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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 ㅣ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지금 피곤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억이 진짜인지 정도는 스스로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믿는다.
평생 하나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02 :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는 그 믿음이 생각보다 불안정한 토대 위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책에는 11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도 자신은 멀쩡하다고 믿었던 소년,
잠든 채 차를 몰고 가 사람을 해치고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남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자신의 경험처럼 기억한 사람, 즐겁지도 않은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신을 해치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낫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이들은 특별히 어리석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기 몸과 정신을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책은 잠과 기억, 쾌락과 치료를 둘러싼 실제 사건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자주 잘못 이해하는지 보여준다.
심리학과 뇌과학, 의학과 역사, 범죄와 철학을 넘나들지만 어렵고 딱딱한 이론을 앞세우지 않는다.
먼저 흥미로운 사건을 들려준 뒤, 그 안에 숨어 있는 인간의 오류를 짚어낸다.
한 편의 미스터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빠르게 읽히면서도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남는다.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열일곱 살 랜디 가드너의 수면 박탈 실험이다.
그는 1963년 과학 경시대회를 준비하며 약 264시간, 무려 11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실험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눈꺼풀이 무겁고 조금 예민해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야의 초점이 풀리고 감각이 둔해졌으며, 발음이 뭉개지고 감정의 변화도 심해졌다. 나중에는 길가의 표지판을 사람으로 착각하는 환각까지 나타났다.
그런데도 가드너는 끝까지 완전히 무너져 보이지 않았다.
농구를 하고 핀볼 게임에서 연구자를 이겼으며, 기자회견에서는 질문에도 또렷하게 답했다. 한 관찰자는 기억과 판단력이 무너지는 소년을 보았지만, 다른 관찰자는 여전히 게임을 하고 대화하는 멀쩡한 소년을 보았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잠을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는지가 아니다.
잠이 부족해지면 몸만 둔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괜찮은가’를 판단하는 능력도 함께 흐려진다는 사실이다.
술에 취한 사람이 자신은 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가장 지친 순간의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아직 괜찮다고 쉽게 판단한다.
사람은 망가질 때 모든 기능이 한꺼번에 꺼지지 않는다.
말하고 걷고 웃을 수 있다는 이유로 멀쩡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흐려진 것이 판단력이라면 자신의 변화를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결국 가드너의 실험이 보여준 것은 잠을 이긴 인간이 아니라,
무너지는 몸이 한동안 멀쩡한 척할 수 있으며 그 모습에 가장 먼저 속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책은 현대인이 잠을 지나치게 수치와 기준으로 판단하는 모습도 돌아보게 한다. 몇 시에 잠들었는지, 몇 시간을 잤는지, 깊은 잠이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수면 앱으로 확인하고, 앱이 좋지 않은 점수를 보여주면 몸의 느낌보다 숫자를 더 믿는다.
새벽에 잠깐 눈을 뜬 것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나쁜 잠’이라고 해석하는 순간 불안이 시작된다.
불면증이 아닐까, 내일 하루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 몸은 긴장하고 다시 잠들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잠의 형태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기준일 수 있다.
빛이 밤을 밀어내고 도시의 활동 시간이 길어지면서 잠은 휴식이 아니라 관리하고 평가해야 할 성과처럼 변했다.
몸이 보내는 느낌보다 수면 앱의 점수를 믿고, 정해진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면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고 의심한다.
책은 우리가 잠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몸을 조금 더 느슨하게 받아들이는 감각까지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을 앓았던 실바노의 이야기는 잠이 얼마나 놀라운 기능인지 보여준다.
그는 누구보다 자고 싶어 했지만 잠으로 넘어가는 길 자체가 닫혀 있었다.
