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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군산 - 바다가 부른다, 이야기가 있다, 오래도록 새로운 여행지, 군산 ㅣ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4
권진희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5월
평점 :

『언제라도 군산』은 제목부터 괜히 마음이 갔다. 그런데 사실 나는 군산이라는 도시를 잘 몰랐다.
어디에 어떤 분위기의 도시인지 막연했고, 여행지로는 왠지 오래된 느낌의 도시라는 이미지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군산에 가면 짬뽕을 먹는다는 이야기나, 야채빵으로 유명한 오래된 빵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으로 군산의 느낌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군산은 내게 궁금한 도시이면서 흐릿한 도시였다.
그런데 『언제라도 군산』을 읽다 보니 그 흐릿했던 도시가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관광지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서가 아니라, 군산을 오래 좋아해온 사람이 자신이 아끼는 공간과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유명한 장소보다 골목의 공기, 오래된 나무 한 그루, 자주 가는 책방과 카페 같은 것들이 더 오래 남는 책이었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군산이라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저자는 건축을 배우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중국인 교환학생과 군산 앞바다에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산간 지방에서 자란 그에게 군산 앞바다는 첫 바다였고, 그는 “바다가 이렇게 금방이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군산’이 무리 군, 뫼 산을 쓴다는 사실을 신기해한다.
지금의 군산은 산보다 바다와 평야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원래 군산은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같은 섬들을 묶어 부르던 이름이었다고 한다.
섬들이 산처럼 무리 지어 있다는 뜻이라는 설명을 읽고 나니 도시 이름조차 다르게 보였다.
여행지는 원래 이런 식으로 가까워지는 건가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저자가 군산을 바라보는 속도였다.
요즘 여행 콘텐츠를 보다 보면 어디를 꼭 가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고, 사진은 어디서 찍어야 하는지가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언제라도 군산』은 그런 방식과 조금 다르다.
오히려 천천히 걷고, 우연히 멈추고, 마음에 드는 공간에 오래 머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명궁칼국수와 영화건강원 앞 버드나무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저자는 칼국수를 먹고 나오다 가지치기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무슨 나무인지 몰랐지만 바로 검색하지 않고 계절을 기다린다.
3월에는 웅크린 듯하던 나무가 4월에는 조금씩 잎을 내고, 5월이 되어서야 버드나무라는 걸 알아차린다. 이후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 지나면 다시 가지치기를 당한다.
읽으면서 괜히 마음이 차분해졌다. 여행이라는 게 꼭 거창한 경험이 아니라, 어떤 나무 한 그루의 계절을 기억하게 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틈’ 이야기도 좋았다.
영화타운 근처에 있지만 입구를 찾기 어렵고, 여름이면 담쟁이덩굴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겨울이면 붉은 벽돌이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원래 곡물창고였던 건물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도 군산이라는 도시와 잘 어울렸다.
저자는 그곳에서 밤라테를 마시며 친구와 떠났던 공주 여행을 떠올린다.
장소 하나가 다른 장소의 기억을 불러오는 흐름이 참 자연스러웠다.
실제 여행도 그렇다. 어떤 카페 하나가 오래전 계절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음료 하나가 사람을 기억하게 만든다.
군산과자조합 이야기를 읽을 때는 괜히 나도 그곳에 앉아 밀크티를 마시고 싶어졌다.
군산은 짬뽕이나 빵 정도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책 속에는 이런 감각적인 디저트카페들도 등장한다. 1939년 제과·제빵사들이 함께 세웠던 군산과자조합의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 태어난 공간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밀크티와 계란찜과자, 비엔나커피와 바스크치즈케이크를 앞에 두고 일을 미루는 장면은 이상하게 현실적이라 웃음이 났다. 특히 밀크티 향을 맡으며 짙은 보랏빛을 떠올리는 부분은 이 책 특유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맛을 단순히 맛있다고 설명하는 게 아니라 향과 색, 감정과 기억으로 연결해 표현한다는 점이 좋았다.
영화타운 이야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영화동이 영화와 관련된 이름인 줄 알았는데,
책에서는 ‘영화’가 movie가 아니라 ‘길 영’, ‘화할 화’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오래 화목하자는 의미라니 이름부터 정감이 갔다. 그 안에는 40~5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오래된 가게들과 새로 생긴 바와 와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바 ‘해무’와 와인 공간 ‘시가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군산의 밤공기가 상상된다. 특히 해무가 만석이라 우연히 들어간 시가지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좋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공간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여행에서 그런 우연이 가장 오래 남는 것 같다.
‘돌아서 돌아오다’에 나오는 젤라또 노베오와 재즈클럽 머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친구와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젤라또집, 그 뒤편에 숨어 있던 재즈클럽,
해방 직후 미군클럽이었다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장소다.
군산은 한 공간 안에 여러 시간이 겹쳐 있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목조건물 안에서 젤라또를 먹고, 재즈 공연 이야기를 하고,
놓쳐버린 봄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들이 참 군산답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어졌던 건 군산의 책방들이었다.
원래 여행을 가면 작은 책방부터 찾아가는 편인데, 『언제라도 군산』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공간들이 정말 많이 나왔다. 그래픽숍, 심리서점 쓰담, 책방 조용한흥분색 같은 이름만 봐도 괜히 궁금해졌다.
특히 쓰담 이야기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저자는 그곳에서 생일책을 주문하고, 논알콜 맥주를 마시고, 책 두세 권을 사 들고 나온다.
강아지 직원 키코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단순한 서점이라기보다 마음이 잠깐 쉬어가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다고 하는 책들이 많다”는 문장이 특히 좋았다.
여행지에서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꽤 큰 위로일 것 같다.
나도 군산에 가게 된다면 유명한 관광지를 빠르게 돌기보다, 책방 하나에 오래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천천히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사고, 커피나 논알콜 맥주를 마시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언제라도 군산』은 군산을 소개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여행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책처럼 느껴진다.
어디를 얼마나 많이 가느냐보다 어떤 속도로 걷고, 무엇을 오래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골목을 천천히 걷고, 오래된 가게에 들어가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 한 그루를 기억하고, 우연히 발견한 책방에 머무는 여행. 그런 여행을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직 군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상하게 익숙한 도시처럼 느껴졌다.
바다가 있고, 오래된 건물이 있고, 책방이 있고, 누군가의 취향과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도시 같은 느낌이다. 오래되었지만 계속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날 도시인 것 같다.
그래서 제목처럼 정말 언제라도 떠나고 싶은 곳으로 군산이라는 도시를 마음에 새겨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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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향기 서포터즈13기' 활동을 통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군산’은 산이 무리 지어 있다는 뜻입니다.
땅 자체를 보자면 별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익산과 인접한 높이 230미터 망해산이 최고봉일 만큼 큰 산이 거의 없고, 오히려 탁 트인 평야가 강과 바다에 접해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조선 초기까지 군산은 임피, 옥구, 군산으로 구분된 행정구역이었습니다. 그중 군산은 내륙이 아니라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등 10여 개의 유인도와 횡경도, 소횡경도, 보농도 등 40여 개의 무인도를 한데 묶어 부르던 이름입니다. 조선 태조 때 군산도의 중심인 선유도에 설치했던 수군부대를 세종 때 옥구 진포로 옮기며 내륙을 점차 군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기존의 군산도를 고군산이라 불러 구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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