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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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 겨울의 이야기를 마친다.”

 

한국전쟁이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 남은 민간인 대량학살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한 민간인 학살은 군. 경찰의 지시와 집행으로 이루어졌는데 토벌과 같은 공식 작전과 공식 명령계통으로 처형되고 학살되었다. 또한, 비공식적으로도 민간인 간 대량 폭력과 학살 등이 우익청년단, 향토방위대, 치안대 등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그 전쟁의 피해들이 마을 여러 곳에서 이뤄져 희생된 민간인의 수는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충남 아산에서 발생한 부역 혐의 민간인 희생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들은 1950‘9.28 수복이후 국면과 1951‘1.4 후퇴사건에서 발생했는데, 주민들이 인민군 점령 시기에 부역했다는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금당했다가 집단 학살당했다. 노인과 여성은 물론 갓난아이를 포함하여 일가족 전체를 몰살하고 때려서 죽이거나 생매장하는 참혹함을 보였다고 한다.

 

발굴된 유해와 유품, 생존자, 유가족, 조사관, 유해발굴단원, 학살 가해자의 이야기와 유해 발굴을 지휘한 체질인류학자 박선주의 삶을 교차로 저자 고경태가 엮었다. 앉아 있는 모습 그대로 발견된 A4-5의 유해로 시작하는 글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참혹한 현장의 이야기는 읽어내기 어려웠다. 사진 자료로 머리카락이 감긴 비녀를 보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선감학원, 세월호 유해 발굴 작업까지 다뤄지는 부분에서는 화가 나기도. 진실화해위원회와 민간단체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여러 유해 발굴현장과 발굴을 지휘하는 박선주의 노력에 고개가 숙여진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에게 전가되는 것에 화가 난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을 말하는 현 정권이 너무 무섭다는 사람들. 이승만 정권 때의 악행이 떠올라 인터뷰한 글을 삭제해달라는 말을 하는 유족의 글을 보니 암담했다. 진실과 우리는 과연 화해하고 있는지. 차가운 땅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딘 그들의 진실에 따스한 봄이 어서 오기를 기도하게 된다. 더 알고 알려 할 진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 <본 헌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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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잠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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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주변에 개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음을 느낀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개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은데 개를 아직도 많이 먹고 그것이 산업으로 크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이 책은 개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대한 르포이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모든 것을 보는 우리를 저자는 더 날카롭게 지적한다. 나조차도 개 식용화를 합법적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에 깊이 반성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는 잘 알려 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단정 짓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연대자인 동시에 다른 누군가가 당하는 폭력의 방관자이자 심지어 가담자인지 모른다. 동물 문제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 (p.59) 서늘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내려온다. 나는 방관자이자 가담자가 아닌가.

 

책을 읽고 나눈 토론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은 이 책을 읽고 나서 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좋아하지 않았고 무서워하기도 해서 길에서 개를 만나면 피해 다녔다는 분도 이제는 그러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다고. 몰랐던 것에 대해 그리고 알려 하지 않았던 것에 많은 경험담을 나누었다.

 

이 책을 누구나 읽고 모두 알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개의 죽음에 책임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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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사람이다 - 꽃 내음 그윽한 풀꽃문학관 편지
나태주 지음 / 샘터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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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그렇게 살그머니 소리 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노라고. 봄이 빨리 지나간다고. 이제는 봄이 점점 짧아진다고. 그렇지만 봄은 분명히 이렇게 우리 가까이 왔고 흐드러진 황금빛으로 영춘화 꽃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눈여겨보는 사람에게만 봄은 봄이고, 미세하게 느끼는 사람에게만 봄은 봄이고, 또 마음을 다해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봄은 봄이다. (pp.37~38)


어릴 적 상봉동 단층 양옥집 옥상을 올라가면 작은 화단이 있었다. 고추, 상추가 있고, 해바라기꽃, 채송화꽃, 맨드라미꽃, 분꽃, 사루비아꽃, 봉숭아꽃이 즐비했다. 해바라기의 씨앗이 까맣게 익으면 까서 먹고, 키 작은 채송화를 따서 소꿉 놀이를 했었다. 분꽃의 씨앗을 반으로 갈라 곱고 하얀 분을 만져보고, 사루비아꽃에 꿀을 빨아 먹었던 기억도 난다. 그중 제일은 역시 봉숭아꽃이다. 여름날 밤, 낮에 미리 백반을 넣어 찧어 둔 봉숭아꽃, 잎을 손가락마다 고이 얹어 물을 들이고 진하게 만든다고 며칠 후에 또 들이던 기억이 난다. 매년 하던 연례 행사였는데.

