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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5 - 박경리 대하소설, 4부 3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박경리의 『토지』 15권은 193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개인의 선택과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1929년 원산총파업,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1937년 중일전쟁과 난징대학살까지 이어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며, 이 사건들은 인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번 권에서는 1930년대 일제에 의한 억압과 혼란이 여러 인물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소식은 사람들에게 잠시 희망을 품게 하지만, 그 마음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모두가 같은 뜻을 품은 듯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생계와 현실이 앞에 놓인다.
장사를 해야 하고, 가족을 돌봐야 하고,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일이 먼저가 된다.
그래서 처음의 뜨거움이 조금씩 식어가는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큰 뜻만으로만 살아갈 수 없고, 결국 오늘을 견뎌야 내일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권에서는 아주 담담하게 드러난다. 특히 대중의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가도 서서히 식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흐름이 오래 남는다.
출소한 길상은 이번 권에서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가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과 깊이 연결된 삶을 살아간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윤국의 시선도 달라진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는 과정은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서희의 아들 환국 역시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송관수의 이야기는 시대의 불안이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군자금 사건 이후 만주로 옮겨 다니며 살아가는 모습과, 가족 문제를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시대의 혼란이 곧 삶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아들 영광이 떠도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까지 함께 놓고 보면, 같은 시대를 살아도 각자의 삶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인실은 이번 권에서 특히 복잡하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오가타와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보기 어렵다.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 감정을 끝까지 붙들고 갈 수 없는 시대와 현실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다.
특히 인실이 오가타의 아이를 임신한 뒤 아이를 버리려는 장면은 이 인물의 내면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찬하는 세상을 등지고 두 사람만의 삶을 택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인실은 그런 길로 가지 않는다. 개인의 감정보다 민족과 조국을 더 앞세우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인실은 단순히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눌러야 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보다 더 큰 것을 택한 인물로 보이지만, 그 선택이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기보다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 장면은 민족과 국가 같은 큰 가치가 과연 개인의 삶과 감정 위에 언제나 우선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남긴다.
개인적으로 이번 권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조용하의 죽음이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함 없이 살아온 사람인데, 결국 삶의 끝에 이르는 모습이 허무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 장면이 더 서늘하게 남는 이유는 그 죽음 이후의 분위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놀라고, 누군가는 반응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
그 당연한 흐름이 오히려 더 냉정하게 느껴졌다.
한 사람에게는 끝이었지만, 세상은 그대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장면을 읽을 때는 유난히 허무했다.
작품 속에는 1929년 원산총파업,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1937년 중일전쟁과 난징대학살 같은 사건들이 계속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사건 자체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그 사건들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은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바꾸고 관계를 흔드는 현실로 다가온다. 또한 만보산 사건이나 식민지 조선의 불안한 분위기까지 함께 겹치면서, 개인의 삶과 역사적 상황이 점점 더 촘촘하게 맞물린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당시 사회의 모습이다. 농촌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도시로 떠돌며 살아가는 모습,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먹고사는 문제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누군가는 신념을 지키고, 누군가는 현실을 선택한다. 그 어느 쪽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작품을 더 깊게 만든다.
이 책 속 인물들이 툭 던지는 말들도 오래 남는다.
청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재물은 생각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며,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잘못한 일들만 짐처럼 남는다는 말들은 소설 속 대사인데도 이상하게 더 기억에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또 삶이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될수록 이런 문장들은 더 깊게 와닿는다.
이 책이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큰 목소리로 어떤 진리를 말하기보다
이런 생활의 언어로 사람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생각에 닿게 된다. 사람은 이상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더 큰 뜻을 말하고 먼 곳을 바라보지만, 결국은 눈앞의 하루를 버텨내는 일이 먼저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이 초라하거나 잘못되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지』 15권은 희망만을 말하는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망으로만 끝나는 소설도 아니다.
이 책은 무너지는 사람, 버티는 사람, 그리고 끝내 살아가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서로 다른 삶들이 모두 같은 시대 안에서 함께 흘러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오래 남는 것은 거창한 사건이나 역사적 장면보다도 사람들의 삶이다.
누군가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누군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사라지지만,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토지』 15권을 읽고 나면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것도 사람이고,
그 시대를 견뎌내는 것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이 남는 사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낸 평범한 사람들의 삶 역시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오히려 그런 평범한 버팀이 더 깊고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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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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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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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성이란 용기 있는 자보다 용기 없는 자의 속성인데, 변혁이 없었고 가두어진 상태에서 칼로 길들여졌고 거역과 선택이 없는 용기란 오로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런 틀 속에 있다가 틀이 빠져버리면 가둬 길렀던 새가 새장 밖에 나가도 날지 못하는 것처럼 갈팡질팡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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