등급을 매기기 위해, 때로는 무언가를 기념하거나 애도하기 위해, 결의를 이어 나가거나 자신의 용기를 자랑하기 위해. 자연의 어느 부족에서는 사자의 장례를 치를 때 그의 영혼이 들고나는 통로를 마련해주고자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와 구실이 오랜 옛날부터 있어 온 거라면, 자신을 수호하는 용도의 문신이 있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p.129)

 

당신은 살아오면서 어떤 호의와……얼마만 한 경멸과 때로는 악의를 만나왔기에, 자신을 지키는 부적을 온몸에 그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p.136)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p.138)

 

내 몸이 어제와는 달라지기를, 나를 둘러싼 외부 조건이나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기를. (p.140)

 

시미는 앞으로의 인생에 지금처럼 충동이 자신의 온몸을 구성 또는 대체할 정도로 부피가 커질 날이 다시 있을까 생각했다. 충동이 솟는다는 건, 태울 에너지가 생성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p.142)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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