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 - 플라톤의 대화편 마리 교양 2
플라톤 지음, 오유석 옮김 / 마리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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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을 읽기 전, 책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알고 나서 읽는 것이 책의 흐름이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이해도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파이돈》에 관한 내용을 검색하여 관련 내용을 최대한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아래 내용을 우선적으로 읽고 해당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해당 책을 읽기 전에 전반적인 내용을 보지 않고 읽게 되었는데 책에 실린 내용 중 다소 어려운 내용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약간은 급급한 모습으로 쫓아 갔던 것 같다. 앞으로 이 책을 읽어 보려는 분들은 나와 같은 과정을 겪지 말고 전반적인 내용을 훑고 들어가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단 생각이다.

물론 원치 않는다면 책을 다 읽고 해당 내용을 보셔도 좋다.

해당 책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것 같다.

아래 내용은 찾아본 내용을 재구성하여 쓴 글임을 밝혀둔다.




《파이돈》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상으로부터 구별되는 소위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 이 작품부터라고 하며 이는 영혼의 불사론(不死論)이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파이돈을 비롯한 젊은이들과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파이돈》은 고대 그리스의 엘리스 출신이다. 그가 어렸을 때 도시가 멸망 당했고, 때문에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그는 엄청난 미남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아테나이에 사창가로 팔려왔다. 다행히도 소크라테스가 그를 구해줘서 풀려났다고 한다. 은인인 소크라테스를 열렬하게 따르는 헌신적인 제자가 된다. 동시대에 그에 대해 언급한 자료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사후에도 그의 사상에 가장 본래에 가깝게 충실했다고 한다. 후에 그의 고향 엘리스가 복구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엘리스 학파를 창설했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모두 소실되어서 그의 구체적인 사상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 법정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이 집행되기까지는 한 달가량이 걸렸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영웅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에게서 14인의 남녀를 구한 일을 기념해 매년 델로스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그 기간 동안은 사형 집행을 금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도 늦어졌다. 델로스에 사절단으로 파견된 배가 그리스에 도착하고 소크라테스는 다음 날 사형을 당한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임종을 지켜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펠로폰네소스반도의 플레이우스에 들른다. 그때 에케크라테스의 요청으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을 때 무슨 말이 오갔고, 이를 지켜보던 동료들의 심경이 어땠는지를 상세히 들려준다. 이 책은 액자식 구성으로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가 대화를 나누고 도중에 소크라테스와 심미아스, 케베스가 끼어드는 형태다.


소크라테스는 해질 무렵인 사형집행 때까지 주로 시미아스와 케베스라는 두 사람의 피타고라스 학도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태연자약하여 평소와 조금도 다른 바가 없었다. 한편 그 대화를 듣는 편이었던 제자들은 "방금 웃으며 떠드는가 하면 곧 눈물을 흘린다"라는 식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혼은 육체라는 침침한 유리를 통하여 보는 것이므로 진리를 좀처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참다운 지(知)를 사랑하는 자(철학자)는 살아 있을 때부터 육체를 정화하여 영혼의 감옥이라 할 만한 육체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즉 살면서 죽음을 행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었을 때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서 플라톤은 영혼의 불사(不死)를 증명하기 위하여 이데아의 생각을 끌어낸다. 이데아는 우리가 현실의 개체를 현실의 개체로 인정할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 이데아의 원인설이 영혼 불사론의 제1전제가 된다. 그런데 눈(雪)은 눈으로서 눈의 이데아가 현실적인 눈의 원인인 동시에 눈의 이데아는 그것과 본질적인 관계에 있는 냉(冷)의 이데아도 받아들여 그것과 반대 관계인 열(熱)의 이데아를 배척한다. 뜨거운 눈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2전제이다.

