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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
에스터 셀스던.지넷 츠빙겐베르거 지음, 이상미 옮김 / 한경arte / 2024년 10월
평점 :
욕망과 고독, 에곤 실레의 예술과 삶을 들여다보다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짧고 강렬했던 삶을 살았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요절했다. 그의 그림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에스터 셀스던과 지넷 츠빙겐베르거가 공동 집필한 ‘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는 이 위대한 화가의 예술과 삶을 흥미롭게 풀어내며 그가 남긴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레의 예술은 그의 개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실레는 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도나우강 하류의 작은 도시 톨른의 기차역 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은 불안정했다. 아버지는 매독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졌고 결국 실레가 15살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고 실레는 어린 나이에 가장의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하지만 실레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냉랭했지만, 누이 게르티와는 특별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초기 그림에는 이런 가족사와 관계의 흔적이 종종 드러난다. 인물들의 고독하고 불안한 표정은 실레 자신이 느꼈던 내적 혼란과 고독을 보여준다.
실레는 16살에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에 만난 인물이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클림트는 실레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를 예술계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예술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클림트는 실레에게 자유로운 선과 대담한 색채 사용법을 가르쳤다. 클림트와의 만남 이후, 실레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은 인간의 욕망과 고독, 그리고 불안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과감하게 왜곡된 인체 표현은 단순히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실레의 작품은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그림 속 누드와 에로틱한 주제는 당시 사회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외설적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그는 미성년 모델과 작업한 것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실레는 오히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더욱 확고히 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예술은 결코 도덕적이지 않다. 예술은 단지 본질을 탐구할 뿐이다.”
실레에게 그림은 단순한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었다.
실레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죽음’이다. 그의 그림은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하며, 삶의 유한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히 그의 예술적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은 실레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가까운 현실로 느끼게 했다.
그의 대표작 ‘죽음과 소녀’는 이러한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은 실레와 연인 발리 노이지(Wally Neuzil)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사랑과 상실, 그리고 죽음의 슬픔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실레의 작품은 그가 사망한 지 100년이 넘는 지금도 현대인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준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을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실레의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고독에 대한 심리학적, 철학적 해석의 대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는 그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삶과 예술적 여정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왜 그는 욕망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표현했을까?
그의 작품이 불편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의 삶과 작품 속에 담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실레는 짧은 생애 동안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만들었고, 그 언어는 지금도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신의 본질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실레의 삶은 고통과 열망, 그리고 끝없는 탐구로 가득 찬 여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예술로 자신을 표현했고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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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클럽'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실레는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빈은 그림자로 가득 찬 검은 도시다.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들을 필요가 없는, 보헤미아의 숲에 혼자 있고 싶다." 이러한 실레와 동행한 사람은 클림트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실레에게 헌신적이었던 발레리 노이칠Valerie Neuzil(애칭 ‘발리’)이었다. 두 사람은 실레의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몰다우강 근처의 크루마우로 이사했다. 그리고 실레에게는 매우 생산적인 작업 기간이 시작됐다. 그는 몇 점의 풍경화 외에, 자신과 ‘지저귀는 종달새’ 같은 연인 발리의 누드 습작을 주로 그렸다. 일기에 남긴 드로잉처럼, 많은 습작에서 두 사람의 에로틱한 동거를 묘사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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