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승 서점
여원 지음 / 담다 / 2025년 9월
평점 :

생과 사. 동전의 양면처럼 둘은 함께 태어난다. 다만, '생'은 정해지고, '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게 다르다. 이는 오로지 죽은 이들을 인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저승의 염라대왕 그리고 그의 명령을 이행하는 차사들만이 알 뿐이다. 그런데 이들조차 명부대로 살지 못한채 갑작스럽게 맞는, 예측하지 못하는 죽음도 존재한다. 이런 점은 남녀노소, 나이불문. '태어나는 건 순번이 정해지지만, 가는 순번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저승서점이 등장한다. 명부대로 살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저승서점으로 찾아오게 된다. 저승서점의 관리자 숙희는 찾아온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무화수에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다.

자겸 - 태어나면서 엄마와 헤어져야 했고, 바쁜 아빠 대신 할머니의 돌봄 속에 자란 여섯살 소녀. 갑작기 쓰러진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린다. 이런 사실을 알리 없는 아빠는 어머니 장례도 제대로 치루지 못한채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그 사이 저승서점에 도착한 자겸은 숙희에게 엄마를 만나고, 아빠와 할머니를 만난 후 다음 생에 같이 살고 싶다는 소원을 빌며 계약을 한다.
승우 - 6살 때 엄마가 집안의 모든 재산을 가지고 도망을 친 후, 아버지로부터 갖은 폭행으로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 승우. 무섭고 죽기 싫어 도망치듯 집을 나온 후 연을 끊었다 생각했지만, 친척 형으로부터 날아든 연락으로 다시 아버지와 묶이게 된다. 10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은 사기당하고, 반신불수의 아버지도 감당하게 된 승우에게 또 하나의 불행이 찾아온다. 온갖 시련이 몰린 듯한 승우의 사연은 뜻밖의 결말로 뭉클함을 남긴다.

동호와 월례 - 전쟁으로 끊어진 부부의 연이 죽어서야 다시 이어졌다. 간절한 전우의 소원으로..
미현과 지상 - 연쇄살인범 때문에 예정된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한 연인. 미현을 죽인 살인범을 뒤쫓다 명부의 명보다 훨씬 빠르게 죽음을 맞이하며 본래 예정되어 있던 수많은 목숨들을 살리게 된 지상은 자신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진 엄마를 위한 소원을 빈다.
서연 - 외로움, 무력감, 답답함.. 모든 것에 지쳐있던 그녀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죽음. 이에 그녀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워달라는 소원을 빌지만, 숙희는 그녀가 좀더 깊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그리고 49일의 기간 동안 서연은 자신이 잃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아마 다음권이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숙희의 제대로 된 사연이 다 공개되지 않았고, 좀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더 만나보고 싶은 이야기, 저승서점. 모든 사연의 죽음들이 원통하고 슬프지만, 자겸과 승우의 죽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너무 어린아이의 억울한 죽음과 너무 많은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젊은 청년의 죽음이라 그랬던게 아닐까 싶다. 이런 죽음들은 줄어들고 차라리 악한 이들의 죽음은 늘어나길.. 그렇게라도 세상이 조금 더 선해지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가 예정되어 있는 책은 아닌 듯 하지만, 한번 기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