그런데 혼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욱이 현실의 생명은 생명의 이데아가 원인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생명의 이데아와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리하여 눈이 냉(冷)의 이데아와 반대되는 열(熱)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영혼은 생명의 이데아와 반대되는 죽음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에 불사인 것이다. 이것이 이데아 원인설에 의한 불사의 증명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근거로 하여 태연하게 독배를 마셨는가. 거기에는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정의에의 확신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플라톤은 윤리적 근거로서 이데아를 안출하여 《파이돈》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태연한 죽음의 근거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 출처. 위키백과


플라톤은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일컬어지는 25편의 저작을 남겼다.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이 초기 작품이라면, 『파이돈』은 중기 작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이 정리한 소크라테스 철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저작들인 것이다. 그중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과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 서고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각각 다른 화자가 생생하게 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출처. 교수신문




p17-18

크리톤의 집안사람 몇이 가슴을 치며 소리내어 슬피 우는 크산티페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 사이 소크라테스는 침상에 올라 앉아 다리를 접고서 손으로 세게 문질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사람들이여! 쾌락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이해 보입니다. 쾌락과 반대된다고 생각되는 것. 즉 고통과 놀라우리만큼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쾌락과 고통은 한 사람에게 동시에 생겨나길 원치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둘 중 하나를 좇아 그것을 취하면, 거의 모든 경우에 다른 하나도 얻게 됩니다. 마치 둘이 하나의 머링데 결합된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소포스가 이를 숙고했더라면 다음과 같은 우화를 지었을 것 같습니다. 즉, 서로 싸우던 쾌락과 고통은 신께서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그게 불가능 했다. 그러자 그것들의 머리를 한데 묶어 버렸고, 이런 이유로 둘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 생겨나면 나머지 하나도 잠시 후 뒤따른다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이런일이 저에게도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족쇄 때문에 다리에 고통이 있었기에 뒤따라 쾌락이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p43-45

그때 케베스가 끼어들었습니다. “오, 소크라테스여! 다른 것들은 훌륭하게 논의하셨다고 생각했지만, 영혼에 관한 말씀은 사람들에게 많은 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일단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면 더 이상 아무곳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이 사망하는 그날 파괴되고 소멸하지나 않을까 걱정할 테니까요. 즉,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자마자 마치 숨결이나 연기처럼 사방으로 날아가서 흩어져버리고 아무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 영혼이 어딘가에 그 자첼초 홀로 존재하고, 지금 말씀하신 악들로부터 분리되어 한데 모이게 된다면, 오, 소크라테스여! 당신의 말씀이 참되다는 크고 아름다운 희망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은 후에도 영혼이 존재하고 모종의 능력과 현명함을 가진다는 이야기에는 적잖은 설득과 확신이 필요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오, 케베스여! 당신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말이 그럴듯한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더 친절하게 논의하기를 원하시나요?“

케베스가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당신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이 문제에 관해 당신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누군가 - 설령 그가 희극자까라고 하더라도 -가 우리 이야기를 듣는다면, 지금 제가 하품이나 떨면서 상관도 없는 것들을 주절거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겁니다. 따라서 당신이 좋다면 이 문제를 면밀히 따져보는게 좋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봅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닌지 말입니다. 옛이야기 중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갔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망자에게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산사람이 죽은 사람에게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산사람이 죽은사람에게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 영혼이 저승에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시 태어날 수 없을테니까요. 그러니까 산 사람이 죽은 사람 말고 다른데서 태어날 수 없다는게 사실이라면 이는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논증이 필요합니다.


p62

“우리가 이런 지식을 획득하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항상 이것들을 아는 상태로 일생 동안 알겁니다. 왜냐하면 안다는 것은 어떤 지식을 획득한 후 이를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심리아즈여! 우리는 지식을 잃는 것을 망각이라고 부르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오, 소크라테스여!“


p73

영혼이 홀로 탐구할 때는 순수하고 항상 존재하며 불사하고 한결 같은 대상을 향합니다. 영혼을 이런 대상과 동류이기 때문에 홀로 있을 때 방해 받지 않으면 이런 대상과 늘 함께 합니다. 이런 대상을 붙들고 있을 때 영혼도 방황을 멈추며 항상 동일하고 불편합니다. 자신과 유사한 대상과 연합하니까요. 영혼의 이런 상태를 “현명함”이라고 하지요?”


p78

(중략) 더구나 이런 영혼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즉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인해 떠돌면서 다시 육체에 갇힐 때까지 방황합니다. 아마도 이들은 사는 동안 가졌던 습성에 다시 묶일 겁니다.

