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에 한 번은 어린 왕자 필사 ㅣ 인생에 한 번은 어린 왕자 필사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송근아 옮김 / CRETA(크레타) / 2026년 7월
평점 :

『어린 왕자』는 비행기 사고로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한 한 조종사가 작은 별에서 온 어린 왕자를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살던 소행성 B612를 떠나 여러 별을 여행하고, 왕과 허영심 많은 사람, 사업가와 점등인 같은 어른들을 만난다.
이후 지구에 도착해 장미와 여우, 뱀을 통해 사랑과 관계, 책임과 이별의 의미를 배워간다.
어린 시절에는 신비로운 별에서 온 아이의 모험담처럼 읽히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숫자와 성과를 좇느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어른들의 모습,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 꿈과 상상력을 잃어버린 삶이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라기보다 한때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어른을 위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인생에 한 번은 어린 왕자 필사』의 첫머리에서 정여울 작가는 우리가 『어린 왕자』를 혹시 잘못된 서랍 속에 넣어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서랍에서 꺼내 ‘꿈을 깜빡 잊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책들의 서랍’에 넣어두자고 말한다.
이 표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 한 번 읽었다는 이유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책이 사실은 어른이 된 뒤 다시 읽어야 비로소 보이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눈으로 읽고 어떤 책은 마음으로 읽지만 이 필사책은 손끝으로 읽는 책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전체 내용을 직접 따라 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원작 삽화와 함께 작품의 주요 장면마다 ‘사유의 시간’이 배치되어 있다.
눈으로 읽으면 한두 초 만에 지나갈 문장도 손으로 옮겨 적으려면 한 글자씩 바라보아야 한다.
문장의 속도에 맞춰 생각도 느려지고, 평소라면 지나쳤을 표현과 감정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필사는 문장을 단순히 베껴 쓰는 일이 아니라 한 문장이 내 안을 충분히 통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다.
빨리 읽을 때는 작가의 이야기였던 문장이 손끝을 거치고 나면 나의 기억과 꿈, 관계와 상처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으로 바뀌게 된다.
이 책은 “어른은 누구나 한때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라는 유명한 헌사로 시작한다.
생텍쥐페리는 처음에는 이 책을 자신의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바쳤지만, 곧 ‘어린 시절의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다고 고쳐 쓴다.
이 한 문장 안에는 『어린 왕자』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잊는다.
상상하는 법, 이유 없이 좋아하는 법, 사소한 것에 감탄하는 법, 누군가의 마음을 숫자 없이 바라보는 법을 잃어버린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마음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그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세상을 계산하는 능력은 커졌지만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잊었다면 우리는 성장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부를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화자인 조종사는 여섯 살 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린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그림을 모자라고 생각한다.
보아뱀의 내부까지 다시 그려 보여주었지만 어른들은 그림을 그만두고 지리와 역사, 연산과 문법을 공부하라고 충고한다.
결국 그는 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화가의 꿈을 포기한다.
이후 어른이 된 조종사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보아뱀 그림을 보여주며 상대가 자신의 상상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한다.
그러나 누구나 모자라고 답한다. 그러면 그는 그 사람 앞에서 보아뱀과 원시림, 별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대신 골프와 정치, 넥타이 같은 이야기만 나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어른들의 상상력 부족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람은 꿈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말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낄 때 먼저 입을 다물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꿈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내 꿈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마음속에 숨겨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사유의 시간’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독자의 삶을 향해 질문을 건넨다.
어린 시절 진지한 호기심을 보였지만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적이 있는지 주변의 만류와 사회적 시선 때문에 포기한 꿈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 열정이 아직 남아 있다면 지금부터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사유의 시간’은 단순히 작품의 내용을 되짚는 코너가 아니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내 삶과 연결해 보고 나라면 어땠을지 천천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이해받지 못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꿈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통해 독자는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좋은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평소 외면했던 마음 앞에 잠시 멈춰 서게 한다.
이 책의 ‘사유의 시간’은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읽는 시간을 넘어 자신의 삶을 천천히 읽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종사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 없이 살아가다가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한다.
마실 물은 일주일 분량밖에 남지 않았고 혼자서 고장 난 비행기를 고쳐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발,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이렇게 조종사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
조종사가 여러 번 양을 그려주지만 어린 왕자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아파 보인다거나 숫양이라거나 너무 늙었다고 말한다.
결국 조종사는 상자 하나를 그려주며 원하는 양이 그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환하게 기뻐한다.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어른에게는 빈 상자일 뿐이지만 어린 왕자에게는 양이 잠들어 있는 집이다.
어린 왕자는 눈에 보이는 그림보다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바라본다.
상자 속 양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믿음, 위로와 희망도 눈앞에 형태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힘든 날마다 떠올릴 수 있는 ‘상자 속 양’ 같은 존재가 하나쯤 필요하다.
이 책은 여기서 다시 질문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 ‘상자 속 양’ 같은 존재가 있는지?
황량한 사막 같은 고난의 시간에 어린 왕자와 같은 존재를 만난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사막은 아무것도 없는 장소처럼 보이지만, 조종사는 바로 그곳에서 어린 왕자를 만난다.
삶이 가장 메마르고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나 책, 문장 하나가 찾아와 삶의 의미를 바꾸기도 한다.
힘든 일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은 순간에도 새로운 사람이나 뜻밖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난다는 것은 절망 속에서도 관계와 의미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은 어린 왕자와 양에 관한 대화다.
조종사는 양이 제멋대로 가다가 길을 잃을 수 있으니 끈과 말뚝을 그려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자신이 사는 곳이 아주 작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슬픈 기색으로 덧붙인다.
“앞만 보고 가봤자 아무도 멀리 갈 수 없는걸….”
