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 - 말수가 적어도 인정받는 사람들의 말하기 전략
김해리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4월
평점 :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는데 입은 떨어지지 않고 말 대신 당황스러움이나 억울함 같은 감정이 먼저 차오른다.
회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뒤에야 “그때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라며 뒤늦게 상황을 복기하기도 한다.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은 이런 순간에 필요한 것은 타고난 말재주나 갑작스러운 용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먼저 몸과 마음을 차분히 정리한 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한 문장을 꺼내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향적인 사람을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속도를 지키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자기 목소리를 완전히 숨기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 김해리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15년째 해 온 강사지만, 스스로를 극단적인 내향인이라고 말한다.
이웃의 말소리가 들리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향하고,
미용실에서는 대화를 피하려 눈을 감으며,
전화가 오면 바로 받지 못할 정도로 낯선 소통에 긴장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오랫동안 강의를 할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자신도 외향적인 강사를 따라 하려고 했다.
억지로 목소리를 높이고 과장된 몸짓을 사용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처럼 보이려 했다.
그러나 강의가 끝날 때마다 며칠씩 기운이 빠졌고, 강의를 하는 자신과 평소의 자신 사이가 점점 어긋났다.
결국 저자는 질문을 바꾸었다.
외향인처럼 말하는 법이 아니라, 내향인에게 맞는 말하기는 무엇일까?
그 뒤로 순발력이 부족한 만큼 대본을 더 탄탄하게 준비하고, 말을 많이 하기보다 한 문장에 힘을 실었다.
화려한 쇼맨십 대신 정확한 정보와 진심 어린 태도를 내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오히려 “말씀이 편안해서 내용이 잘 들어온다”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내향성을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기질로 받아들인 순간, 저자만의 말하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내향인의 말문을 막는 세 가지 벽에 대한 설명이었다.
바로 내향성, 불안, 예민함이다.
내향인은 말을 꺼내기 전에 그 말이 정확한지, 필요한지, 적절한지를 오래 생각한다.
불안이 큰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먼저 떠올린다.
예민한 사람은 표정, 한숨, 자세, 회의실의 분위기까지 모두 신호처럼 받아들인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 생각은 깊어지지만 말은 점점 늦어진다.
저자는 이런 상태를 ‘내적 말하기 과포화’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열 번쯤 말해 본 상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절한지 판단하고, 상대의 반응과 분위기를 예측하고, 오해가 생길 가능성까지 생각한다.
그렇게 머릿속의 정류장을 모두 거치는 동안 대화는 이미 다음 주제로 넘어가 버린다.
저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회의에서 밝히지 못해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던 일화는 이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팀장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하는 사이 다른 사람이 자신과 함께한 일이라고 말해 버렸다.
발표까지 그 사람이 맡게 되면서 저자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말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는 고백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다.
내향인이 중요한 순간에 말해야 하는 이유는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가 한 일과 생각, 감정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다
말을 삼키는 일이 반복되면 단순히 말할 기회를 놓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때로는 나의 성과와 존재감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내향성과 불안, 예민함을 무조건 극복해야 할 약점으로만 보지 않는다.
내향성은 생각의 깊이를 만들고, 불안은 여러 가능성을 미리 살피게 하며, 예민함은 청중의 표정과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하는 능력이 될 수 있다.
저자 역시 이 성향을 활용해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강의의 흐름을 바꾸고, 교육 만족도가 높은 강사로 자리 잡았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핵심 연습은 ‘한 호흡 한 문장’이다.
완벽한 문장을 준비하려 애쓰기보다, 꼭 전하고 싶은 한 줄을 숨을 고른 뒤 끝까지 말해 보는 것이다.
“그 아이디어는 제가 처음 정리한 내용이라 제가 설명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처럼 짧더라도 나의 입장을 보여주는 문장을 준비한다.
이 연습이 좋은 이유는 말하기를 거창한 성과가 아닌 작은 실험으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말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평가하기 전에,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실제 목소리로 꺼냈다는 경험을 몸에 남긴다.
내향인에게는 이런 작은 물리적 경험이 다음번에 다시 입을 열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연습 노트 역시 인상적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말하기가 힘든지,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먼저 들었는지 기록하게 한다.