무슨 습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오, 소크라테스여!

이를 테면 탐식이나 방탕, 폭음에 탐닉하면서 삼가지 않았던 자들은 당나귀 같은 짐승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주 합당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불의와 독재, 강탈을 좋아하던 자들은 늑대나 매, 솔개의 몸속에 들어갈 겁니다. 그런 영혼이 다른 어떤 몸에 들어간다고 말하겠습니까?

의심의 여지없이 그런 몸으로 들어가겠지요.

다른 영혼들도 자신이 행한대로 다른 어딘가로 가게 되겠지요?


p80-81

배움을 사랑하는 자들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 그의 영혼을 사로 잡을 때, 자신의 영혼이 육체에 단단히 결박된 채 갇혀 있어 마치 감옥 쇠창살을 통해 그리하듯 육체를 통해 존재하는 대상들을 탐구해야 하며, 영혼 자신을 통해 탐구할 수 없으므로 완전히 무지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 배움에 대한 사랑은 감옥의 무서운 점이 욕망을 통해 작동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결박당한 사람 자신이 결박의 공모자라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사랑하는 자들은 배움에 대한 사랑이 이런 상태의 영혼을 사로잡아 부드럽게 설득하고 해방시키려함을 안다는 겁니다. 눈을 통한 탐구는 기만으로 가득하며 귀나 다른 감각을 통한 탐구 또한 기만적이라는 것을 보이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감각을 멀리하도록 영혼을 설득하지요. 또 영혼을 독려해서 자기 자신에게 결집하고 몰두하게 하며,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무언가를 영혼이 그 자체로 사고할 때는 자신 이외의 것들은 신뢰하지 않도록 합니다. 또한 배움을 사랑하는 자들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 위와 다른 방식으로 탐구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참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이런 대상은 감각적이고 가시적인 반면 영혼 자체가 파악하는 대상은 지성적이고 비가시적인 대상이라고, 생각하도록 영혼을 독려합니다.


p86

백조는 평상시에는 노래하지만 죽어야 할 때를 자각하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길고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 곁으로 떠나는 걸 기뻐하는 것이지요.


p99

적절한 지식없이 누군가를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그 사람이 완전히 진실하고 온전하며 믿을만하다고 여기지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적절한 지식없이 누군가를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그 사람이 완전히 진실하고 온전하며 믿을만하다고 여기지요.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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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읽는 습관 - 모든 사업의 시작 좋은 습관 시리즈 46
김선주.안현정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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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트렌드를 숫자나 데이터의 분석으로만 접근한다.
하지만 이 책은 트렌드를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 속에서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트렌드는 결국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 희망을 반영한 거울이라고 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 광고, SNS 속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시대를 움직이는 감정의 흐름이 숨어 있다. 이를 읽어내는 능력이야말로 트렌드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트렌드를 읽는 관찰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저자들은 단순히 무엇이 유행하는지 보는 것을 넘어 왜 그런 현상이 생겨났는지를 파악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소확행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이유를 단순히 경제적 상황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개인의 행복과 여유를 찾으려는 심리적 변화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트렌드 분석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단순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이제는 그 제품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핵심이다.

이 책에서는 환경친화적 소비를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환경 보호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원한다. 그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는 단순히 기능을 넘어, 그 선택이 어떤 ‘선한 영향력’을 가질지에 더 주목한다. 브랜드가 소비자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트렌드를 읽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반복을 통해 길러진다. 저자들은 뉴스, SNS, 대중문화 등 우리가 매일 접하는 모든 콘텐츠를 분석 대상으로 삼으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의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며 연관된 키워드를 찾아보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트렌드는 멀리서 오는 거대한 파도가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잔물결이다.” 이는 대중적이고 눈에 띄는 현상만 좇지 말고, 그 시작점을 읽어내는 섬세한 관찰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독자가 직접 트렌드를 분석해볼 수 있는 실습과 질문들을 제공하며, 일상 속 사례를 통해 개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단순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고 사고를 확장시키는 책이다.

