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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글
이두헌 지음 / 이은북 / 2026년 4월
평점 :

『이층에서 본 거리』를 읽다 보면 이상하게 다섯손가락 밴드의 노래를 하나하나 찾아 듣고 싶어진다.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 흐르고, 또 어느 순간에는 〈풍선〉의 멜로디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익숙한 노래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을 알고 나니 예전에 들었던 그 노래들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냥 흘려듣던 가사 한 줄에도 누군가의 청춘과 고독, 짝사랑, 시대의 공기, 오래된 거리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이층에서 본 거리』는 다섯손가락의 이두헌이 자신이 쓴 노래 가사와 그 노래가 태어난 순간들을 함께 풀어낸 책이다.
〈고독한 이에게〉,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새벽 기차〉, 〈풍선〉, 〈눈물 없는 나라에〉 같은 노래들이 실려 있고, 노래 뒤에는 그 노래가 어떤 마음과 기억 속에서 만들어졌는지가 이어진다.
읽다 보면 이 책은 단순한 노래 해설집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한 사람의 청춘과 한 시대의 풍경을 다시 꺼내보는 산문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손가락은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 안에서 유난히 서정적인 감성을 들려주던 밴드였다.
그 시절의 노래들은 지금처럼 강렬한 퍼포먼스나 화려한 사운드보다는, 마음을 천천히 적시는 가사와 멜로디에 가까웠다.
고독, 짝사랑, 이별, 그리움, 어린 시절의 꿈 같은 감정들이 노래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섯손가락의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낡아버리지 않고, 오히려 어느 날 문득 다시 들으면 더 깊게 와닿는 힘이 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노래 가사를 먼저 읽고,
그 뒤에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다시 그 가사를 처음부터 읽고 싶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냥 들었을 때는 익숙한 후렴이나 멜로디로만 남아 있던 노래가 사연을 알고 나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노래는 듣는 순간의 감정으로 남지만, 그 노래가 태어난 이야기를 알고 나면 마음속에 훨씬 깊은 기억으로 남는다.
〈고독한 이에게〉는 특히 오래 머물렀던 부분이다.
저자는 고독을 혼자 있는 선택이 아니라 관계의 결핍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감정에 가깝게 이야기한다.
스무 살 무렵, 음반에 실릴 것을 전제로 처음 온전하게 만든 노래가 바로 이 곡이었다는 고백도 인상적이었다.
미술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미술가를 동경했고, 고독한 날 미술관의 그림 한 점에서 마음의 온기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니 “고독은 결국 내게 가장 다정한 친구”라는 문장이 더 깊게 느껴졌다.
고독을 밀어내야 할 감정이 아니라, 결국 나를 가장 오래 지켜본 친구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참 쓸쓸하면서도 다정했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의 이야기는 뜻밖에 귀엽고도 애틋했다.
대학 시절 5분 만에 끝나버린 짝사랑, 비 오는 수요일, 버스 뒷자리에서 들려온 여학생들의 싱거운 대화, 명동 거리에서 보았던 장미.
그 사소한 장면들이 하나로 엮여 한 시대의 노래가 되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우리는 보통 명곡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한 순간에서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오래 남는 노래는 이렇게 별것 아닌 하루의 장면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순간도 누군가의 마음을 통과하면 오래 기억되는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풍선〉을 읽을 때는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좋았던 부분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소년중앙》, 길창덕의 〈꺼벙이〉, 고우영 만화, 동네 만화방, 월간 만화 《보물섬》, 그리고 〈요정 핑크〉를 떠올린다.
현실은 답답하고 무거웠지만, 만화책 한 권과 작은 상상은 그 시절을 견디게 해주는 구원 같은 것이었다.
1983년의 대학을 음울한 잠수함 같았다고 표현한 부분도 오래 남았다.
학교에 가서는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돌을 던지고, 만화방이나 전자오락실로 피신하던 청춘의 모습은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순수했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이 〈풍선〉이라는 노래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좋았다.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의 작은 꿈들이 노란 풍선처럼 하늘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눈물 없는 나라에〉에 담긴 해운대 포장마차 이야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돈 한 푼 없이 부산을 헤매던 청년에게 포장마차 주인이 홍합과 소주를 내어주고, 기타와 노래를 청하던 장면은 그 시대에만 가능했을 법한 낭만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그날 처음으로 최루탄 없이도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괜히 먹먹했다.
누군가가 건넨 투박한 한 끼, 무심한 듯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마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건 저자의 추억을 따라가다가 어느새 내 추억까지 같이 떠오른다는 점이었다.
만화책을 펼쳐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어린 날, 오락실 앞에서 괜히 서성거리던 순간, 좋아하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서툰 시절, 비 오는 날 괜히 창밖을 오래 바라보던 마음 같은 것들.
본문 속 이야기와 내 기억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조금 그립고, 조금 웃기고, 조금 쓸쓸했다.
『이층에서 본 거리』는 노래 해설집이라기보다, 노래가 태어난 마음의 풍경을 따라가는 책에 가깝다.
읽고 나면 익숙했던 노래를 다시 찾아 듣게 되고, 가사를 한 줄씩 다시 읽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기억 속 거리와 사람들, 지나간 나이와 감정까지 함께 떠오른다.
그 시대에는 분명 그 시대에만 느낄 수 있었던 낭만이 있었다.
편지를 쓰고, 우체통 앞에 서고, 만화방에 숨어들고, 전자오락실로 도망치고, 비 오는 거리를 걸으며 누군가를 생각하던 시간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 안에 남아 있던 어린 나와도 조용히 마주하고 있었다.
좋은 노래는 한 시대의 배경음악이 되지만,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한 사람의 추억까지 다시 깨운다.
『이층에서 본 거리』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익숙한 노래를 다시 듣게 만들고, 잊고 있던 기억을 다시 꺼내보게 하고,
지나온 시절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해준 책이다.
읽고 나니 다섯손가락의 노래들이 전보다 조금 더 깊고 따뜻하게 들리기 시작했다는 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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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올제 서평단 @bagjeongrim21‘을 통해
'이은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눈물 없는 나라는 여전하다. 이제는 인공눈물로 빽빽한 눈을 적시는 메마른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편지를 쓴다. 눈물 없는 나라의 어느 우체국으로, 닿지 않을 진심을 부친다. 기쁨 없는 세상에서 기쁨을 노래하면 언젠가 행복한 날이 올 거라는 그 시절의 순수했던 주문을 되뇌면서 말이다. 비록 그녀의 눈물은 얻지 못했으나, 그날 해운대의 포장마차 주인이 내게 건넨 그 ‘재미있었다’라는 한 마디가 오늘의 나를 여전히 노래하게 한다. 따뜻한 마음이 생길 거라는 그 간절한 기도는, 어쩌면 그녀가 아닌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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