그의 가문에서는 여러 세대에 걸쳐 비슷한 죽음이 반복됐고, 오랫동안 스트레스나 과로 때문이라고 여겼던 증상은 훗날 유전되는 질병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몸의 기능도 어느 날 조용히 무너질 수 있으며, 그 변화가 반드시 통증이나 분명한 경고와 함께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잠든 채 처가로 운전해 장모를 공격한 케네스 파크스 사건은 더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그의 몸은 움직였지만 판단과 기억은 충분히 깨어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피해와 행동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 순간 그에게 행동을 선택하거나 멈출 의지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몸은 움직였는데 의식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 행동의 주인은 누구라고 해야 할까. 이 사건은 인간이 언제나 자기 몸의 주인이라는 믿음을 흔든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의 확신을 더욱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우리는 “내가 똑똑히 기억한다”는 말을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억은 과거의 장면을 그대로 보관하는 창고라기보다, 떠올릴 때마다 다시 조립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도 정말 내가 직접 본 것인지, 나중에 본 사진과 가족들이 반복해서 들려준 이야기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자동차 사고 실험은 질문에 사용된 단어 하나가 기억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사고 영상을 보았지만, 자동차가 서로 ‘부딪쳤다’는 표현보다 ‘박살 났다’는 강한 표현을 들은 사람들이 차량의 속도를 더 빠르게 기억했다. 질문은 단순히 기억을 꺼내는 도구가 아니라 기억 안에 새로운 정보를 넣는 장치가 될 수 있었다.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 실험에서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사건을 가족에게 들은 사실처럼 제시했다. 일부 참가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을 기억한다고 말했고, 당시의 감정과 주변 모습까지 덧붙였다. 물론 모든 기억이 쉽게 완전히 조작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야기와 유도 질문, 신뢰하는 사람의 암시가 기억의 내용과 확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목격자가 확신에 찬 태도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한다고 해도 그 기억이 반드시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사건 이후 본 뉴스와 사진, 수사관의 질문,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가 원래 기억에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섬뜩한 것은 잘못된 기억도 흐릿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에도 감정과 세부 정보가 붙을 수 있고,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실제 경험이라고 굳게 믿을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즐겁지도 않은 행동을 왜 멈추지 못하는지도 살펴본다.
슬롯머신과 숏폼 영상이 사람을 붙잡는 것은 확실한 만족보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다.
재미가 없으면서도 계속 화면을 넘기고, 이미 충분히 소비했으면서도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이것까지만 보고 자야지”라고 생각한 뒤 한 시간이 지나 있는 이유도 매 순간 즐거워서라기보다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것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책은 선의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됐던 의학의 오류를 보여준다.
사람을 낫게 한다며 오랫동안 시행된 사혈, 환자를 조용하게 만들면 치료됐다고 여긴 로보토미,
한때 의약품으로 사용됐던 헤로인과 코카인은 전문가의 확신도 잘못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손 씻기의 중요성을 주장했지만 동료들에게 외면받은 이그나츠 제멜바이스의 이야기는
기존의 믿음과 자존심이 새로운 지식을 거부할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라는 제목은 처음에는 인간을 냉소적으로 비난하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인간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착각하고,
기억을 다시 쓰며, 욕망에 흔들리고,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믿는다.
나만 부족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원래 불완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망가져 있다는 사실보다 그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내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듣는다.
내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확신만으로 누군가를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이 책은 독자를 겁주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믿는 것이 사실은 가장 모르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가까워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잠과 기억, 욕망과 치료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어두운 본성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굳은 확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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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우리는 잠을 빌린 돈처럼 생각한다. 오늘 좀 덜 자도 내일이나 주말에 몰아 자면 갚을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부족한 잠은 빌린 돈처럼 깔끔하게 갚아지지 않는다. 사라진 몇 시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날 판단력과 기분과 집중력 속으로 슬그머니 스며든다. 문제는 그게 잘 안 느껴진다는 거다. 평소보다 좀 예민하고, 좀 멍하고, 실수가 좀 늘 뿐이라, 우리는 그걸 "원래 이런 날도 있지" 하고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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