『트렌드 읽는 습관』은 변화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트렌드는 그 변화의 맥락을 읽는 도구다. 트렌드를 읽는 사람은 유행을 좇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이 책은 트렌드를 읽는 기술을 넘어 변화에 대한 열린 자세와 삶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선사한다. 결국 트렌드는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를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트렌드 읽는 습관』은 그 방향을 찾기 위한 훌륭한 나침반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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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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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
에스터 셀스던.지넷 츠빙겐베르거 지음, 이상미 옮김 / 한경arte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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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작품 세계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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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
에스터 셀스던.지넷 츠빙겐베르거 지음, 이상미 옮김 / 한경arte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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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고독, 에곤 실레의 예술과 삶을 들여다보다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짧고 강렬했던 삶을 살았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요절했다. 그의 그림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에스터 셀스던과 지넷 츠빙겐베르거가 공동 집필한 ‘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는 이 위대한 화가의 예술과 삶을 흥미롭게 풀어내며 그가 남긴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레의 예술은 그의 개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실레는 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도나우강 하류의 작은 도시 톨른의 기차역 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은 불안정했다. 아버지는 매독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졌고 결국 실레가 15살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고 실레는 어린 나이에 가장의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하지만 실레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냉랭했지만, 누이 게르티와는 특별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초기 그림에는 이런 가족사와 관계의 흔적이 종종 드러난다. 인물들의 고독하고 불안한 표정은 실레 자신이 느꼈던 내적 혼란과 고독을 보여준다.


실레는 16살에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에 만난 인물이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클림트는 실레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를 예술계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예술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클림트는 실레에게 자유로운 선과 대담한 색채 사용법을 가르쳤다. 클림트와의 만남 이후, 실레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은 인간의 욕망과 고독, 그리고 불안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과감하게 왜곡된 인체 표현은 단순히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실레의 작품은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그림 속 누드와 에로틱한 주제는 당시 사회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외설적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그는 미성년 모델과 작업한 것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실레는 오히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더욱 확고히 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예술은 결코 도덕적이지 않다. 예술은 단지 본질을 탐구할 뿐이다.”

실레에게 그림은 단순한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었다.

실레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죽음’이다. 그의 그림은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하며, 삶의 유한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히 그의 예술적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은 실레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가까운 현실로 느끼게 했다.


그의 대표작 ‘죽음과 소녀’는 이러한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은 실레와 연인 발리 노이지(Wally Neuzil)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사랑과 상실, 그리고 죽음의 슬픔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실레의 작품은 그가 사망한 지 100년이 넘는 지금도 현대인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준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을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실레의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고독에 대한 심리학적, 철학적 해석의 대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는 그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삶과 예술적 여정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왜 그는 욕망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표현했을까?

그의 작품이 불편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의 삶과 작품 속에 담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실레는 짧은 생애 동안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만들었고, 그 언어는 지금도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신의 본질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실레의 삶은 고통과 열망, 그리고 끝없는 탐구로 가득 찬 여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예술로 자신을 표현했고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실레는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빈은 그림자로 가득 찬 검은 도시다.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들을 필요가 없는, 보헤미아의 숲에 혼자 있고 싶다." 이러한 실레와 동행한 사람은 클림트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실레에게 헌신적이었던 발레리 노이칠Valerie Neuzil(애칭 ‘발리’)이었다. 두 사람은 실레의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몰다우강 근처의 크루마우로 이사했다. 그리고 실레에게는 매우 생산적인 작업 기간이 시작됐다. 그는 몇 점의 풍경화 외에, 자신과 ‘지저귀는 종달새’ 같은 연인 발리의 누드 습작을 주로 그렸다. 일기에 남긴 드로잉처럼, 많은 습작에서 두 사람의 에로틱한 동거를 묘사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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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으로 숨은 엄마 - 그림에서 발견한 삶의 가치 36가지
한도연 지음 / 북클로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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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집밥 같은 작은 미술관 '가치미술관'


‘한도연(또띠아)’ 저자가 집필한 '미술관으로 숨은 엄마'는 제목만 접했을 뿐인데도 참 많은 궁금증이 들었다. 숨었다는 표현에서 무슨 힘든 경험을 했던걸까? 일상의 탈피를 위해 찾은 공간이 미술관이었던걸까? 각종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한 궁금증을 안고 '들어가는 글'부터 읽어보니 그 이유가 뭔지 알겠다.


