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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 인도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이화경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3월
평점 :
2009년 10월, '울지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저자 이화경의 인도 여행기가 상상출판을 통해 재출간 되었다. 간만에 만나는 인도 여행기다. 내가 읽은 인도 여행기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힐링, 마음이 치유, 생각의 정리. 그런데 그러한 공톰점과는 달리 책 속 사진으로 만나는 인도는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무질서한.. 도무지 힐링, 치유, 정리를 느낄 틈이 없어보이는 곳이다. 직접 그곳을 느끼는 것과 책으로만 만나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인도 여행기를 보고나면 인도가 좀 궁금해지긴 한다. 대체 그곳엔 무엇이 존재하길래.. 이토록 인도를 한번쯤 가봐야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비움을 실천할 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걸까? 이 책의 저자도 어른이 되어서도 겪고 있는 성장통에 힘겨워 하다가 무작정 인도의 콜카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을 만나 대면할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때로는 무작정 떠난 낯선 길에서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여행인 것 같다.
여전히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나라, 인도. 사랑해도 계급차이로 결혼을 못하고, 계급만 높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든 나이 어린 여성과 결혼을 할 수 있는 나라. 가족들에 의해 명예살인이 가능한 나라. 불가촉천민이 존재하는 나라.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소가 행복한 나라. 내가 알고 있는 인도는 이랬다. 그런데 여행에세이 속 인도는 시끄러우면서도 고요하고, 불평등함에도 행복하고,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아이러니가 넘치는 곳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인도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려놓으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던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신비로우면서도 다양한 인도를 만난 기분이었다.
(* 신분제도인 카스트는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일반백성 및 천민) 등의 4계급과 계급에 속하지 않는 최하층 신분인 불가촉천민(저자가 머물렀던 콜카타에서는 언터처블이라 불렀다.)으로 나뉜다. 각 계급에서도 구체적인 직업에 따라 계급이 세분되는데, 바이샤와 수드라의 경우 2천여개 이상으로 세분된다고 한다. 1947년 카스트제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인도사회에서는 여전히 카스트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신분이 다른 계급 간에는 혼인을 금지하며 이름에서부터 신분 간의 차이가 있는 카스트는 힌두교의 '업'과 '윤회'사상을 근거로 정당화되며 사람들에게 이를 숙명으로 여기게 한다고 한다. 얼마전, 신분이 낮은 불가촉천민의 남성이 그보다 신분이 높은 여성과 양가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했다가 여성의 아버지에게 명예살인을 당한 일도 있었을만큼 계급차별은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저자가 인도 사람들에게 '인도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인도는 인도다.' 혹은 '인도는 위대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인도에는 많은 인도가 있다고 했다. 정말 인도는 어떤 나라인걸까?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겪지 않으면 절대 모를 것 같은 곳이 인도인 것 같다. 예전에 친구 한명이 인도를 여행하고 온 적이 있었다. 더럽고, 물이 안맞아 내내 설사병에 시달리고, 음삭도 입에 안맞고, 너무 덥지만 반바지를 입을 수 없어서 다니기 힘들다며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하며 여행을 하고 돌아온 친구는 신기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다시 한번 가고 인도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었다. 인도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존재하는 곳인가보다. 아직까지 인도는 막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 매력을 직접 느껴봐야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묻고 또 물었다. 그건 바로 한가하게 홀로 개재는 것이었다. 먹고 사는 일에 푹 젖어버린 습습한 뼈를 쩽쨍한 햇볕에 말리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관계에 매달리느라 절절거리는 수족 관절에 관심도 가지고 싶었다. 언젠가 멈추어버린 생각의 성장판에 물도 좀 주고, 정체불명의 욕망과 실랑이하느라 녹초가 된 마음도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안 될까? 나 죽고 나면 다 끝인데. 쉬는 것이 최고의 수행이라는데. 자기를 위해 쓰는 시간 좀 갖겠다는데. 안 될까? - P. 18
바쁜 생활은 피로를 낳고, 피로는 신경질을 낳고, 신경질은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은 죄책감을 낳고, 죄책감은 우울을 낳고, 우울은 슬픔을 낳고, 슬픔은 외로움을 낳고, 외로움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고통을 낳고, 고통은 병을 낳고, 병은 비참을 낳고, 비참은 불운을 낳고, 불운은 그 형제인 회한을 낳고, 바쁜 생활이 낳은 모든 것들은 결국 죽음을 낳고. - P. 20
설산의 열대 정글이 함께 있는 땅을, 기후와 지형이 그토록 천차만별인 곳을, 주요 언어 7개와 전혀 다른 방언 22,000개가 있는 땅을, 상호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다양한 언어들이 혼재해 있는 곳을,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은 인종이 21세기에 공존하는 이 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51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하면서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것을 어떻게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자신이 사는 땅을 박탈당한 사람들 중 4/5가 홍수에 밀려들 듯이 도시로 몰려드는 나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4대 주요 종교의 발상지이자, 12개의 다른 클래식 춤이 전수되고, 85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감자를 요리하는 300가지 방법들이 전해 내려오는 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샤시 타루르가 던진 질문에 그 자신이 한 답변은 너무도 심플해서 약간 어리둥절했다. 인도에는 많은 인도가 있다고. 인도의 모든 것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상이한 것들 속에 존재한다고. 거기에는 단 하나의 표준도, 단 하나의 고정된 정형도 없다고. 인도로 가는 일방통행은 없다고. 인도를 이해하는 원 웨이는 없다고. - P. 61~62
인도는 밖에서보다 안에서 들여다보면 훨씬 넓고 크고 깊다. 살면 살수록 요령부득이고,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곳. 어떤 공통한 집합도 함수도 찾기 힘든 곳. 그곳이 바로 인도였다. - P.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