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스즈키 도시타카 지음, 김소연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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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새를 연구할까?

단순히 새가 어떻게 날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 둥지를 트는지 알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새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이 미처 듣지 못한 세계의 신호를 배우는 일에 가깝다.

새는 인간보다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계절의 변화와 숲의 균형, 위험의 징후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알아차리며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가 새를 연구하는 이유는 새를 인간의 기준으로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는 바로 그 깨달음으로 우리를 이끄는 책이다.

새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보통 “새가 운다”거나 “새가 지저귄다”고 말한다.

아침을 알리는 배경음처럼, 혹은 숲과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소리처럼 가볍게 지나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익숙한 생각을 조용히 뒤흔든다. 새가 내는 소리는 단순한 울음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언어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한 연구자의 오랜 관찰과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스즈키 도시타카는 동물언어학을 개척한 생물학자다.

그는 일본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박새를 18년 넘게 관찰하며, 박새의 울음소리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그 소리들이 조합되어 문장처럼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새에게 언어가 있다’는 말은 동화나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저자의 실험을 따라가다 보면 이 말은 더 이상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검증된 발견이 된다.

저자의 연구는 아주 소박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대학 시절 가루이자와의 숲에서 박새류가 혼종 무리를 이루어 먹이를 찾고, 위험을 알리고, 서로를 부르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특히 먹이가 부족한 겨울 숲에서 한 마리가 해바라기씨를 발견하고도 혼자 독점하지 않고 다른 새들을 불러 모으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이타적인 행동처럼 보였지만, 관찰을 거듭하자 그 안에는 생존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

함께 먹이를 먹으면 천적을 경계하는 부담을 나눌 수 있고, 더 안전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방쇠박새의 ‘지―지―’, 박새의 ‘치지지지’, 곤줄박이의 ‘니―니―’는 모두 ‘모여라’라는 뜻을 가진 소리였다.

또 ‘삐삐삐’ 같은 소리는 새매와 같은 천적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로 작동했다.

더 놀라운 것은 특정 울음소리가 ‘뱀’을 의미하고, 박새가 단어를 조합해 문장처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인간은 언어를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오랜 믿음이 정말 맞는지, 작은 박새의 언어를 통해 조용히 되묻는다. 우리가 새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그 소리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소리는 동료를 부르는 말이고, 어떤 소리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이며, 또 어떤 소리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 주고받는 약속일 수 있다.

어쩌면 새들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소리를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았다.

인간은 오래도록 자연을 바라보는 중심을 자신에게 두었다. 인간은 말하고, 동물은 운다고 구분했다.

인간은 사고하고, 동물은 본능적으로 반응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새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그 구분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만 언어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만 소통이라고 믿는 순간, 세상은 인간의 기준만큼만 좁아진다.

추천사를 쓴 최재천 교수는 스즈키 도시타카를 “가장 시기하고 질투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 말이 재미있으면서도 깊게 다가왔다. 동물행동학은 1, 2년 안에 답을 얻을 수 있는 연구가 아니다.

같은 대상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관찰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 역시 30년 가까이 까치를 연구해왔다고 말한다. 까치들의 ‘깍깍’ 소리를 음절 단위로 기록해둔 데이터가 언젠가는 의미를 드러내리라 기대하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한 학문이 얼마나 긴 시간과 인내 위에서 자라는지 느껴졌다.

세상에 없던 발견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지나친 장면 앞에 오래 머무른 사람에게 찾아온다.

스즈키 도시타카의 연구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새소리를 단순한 배경음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낼까?”라는 소박한 질문을 붙들었고, 그 질문을 놓지 않은 채 숲을 오가며 관찰과 실험을 반복했다.

하나의 울음소리가 어떤 상황에서 나오는지, 그 소리를 들은 새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순서가 바뀌면 의미도 바뀌는지 차근차근 확인했다.

과학은 거창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의문을 끝까지 따라가는 데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과학적 성과가 놀랍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구자의 집요함과 동시에 새를 향한 애정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히로시 선생님이 신천옹을 왜 그렇게 열심히 지키느냐는 질문에 “불쌍하지 않나”라고 답하는 장면은 마음이 뭉클했다.

평소에는 누구보다 논리적인 연구자였지만, 그 연구의 가장 깊은 동기는 결국 사랑이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새를 지키기 위해 매년 혼자 무인도를 찾는 마음은 논문이나 수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좋은 연구는 차가운 호기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래 바라보는 마음,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애정, 그리고 한 생명을 함부로 낮춰 보지 않는 태도가 있어야 비로소 그 세계에 닿을 수 있다.

