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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200년 근현대사 이야기
전범선 지음, SPNS TV 기획 / 자크드앙 / 2026년 3월
평점 :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왜 이 나라는 이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왜 하필 이곳에서 태어났을까?
『한국사 테라피』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는 책이다.
저자 전범선은 자신을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바라본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왔지만, 사고의 절반은 대서양 너머의 문법에 길들여진 이방인에 가까웠다. 유교적 엄숙함과 로큰롤의 야성이 한 몸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던 삶.
그렇게 어느 쪽에도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던 그는 마침내 ‘내가 태어난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 질문을 붙잡고 파고들다 보니, 결국 역사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배워온 방식으로 역사를 설명하거나,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의미를 외우게 만들지 않고 사람을 따라가게 만든다.
한 인물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동안, 그 사람이 통과한 시대 전체가 함께 드러난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공부한다’는 느낌보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았을까’를 따라가게 된다.
이 책이 다른 역사서와 가장 크게 다른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답을 주기보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일본을 이렇게 싫어해야 할까?”
“왜 같은 사실을 두고 서로 전혀 다른 말을 할까?”
어쩌면 무지해 보일 수도 있는 질문들이지만, 오히려 그 질문들이 가장 본질에 가깝다.
우리는 너무 오래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정작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개벽’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시작을 단순히 건국이나 해방이 아니라,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민중의 움직임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뿌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 그리고 최제우라는 인물에 닿는다.
책 속 최제우는 단순한 동학의 창시자로 머무르지 않는다. 경주 최씨 집안 출신이지만 서자로 태어나 양반 사회의 안과 밖을 동시에 살아야 했던 그는, 조선의 모순을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의 막막함으로 겪어낸 경계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루한 한자를 버리고, 당시 절대다수의 민중과 아녀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한글로 가사를 써 노래하기 시작했다. 양반들끼리 주고받는 언어가 아니라 백성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그가 시천주, 곧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하늘님이 깃들어 있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네 안에 하늘님이 있다”는 이 말은 당시의 신분 질서를 뿌리부터 흔드는 급진적인 평등의 언어였다. 이 책은 동학을 단순한 종교 운동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민중이 스스로의 존엄을 깨닫고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하나의 흐름으로 읽어내며, 그 에너지가 훗날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3.1운동은 몇몇 독립투사만의 결단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가장 먼저 거사를 기획하고 설계한 세력은 천도교였고, 여기에 기독교가 호응하고 불교가 협력하면서 거대한 민족·종교 통합의 결실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당시 인구 2천만 명 가운데 약 1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대목까지 따라가고 나면, 3.1운동은 더 이상 교과서 속 기념일이 아니라 이름 없는 민초들이 목숨을 걸고 일으킨 거대한 혁명처럼 다가온다. 몇몇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역사 서사의 중심을 분명하게 뒤집어 놓는다.
이 흐름은 서재필을 통해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된다.
조선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필립 제이슨’으로 살아갔던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개화와 독립, 그리고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핵심은 단순한 강대국이 아니라 ‘독립 정신’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태도다. 그 시선으로 다시 한국사를 바라보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호머 헐버트를 다룬 부분도 오래 남는다.
조선의 양반들조차 외면하던 한글의 가치를 한 미국인이 먼저 알아봤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글을 통해 지식이 모두에게 열릴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춰 보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미 그 가치를 알아보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시선이 이 책이 말하는 테라피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최제우, 서재필, 헐버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훨씬 더 넓은 인물 지도를 펼쳐 보인다. 백남준을 통해서는 한류의 뿌리와 한국 문화의 에너지를, 이완용을 통해서는 그를 단순한 매국노로만 소비하는 대신 서자 출신이라는 한계와 유년기의 상처 속에서 기득권 집착에 매달린 기회주의적 출세가의 얼굴을 드러낸다. 또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최시형·손병희·전봉준, 이광수·최남선·홍명희, 이승만·김구·여운형 같은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립, 변절, 평화, 분단, 이념 갈등 같은 한국사의 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김지하까지 불러오며, 이 책은 결국 과거 인물들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결국 『한국사 테라피』는 우리가 왜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나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책이다. 그래서 읽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사건의 정리가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단순하게 과거를 이해해왔는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쉽게 서로를 판단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게 만든다.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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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드앙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제가 이 시리즈에서 던진 질문들은 한국의 독자들이 보시기에 정말 ‘무식하고 개념 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일본과 친구가 될 수 없을까?" 같은, 어떻게 보면 용서가 안 되는 질문들이 가득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무지함에서 새로운 생각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던지는 질문이 오히려 더 본질적인 성찰을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역사 테라피의 기획은 바로 이런 기대에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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