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 - 두 번째 까미노, 포르투갈 길을 걷다
이윤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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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 다시 길을 떠날까. 설렘 때문이 아니라 도저히 잊히지 않는 감정 때문일 때가 있다.

『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는 그런 감정에서 출발한 책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두 번째 순례’라는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여행 자체보다도,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 이를테면 죄책감과 그리움,

그리고 끝내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다시 꺼내 들고 걷는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화려하거나 낭만적인 장면보다 버티고 견디는 순간들이 훨씬 길게 남는다.

프롤로그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상태는 솔직히 말해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나이 64세, 과거의 골절과 인대 파열, 아킬레스건염, 심한 위장 질환까지.

“혈변이 나오면 즉시 귀국해야 한다”는 경고를 듣고도 길을 나선다.

이쯤 되면 왜 가는지가 아니라, 왜 굳이 이 길이어야 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이 한 문장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첫 번째 순례가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하는 대목은 특히 오래 남는다. 엄마를 떠나보낸 뒤 죄스러움과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 걷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다리가 부러질 만큼 걸으며 나를 벌주고 싶었다는 고백은 이 여행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막상 길 위에서 얻은 것은 고통 속 깨달음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진맥진한 상태로 열흘이 넘어서야 겨우 기도를 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가족, 친구, 스쳐 지나간 인연들까지 한 사람씩 떠올리며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전하지 못한 감정을 마음속으로 건네는 시간. 그 과정에서 비로소 마음 한가운데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한다. “잡동사니로 가득 찬 창고 한가운데 텅 빈 공간” 같았다는 표현은 이 책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결국 순례란 길을 걷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비워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다시 떠난 두 번째 길. 몸은 더 약해졌고 상황은 더 나빠졌지만, 오히려 이번 여정은 더 담담하게 읽힌다. 여전히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문장은 묘하게 오래 남는다. 첫 번째 순례가 죄책감에서 시작된 길이었다면, 두 번째는 그리움에서 시작된 길이고, 그 끝에는 조금씩 받아들이는 마음이 놓여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순례길 6일차에 등장하는 ‘리나‘와의 만남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 길에서는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스틱 고무 패킹이 닳아 바닥에 닿을 때마다 쇳소리가 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봐 한동안 스틱을 짚지 않고 걷는 리나의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소한 행동이지만 그 안에는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장면을 읽으며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결국 좋은 관계란 거창한 조건보다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데서 오는 것 아닐까. 그렇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순례길에서의 인연이 스쳐 지나가는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삶의 끝까지 이어지는 관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감정만 남는 에세이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며칠 차에 어떤 코스를 걸었는지, 어디서 묵었는지, 숙소 비용은 얼마였는지, 식비와 교통비는 어느 정도 들었는지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어 실제로 순례길을 꿈꾸는 사람에게 꽤 유용하다. 하루하루의 동선과 이동 과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막연한 동경보다 훨씬 현실적인 감각으로 길을 상상하게 만든다. 여기에 ‘쉬어가기’ 코너를 통해 길에서 마주한 건물이나 장소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여주니, 단순히 걷는 기록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품고 있는 시간과 풍경까지 함께 들여다보게 된다. 책 사이사이에 실린 여행지 사진들도 그래서 반갑다. 글로만 따라가던 길의 공기와 색감을 사진이 한 번 더 붙잡아 주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여행의 설렘이나 즐거움만을 앞세우는 책은 아니다.

대신 왜 우리는 어떤 길을 오래 잊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 길이 우리 안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읽다 보면 나에게도 그런 길이 있었는지, 혹은 지금이라도 다시 떠올려 보고 싶은 길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결국 『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지난 삶의 인연들을 다시 떠올리며 길 위에서 자기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본 기록이다. 힘겨운 몸으로도 끝내 걸어낸 그 시간이 오히려 삶을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래 남는다. 감정의 깊이와 실제 순례 정보가 함께 담겨 있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길의 안내서가 되어주는 책이다.

'푸른향기 서포터즈13기' 활동을 통해

‘푸른향기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엄마! 엄마!
잠이 깼다. 내가 우는 소리에 깬 것이다. 꿈이었다니.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엄마가 사라져 버렸다.
억울해서 일어나 앉아 또 울었다.
꿈에서 엄마를 본 지 너무 오래 되었다.
산티아고를 다시 가야겠다.
더 늙어서 못 걷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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