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 - 플라톤의 대화편 마리 교양 2
플라톤 지음, 오유석 옮김 / 마리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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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을 읽기 전, 책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알고 나서 읽는 것이 책의 흐름이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이해도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파이돈》에 관한 내용을 검색하여 관련 내용을 최대한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아래 내용을 우선적으로 읽고 해당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해당 책을 읽기 전에 전반적인 내용을 보지 않고 읽게 되었는데 책에 실린 내용 중 다소 어려운 내용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약간은 급급한 모습으로 쫓아 갔던 것 같다. 앞으로 이 책을 읽어 보려는 분들은 나와 같은 과정을 겪지 말고 전반적인 내용을 훑고 들어가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단 생각이다.

물론 원치 않는다면 책을 다 읽고 해당 내용을 보셔도 좋다.

해당 책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것 같다.

아래 내용은 찾아본 내용을 재구성하여 쓴 글임을 밝혀둔다.




《파이돈》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상으로부터 구별되는 소위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 이 작품부터라고 하며 이는 영혼의 불사론(不死論)이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파이돈을 비롯한 젊은이들과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파이돈》은 고대 그리스의 엘리스 출신이다. 그가 어렸을 때 도시가 멸망 당했고, 때문에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그는 엄청난 미남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아테나이에 사창가로 팔려왔다. 다행히도 소크라테스가 그를 구해줘서 풀려났다고 한다. 은인인 소크라테스를 열렬하게 따르는 헌신적인 제자가 된다. 동시대에 그에 대해 언급한 자료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사후에도 그의 사상에 가장 본래에 가깝게 충실했다고 한다. 후에 그의 고향 엘리스가 복구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엘리스 학파를 창설했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모두 소실되어서 그의 구체적인 사상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 법정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이 집행되기까지는 한 달가량이 걸렸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영웅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에게서 14인의 남녀를 구한 일을 기념해 매년 델로스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그 기간 동안은 사형 집행을 금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도 늦어졌다. 델로스에 사절단으로 파견된 배가 그리스에 도착하고 소크라테스는 다음 날 사형을 당한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임종을 지켜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펠로폰네소스반도의 플레이우스에 들른다. 그때 에케크라테스의 요청으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을 때 무슨 말이 오갔고, 이를 지켜보던 동료들의 심경이 어땠는지를 상세히 들려준다. 이 책은 액자식 구성으로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가 대화를 나누고 도중에 소크라테스와 심미아스, 케베스가 끼어드는 형태다.


소크라테스는 해질 무렵인 사형집행 때까지 주로 시미아스와 케베스라는 두 사람의 피타고라스 학도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태연자약하여 평소와 조금도 다른 바가 없었다. 한편 그 대화를 듣는 편이었던 제자들은 "방금 웃으며 떠드는가 하면 곧 눈물을 흘린다"라는 식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혼은 육체라는 침침한 유리를 통하여 보는 것이므로 진리를 좀처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참다운 지(知)를 사랑하는 자(철학자)는 살아 있을 때부터 육체를 정화하여 영혼의 감옥이라 할 만한 육체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즉 살면서 죽음을 행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었을 때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서 플라톤은 영혼의 불사(不死)를 증명하기 위하여 이데아의 생각을 끌어낸다. 이데아는 우리가 현실의 개체를 현실의 개체로 인정할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 이데아의 원인설이 영혼 불사론의 제1전제가 된다. 그런데 눈(雪)은 눈으로서 눈의 이데아가 현실적인 눈의 원인인 동시에 눈의 이데아는 그것과 본질적인 관계에 있는 냉(冷)의 이데아도 받아들여 그것과 반대 관계인 열(熱)의 이데아를 배척한다. 뜨거운 눈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2전제이다.

그런데 혼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욱이 현실의 생명은 생명의 이데아가 원인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생명의 이데아와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리하여 눈이 냉(冷)의 이데아와 반대되는 열(熱)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영혼은 생명의 이데아와 반대되는 죽음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에 불사인 것이다. 이것이 이데아 원인설에 의한 불사의 증명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근거로 하여 태연하게 독배를 마셨는가. 거기에는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정의에의 확신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플라톤은 윤리적 근거로서 이데아를 안출하여 《파이돈》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태연한 죽음의 근거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 출처. 위키백과


플라톤은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일컬어지는 25편의 저작을 남겼다.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이 초기 작품이라면, 『파이돈』은 중기 작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이 정리한 소크라테스 철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저작들인 것이다. 그중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과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 서고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각각 다른 화자가 생생하게 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출처. 교수신문




p17-18

크리톤의 집안사람 몇이 가슴을 치며 소리내어 슬피 우는 크산티페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 사이 소크라테스는 침상에 올라 앉아 다리를 접고서 손으로 세게 문질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사람들이여! 쾌락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이해 보입니다. 쾌락과 반대된다고 생각되는 것. 즉 고통과 놀라우리만큼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쾌락과 고통은 한 사람에게 동시에 생겨나길 원치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둘 중 하나를 좇아 그것을 취하면, 거의 모든 경우에 다른 하나도 얻게 됩니다. 마치 둘이 하나의 머링데 결합된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소포스가 이를 숙고했더라면 다음과 같은 우화를 지었을 것 같습니다. 즉, 서로 싸우던 쾌락과 고통은 신께서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그게 불가능 했다. 그러자 그것들의 머리를 한데 묶어 버렸고, 이런 이유로 둘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 생겨나면 나머지 하나도 잠시 후 뒤따른다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이런일이 저에게도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족쇄 때문에 다리에 고통이 있었기에 뒤따라 쾌락이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p43-45

