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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환의 다시 만난 한국사 ㅣ 나의 두 번째 교과서 시즌3
정재환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평점 :

한국사는 오래 배운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막상 돌아보면 머릿속에 조각조각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누구는 어느 시대 왕 이름이 먼저 떠오르고, 누구는 시험기간에 외웠던 연도만 희미하게 기억난다.
나 역시도 한국사를 그렇게 배웠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재환의 다시 만난 한국사』는 익숙한 역사책이랑 결이 좀 달랐다.
예전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늘어놓으며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중요한 장면들을 골라 그 안에 남아 있는 힘을 보여준다.
그래서 읽다 보면 옛날이야기를 듣는 느낌보다, 지금 우리가 왜 이런 사회를 살고 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기분이 든다.
이 책에서 계속 붙들고 가는 말이 바로 ‘역사 속 유전자’다.
처음에는 표현이 조금 낯설었는데 읽을수록 무슨 뜻인지 점점 선명해진다.
과거의 어떤 장면은 그냥 지나간 일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 우리 안에 성격처럼, 습관처럼, 가치처럼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저자는 한국사 특강과 집필을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한국사 속을 헤매듯 탐색한 끝에 결국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역사 속 유전자’를 찾기로 한다.
이 문제의식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단순히 옛일을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책의 앞부분에서 만나는 전곡리 주먹도끼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구석기 시대 유물 이야기라고 하면 솔직히 조금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전곡리 주먹도끼는 단순한 석기가 아니라, 한때 동아시아를 뒤처진 지역처럼 보았던 서구 중심의 시선을 뒤집은 상징으로 나온다. 동아시아에는 주먹도끼가 없다고 단정하며 문화적으로 정체된 지역이라고 보던 시선이, 1978년 전곡리 발견 이후 더는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괜히 통쾌한 마음도 들었다. 더 좋았던 건 저자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먹도끼를 만든 사람들의 능력을 머릿속으로 먼저 그리고 실제로 만들어 내는 힘으로 본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주먹도끼는 그냥 돌이 아니라 상상과 기술이 만난 결과물인 셈이다.
구석기인에게 석기가 스마트폰 같은 필수 도구였다면, 주먹도끼는 그 시대의 가장 발전된 도구였다는 설명도 쉽고 재밌게 읽혔다. 아주 오래전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이미 필요한 것을 구상하고 만들어 내는 감각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기술 강국 대한민국과 연결해 보는 시선도 꽤 설득력 있다.
단군신화를 다룬 부분도 좋았다. 보통 단군 이야기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가볍게 넘기기 쉬운데, 이 책은 그 안에 담긴 역사적 흔적을 꽤 차분하게 짚어 준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곰이 사람이 되어 웅녀가 되고,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만 보는 대신, 그 속에 담긴 집단의 이동과 결합, 정치 세력의 형성, 그리고 한반도 첫 국가의 기원을 읽어 내는 식이다.
곰과 호랑이를 토템 집단으로 해석하는 부분이나,
환웅 집단과 선주민 집단의 결합 속에서 고조선이 세워졌다는 설명은 단군신화를 훨씬 입체적으로 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홍익인간을 그냥 외워야 하는 건국이념이 아니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으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단군신화가 단지 신비로운 전설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시작을 설명하는 뿌리 같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중간 이후에 나오는 여러 장면들도 하나하나 따로 노는 느낌이 아니라 한 줄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준다.
삼국통일은 승패의 역사로만 읽히지 않고, 오랜 분열 끝에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해방 이후 다시 남북으로 갈라진 현실까지 저절로 떠오르게 만든다.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대단한 문화재가 아니라, 국난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정신과 지식의 힘을 보여준다.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유물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숱한 실패 끝에 결국 자기들만의 빛을 만들어 낸 도전의 결과처럼 느껴졌다.
훈민정음을 다룬 부분은 특히 오래 남았는데, 문자를 가진 사람만 권력과 지식에 접근할 수 있던 시대에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놀라웠다. 한글을 문화유산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소통과 평등의 사건으로 인식하게 해준다는 점이 좋았다.
수원 화성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냥 예쁜 성곽 정도로만 알았는데, 이 책에서는 더 나은 도시와 더 나은 삶을 실제 공간으로 만들려 했던 상상력과 기술의 결과로 풀어낸다.
갑신정변은 실패한 사건으로만 외워 왔는데, 여기서는 그 안에 담긴 개혁의 절실함과 근대 국가를 향한 조급하고도 뜨거운 마음이 보인다.
만민공동회에서는 신분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함께 나랏일을 걱정하고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살아난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걸 이런 대목에서 다시 느끼게 된다.
마지막의 조선어학회는 말과 글을 지키는 일이 결국 사람과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묵직하게 전한다. 총을 들고 싸우는 일만이 독립운동이 아니라, 우리말을 연구하고 사전을 만들며 끝까지 버틴 일도 똑같이 치열한 저항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한 번 배웠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전혀 다르게 보였고,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은근히 연결되는 지점이 많았다.
지혜, 기술, 통합, 호국, 예술, 소통, 민주, 독립 같은 말들이 역사책 속 표어처럼 뜬금없이 놓여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장면 안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사를 어렵게만 느꼈던 사람도 조금은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반대로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새로운 시선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느꼈다.
과거를 다시 읽는 일이 결국 지금을 더 잘 이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책이 꽤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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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이치코리아 RHK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결국 후지무라 사건은 일본 고고학계가 역사 날조를 묵인했거나 동조했다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비록 일본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촌극이었습니다만, 오래된 역사가 우월하다는 비이성적이며 근거 없는 인식이 빚은 사건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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