히로시 선생님의 짧은 대답이 오래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불쌍하지 않나”라는 말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생명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처럼 들렸다.

누군가에게는 연구 대상일 뿐인 새가 누군가에게는 지켜야 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결국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어쩌면 자연과 동물이 살아가는 거대한 세계 안에 인간이 잠시 함께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이 이 땅의 주인인 것처럼 굴 때가 많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물을 내쫓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생명의 자리를 빼앗기도 한다.

비둘기가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신천옹이 ‘바보 새’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처럼 인간은 종종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생명을 너무 쉽게 낮춰 부른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배경이 아니다. 새도, 숲도, 곤충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소통하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인간이 그 세계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그 세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적게 듣고, 얼마나 좁게 바라보며 살아왔는지를 알려준다.

인간이 자연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생명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어온 질서와 언어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루이자와라는 공간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연간 100종이 넘는 들새를 관찰할 수 있고, 일본 최초의 탐조지인 ‘들새의 숲’이 있는 곳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박새의 행동과 소리를 오랜 시간 관찰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생각이 이어졌다.

자원이 풍부한 곳에 사는 새와 그렇지 않은 곳에 사는 새는 행동이나 소리에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람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따라 사용하는 말과 생활 방식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새들도 자신이 살아가는 조건에 맞춰 조금씩 다른 소통 방식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먹이가 풍부한 숲의 박새와 도시의 박새, 천적이 많은 곳의 박새와 비교적 안전한 곳의 박새가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소통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새의 언어 역시 그들이 살아가는 장소와 관계, 생존 조건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 안에 새로운 호기심을 남겼다.

좋은 책은 정답을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읽는 사람 안에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질문을 남기고, 익숙했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가 내게 남긴 것도 바로 그런 질문이었다. 새의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새소리만 달리 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오래 남는다.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는 과학책이지만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오히려 한 사람이 좋아하는 대상을 평생 가까이 바라보며 자기만의 세계를 발견해가는 탐구기이자 에세이에 가깝다. 박새의 둥지를 연구하기 위해 인공 새집을 설치하고, 메뚜기를 채집해 연구 자금을 마련하고, 꼽등이에게 새집을 빼앗기는 에피소드까지 읽다 보면 저자의 좌충우돌 연구 과정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실패와 우연, 집념과 애정이 함께 담겨 있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창밖의 새소리가 이전처럼 들리지 않는다.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소리가 이제는 누군가를 부르는 말일 수도 있고, 위험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고, 함께하자는 문장일 수도 있다.

새가 노래한다거나 슬피 운다는 표현은 어쩌면 인간의 감정으로 새를 해석한 말일지 모른다.

새의 말을 들으려면 먼저 인간의 방식으로 자연을 판단하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야 한다.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는 새의 언어를 알려주는 책이지만, 결국 인간에게 묻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말 잘 듣고 있는가. 우리는 인간의 말이 아닌 다른 생명의 신호를 너무 쉽게 무시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수없이 많은 말을 하면서도 정작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에, 작은 박새의 언어는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세상은 조용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는 법을 잊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알아듣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책은 그 차이를 깨닫게 한다.

책을 읽고 나면 새소리가 달리 들린다. 산책길에 들리는 짧은 울음 하나에도 괜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저 새는 지금 누구를 부르는 걸까. 위험을 알리는 걸까. 먹이를 발견한 걸까?

아니면 내가 전혀 모르는 방식으로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익숙했던 세계가 조금 넓어진다.

이 책은 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달나라에 가는 것만이 과학이 아니라, 매일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질문을 던지는 일도 과학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조금씩 더 넓은 세계를 알게 된다.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결국 인간이 잃어버린 자연과의 연결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키다 서평단’을 통해,

'오팬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우리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합리적으로 디자인된 동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만~"으로 시작하는 ‘우물 안 개구리’ 사고방식은 사실상 존립하기 어렵다.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오랜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 문화의 모든 면이 그렇듯, 언어도 결국 우리의 조상종들이 거쳐온 역사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지극히 간단한 실험들로 동물도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밝힌 스즈키 교수의 치밀함과 탁월함에 존경을 표한다. 이 책은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귀한 귀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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