처음에는 작은 행성에서는 아무리 걸어도 멀리 갈 수 없다는 단순한 의미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문장은 어른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흔히 앞만 보고 나아가는 사람을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멈추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리며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성과를 얻는 것을 성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앞만 본다고 해서 반드시 멀리 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방향을 돌아보지 않고 속도만 높이면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같은 자리만 맴돌 수 있다.
멀리 간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거리를 이동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왜 이 길을 걷는지 알고, 곁에 있는 존재를 살피며, 필요할 때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비로소 멀리 갈 수 있다.
또한 이 문장은 ‘앞’만 바라보는 삶이 무엇을 놓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앞에는 목표와 미래가 있지만 옆에는 함께 걷는 사람이 있고, 뒤에는 내가 지나온 삶과 포기했던 마음이 있다.
앞만 보는 사람은 빠르게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미가 외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인생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가 아니다. 때로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옆 사람의 속도를 기다리고, 내가 출발한 이유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삶의 깊이는 얼마나 빨리 갔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누구와 함께 걸었는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문장은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조종사는 양이 길을 잃을까 봐 묶어두려고 하지만 어린 왕자는 양을 묶는다는 발상 자체를 이상하게 여긴다.
어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행동을 제한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하려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상대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붙잡아두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잃을까 봐 불안한 마음일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억지로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서로 믿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어린 왕자의 말에는 앞으로만 달리는 삶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작은 세계 안에 갇혀 있는 외로움도 담겨 있다.
아무리 걸어도 멀리 갈 수 없는 작은 행성은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 습관 안에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사람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문장은 현재의 방향이 맞는지, 내가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때로는 멈춤이 후퇴보다 더 큰 전진이 되며 방향을 바꾸는 용기가 속도를 높이는 노력보다 더 멀리 데려다준다.
『어린 왕자』는 숫자로 세상을 판단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어른들은 새로 사귄 친구의 목소리와 좋아하는 놀이보다 나이와 몸무게, 형제의 수와 아버지의 수입을 묻는다.
분홍빛 벽돌과 창가의 제라늄, 지붕 위의 비둘기가 있는 집을 설명하면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비싼 가격의 집이라고 말하면 그제야 멋진 집이라고 감탄한다.
오늘날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람을 연봉과 직함, 학력과 팔로워 수로 설명하고, 집은 가격으로, 책은 판매량과 순위로 평가한다.
우리는 하루를 잘 보냈는지도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로 판단할 때가 있다.
숫자는 결과를 쉽게 보여주지만, 한 사람의 마음과 삶까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하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누구를 사랑하는지는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셀 수 없기에 더 귀하다.
필사로 『어린 왕자』를 읽는 장점은 이런 문장 앞에서 쉽게 지나가지 않게 된다는 데 있다.
눈으로 읽을 때는 익숙한 명문장으로만 받아들였던 표현도 손으로 쓰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또한 각 장면 뒤에 놓인 ‘사유의 시간’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도록 돕는다.
질문에 반드시 훌륭한 답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두 문장으로 답해도 좋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그저 아름다운 동화로 남겨두지 않고 현재의 나와 연결하는 일이다.
나는 아직 보아뱀 속 코끼리를 알아볼 수 있는가.
사회적 시선 때문에 포기했던 꿈은 무엇인가.
내 삶에서 단 한 송이 장미처럼 특별한 존재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앞만 보고 걷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묶어두려 한 적은 없는가.
이 질문들은 독서를 삶의 문제로 확장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어떤 질문을 남겼는가이다.
『인생에 한 번은 어린 왕자 필사』는 빠르게 완독하고 덮어두는 책이 아니라 하루에 몇 쪽씩 천천히 쓰고,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글씨가 예쁘지 않아도 괜찮고 매일 정해진 양을 채우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문장을 따라 쓰면서 내가 무엇을 잊고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데 있다.
필사는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연습이라기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쳐버린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에 가깝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과 마음속에 숨겨둔 꿈, 소중하지만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한 문장씩 다시 꺼내보는 일이다.
삶의 방향이 흐릿해졌을 때, 숫자와 성과에 지쳤을 때, 관계 속에서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이 책을 펼쳐보면 좋겠다.
어린 왕자의 문장을 손으로 따라가다 보면 아주 새로운 답을 발견하기보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고 지냈던 진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리 안의 소행성 B612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잊혀 있었을 뿐이다.
보아뱀 속 코끼리를 알아보는 눈과 상자 속에서 잠든 양을 믿는 마음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인생에 한 번은 어린 왕자 필사』는 잊어버린 별로 돌아가기 위한 나침반이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쳤던 마음을 돌아보고 내가 정말 멀리 가고 있는지 다시 묻게 하는 책이다.
손끝에 별 하나를 올려놓고 싶은 밤, 꿈을 깜빡 잊어버린 어른에게 건네고 싶은 책이다.
ㅡ
'크레타 CRETA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대답했다.
"아저씨가 준 상자가 좋은 이유는 밤이 되면 그걸 양의 집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야."
"그래, 맞아. 네가 착하게 굴면 낮에 양을 묶어놓을 끈도 하나 그려줄게. 끈을 매달 말뚝도 그려주고."
하지만 어린 왕자는 내 제안에 놀란 듯했다. "양을 묶어놓다니! 말도 안 돼!"
"하지만 묶어두지 않으면 제멋대로 가다가 길을 잃을 거야."
내 친구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가기는 어디로 가겠어?"
"어디든지. 앞만 보고 가겠지."
그러자 어린 왕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내가 사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아주 작으니까!"
그리고 어쩐지 슬픈 기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앞만 보고 가봤자 아무도 멀리 갈 수 없는걸..." - P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