내내 잊고 살았던 이다. 내 어린 시절을 꽃으로 물들여주던 엄마의 기억과 함께 새록새록 살아나는 꽃들의 추억이 참 소중하다. 가장 예쁜 때 좋은 때라는 것은 언제일까. 엄마에게는 언제였을까. 우리 삼 남매와 함께 살던 그 시절이 엄마는 행복했을까. 꽃을 바라보듯 엄마를 바라봐주지 않았던 아빠를 원망하며 꽃을 가꾸었을까. 봄이 오면 엄마가 키우던 꽃을 사서 베란다에서 키우며 엄마를 보듯 바라봐야겠다. 엄마가 보고 싶다. 나에게 꽃은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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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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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속으로>를 읽고 <아무튼, 언니>를 통해 만났던 작가 원도의 컬럼집이다. 저자가 만났던 있었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읽어지지 않는다. 과학수사과에서 현장 감식업무를 맞으면서 본 삶의 파편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 고독사 등에서 처참한 부패 현장을 마주친 작가는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을 전한다.

 

-저를 발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때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때는 사람이라. 사람이었던 자의 가장 예의 바른 마지막 인사. 흔히 자살을 극단적인 선택이라 묘사하지만, 그들의 삶을 조망해온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건 언제나 삶이고 빌어먹을 세상이더라. (p.128)

 

인간의 조건, 인간다움을 생각하게 한다. 극단적인 삶으로 몰아붙이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면서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상식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의 부조리함을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상식이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인간이 가는 가장 마지막 관문 죽음을 지켜보는 이의 글은 처참하고 외롭지만, 생의 가능성을 믿고 글을 통해 사랑을 말한다. 그렇다고 나는 믿고 싶다. 애정이 없이는 이런 글을 쓸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세상이라며 울고불고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미묘하게 점점 나아지고 있다.’(p.176) 이 글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널리 퍼져 우리의 외로움도 날려버리는 그런 날이 오기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있는 존재들이니까. 그러기에 함께 손잡고 나아가기를 말하는 책 <있었던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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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이 끝나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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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의 편집부를 찾아온 카므셰프는 자신이 쓴 소설의 출간을 부탁한다. 그 원고를 읽어나가는 편집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는데.

 

젊고 아름다운 올가는 백작의 영지 관리인이자 나이 많은 우르베닌과 결혼을 하여 귀족이 되고 싶어 한다. 또한, 그녀는 소설의 화자이자 예심판사인 지노비예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그를 사랑한다. 백작 카르예네프 또한 올가를 유혹하여 그녀와의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며 그녀의 허영심을 채워준다. 어느 날 모두 사냥을 함께 나가게 되고 미혼인 줄 알았던 백작의 부인이 도착한다. 그리고 사냥터에서 올가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그녀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그녀는 과연 누가 죽였을까.

 

지노비예프의 앵무새 이반 데미야늬치는 남편이 아내를 죽였다!”라고 여러번 외친다.

 

강도가 들지 않을까, 혹은 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공포는 이미 차고 넘친다고.’(p.16) 초반의 문장이 글의 전반에서 느껴지는 인간들이 하는 행위의 공포를 암시한다. 남의 아내를 취하고 남의 재산을 내 것처럼 쓰는 행위,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지,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체호프가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의 초입부터 이미 범인의 추리가 가능해서 오히려 책 속 인물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인간 내면의 악과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 감추려는 시도 등 양가 적 감정을 가진 인간군상을 그려낸다. 그중에서 허영과 욕망 덩어리로 표현되는 올가를 더 깊이 생각해 본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그녀의 이유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휠씬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p.152) 그녀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지 않았을까. 최근 읽은 고전들의 공통된 질문에 닿아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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