자신을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대신 “말하기 전에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새롭게 해석하도록 돕는다.
책을 깨끗하게 보관하기보다 줄을 긋고 한 단어라도 적으며,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감정과 생각을 바깥으로 꺼내도록 만든다.
혼자 있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도 깊이 공감되었다.
저자는 모두가 퇴근한 뒤 사무실에 적막이 흐를 때야 비로소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말한다.
밥 먹듯 야근을 선택했던 이유는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며 몰입할 수 있는 차단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에서도 내향인은 고독 속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고 설명한다
저자에게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업무 효율을 높이는 무기였다.
나 역시 주변의 말과 소리, 움직임이 사라져야 비로소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 있기에 이 부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저자는 내향인을 용량이 작은 배터리에 비유한다.
자주 충전해야 한다고 해서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성이나 대인관계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날 필요도 없고, 항상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줄 필요도 없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쓸 수 있으면 된다.
말하기는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눈빛과 자세,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과 손동작처럼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비언어적 표현도 중요하다.
저자는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비언어 표현을 연습하면 불안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눈빛과 몸 전체로 전달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수 있다.
완벽한 대사를 한 줄도 틀리지 않고 말하려는 태도보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방향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현실적이었다.
내향인은 준비에 강한 사람이다. 따라서 외운 문장을 완벽하게 재현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방식대로 충분히 준비하고 맡겨진 메시지만 끝까지 전달하겠다는 기준을 세우는 편이 낫다.
말의 양이 아니라 이미지와 방향으로 기억되게 하라는 전략도 유용하다.
내향인은 말수가 적다는 이유로 차갑거나 자신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하지만 편안한 눈빛, 안정된 자세, 분명한 한 문장을 갖춘다면 적은 말로도 신뢰를 줄 수 있다.
실제로 배우 엄태구처럼 수줍음과 어색함을 감추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솔직함과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어쩌면 유려하고 화려한 말보다, 서툴지만 꾸밈없는 한마디에 더 마음을 열기도 한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수영을 통해 자신의 속도로 반복하는 법을 배운 경험을 들려준다.
두려움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지만, 안전한 조건에서 같은 경험을 반복하면 낯섦의 모서리가 조금씩 닳아 간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대답하는 사람의 속도에 맞추려다 보면 오히려 자신의 흐름을 잃기 쉽다.
내향인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입담이나 빠른 순발력이 아니라 ‘침묵을 견디는 마음의 근육’이라는 문장이 특히 좋았다.
질문을 받자마자 답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잠깐 숨을 고르고 2~3초 생각한 뒤 자신의 속도로 말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짧은 정적을 견디는 힘이 결국 자신의 말이 된다.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은 조용한 사람에게 더 큰 목소리를 내라고 다그치는 않는다.
자신이 왜 말 앞에서 작아지는지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호흡과 속도로 한 문장을 꺼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내향성과 불안, 예민함은 말하기의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한 번 내놓은 말을 오래 책임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말이 적어도 괜찮다고 믿는 순간부터 말하기는 조금 덜 무서운 일이 된다.
회의에서 한 번은 손을 들고 싶은 사람, 중요한 자리에서 내 생각 한 줄만큼은 끝까지 말하고 싶은 사람,
조용히 있는 것이 편하지만 평생 숨어 있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좋은 연습 상대가 되어 줄 것이다.
말수가 적어도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크게 떠들지 않아도 된다.
나의 호흡을 놓치지 않고 꼭 필요한 순간에 책임질 수 있는 한 문장을 꺼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단단한 말하기일 것이다.
ㅡ
’검은고양이 @thaod1088’ 님에게
'비전코리아 출판사' 도서를 선물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회로 자체는 빠르지만 정류장이 너무 많다. 말은 항상 늦게 도착한다. 때로는 도착하기도 전에 방향을 바꿔 버린다. 사고만 바쁘게 돌아가고, 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내 말문을 막는 구조를 이렇게 정리해 보자.
내향성은 생각의 깊이를, 불안은 반응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예민함은 분위기에 대한 감각을 키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