남편의 런던 해외 발령으로 10년 넘는 교직 생활을 벗어나 난생처음 한국을 떠나 런던에서 살게 되었다. 겨우 두 돌, 백일을 갓 넘긴 딸들과 함께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매일 걱정과 두려움에 떨며 보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지쳐가는 걸 느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어린 두 딸을 키우며 지내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한 생활을 이어가다 아이들이 사설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처음으로 자유시간이란게 생겼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이 없었다. 목적없이 워털루역에 내려서 걷고 또 걷기도 하고, 어느 날은 커피 한잔만 마시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런던 시내를 들르면서 찾게 된 곳이 '내셔널 갤러리'였다. 런던의 큰 미술관들은 대부분 입장료가 없어 자유롭게 방문하기가 좋았다. 유명한 작품 하나만 보고 갈까하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들르게 되었다. 별다른 목적없이 아름다운 공간을 걷는다는 사실이 좋았고, 건물 자체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더 없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방문한 사람이 내뿜는 배움의 열기가 그림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미술사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새롭게 알게 된 지식으로 그림을 보는 것이 더욱 신이났다. 미술관을 걷다 공부한 그림이 나오면 반가움에 발걸음을 멈추고 빠져들기도 했다. 그 시간만큼은 해외 생활과 육아에서 오는 답답함이 해소되는 듯했다.


저자는 미술관 취미가 시작된 이후로 그림과 관련된 취미활동을 꾸준하게 하게 되었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포스팅하고 그림을 공부하는 북클럽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다 SNS에 포스팅 했던 수 많은 그림 중에 나는 '왜 이 그림을 선택했을까?' 묻게 되었는데, 단순히 그림에 대한 지식만을 나누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내 생각과 감정도 함께 기록하면서 일기처럼 기억하고 또 공감받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그림들은 결국 나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했다. 그림에서 지향하는 가치들을 발견할 때 그림이 더 특별히 느껴지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림 속 한 인간으로 살았던 화가의 인생과 시대를 알게 되면 나를 돌아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림 한 점으로 과거를 여행하다 보면,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그림을 보면서 오히려 나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되었던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저자는 나 자신을 잘 알고 '나다움'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꿈은 어느 길인지, 조용히 묻고 답했던 새벽의 시간 속에서 삶의 가치 목록을 정리했다. 나를 말해 주는 가치들이 이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소중한 가치들을 나열했다 그 가치는 '꿈, 배움, 유연함, 행복, 관계, 나눔'이었다.

 그림을 통해서 붙들고 싶은 가치를 발견 했을 때 오랫동안 내게 머물렀다. 그림이 전해주는 이미지와 살아온 경험들이 버무러져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그림이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그림들을 기억하고 싶어 나만의 작은 '가치미술관'을 만들게 되었다. 나만의 미술관에 소개된 가치들은 나에게만 특별하고 소중한 가치는 아닐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민은 각자의 것이지만 그 내용은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질문을 던지는 그림이더라도 내 이야기가 입혀지면 자신만의 미술관이 된다.


가치미술관은 저자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6가지 가치를 6개의 전시관으로 구성했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꿈'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배움'

생각이 자유롭고 싶은 '유연함'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는 '행복'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관계'

내 것을 친절히 나누고 싶은 '나눔' 전시실이다.


저자의 가치미술관을 관람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꺼내 놓을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 책에는 고전 서양 화가들의 그림뿐만 아니라 한국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실었다. 고전 그림과 더불어 현대 화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싣고 있어 동서양의 작품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화가들의 삶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까지 다양한 스토리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거기에 저자의 그림 감상뿐만 아니라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그림을 좋아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든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배움의 또 다른 이름은 도전이고, 성장이기 때문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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