그때 케베스가 끼어들었습니다. “오, 소크라테스여! 다른 것들은 훌륭하게 논의하셨다고 생각했지만, 영혼에 관한 말씀은 사람들에게 많은 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일단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면 더 이상 아무곳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이 사망하는 그날 파괴되고 소멸하지나 않을까 걱정할 테니까요. 즉,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자마자 마치 숨결이나 연기처럼 사방으로 날아가서 흩어져버리고 아무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 영혼이 어딘가에 그 자첼초 홀로 존재하고, 지금 말씀하신 악들로부터 분리되어 한데 모이게 된다면, 오, 소크라테스여! 당신의 말씀이 참되다는 크고 아름다운 희망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은 후에도 영혼이 존재하고 모종의 능력과 현명함을 가진다는 이야기에는 적잖은 설득과 확신이 필요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오, 케베스여! 당신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말이 그럴듯한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더 친절하게 논의하기를 원하시나요?“

케베스가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당신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이 문제에 관해 당신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기꺼이 듣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누군가 - 설령 그가 희극자까라고 하더라도 -가 우리 이야기를 듣는다면, 지금 제가 하품이나 떨면서 상관도 없는 것들을 주절거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겁니다. 따라서 당신이 좋다면 이 문제를 면밀히 따져보는게 좋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봅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닌지 말입니다. 옛이야기 중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갔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망자에게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산사람이 죽은 사람에게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산사람이 죽은사람에게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 영혼이 저승에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시 태어날 수 없을테니까요. 그러니까 산 사람이 죽은 사람 말고 다른데서 태어날 수 없다는게 사실이라면 이는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논증이 필요합니다.


p62

“우리가 이런 지식을 획득하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항상 이것들을 아는 상태로 일생 동안 알겁니다. 왜냐하면 안다는 것은 어떤 지식을 획득한 후 이를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심리아즈여! 우리는 지식을 잃는 것을 망각이라고 부르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오, 소크라테스여!“


p73

영혼이 홀로 탐구할 때는 순수하고 항상 존재하며 불사하고 한결 같은 대상을 향합니다. 영혼을 이런 대상과 동류이기 때문에 홀로 있을 때 방해 받지 않으면 이런 대상과 늘 함께 합니다. 이런 대상을 붙들고 있을 때 영혼도 방황을 멈추며 항상 동일하고 불편합니다. 자신과 유사한 대상과 연합하니까요. 영혼의 이런 상태를 “현명함”이라고 하지요?”


p78

(중략) 더구나 이런 영혼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즉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인해 떠돌면서 다시 육체에 갇힐 때까지 방황합니다. 아마도 이들은 사는 동안 가졌던 습성에 다시 묶일 겁니다.

무슨 습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오, 소크라테스여!

이를 테면 탐식이나 방탕, 폭음에 탐닉하면서 삼가지 않았던 자들은 당나귀 같은 짐승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주 합당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불의와 독재, 강탈을 좋아하던 자들은 늑대나 매, 솔개의 몸속에 들어갈 겁니다. 그런 영혼이 다른 어떤 몸에 들어간다고 말하겠습니까?

의심의 여지없이 그런 몸으로 들어가겠지요.

다른 영혼들도 자신이 행한대로 다른 어딘가로 가게 되겠지요?


p80-81

배움을 사랑하는 자들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 그의 영혼을 사로 잡을 때, 자신의 영혼이 육체에 단단히 결박된 채 갇혀 있어 마치 감옥 쇠창살을 통해 그리하듯 육체를 통해 존재하는 대상들을 탐구해야 하며, 영혼 자신을 통해 탐구할 수 없으므로 완전히 무지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 배움에 대한 사랑은 감옥의 무서운 점이 욕망을 통해 작동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결박당한 사람 자신이 결박의 공모자라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사랑하는 자들은 배움에 대한 사랑이 이런 상태의 영혼을 사로잡아 부드럽게 설득하고 해방시키려함을 안다는 겁니다. 눈을 통한 탐구는 기만으로 가득하며 귀나 다른 감각을 통한 탐구 또한 기만적이라는 것을 보이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감각을 멀리하도록 영혼을 설득하지요. 또 영혼을 독려해서 자기 자신에게 결집하고 몰두하게 하며,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무언가를 영혼이 그 자체로 사고할 때는 자신 이외의 것들은 신뢰하지 않도록 합니다. 또한 배움을 사랑하는 자들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 위와 다른 방식으로 탐구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참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이런 대상은 감각적이고 가시적인 반면 영혼 자체가 파악하는 대상은 지성적이고 비가시적인 대상이라고, 생각하도록 영혼을 독려합니다.


p86

백조는 평상시에는 노래하지만 죽어야 할 때를 자각하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길고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 곁으로 떠나는 걸 기뻐하는 것이지요.


p99

적절한 지식없이 누군가를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그 사람이 완전히 진실하고 온전하며 믿을만하다고 여기지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적절한 지식없이 누군가를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그 사람이 완전히 진실하고 온전하며 믿을만하다고 여기지요.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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